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과학 - 과학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시민 사회의 전략
시민과학센터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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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이번 정부처럼 과학자들의 전문적 판단이 중요한 사안들이 사회적 커다란 이슈가 되었던 정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08년 새정부 출범 직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시작된 광우병 논란으로 시작하여, 4대강 사업, 천안암 피격사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관련한 원자력 에너지의 안전성 문제 등이 꼬리를 물고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참여정부시절에도 새만금개발사업, 부안핵폐기장 선정, 경부고속철도 천성산터널공사 관련, 북한산관통터널공사 등 주로 국토개발사업들이 주로 환경보존과 관련하여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들 사업은 시민사회의 반발로 인하여 사업추진이 지연되는 결과를 가져왔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사건들은 대부분 사업추진만 늦어진 결과를 가져왔을 뿐 사업은 결국 진행되었고, 사업이 마무리되고서는 시민단체에서 제기했던 환경문제들은 크게 영향을 나타내지 못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경부고속철도공사구간에 있는 천성산터널이 뚫리면 일대의 늪이 마르고 생태계가 파괴되어 도롱뇽이 서식지를 잃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2002년 처음 제기되었습니다. 결국 도롱뇽을 원고로 하여 공사를 취소하라는 소송이 제기되었고 3년여의 지리한 송사 끝에 공사가 재개되었습니다. 경부고속철이 개통하고 맞은 지난 봄 천성산 늪에는 도롱뇽이 여전히 알을 낳는 등 달라진 풍경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사태들이 반복되면서 시민사회가 우려하는 사안에 대하여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면밀하게 검토한 견해를 제대로 전달하여 이해시킬 수 있는 사회적 구조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던 것 같습니다. ‘과학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시민 사회의 전략’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시민의 과학>은 이와 같은 시민사회의 요구가 그동안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11분의 필진은 “참여연대과학기술민주화를 위한 모임”으로 1997년 출범한 시민단체를 뿌리로 하고 있는 시민과학센터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시민과학센터는 ‘일반 시민의 참여를 통한 과학기술정책의 민주화와 궁극적으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과학기술의 실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 과학기술 선진국에서 출범한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일어난 사회적 운동으로 보입니다. 과학기술학은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다양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접근을 통하여 연구하는 분야로, 그간의 연구를 통하여 과학과 기술이 단지 자연법칙을 반영하는 가치중립적 지식이나 도구가 아니라 현실의 맥락에 영향을 받아 결과가 도출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과학기술학에서는 전문가들에 의하여 독점되었던 과학기술에 관한 의사결정과정에 일반 시민들이 참여함으로써 과학기술의 불확실성과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통제된 실험실에서 지식을 축적한 전문가들과는 달리 일반 시민들은 통제되지 않은 일상생활 속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한 일반적 지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과학기술정책을 결정하면서 다양한 견해를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2002년 식약청에서 일하면서 <독성물질 국가관리사업>을 주관하여 도입할 때, 미국에서 이미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운영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일종의 규제정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추진과정에서 관련 단체, 업계를 비롯하여 일반에게까지 절차가 예고되고 회의는 인터넷을 통하여 실시간에 중계되고, 회의 참석자들이 발언한 내용은 녹취되어 기관의 홈페이지를 통하여 공개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주관하던 <독성물질 국가관리사업>에서도 이 방식을 도입하여 운영해보았더니 참석자들이 발언이 신중해지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자들의 사례연구에 따르면 과학기술정책수립과정에 시민이 참여하는 방식은 참여정부시절 일부 이루어졌지만, 실효적 운영 여부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하여 발전시켰어야 하는 제도였음에도 새정부 들어 유명무실하게 되고 말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영희교수는 제도적 시민참여의 방식으로 일반시민이 참여하는 여론조사, 투표, 합의회의, 시민 배심원 회의 등이, 엘리트 시민이 참여하는 공청회, 청문회, 여론조사 라운드 테이블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의 대표자를 엘리트시민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시민과 차별하고 있는 점은 의외라는 생각합니다.

 

어떻든 대부분의 시민참여방식은 일반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만, 시민 배심원제도는 생소한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법원의 배심원제도를 따서 발전시킨 제도로서 무작위로 선택된 시민들이 4~5일간 만나 공공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주의 깊게 숙의하는 절차로 구성되는데, 지원자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추출되는 15명 내외의 보통시민으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배심원들은 전문가들의 증언을 듣고 해결책을 토론하고 숙의하는 과정을 거쳐 나온 최종의견을 정책권고안의 형태로 채택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차례 시민배심원제도를 통하여 의견의 수렴한 사례가 있었다고 하는데, 대표성 문제 등을 포함하여 합의도출 절차 등 다양한 문제가 노정되었던 것 같습니다.

 

각종 보건의료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의료계 역시 시민단체의 입장에 관심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관심한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문직이라는 특수성에 안주하는 경향 때문에 시민사회활동이 미흡할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의 소통에도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AI와 같은 국가재난질환 대응체계를 검토하는 시민배심원 회의가 있었는데 여기 참여한 의료계 단체가 과연 의료계를 대표할 수 있다고 동의하는 의료계 인사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하여 인선이 이루어졌는지도 의문입니다.

 

앞서도 절차에 참여하는 시민대표가 과연 대표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시민참여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하였습니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을 보면 정부측에서는 적절한 절차를 통하여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분들이 시위 등 적극적 행동으로 반대입장을 표명하곤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전회의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건설 사업의 경우도 환경영향평가와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추진되어온 과정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외부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사업백지화 혹은 원점에서부터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라 하겠습니다.

 

배아줄기세포연구와 인간유전정보의 보호문제 등이 관련된 생명윤리법은 의료계가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이슈입니다. 황우석교수 사건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안에 대하여 전문가로서 빠르고도 명확한 견해와 기준을 제시하여 시민들의 혼란을 예방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여기 빠트릴 수 없는 사례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광우병 파동입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로 대표되는 의료계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함에 따라서 국민적 혼란을 가져왔다고 지적하는 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대한의사협회는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의학적 견해를 빨리 내놓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관련 분야의 의학전문가들 역시 사회적 혼란에 휩쓸리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광우병 위험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설명에 나서지 않아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시민의 과학>이라는 제목은 마치 시민이 과학의 주인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는 것 같습니다. 과학정책이 밀실에서 소수 전문가들의 손에서 결정되는 것은 분명 적절하지 않다는데 동의합니다. 시민들의 의견이 합리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에도 동의합니다. 다만 시민참여가 정부정책결정에 들러리가 되지 않도록 다양한 견해를 가진 전문가들이 시민의 입장에서 검토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즉, 전문가들의 판단에 맡기되 논의과정을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시민단체의 요구가 과학적 판단기준을 넘어서는 것도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2008년 광우병파동 때 자주 인용되었던 일본정부의 광우병전수조사제도는, 최초의 광우병 발생사례를 숨기려들었던 관계당국의 실수가 불러일으킨 국민적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하여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도입된 것입니다. 결국 도축되는 소 전부에 대하여 광우병검사를 하는 전수조사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이 이제와서는 무거운 재정부담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일본정부는 국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철회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시민사회가 과학정책의 결정과정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다만 시민과학센터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주로 인문과학을 배경으로 한 과학기술학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어 자연과학 부문에 대한 견해가 다소 소홀하게 다루어진 점은 없었는지, 혹은 자료가 적절하게 검토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박병상박사가 맡은 ‘책으로 돌아보는 과학 기술의 이면’에서는 과학적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 있음에도 저자의 주장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고 있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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