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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 <그레이 해부학>의 숨겨진 미스터리
빌 헤이스 지음, 박중서 옮김, 박경한 감수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의사라면 해부학교과서 <그레이 아나토미>에 얽힌 추억 한 토막씩은 가지고 있을 듯 합니다. 제가 해부학을 공부할 적에 <그레이 아나토미> 원서는 두툼한 두께에다 아트지로 되어 있어 무게가 4kg이 넘어 들고 다니는 것조차 버거웠는데, 해부학 시간이 들어있지 않은 날에도 <그레이 아나토미>를 들고 학교에 오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혹시 여학생과 미팅이 있는 날이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요즈음에는 의사들이 아니더라도 <그레이 아나토미>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게 된 것은 동명의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가 국내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된 까닭일 것입니다. 시애틀의 그레이스병원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한 다섯 명의 햇병아리 의사들의 성장기를 다룬 <그레이 아나토미>를 본 기억으로는 그들 가운데 하나인 메러디스의 어머니가 유명한 외과의사 엘리스 그레이라는 이유로 병원 내에서 주목을 받게 되는데, 저는 그때 메러디스가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의 후손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의사들의 업무와 관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관심을 두고 시청했습니다만, 등장인물들의 사랑이야기에 끌려 시청하신 분들이 대부분일 듯합니다. 그밖에도 한국계인 산드라 오가 크리스티나 역을 맡아 열연하는 모습에도 눈길이 가는 것은 핏줄이 당겨서일까요? 어떻거나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는 의과대학을 갓 졸업하고 의료현장에서 실무를 익히기 시작한 인턴들의 성장통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과대학에 갓 입학한 학생이 의학이란 학문에 첫 번째 맞닥뜨려 넘어야 하는 거대한 산 ‘해부학’을 상징하는 교과서 <그레이 아나토미>를 제목으로 가져온 것 아닐까요?
사설이 길어진 것은 제가 한때 공부했던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공연히 친밀한 느낌이 드는 빌 헤이스의 <해부학자; Anatomist>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레이 해부학』에 숨겨진 미스터리’라는 카피와 함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발목과 폐 그리고 두개골의 해부도는 바로 그레이 해부학교과서에서 본 것이라서 반갑기도 하고 옛날 생각을 하면서 다시 치(?)가 떨리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저자는 의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면서 <그레이 아나토미>책을 구입해서 그림에 빠져들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의 저자를 뒤쫓게 되었다고 하는데, 막상 그레이에 관한 기록은 만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놀라게 되는 점입니다만 유럽이나 미국에서 유명인사들에 관한 시시콜콜한 기록들이 아주 소중하게 보관되고 있는데 유독 그레이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 헨리 그레이를 뒤쫓다가 책의 삽화를 그린 헨리 벤다이크 카터가 남긴 기록을 발견하고 이를 통하여 헨리 그레이의 족적을 희미하게나마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헨리 그레이의 <그레이 아나토미>는 1858년에 출간되어 의학도를 비롯하여 다양한 독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영국의 의학학술지로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랜싯(The Lancet)은 지금껏 나온 세계 각국의 해부학논저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격찬했으며, 카터의 삽화를 완벽하다고 평했다고 합니다.
사실 저자는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 헨리 그레이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레이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천연두에 걸린 조카를 치료하던 그레이 자신이 천연두에 감염되어 1861년 6월 12일 사망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손님, 마마, 두창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던 천연두는 치료방법이 없어 한바탕 유행한 끝에 스스로 물러갈 때까지 대책이 없던 전염병이었는데, 종두법이 개발되어 지금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선언된 유일한 전염병이기도 합니다. 헨리 그레이는 종두를 맞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천연두에 걸려 사망한 것도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천연두에 걸린 환자는 일단 격리조치를 하고 환자가 쓰던 물건을 모두 불태워 없애는 것이 당시의 유일한 조치였던 것인데, 이런 이유로 헨리 그레이에 관한 기록도 불태워 사라지고 말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가 사망한 다음에 불태워진 기록 가운데는 1858년 출간된 <그레이 아나토미>의 개정판 원고도 포함되었을 것이라 합니다. 눈 내린데 서리 내린다고 <그레이 아나토미>의 초판 원고와 삽화마저도 모조리 사라지고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처음 책을 출판한 영국의 출판사에 불이 났을 때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결국 <해부학자>의 저자 빌 헤이스는 <그레이 아나토미>의 삽화를 그린 헨리 카터의 삶을 뒤쫓아 헨리 그레이의 삶을 엿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해부학 그림에 관심이 많은 탓인지 의과대학의 해부학교실에서 진행되는 세 차례의 해부실습에 참여한 경험을 <해부학자>를 통해서 녹여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약학과, 물리치료학과 그리고 의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을 위한 해부실습과정으로 각각 다른 교과과정을 통하여 실습동료들이 해부실습에서 느끼는 감정의 차이까지도 담아내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처음 해부실습실에 들어섰을 때, 과정책임을 맡고 있는 서덜랜드 박사는 “(실습실에서) 지켜야 할 기본 예절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실습실 안에서 식사는 절대 엄금, 음악도 절대 엄금, 그리고 사진 찍는 것도 절대 엄금, 목소리는 최대한 낮출 것. 대신 웃는 건 얼마든지 해도 무방. (…) 하지만 우리 실습을 위해 소중한 시신을 기증하신 이 훌륭하신 분들을 바라보면서 웃는 것은 절대 엄금입니다.(28쪽)”라고 말합니다.
어느 의과대학이나 해부학실습을 시작하는 첫날 졸도하는 학생이 있었다는 전설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해부학실습을 처음 시작한 날은 사전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시작한 탓인지 졸도까지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윗 학년 선배님들이 불러 술을 사주셨던 기억도 납니다.
이렇게 엄숙한 분위기에서 시작한 실습이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습실을 무겁게 내려누르던 엄숙한 분위기는 사라지더라는 고백을 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땡시험을 앞두고 실습실을 개방하던 날은 스낵을 들여온 친구도 있었고, 시험을 준비하느라 해부가 진행된 시신에서 중요한 부위를 확인하느라 소란스럽던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땡시험에 관한 추억 한토막입니다. 저자도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땡시험은 “시험용 시체의 특정 부위마다 숫자를 적어서 핀으로 꽂아 놓고, 그 각각에 대해 문제를 내는 식의 시험(235쪽)”입니다. 시험문제를 늘어놓은 시험장에 문제 숫자에 해당되는 만큼의 수험생이 입장하여 대기하고 있다가 시험이 시작되면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제한된 시간이 되면 조교가 ‘땡’하는 소리를 내면 다음 문제로 일제히 이동하는 방식입니다. 처음에는 ‘땡’소리를 어떻게 내나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쇠로 된 실습의자를 쇠막대기로 쳐서 내는 소리였습니다. 그 ‘땡’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던 생각이 납니다.
땡시험과 관련된 고백의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시험문제가 몇 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반에서 100명이 같이 공부했기 때문에 몇 개조로 나뉘어 시험장 밖에서 차례가 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갑자기 막걸리를 먹으러 가자는 것입니다. 시험준비는 한다고 했지만, 의과대학에 입학해서 처음 맞는 힘든 시험인데 자신없다는 표시를 내기는 싫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젊었을 적이니 지기 싫다는 치기도 한 몫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예닐곱 명이 학교 밖에 있는 선술집으로 몰려가 막걸리 한 되를 각자 냉면그릇에 부어 마시면서 시험시간을 기다리다가 차례가 가까워지면 순서대로 시험장으로 올라갔습니다.
저야 번호가 중간근처였기 때문에 그런대로 시험장에 들어서기는 했습니다만, 막상 시험문제를 읽고 시신에 매달린 표지를 들여다보는 순간 갑자기 취기가 올라오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답을 몇 개씩이나 반복해서 적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결국은 재시험자 명단에서 이름을 올렸던 불경스러운 추억입니다. 저자가 전하는 해부학의 역사와 의학에서 해부학이 가지는 의미들을 읽다보니, 그때의 제 행동이 해부학을 가르쳐주신 스승님들과 귀중한 신체를 기증해주신 고인들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는 죄책감이 끓어오릅니다.
저자는 ‘과학으로서의 해부학은 실패한 학문’이라는 해부학에 대한 최근의 시각도 가감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수십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변화가 없어 교과서도 똑 같고, 가르치는 방식도 똑 같다는 것입니다. 해부대마다 시체를 하나씩, 그것도 똑같은 자세로 눕혀 놓고, 다시는 볼 일이 없는 그 모든 부위에 대해서도 똑 같은 순서로 똑같이 외워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입니다. 그런 이유로 학생들이 직접 해부를 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없애는 의과대학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부학자들의 견해는 고전적인 해부학수업이 사라진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것이나 인체에 대한 통합적 시각을 갖추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빠트릴 수 없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해부학 실습을 하는 이유) 그건 일종의 ‘통과의례’이니까요. 누군가의 ‘몸’을 내 손으로 직접 뒤적여 보는 거 말이에요. 내 두 손으로 직접 말이죠. 이건 거의 의례적인 측면이 있어요.(383쪽)” 그렇죠. 자신이 직접 경험해서 몸에 녹아있는 지식과 책에서만 읽은 지식은 실전에 임했을 때 튀어나오는 반응속도가 다른 법입니다. 제 경우는 4명이 한조가 되어 해부학 실습을 두 학기에 걸쳐 해부실습을 했습니다만, 최근에 일부 의과대학에서는 시신을 구하지 못해서 한 구의 시신으로 전체 학생들이 해부실습을 진행한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부학자>에서 의사들은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보았던 카터의 환상적인 삽화들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번역을 하신 박중서님께서 최신판 의학용어집을 인용하신 탓에 책에 등장하는 해부학용어들이 참으로 낯설기만 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레이 아나토미>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서른 넷에 요절한 헨리 그레이가 쓴 초판 내용이 지금까지 전해내려온 것인지. 아니면 후대의 해부학자가 내용을 보완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초판이 지금까지 내려왔다면 뒤에 설명한대로 해부학은 학문으로서 생명이 다한 분야라고 할 것이고, 후대에 보완했다면 보완한 저자는 누구인지도 풀리지 않은 의문입니다.
끝으로 인체해부가 금지되었던 중세기에 혈액의 폐순환의 원리를 최초로 밝혀낸 마테오 콜롬보가 여성을 해부하여 클리토리스를 발견하는 과정을 다룬, 아르헨티나의 페데리코 안다하시의 소설 <해부학자; Anatomista>와 인체해부가 발전해온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멜라니 킹의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36588>를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