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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시계공 ㅣ 사이언스 클래식 3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8월
평점 :
고등학교 시절 공부하던 생물학 교과서는 진화를 설명하기 위하여 용불용설, 돌연변이설, 그리고 자연선택설의 예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벌써 40년도 넘은 옛날이라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만, 이 학설들의 개요를 설명하는 정도였고 논리적 취약점은 설명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학설로 진화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용불용설의 경우 개체가 얻은 후천적인 형질이 후대에 전해진다는 것으로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은 높은 나무에 달린 잎을 따먹으려 한 결과가 유전형질로 굳어진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돌연변이설 역시 다양한 원인이 유전자에 구성에 영향을 미쳐 나타난 형질들이 후대에 전해진 것이라는 설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윈과 월리스의 자연선택설은 시조새를 비롯한 종별로 나타나는 특성을 공유하는 생물체의 존재나, 같은 종의 생물이 지역의 특성에 따라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 등이 근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설명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들이 하나의 뿌리를 가진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은 막연하던 진화관련 이론들의 개념을 확실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도킨스는 “나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람들이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 수 없었다.(327쪽)”고 한 RA 피셔의 말을 인용하면서, “설명이라는 것은 어려운 기술이다. 어떤 사람은 읽는 이가 자신의 말을 그저 이해하는 수준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독자가 깊은 감동을 느끼도록 설명할 수 있다.(10쪽)”고 독자를 이해시킨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난해한 진화론을 설명하고 진화론을 비판하는 논리의 취약점을 가장 적절하고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에 가장 위협적인 비판이론은 아마도 창조론과 창조론을 보완하는 지적설계론이라고 보입니다. 도킨스가 인용하고 있는 <자연신학>의 저자 윌리엄 페일리는 시계를 정밀한 기계의 대표적인 예로 들어 시계가 제작자가 있어 만들어진 것처럼 자연 역시 신이라고 하는 제작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시계 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모든 증거는 자연의 작품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차이점은 자연의 작품 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또는 그 이상으로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27쪽)”라고 말입니다.
도킨스가 다윈의 진화론을 지지하고 지적설계론의 취약점을 논하는 이 책의 제목을 <눈먼 시계공>으로 정한 것은 책의 내용을 뒷받침하기에 적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계를 설계하는 제작자로서 시계공이 눈이 멀었다고 한다면 설계와 제작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킨스는 “자연선택의 결과인 생물은 마치 숙련된 시계공이 있어서 그가 설계하고 고안한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사실은 자연선택은 눈먼시계공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다윈이나 월리스가 진화론을 주장할 때는 핀치새를 비롯한 다양한 생물표본을 얻어 이들을 비교하여 얻은 것이었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체에 일반적으로 적용하는데 있어 무리한 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구의 역사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체의 선조의 모습에 관하여 인간이 돌아볼 수 있는 시야의 끝이 너무나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사람들은 그 한계를 뛰어넘어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연선택은 우리의 뇌가 인간의 짧은 수명에 기초한 확률들만을 계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만약 어떤 행성에 수억년의 수명을 가진 생물이 살고 있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위험의 범위는 우리가 만든 확률 스펙트럼의 오른쪽 끝으로 쭉 뻗어 나갈 것이다.(269쪽)”라고 한 도킨스의 생각이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최근에 읽은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97810>에서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은 그 시야를 무한한 과거로까지 넓힐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최근에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유전공학의 연구성과는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진화의 핵심은 유전체에 담긴 생물체의 형질에 나타나는 사소한 변화가 자연에 의하여 선택되어졌기 때문에 살아남았던 것이고 그러한 변화가 누적된 결과가 종의 차이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생긴 미세한 차이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눈에 띄는 차이로 발전하고 종국에는 둘 사이의 관계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혀 다른 모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킨스의 이런 주장은 역시 IT의 발전에 따른 예측모델을 구현할 수 있었던 점도 독자를 설득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제시하는 바이오모프를 보게 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모델의 구현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최근에 읽은 알렉스 라일리의 <분류의 역사;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86806> 역시 도킨스가 ‘진정한 생명나무는 하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종간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인용하고 있는 생물의 분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리해보면,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은 에드워드 윌슨이 추천의 글을 통하여 표현한대로 “깊이 있을 뿐 아니라 매우 명료하고, 잘 씌어진” 진화론 해설서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