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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의 몸을 열다 - 난학과 해부학을 통해 본 18세기 일본
타이먼 스크리치 지음, 박경희 옮김 / 그린비 / 2008년 1월
평점 :
이번 주에 소개하는 책은 타이먼 스크리치교수의 <에도의 몸을 열다>입니다. ‘몸을 열다’라는 말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도의 몸을 열다>라고 대상이 구체화되면 에도시대의 사회상을 살펴본다는 의미가 조금 더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난학과 해부학을 통해본 18세기의 일본’이라는 부제를 보면 난학과 해부학이라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시되는 것으로 보아, ‘일본이 에도시대에 들어와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려 하는구나’ 정도로 좁힐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보니 ‘여는’ 주체에 따라서 시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닫혀 있는 문을 여는 힘이 안으로부터 작용하는지, 혹은 밖으로부터 작용하는지, 그리고 그 힘에 대한 반응의 크기도 상황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 입니다. 그렇다면, 난학이 에도의 문을 열고, 에도가 난학을 수용하면서 에도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오늘의 일본이 가능하게 된 전환점이 된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겠다고 미루어 짐작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변화를 내부에서 평가하는 것과 외부에서 평가하는 것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겠다싶은데, <에도의 몸을 열다>는 18세기에 난학이 에도의 문을 열었던 것처럼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타이먼 스크리치교수라는 영국인의 눈으로 에도문명이 어떤 변화과정을 겪었는지 살피는 독특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13세기 경기병을 앞세운 몽고제국의 유럽침략은 유럽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습니다. 당-송을 거쳐 금-원-명으로 이어지는 중국문명의 발전은 눈부신바 있어 암흑기라 부르던 유럽문명을 앞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동양문명은 유럽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명에는 부침이 있기 마련, 유럽이 르네상스운동을 통하여 대두된 인문주의의 확산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동안 이번에는 동아시아문명이 침체기에 들어섰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에도의 몸을 열다>의 저자는 미술사를 전공한 학자답게 풍부한 미술작품을 인용하여 18세기 당시의 에도사회가 서양문명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일본 역시 근대에 이를 때까지 외국과의 교류에 적극 나서지 않는 쇄국정책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유럽 열강과 당시 부상하던 미국이 아시아항로를 개척하여 유지하는데 있어 절대적으로 일본을 개방시킬 필요가 있었다고 역사학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적 요구 말고도 비슷한 시기에 동아시아 3국에 전해진 서양의학을 중국과 우리나라는 적극 수용하지 않은 것과는 달리, 일본은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통의학을 버리기까지 하게 된 배경이 어디에 있는지 <에도의 몸을 열다>를 통하여 그 윤곽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칼’을 이야기의 키워드로 삼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근대미술에 등장하는 칼, 특히 정물과 해부학실습에 관한 그림에 등장하는 칼에 담긴 의미와 일본의 전통 사무라이문화에 등장하는 칼의 의미를 좇아 일본이 난의학, 특히 외과영역의 서양의학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양적 사유로서는 사물을 전체로 조감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네덜란드 문화에서는 닫힌 사물은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에 내부를 열어보아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일본 역시 전국시대까지는 사무라이의 칼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 다음 내린 무기몰수령 이후 사무라이계급의 ‘칼’은 상징적인 존재로 무력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칼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은 지대할 수밖에 없었는데, 네덜란드의 문물이 일본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칼과 가위와 같은 날붙이들에 대한 문화적 공감이 가능했던 것이라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제2장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네덜란드의 의학, 특히 칼을 매개로 하는 해부학, 외과학이 일본에 전해지는 과정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이미 18세기 초반부터 네덜란드로부터 외과도구들이 수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아니라 1800년에는 니시구라쿠(西苦樂)가 <난의 두부외과수술도(蘭醫 頭部外科手術圖)>를 그렸다고 하니 서양의학의 외과수술법이 일본에는 크게 거부감을 준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동아시아국가들의 전통의학 영역에서는 해부나 외과수술에서 주로 하는 신체를 절개하는 행위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인의 시각에서 서양의학의 해부학이나 외과수술은 경이적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난의학을 행하는 자들에게 해부학 지식은 필수사항이었던 관계로 유럽해부학교과서를 저본으로 하여 <해체신서>가 출간된 것은 1774년이었지만, 일본전통의학에서는 신체를 절개하는 시술을 멸시하였기 때문에 난의학에 관심을 많은 일부의 호사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해체신서의 저자가 강조한 다음 글을 보면 현재의 의학교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의학에서의 해부학의 중요성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하겠습니다. “해부학 책은 도보(圖譜)를 비교해 보며 읽는 것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러므로 각 조목에 반드시 그림이 있다. 또 부인(符印)을 적어서 관람하는 데 편리하게 했다. 독자는 적절하게 서로 비교해 보는 데 소홀함이 없게 하라.(169쪽)”
결국은 외과시술을 통하여 극적인 치료효과가 주목을 받으면서 해부학에 대한 관심 역시 자연스럽게 커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유럽사회에서도 사체를 훼손하는 것을 금하던 시절이 있어 의사들이 해부를 위한 사체확보를 확보하기 위하여 비상식적 행위까지도 불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멜라키 킹 지음,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사람의 무늬 펴냄) 일본 역시 사체해부는 주로 사형수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사체해부는 역시 중국에서도 드물게 이루어졌 것으로 차이가 있다면 일본에서는 해부결과를 기록한 그림이 서양의학의 영향을 받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일 듯합니다.
이 책에서는 일본집권층이 일본의 전통의학을 폐하고 서양의학을 나라의 주류의학체계로 세우게 된 배경을 생략하고 있습니다만, 서양의학에 일본에서만 적극적으로 수용된 배경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서양의학이 유독 일본에만 전해진 것은 아닙니다. 당시 북경에는 서양문명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 중국어로 번역 소개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북경에 왕래가 잦았던 조선의 선비들 가운데 서양의학에 관심을 두었을 법한 인물들도 적지 않았을 터입니다.
18세기 들어 조선의 실학자들이 남긴 서양의학에 대한 기록이 이를 증거한다 하겠습니다. 서양의학의 생리학, 혈액, 호흡, 신경계에 관한 내용을 적은 이익의 〈성호사설 星湖僿說〉전염병에 관한 내용을 담은 이헌길의 〈마진방 麻疹方〉이나 정약용의 <마과회통 麻科會通> 등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마과회통〉에는 천연두 치료를 위한 제너의 종두법을 소개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실학자들 대부분이 권력과 거리가 있는 남인세력이었던 까닭으로 국가정책으로 적극 채택되지 못하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왜란과 호란으로 어수선한 국내상황으로 외래 문물에 대한 관심이 크지 못하였던데다가 1621년 허준에 의하여 <동의보감 東醫寶鑑>이 완성된 것이 전통의학에 대한 의존을 키웠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에도의 몸을 열다>의 뛰어난 점이라고 하면, 단순하게 네덜란드 의학이 에도시대에 전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음식문화, 지리학 그리고 여행을 인체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는에도시대의 문화를 인용하고 있는데, 특히 윌리엄 하비의 혈액순환설을 인용하여 심장과 동정맥에 대한 해부도를 설명한 부분에서 오랫동안 눈길을 옮길 수 없었습니다. “혈액이 지장없이 원활하게 흐르려면 신체 내의 모든 동맥, 정맥이 깨끗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나라가 통일 상태를 유지하려면 모든 길이 자유자재로 통해야 한다. 일본에는 오랜 전통이 있어서 지도는 정치적 분할 뿐 아니라 주요한 길도 나타냈다(뜻밖으로 서양지도는 그렇지 않았다.(300쪽)”
저자의 맺음말에서 그가 이 책을 통하여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해부학과 해부도보의 역사를 좇는 것이 아니라, 해부학이 자신의 저편으로 빠져나가 있던 알지 못하는 역사를 다루려 한다. (…) 그리하여 해부라는 수사학이 의학에서 나아가 더 넓은 사상의 지평에 영향을 끼친 양상을 그리려는 바가 이 책의 요점이다.(356쪽)” 즉 고대 철학자들이 인체를 ‘미크로코스모스(소우주)’라 하여 신이 창조한 우주를 가리키는 마크로코스모스와 대칭점에 두었던 것처럼 인간의 신체를 하나의 독립된 세계로 자리매김하여 더 넓은 외부세계를 축약해서 자신에게 재현한다는 유럽의 초기해부학자들의 발상을 다시 생각해볼 때입니다.
꽤 오래 전에 정부조직에서 일하고 있을 적에 느꼈던 점입니다. 조직 간의 경쟁이 지나치고 조직 간의 소통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의학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신체의 각 기관이 각각 맡은 역할을 효율적으로 함으로서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 즉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신체의 항상성에 문제가 생겨 질환이 발생하면 적절한 약을 투여하거나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을 하여 치료를 하는 것이 의학입니다. 즉, 의학은 작은 사회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조직을 관리하는 기본철학을 익힐 수 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더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의학, 의학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관심이 커지고 있는 시기입니다.
주(1)
해체신서[解體新書(かいたいしんしょ)]
일본 에도시대에 번역 소개된 해부학교과서입니다. 독일 의사 쿨무스의 《Anatomische Tabellen》을 네덜란드어로 번역한 《Ontleedkundige Tafelen》을 저본으로 스키타 겐파쿠(杉田玄白)이 중심이 되어 중역한 것입니다. 중역이라고는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그림과 설(設)은 전부 해체에 관한 화란의 여러 책을 비교연구하여 가장 명료한 것을 채택하고 이를 베껴서 손쉽게 정통하게 한 것(169쪽)”이라 설명한 것으로 보아 타펠 해부학을 근간으로 하여 다른 해부학책에 소개된 내용을 뽑아 편역한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