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의 시대 - 매일 쏟아지는 정보 더미 속에서 꼭 필요한 정보를 얻는 방법
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한석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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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정보를 유통시키는 거대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

그 위에 형성되어 가는 무수한 정보의 비오톱.

비오톱에 접속하여 관점을 제공하는 무수히 많은 큐레이터.

그리고 규레이터에 체크인하여 정보를 얻는 팔로워.”


사사키 도시나오가 쓴 <큐레이션의 시대>의 맺음말을 시작하는 글입니다. 여기 적혀있는 내용을 모두 이해하신다면 당신은 인터넷을 포함한 각종 매체에서 넘쳐나고 있는 정보의 흐름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제가 아마 맺음말부터 읽었더라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던 생소한 개념이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후쿠오카 신이치를 발견하기 전까지 대부분 실망하는 편이었던 제가 또 한 사람의 좋은 작가를 만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이니치신문 기자를 거쳐 독립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사사키 도시나오는 <플랫혁명>, <전자책의 충격>, <신문, 텔레비전의 소멸> 등의 저서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IT분야에 특히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큐레이션의 시대>에서 저자는 인터넷을 포함하여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넘쳐나다 못해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정보의 흐름에 제대로 올라탈 수 있는가 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건과 사고들을 인용하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비벼 넣는 솜씨가 아주 일품입니다.

먼저 정보의 유통에서 말하는 큐레이션을 정의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요약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셜 미디어상에서 넘쳐나는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일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인터넷 서핑을 조금해보았다고 해서 금새 그 분야의 전문가 행세를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도 현실입니다.) 즉,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어렵지만 그 정보를 보내는 사람의 신뢰 정도는 평가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셜 미디어상에서 ‘사람을 관점으로 하는 정보유통은 압도적으로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제공하는 사람을 오늘날 영미권의 웹에서는 ’큐레이터‘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큐레이터가 하는 ’관점의 제공‘이 큐레이션이다.(183쪽)”라고 저자는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큐레이터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학예사’들 가운데 다양한 예술작품의 정보를 모으고, 수집하거나 빌려와 전체에 일관된 의미를 부여하여 일반에 소개하는 기획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얼리 어댑터는 아닙니다만, 조금은 늦더라도 새로운 추세를 이해하고 동참하는 편입니다. 블로그를 통하여 적지 않은 독자들을 만나왔고, 최근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그리고 카카오스토리까지 시작하여 이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SNS세계를 들여다보면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과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을 팔로워라고 부른다면 저자가 트위터에서 차용한 팔로워에 대한 개념이 재미있습니다. “트위터에서 누군가를 팔로우하는 행위도, 팔로우한 상대의 관점을 체크인하는 행위하고 볼 수 있다. 트위터에서 유용하고 재미있는 트윗을 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 그 사람의 눈으로, 그 사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172쪽)”

 

정보의 바다에서 얻은 정보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면 그 정보로 인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따라서 좋은 정보의 큐레이터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저자의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관점에 체크인하여 소란스러운 정보의 바다에서 적절하게 정보를 끌어낼 수 있다.(175쪽)”.

소개하는 사진은 최근 나사에서 유튜브에 공개한 지난 2005년 6월부터 지난 2007년 12월 사이 지구상 해류의 움직임을 분석해 시각화한 영상으로부터 얻은 것입니다. 우리는 해류를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곳곳에서 소용돌이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잘 알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정보의 바다는 끝없이 펼쳐지지만, (…) 바다 곳곳에는 중심축이 있어, 그 축을 기준으로 정보가 모여들어 소용돌이를 만든다. 당신은 정보 그 자체를 찾을 필요가 없다. 어떤 축이 어떤 정보가 머무는 장소인가를 판단하고 그 축의 근처로 가서 축 주위의 물살에 손을 뻗으면 된다. 차갑게 튀어 오르는 물살 속으로 당신의 손을 넣고 부드럽게 물살을 가르면 주위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정보가 당신의 눈에 확실히 보일 것이다.(175쪽)”

 

출판사의 소개글에서 “이 책은 디지털 미디어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보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고 있고 그런 맥락에서 큐레이션이란 무엇인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터넷상의 온라인 서비스의 사례나 전략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큐레이션의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한다.”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작가 사사오 도시나오가 <큐레이터의 시대>를 통하여 정보의 바다에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는 길을 소개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가 정보를 생산하는 큐레이터가 되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고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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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 <그레이 해부학>의 숨겨진 미스터리
빌 헤이스 지음, 박중서 옮김, 박경한 감수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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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라면 해부학교과서 <그레이 아나토미>에 얽힌 추억 한 토막씩은 가지고 있을 듯 합니다. 제가 해부학을 공부할 적에 <그레이 아나토미> 원서는 두툼한 두께에다 아트지로 되어 있어 무게가 4kg이 넘어 들고 다니는 것조차 버거웠는데, 해부학 시간이 들어있지 않은 날에도 <그레이 아나토미>를 들고 학교에 오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혹시 여학생과 미팅이 있는 날이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요즈음에는 의사들이 아니더라도 <그레이 아나토미>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게 된 것은 동명의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가 국내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된 까닭일 것입니다. 시애틀의 그레이스병원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한 다섯 명의 햇병아리 의사들의 성장기를 다룬 <그레이 아나토미>를 본 기억으로는 그들 가운데 하나인 메러디스의 어머니가 유명한 외과의사 엘리스 그레이라는 이유로 병원 내에서 주목을 받게 되는데, 저는 그때 메러디스가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의 후손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의사들의 업무와 관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관심을 두고 시청했습니다만, 등장인물들의 사랑이야기에 끌려 시청하신 분들이 대부분일 듯합니다. 그밖에도 한국계인 산드라 오가 크리스티나 역을 맡아 열연하는 모습에도 눈길이 가는 것은 핏줄이 당겨서일까요? 어떻거나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는 의과대학을 갓 졸업하고 의료현장에서 실무를 익히기 시작한 인턴들의 성장통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과대학에 갓 입학한 학생이 의학이란 학문에 첫 번째 맞닥뜨려 넘어야 하는 거대한 산 ‘해부학’을 상징하는 교과서 <그레이 아나토미>를 제목으로 가져온 것 아닐까요?

 

사설이 길어진 것은 제가 한때 공부했던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공연히 친밀한 느낌이 드는 빌 헤이스의 <해부학자; Anatomist>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레이 해부학』에 숨겨진 미스터리’라는 카피와 함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발목과 폐 그리고 두개골의 해부도는 바로 그레이 해부학교과서에서 본 것이라서 반갑기도 하고 옛날 생각을 하면서 다시 치(?)가 떨리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저자는 의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면서 <그레이 아나토미>책을 구입해서 그림에 빠져들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의 저자를 뒤쫓게 되었다고 하는데, 막상 그레이에 관한 기록은 만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놀라게 되는 점입니다만 유럽이나 미국에서 유명인사들에 관한 시시콜콜한 기록들이 아주 소중하게 보관되고 있는데 유독 그레이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 헨리 그레이를 뒤쫓다가 책의 삽화를 그린 헨리 벤다이크 카터가 남긴 기록을 발견하고 이를 통하여 헨리 그레이의 족적을 희미하게나마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헨리 그레이의 <그레이 아나토미>는 1858년에 출간되어 의학도를 비롯하여 다양한 독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영국의 의학학술지로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랜싯(The Lancet)은 지금껏 나온 세계 각국의 해부학논저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격찬했으며, 카터의 삽화를 완벽하다고 평했다고 합니다.

 

사실 저자는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 헨리 그레이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레이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천연두에 걸린 조카를 치료하던 그레이 자신이 천연두에 감염되어 1861년 6월 12일 사망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손님, 마마, 두창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던 천연두는 치료방법이 없어 한바탕 유행한 끝에 스스로 물러갈 때까지 대책이 없던 전염병이었는데, 종두법이 개발되어 지금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선언된 유일한 전염병이기도 합니다. 헨리 그레이는 종두를 맞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천연두에 걸려 사망한 것도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천연두에 걸린 환자는 일단 격리조치를 하고 환자가 쓰던 물건을 모두 불태워 없애는 것이 당시의 유일한 조치였던 것인데, 이런 이유로 헨리 그레이에 관한 기록도 불태워 사라지고 말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가 사망한 다음에 불태워진 기록 가운데는 1858년 출간된 <그레이 아나토미>의 개정판 원고도 포함되었을 것이라 합니다. 눈 내린데 서리 내린다고 <그레이 아나토미>의 초판 원고와 삽화마저도 모조리 사라지고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처음 책을 출판한 영국의 출판사에 불이 났을 때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결국 <해부학자>의 저자 빌 헤이스는 <그레이 아나토미>의 삽화를 그린 헨리 카터의 삶을 뒤쫓아 헨리 그레이의 삶을 엿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해부학 그림에 관심이 많은 탓인지 의과대학의 해부학교실에서 진행되는 세 차례의 해부실습에 참여한 경험을 <해부학자>를 통해서 녹여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약학과, 물리치료학과 그리고 의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을 위한 해부실습과정으로 각각 다른 교과과정을 통하여 실습동료들이 해부실습에서 느끼는 감정의 차이까지도 담아내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처음 해부실습실에 들어섰을 때, 과정책임을 맡고 있는 서덜랜드 박사는 “(실습실에서) 지켜야 할 기본 예절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실습실 안에서 식사는 절대 엄금, 음악도 절대 엄금, 그리고 사진 찍는 것도 절대 엄금, 목소리는 최대한 낮출 것. 대신 웃는 건 얼마든지 해도 무방. (…) 하지만 우리 실습을 위해 소중한 시신을 기증하신 이 훌륭하신 분들을 바라보면서 웃는 것은 절대 엄금입니다.(28쪽)”라고 말합니다.

 

어느 의과대학이나 해부학실습을 시작하는 첫날 졸도하는 학생이 있었다는 전설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해부학실습을 처음 시작한 날은 사전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시작한 탓인지 졸도까지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윗 학년 선배님들이 불러 술을 사주셨던 기억도 납니다.

 

이렇게 엄숙한 분위기에서 시작한 실습이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습실을 무겁게 내려누르던 엄숙한 분위기는 사라지더라는 고백을 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땡시험을 앞두고 실습실을 개방하던 날은 스낵을 들여온 친구도 있었고, 시험을 준비하느라 해부가 진행된 시신에서 중요한 부위를 확인하느라 소란스럽던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땡시험에 관한 추억 한토막입니다. 저자도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땡시험은 “시험용 시체의 특정 부위마다 숫자를 적어서 핀으로 꽂아 놓고, 그 각각에 대해 문제를 내는 식의 시험(235쪽)”입니다. 시험문제를 늘어놓은 시험장에 문제 숫자에 해당되는 만큼의 수험생이 입장하여 대기하고 있다가 시험이 시작되면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제한된 시간이 되면 조교가 ‘땡’하는 소리를 내면 다음 문제로 일제히 이동하는 방식입니다. 처음에는 ‘땡’소리를 어떻게 내나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쇠로 된 실습의자를 쇠막대기로 쳐서 내는 소리였습니다. 그 ‘땡’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던 생각이 납니다.

 

땡시험과 관련된 고백의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시험문제가 몇 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반에서 100명이 같이 공부했기 때문에 몇 개조로 나뉘어 시험장 밖에서 차례가 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갑자기 막걸리를 먹으러 가자는 것입니다. 시험준비는 한다고 했지만, 의과대학에 입학해서 처음 맞는 힘든 시험인데 자신없다는 표시를 내기는 싫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젊었을 적이니 지기 싫다는 치기도 한 몫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예닐곱 명이 학교 밖에 있는 선술집으로 몰려가 막걸리 한 되를 각자 냉면그릇에 부어 마시면서 시험시간을 기다리다가 차례가 가까워지면 순서대로 시험장으로 올라갔습니다.

 

저야 번호가 중간근처였기 때문에 그런대로 시험장에 들어서기는 했습니다만, 막상 시험문제를 읽고 시신에 매달린 표지를 들여다보는 순간 갑자기 취기가 올라오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답을 몇 개씩이나 반복해서 적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결국은 재시험자 명단에서 이름을 올렸던 불경스러운 추억입니다. 저자가 전하는 해부학의 역사와 의학에서 해부학이 가지는 의미들을 읽다보니, 그때의 제 행동이 해부학을 가르쳐주신 스승님들과 귀중한 신체를 기증해주신 고인들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는 죄책감이 끓어오릅니다.

 

저자는 ‘과학으로서의 해부학은 실패한 학문’이라는 해부학에 대한 최근의 시각도 가감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수십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변화가 없어 교과서도 똑 같고, 가르치는 방식도 똑 같다는 것입니다. 해부대마다 시체를 하나씩, 그것도 똑같은 자세로 눕혀 놓고, 다시는 볼 일이 없는 그 모든 부위에 대해서도 똑 같은 순서로 똑같이 외워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입니다. 그런 이유로 학생들이 직접 해부를 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없애는 의과대학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부학자들의 견해는 고전적인 해부학수업이 사라진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것이나 인체에 대한 통합적 시각을 갖추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빠트릴 수 없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해부학 실습을 하는 이유) 그건 일종의 ‘통과의례’이니까요. 누군가의 ‘몸’을 내 손으로 직접 뒤적여 보는 거 말이에요. 내 두 손으로 직접 말이죠. 이건 거의 의례적인 측면이 있어요.(383쪽)” 그렇죠. 자신이 직접 경험해서 몸에 녹아있는 지식과 책에서만 읽은 지식은 실전에 임했을 때 튀어나오는 반응속도가 다른 법입니다. 제 경우는 4명이 한조가 되어 해부학 실습을 두 학기에 걸쳐 해부실습을 했습니다만, 최근에 일부 의과대학에서는 시신을 구하지 못해서 한 구의 시신으로 전체 학생들이 해부실습을 진행한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부학자>에서 의사들은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보았던 카터의 환상적인 삽화들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번역을 하신 박중서님께서 최신판 의학용어집을 인용하신 탓에 책에 등장하는 해부학용어들이 참으로 낯설기만 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레이 아나토미>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서른 넷에 요절한 헨리 그레이가 쓴 초판 내용이 지금까지 전해내려온 것인지. 아니면 후대의 해부학자가 내용을 보완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초판이 지금까지 내려왔다면 뒤에 설명한대로 해부학은 학문으로서 생명이 다한 분야라고 할 것이고, 후대에 보완했다면 보완한 저자는 누구인지도 풀리지 않은 의문입니다.

 

끝으로 인체해부가 금지되었던 중세기에 혈액의 폐순환의 원리를 최초로 밝혀낸 마테오 콜롬보가 여성을 해부하여 클리토리스를 발견하는 과정을 다룬, 아르헨티나의 페데리코 안다하시의 소설 <해부학자; Anatomista>와 인체해부가 발전해온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멜라니 킹의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36588>를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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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4-0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SNS를 통한 댓글 이벤트를 통하여 도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5104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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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하면 ‘동물의 왕국’을 통해서 보는 다양한 동물들이 사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 혹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통해서 본 아름다운 풍광이 가득한 낭만적인 땅으로 기억되는 부분과 반면 미국 흑인들의 선조들이 노예로 붙잡혀 끌려온 땅 혹은 슈바이처박사가 인술을 베풀었던 곳, 그래서 개발되어 있지 않고 주민들이 기아에 고통받는 저주의 땅으로 기억되는 부분이 단편적으로 교차하곤 합니다. 특히 언론을 통하여 지루하게 전해지는 내란에 관한 뉴스에다가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주민들의 모습에 이어 최근 들어 늘고 있는 봉사단체들의 활동모습은 이런 곳에서 어떻게 현생인류가 나타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아직 가볼 기회도 없었을 뿐 아니라 얻어들을 수 있는 정보도 신문기사나 간혹 대하는 여행기 등 단편적인 것이라서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올려다보이는 동전잎만한 하늘이 세상의 전부로 생각하는 버릇이 굳어져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물밖 세상에 관심이 없는 탓인지 우물밖 세상을 소개하려는 노력도 별로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가 우리 사회와 얽힌 이해가 별로 없다는 생각에서인지 아프리카의 진면목을 소개하는 텍스트는 별로 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북위 10에 걸쳐있는 지역에서의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을 분석하고 있는 <위도 10도;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64128>와 같이 아프리카 문제를 깊이 파헤치는 책들이 소개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는 주 세네갈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윤상욱 참사관님께서 아프리카의 진면목을 다루는 책이 별로 없음을 안타까워하다가 시작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주재국 관련 외교업무에만 머물지 않고 주재국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신데 감사드립니다. 아마도 저자가 서양사를 전공한 배경도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흔히 생각하기 쉬운 아프리카의 자원과 시장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누가 언제 어떻게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에게 고통을 주었으며, 왜 아직도 아프리카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또 미래는 어떻게 변해갈 것이며, 거기에는 어떤 도전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9쪽)”이 저자의 주 관심사가 된 것 같습니다.

 

저자는 먼저 아프리카인의 정체성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루시(Lucy)의 발견으로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시작한 땅으로 믿어지고 있는 곳 아프리카는 세계사가 시작되는 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가 “세계사에서 아프리카는 용두사미 그 자체다.(35쪽5)”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아프리카가 세계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하는 것은 15세기 대항해시대에 이르러서라는 것입니다. 인류의 4대문명지 가운데 하나인 이집트 문명도 아프리카땅을 흐르는 나일강변에서 꽃피웠던 것인데, 그저 나일강변만 단장하고서 스러진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사에 다시 등장한 아프리카는 그 땅이 품고 있는 풍부한 자원들 때문에 열강의 침략을 불러들이고 이들이 입맛대로 찢기고 나뉘는 바람에 오늘날까지도 갈등이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근세 무렵부터 아시아대륙의 동쪽 끝에 매달린 조그만 반도땅 역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장소가 되었던 것이니 해방 후 혼란했던 사회분위기가 정리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운명이 아프리카의 그것도 다를 게 없었을 것이라는 쓸데없는 걱정도 해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하게 된 아프리카 국가들은 흩어져 있는 수많은 부족사회들을 인위적으로 갈라 국경을 긋게 된 것이 아프리카 국가들이 오늘날까지 내전으로 고통받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는 유럽책임론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사회가 배태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이 기여한 바는 없는지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서 분단의 아픔과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도 아프리카 국가의 현실에서 배워야 할 점이 적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아프리카를 조망하는데 있어 그들의 불행한 과거 그리고 그들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짚는데서 그치지 않고 최근 재조명되고 있는 아프리카 사회의 미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저개발국가와 접촉할 때 시혜를 주는 입장이라는 우월감 같은 생각을 가지거나 무언가 얻어낼 필요 때문에 전략적 접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빠트리지 않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는데 필요한 생각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얻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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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과학 - 과학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시민 사회의 전략
시민과학센터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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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이번 정부처럼 과학자들의 전문적 판단이 중요한 사안들이 사회적 커다란 이슈가 되었던 정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08년 새정부 출범 직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시작된 광우병 논란으로 시작하여, 4대강 사업, 천안암 피격사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관련한 원자력 에너지의 안전성 문제 등이 꼬리를 물고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참여정부시절에도 새만금개발사업, 부안핵폐기장 선정, 경부고속철도 천성산터널공사 관련, 북한산관통터널공사 등 주로 국토개발사업들이 주로 환경보존과 관련하여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들 사업은 시민사회의 반발로 인하여 사업추진이 지연되는 결과를 가져왔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사건들은 대부분 사업추진만 늦어진 결과를 가져왔을 뿐 사업은 결국 진행되었고, 사업이 마무리되고서는 시민단체에서 제기했던 환경문제들은 크게 영향을 나타내지 못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경부고속철도공사구간에 있는 천성산터널이 뚫리면 일대의 늪이 마르고 생태계가 파괴되어 도롱뇽이 서식지를 잃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2002년 처음 제기되었습니다. 결국 도롱뇽을 원고로 하여 공사를 취소하라는 소송이 제기되었고 3년여의 지리한 송사 끝에 공사가 재개되었습니다. 경부고속철이 개통하고 맞은 지난 봄 천성산 늪에는 도롱뇽이 여전히 알을 낳는 등 달라진 풍경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사태들이 반복되면서 시민사회가 우려하는 사안에 대하여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면밀하게 검토한 견해를 제대로 전달하여 이해시킬 수 있는 사회적 구조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던 것 같습니다. ‘과학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시민 사회의 전략’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시민의 과학>은 이와 같은 시민사회의 요구가 그동안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11분의 필진은 “참여연대과학기술민주화를 위한 모임”으로 1997년 출범한 시민단체를 뿌리로 하고 있는 시민과학센터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시민과학센터는 ‘일반 시민의 참여를 통한 과학기술정책의 민주화와 궁극적으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과학기술의 실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 과학기술 선진국에서 출범한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일어난 사회적 운동으로 보입니다. 과학기술학은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다양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접근을 통하여 연구하는 분야로, 그간의 연구를 통하여 과학과 기술이 단지 자연법칙을 반영하는 가치중립적 지식이나 도구가 아니라 현실의 맥락에 영향을 받아 결과가 도출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과학기술학에서는 전문가들에 의하여 독점되었던 과학기술에 관한 의사결정과정에 일반 시민들이 참여함으로써 과학기술의 불확실성과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통제된 실험실에서 지식을 축적한 전문가들과는 달리 일반 시민들은 통제되지 않은 일상생활 속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한 일반적 지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과학기술정책을 결정하면서 다양한 견해를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2002년 식약청에서 일하면서 <독성물질 국가관리사업>을 주관하여 도입할 때, 미국에서 이미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운영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일종의 규제정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추진과정에서 관련 단체, 업계를 비롯하여 일반에게까지 절차가 예고되고 회의는 인터넷을 통하여 실시간에 중계되고, 회의 참석자들이 발언한 내용은 녹취되어 기관의 홈페이지를 통하여 공개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주관하던 <독성물질 국가관리사업>에서도 이 방식을 도입하여 운영해보았더니 참석자들이 발언이 신중해지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자들의 사례연구에 따르면 과학기술정책수립과정에 시민이 참여하는 방식은 참여정부시절 일부 이루어졌지만, 실효적 운영 여부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하여 발전시켰어야 하는 제도였음에도 새정부 들어 유명무실하게 되고 말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영희교수는 제도적 시민참여의 방식으로 일반시민이 참여하는 여론조사, 투표, 합의회의, 시민 배심원 회의 등이, 엘리트 시민이 참여하는 공청회, 청문회, 여론조사 라운드 테이블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의 대표자를 엘리트시민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시민과 차별하고 있는 점은 의외라는 생각합니다.

 

어떻든 대부분의 시민참여방식은 일반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만, 시민 배심원제도는 생소한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법원의 배심원제도를 따서 발전시킨 제도로서 무작위로 선택된 시민들이 4~5일간 만나 공공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주의 깊게 숙의하는 절차로 구성되는데, 지원자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추출되는 15명 내외의 보통시민으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배심원들은 전문가들의 증언을 듣고 해결책을 토론하고 숙의하는 과정을 거쳐 나온 최종의견을 정책권고안의 형태로 채택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차례 시민배심원제도를 통하여 의견의 수렴한 사례가 있었다고 하는데, 대표성 문제 등을 포함하여 합의도출 절차 등 다양한 문제가 노정되었던 것 같습니다.

 

각종 보건의료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의료계 역시 시민단체의 입장에 관심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관심한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문직이라는 특수성에 안주하는 경향 때문에 시민사회활동이 미흡할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의 소통에도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AI와 같은 국가재난질환 대응체계를 검토하는 시민배심원 회의가 있었는데 여기 참여한 의료계 단체가 과연 의료계를 대표할 수 있다고 동의하는 의료계 인사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하여 인선이 이루어졌는지도 의문입니다.

 

앞서도 절차에 참여하는 시민대표가 과연 대표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시민참여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하였습니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을 보면 정부측에서는 적절한 절차를 통하여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분들이 시위 등 적극적 행동으로 반대입장을 표명하곤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전회의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건설 사업의 경우도 환경영향평가와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추진되어온 과정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외부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사업백지화 혹은 원점에서부터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라 하겠습니다.

 

배아줄기세포연구와 인간유전정보의 보호문제 등이 관련된 생명윤리법은 의료계가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이슈입니다. 황우석교수 사건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안에 대하여 전문가로서 빠르고도 명확한 견해와 기준을 제시하여 시민들의 혼란을 예방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여기 빠트릴 수 없는 사례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광우병 파동입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로 대표되는 의료계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함에 따라서 국민적 혼란을 가져왔다고 지적하는 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대한의사협회는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의학적 견해를 빨리 내놓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관련 분야의 의학전문가들 역시 사회적 혼란에 휩쓸리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광우병 위험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설명에 나서지 않아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시민의 과학>이라는 제목은 마치 시민이 과학의 주인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는 것 같습니다. 과학정책이 밀실에서 소수 전문가들의 손에서 결정되는 것은 분명 적절하지 않다는데 동의합니다. 시민들의 의견이 합리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에도 동의합니다. 다만 시민참여가 정부정책결정에 들러리가 되지 않도록 다양한 견해를 가진 전문가들이 시민의 입장에서 검토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즉, 전문가들의 판단에 맡기되 논의과정을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시민단체의 요구가 과학적 판단기준을 넘어서는 것도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2008년 광우병파동 때 자주 인용되었던 일본정부의 광우병전수조사제도는, 최초의 광우병 발생사례를 숨기려들었던 관계당국의 실수가 불러일으킨 국민적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하여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도입된 것입니다. 결국 도축되는 소 전부에 대하여 광우병검사를 하는 전수조사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이 이제와서는 무거운 재정부담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일본정부는 국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철회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시민사회가 과학정책의 결정과정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다만 시민과학센터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주로 인문과학을 배경으로 한 과학기술학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어 자연과학 부문에 대한 견해가 다소 소홀하게 다루어진 점은 없었는지, 혹은 자료가 적절하게 검토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박병상박사가 맡은 ‘책으로 돌아보는 과학 기술의 이면’에서는 과학적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 있음에도 저자의 주장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고 있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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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시계공 사이언스 클래식 3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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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공부하던 생물학 교과서는 진화를 설명하기 위하여 용불용설, 돌연변이설, 그리고 자연선택설의 예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벌써 40년도 넘은 옛날이라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만, 이 학설들의 개요를 설명하는 정도였고 논리적 취약점은 설명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학설로 진화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용불용설의 경우 개체가 얻은 후천적인 형질이 후대에 전해진다는 것으로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은 높은 나무에 달린 잎을 따먹으려 한 결과가 유전형질로 굳어진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돌연변이설 역시 다양한 원인이 유전자에 구성에 영향을 미쳐 나타난 형질들이 후대에 전해진 것이라는 설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윈과 월리스의 자연선택설은 시조새를 비롯한 종별로 나타나는 특성을 공유하는 생물체의 존재나, 같은 종의 생물이 지역의 특성에 따라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 등이 근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설명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들이 하나의 뿌리를 가진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은 막연하던 진화관련 이론들의 개념을 확실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도킨스는 “나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람들이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 수 없었다.(327쪽)”고 한 RA 피셔의 말을 인용하면서, “설명이라는 것은 어려운 기술이다. 어떤 사람은 읽는 이가 자신의 말을 그저 이해하는 수준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독자가 깊은 감동을 느끼도록 설명할 수 있다.(10쪽)”고 독자를 이해시킨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난해한 진화론을 설명하고 진화론을 비판하는 논리의 취약점을 가장 적절하고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에 가장 위협적인 비판이론은 아마도 창조론과 창조론을 보완하는 지적설계론이라고 보입니다. 도킨스가 인용하고 있는 <자연신학>의 저자 윌리엄 페일리는 시계를 정밀한 기계의 대표적인 예로 들어 시계가 제작자가 있어 만들어진 것처럼 자연 역시 신이라고 하는 제작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시계 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모든 증거는 자연의 작품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차이점은 자연의 작품 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또는 그 이상으로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27쪽)”라고 말입니다.

 

도킨스가 다윈의 진화론을 지지하고 지적설계론의 취약점을 논하는 이 책의 제목을 <눈먼 시계공>으로 정한 것은 책의 내용을 뒷받침하기에 적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계를 설계하는 제작자로서 시계공이 눈이 멀었다고 한다면 설계와 제작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킨스는 “자연선택의 결과인 생물은 마치 숙련된 시계공이 있어서 그가 설계하고 고안한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사실은 자연선택은 눈먼시계공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다윈이나 월리스가 진화론을 주장할 때는 핀치새를 비롯한 다양한 생물표본을 얻어 이들을 비교하여 얻은 것이었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체에 일반적으로 적용하는데 있어 무리한 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구의 역사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체의 선조의 모습에 관하여 인간이 돌아볼 수 있는 시야의 끝이 너무나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사람들은 그 한계를 뛰어넘어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연선택은 우리의 뇌가 인간의 짧은 수명에 기초한 확률들만을 계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만약 어떤 행성에 수억년의 수명을 가진 생물이 살고 있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위험의 범위는 우리가 만든 확률 스펙트럼의 오른쪽 끝으로 쭉 뻗어 나갈 것이다.(269쪽)”라고 한 도킨스의 생각이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최근에 읽은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97810>에서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은 그 시야를 무한한 과거로까지 넓힐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최근에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유전공학의 연구성과는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진화의 핵심은 유전체에 담긴 생물체의 형질에 나타나는 사소한 변화가 자연에 의하여 선택되어졌기 때문에 살아남았던 것이고 그러한 변화가 누적된 결과가 종의 차이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생긴 미세한 차이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눈에 띄는 차이로 발전하고 종국에는 둘 사이의 관계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혀 다른 모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킨스의 이런 주장은 역시 IT의 발전에 따른 예측모델을 구현할 수 있었던 점도 독자를 설득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제시하는 바이오모프를 보게 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모델의 구현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최근에 읽은 알렉스 라일리의 <분류의 역사;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86806> 역시 도킨스가 ‘진정한 생명나무는 하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종간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인용하고 있는 생물의 분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리해보면,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은 에드워드 윌슨이 추천의 글을 통하여 표현한대로 “깊이 있을 뿐 아니라 매우 명료하고, 잘 씌어진” 진화론 해설서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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