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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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비밀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는 우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도 충분하지 못한 가 봅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행위라고 해도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가 봅니다. 충동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은 시절에 저지른 살인을 감추고 살았지만 첫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누군가에게라도 고백을 해야 마음속에 들어앉은 돌의 무게가 다소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을까요?

 

리안 모리아티의 <허즈번드 시크릿>은 우연히 발견한 남편의 편지의 겉봉에 쓰여 있는 “나의 아내 세실리아 피츠페트릭에게, 반드시 내가 죽은 뒤에 열어볼 것”이라는 문구를 발견한 아내의 고심에서 먼저 인간의 속성을 보여줍니다. 금하는 일을 지키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판도라의 상자>라는 신화가 등장했겠습니까?

 

사리판단이 성숙하지 않은 시절 우연히 저지른 살인사건은 피해자 가족의 삶을 무너뜨리고, 오랜 세월을 웅크리고 있다가 또 다른 범죄를 낳게 되는 것을 보면 악연의 첫 고리를 꿰는 일이 무서운 비극을 잉태하는 일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악연의 사슬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작가는 세 개의 이야기를 별도로 시작합니다. 세실리아와 존 폴 부부 그리고 세 딸, 테스와 남편 윌 그리고 사촌 펠리시티, 레이첼과 아들 롭 그리고 며느리 로렌 등 세 가족에게 부활절이 들어있는 한 주일 동안에 일어난 일을 담고 있습니다. 옴니버스 형식을 교차되는 세 가족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도대체 세 가족이 어디에서 접점을 이루고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우선 먼저 노출된 비밀에 대하여, 과연 세실리아는 존 폴의 과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습니다. 폴의 어머니처럼 가족이라는 이유로 감싸 안는 것이 최선일까? 하지만 자수를 하고 잘못을 빌도록 이끌어가는 것이 옳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결정이 결코 쉽지만은 아닐 터이나, 묵은 악연의 고리를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오해를 받은 코너 휘트비선생이 애꿎은 희생양이 되지 않는 것은 사필귀정이라는 진리를 지키기 위한 장치였을 것 같습니다.

 

세 가족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궁극적으로는 오래 전에 있었던 레이첼의 딸 자니의 죽음과 연결이 되는데, 그리고 보면 존 폴과 코너 휘트비, 지니와 테스 사이의 사랑방정식이 제대로 풀려가지 못하고 삐걱대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는데, 그 사건의 배경에는 의외의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존 폴이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신고를 하였더라면 평생의 마음고생은 물론, 악연의 고리로 인하여 딸 폴리가 희생되는 안타까운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부활절 일요일에 사건을 통하여 무너져 내린 세 가족이 어떤 상황을 맞게 될지를 보여주는데, 특히 세실리아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 딸 폴리가 의식을 되찾으면서, 장애를 극복하면서 건강하게 자랄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테스의 남편 윌 역시 펠리시티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다시 테스에게로 돌아오는데, 테스 역시 그 사이에 옛연인 코너 휘트비와의 일탈을 정리하고 남편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과연 이런 결정이 쉬울까 싶기는 합니다.

 

이미 흘러간 물처럼 일어난 사건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지만, 에필로그를 통하여 작가는 “만약에 이랬더라면~~”하는 가정 아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갔을까 유추해보고 있습니다. 테스의 둘째 아이가 윌의 아이인지 코너의 아이인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의 경우는 유전자검사를 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을 터이나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 같습니다. 악연의 고리를 처음 만들어냈던 존 폴 역시 자니가 마르판증후군이라는 선천성 질환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자니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병원에 갈 수 있도록 했을 것입니다. 또한 자니를 담당한 부검의가 일을 제대로 했더라면 자니의 사인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면 <허즈번드 시크릿>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어떤 길로 가게 될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도 그편이 나을 것이다. 어떤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남는다. 판도라에게 물어보자(535쪽)”라고 마무리한 작가의 생각이 어디에 있든지, 최선의 삶이란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일이 없으면 일단 필요조건은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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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뇌다
디크 스왑 지음, 신순림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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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의 한 분야인 신경병리학을 공부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신경계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도록 만든 구조가 바로 대뇌이기 때문에 그만큼 복잡하고 신비하기까지 한 기관이기 때문에 지금도 밝혀지지 않고 있는 점이 많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관심대상이 점점 확대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뇌에 관한 무한한 호기심을 채워주는 책을 만났습니다.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뇌과학자 디크 스왑이 쓴 <우리는 우리 뇌다>입니다.

 

우리에게 네덜란드는 그저 튤립의 고장으로 고정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유럽의 상권을 움켜쥐고 해외에 수많은 식민지를 두었던 대단한 나라입니다. 바로 유럽의 패권이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넘어가던 힘의 공백기를 잘 활용한 덕분이기도 합니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지금의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펠리페2세의 이단심문과 스페인군의 도심주둔을 계기로 독립운동을 벌였습니다.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 등의 지원을 받은 북부 7개주는 1581년 먼저 독립을 선언하여 홀란드를 세웠고, 벨기에에 속하는 남부는 뒤에 독립하였습니다. 홀란드는 모직물산업과 어업 그리고 무역과 금융업을 기반으로 하여 융성할 수 있었는데, 모직물산업은 가톨릭을 국교로 삼은 펠리페2세가 축출한 무슬림과 유대인이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룩한 것이었습니다. 홀란드는 인도에 세운 동인도회사를 기반으로 하여 아시아무역을 장악하였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모델로 하여 성장했던 것입니다. 네덜란드는 오늘 날에도 유럽의 무역과 상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최문형 지음, 유럽이란 무엇인가 198-263쪽, 지식산업사 , 2009년; http://blog.joins.com/yang412/11033715)

 

저자는 “뇌는 우리가 생각하고 배우고 보고 듣고,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그리고 유쾌한 것과 불쾌한 것을 구별할 때 사용하는 우리 신체의 일부이다.”라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하여, 뇌야말로 우리가 왜 현재의 우리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변을 숨기고 있는 기관이라고 추론하고 ‘우리는 우리 뇌다’라는 명제를 세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정신은 뇌에 자리하고 있는 수십억 개의 신경세포들이 빚어내는 상호작용의 산물입니다. 야코프 몰레쇼트의 말대로 ‘콩팥이 소변을 생산하듯 뇌는 정신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인간이 인간일 수 있도록 만든 뇌의 신비를 시작부터 끝까지 뒤쫓고 있습니다. 즉 수태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변화를 요약한 것입니다. 다만 수태에서 출산에 이르기까지 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보다는 태아가 자궁 안에서 지내는 동안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중독성물질이나 의약품 등으로 인하여 생길 수 있는 발달장애는 물론 태아가 만들어내는 호르몬들이 부모를 어떻게 자극하여 모성행동 혹은 부성행동을 하도록 하는가, 성에 따른 행동의 차이가 어떻게 발현하는가, 심지어는 동성애적 경향이나 소아성애증이 생기는 이유 등입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의 원인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즉 동성애는 당사자의 선택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동성애는 치유가 가능한 질환이라는 미국사회의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동성애적 성향은 태아가 자궁 안에 있는 동안 결정되는데, 여야의 경우는 유산방지목적으로 투여하는 디에틸스틸베롤이나 각성제로 사용하는 암페타민, 혹은 니코틴 등이 동성애적 경향을 높인다고 합니다. 남아의 경우에는 손위 남자형제의 수와 동성애적 성향의 가능성이 비례한다는 가설이 있는데, 아들이 자궁 안에서 분비하는 남성 물질에 대한 모체의 방어기제가 임신이 반복될수록 강화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흔히는 동물세계에는 동성애가 없다고 말하지만, 지금까지 약 1,500종의 동물에서 동성애적 행동이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임신 기간 동안 수컷들 속에 노출되어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암컷 쥐는 다른 암컷 쥐와 교미한다고 합니다.

 

출산의 신비에 관해서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통상 모체에서 40주를 전후하여 2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태아가 모체를 떠나는 시점이 어떻게 결정되는가 하는 것도 아주 흥미로운 점입니다. 필자의 작은 아이는 42주를 채웠는데도 세상에 나올 기미가 없어 유도분만으로 출산했던 적이 있어 호기심이 남아있었던 모양입니다. 출산과정은 산모의 뇌에서 분비하는 옥시토신이 자궁을 수축시키면서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태아 역시 뇌에서 옥시토신을 분비하여 자궁수축을 유발시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출산은 태아의 혈당치가 떨어지면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태아의 혈당치가 떨어진다는 의미는 모체가 태아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없을 정도로 태아가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태아가 소모하는 신진대사량이 모체의 15퍼센트를 넘기면서 진통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산모의 생체시계가 작동하여 분만이 야간, 특히 이른 새벽에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수면이 부족한 산부인과 인턴을 괴롭히는 새벽분만이 많은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자는 분만이 순탄하지 않은 난산으로 인한 뇌발달장애로 부터 시작하여 우울증, 프래더윌리 증후군, 비만증, 군발성 두통, 기면증, 신경성 거식증, 자폐증 등, 뇌와 관련된 다양한 질환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대마초와 엑스터시와 같은 향정신성 물질이 뇌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마초(마리화나)의 경우는 긴장 완화와 종교적 혹은 의료적 목적으로 오랫동안 이용되어 왔는데 일부 국가에서는 통증, 불안 및 수면장애, 암환자의 오심을 억제하기 위하여 처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습관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진 대마초의 품질이 개선되면서 중독성 환각제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대마초를 오랫동안 피우면 다양한 뇌부위에서 변화를 일으켜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해마위축(기억이 감퇴됩니다), 편도체 위축(불안과 공격성 그리고 성행동의 변화가 나타납니다)과 같은 형태적 변화는 물론 정신분열증과 같은 기능적 장애도 유발시킨다고 합니다.

 

폭력적 성향이 왜 나타나게 되는지 별도의 장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폭력적 행동이 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인간은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공격성을 가진 종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공격성은 성별, 유전적 소인, 모태의 환경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임신의 중간 단계에 남성호르몬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경우 공격성이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 환경에 따라서 공격성이 늘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폭력을 예찬하는 영화나 컴퓨터게임이 공격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뇌에 있는 편도체가 공격성을 좌우하는 역할을 하는데, 편도체의 어떤 부위를 자극하면 공격성이 누그러지고 어떤 부위가 자극되면 공격성이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알츠하이머병과 같이 편도체에 변화가 생기면 공격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치매로 요양원에서 지내던 81세의 여성이 룸메이트를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역시 별도의 장으로 구분한 자폐증에 관한 내용도 주목할 만합니다. 아스퍼거증후군을 앓고 있는 대니얼 태멋을 인용한 자폐증에 관한 이야기에서 저자는 일부 자폐증 환자가 나타낼 수 있는 서번트 특성을 중점적으로 설명합니다. 자폐증을 일종의 발달장애라고 규정하면서도 유전적 요인을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은 지난 20년간 자폐증환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이유가 진단관행이 변한 것 때문이라는 앨런 프랜시스교수의 진단과는 배치되는 것 같습니다. 프랜시스교수는 DSM-IV에 아스퍼거증후군을 새로 넣으면서 자폐증 환자가 세배가 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정상인 범위에 속하는 괴짜와 아스퍼거증후군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앨런 프랜시스 지음,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223-226쪽, 사이언스북스, 2014년; http://blog.joins.com/yang412/13392396).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대표적인 뇌질환 역시 저의 관심분야이기는 합니다만, <우리는 우리 뇌다>에서 제가 가장 열심히 읽은 부분은 13장 도덕적 행동, 15장 신경 신학: 뇌와 종교, 16장 하늘과 땅 사이에 더 이상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17장 자유 의지-아름다운 환상 등입니다. 바로 정신세계와 관련된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도덕적 행동에 관한 내용을 보면 인간이 동물적 충동을 억제하고 인간다울 수 있었던 것은 도덕적 결정을 관장하는 전전두엽이 발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전전두피질은 인지된 감정이 도덕적 관점에 합당한지를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전전두 피질은 사회적 신호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충동적이고 이기적인 반응들을 억제한다.(349쪽)”라는 것입니다. 영장류에서도 볼 수 있는 도덕적 규범은 사회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개인에게 일정한 수준의 제약을 두는 일종의 사회계약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도덕적 결정을 하는데 있어 뚜렷한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신의 존재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가 하는 의문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즉각 이해할 수 없을 때마다 신을 찾는다. 이를 통해 뇌조직의 소모와 손상을 줄일 수 있다.(379쪽)”라고 한 에드워드 애비의 말을 인용한 것은 종교가 인간에게 진화적 이점을 가져다주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모든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언어, 도구 제작, 음악, 예술 그리고 종교 등 다섯 가지 특징적인 표현방식은 진화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합니다. 앞서 도덕적 규범이 집단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처럼 종교 역시 집단을 유지하기 위하여 신의 이름으로 개개인에게 많은 규범을 부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종교가 가져온 진화적 이점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첫째. 종교는 집단을 결속시킨다, 둘째. 신앙에서 유래하는 계명과 금기는 집단보호의 측면에서 다양한 이점을 제공한다, 셋째. 어려운 시기에 종교적인 신념이 신자들에게 위로와 도움을 주는 반면에, 무신론자들은 신의 도움 없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넷째. 신은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것에 답변을 한다, 다섯째. 종교는 사후의 삶을 약속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는 듯하다, 여섯째. 내가 믿는 신의 이름으로 다른 집단을 죽여도 되는 것은 항상 종교의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저자는 종교가 가진 진화적 이점을 말하면서도 종교가 없었다면 인간은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임사체험을 바탕으로 주장하고 있는 영혼의 존재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제시합니다. 임사체험자들이 주장하는 바들이 뇌과학으로 충분히 설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신학에서 오랫동안 주장해온 자유의지 역시 환상에 불과하다는 입장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필자는 우리가 인식하기 전에 신경세포가 활동을 하더라는 뇌신경생리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유 의지는 없다’는 결론에 이른 샘 해리스박사의 <자유의지는 없다; http://blog.joins.com/yang412/13064786>를 읽고서 다소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를 했던 것처럼 인간의 모든 선택이 찰나적인 직관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저자의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불과 18쪽으로 요약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나 싶습니다. 그만큼 죽음은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다룬 내용 가운데 잘못된 저의 앎을 고쳐야 할 점을 발견한 것도 큰 수확입니다. 흔히 심장이 멎어 뇌의 신경세포에 산소공급이 중단된 상태가 4~5분 경과하면 심각한 손상을 받아 돌이킬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뇌의 신경세포들은 사후 10시간 이내에 추출해도 배양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신경세포는 산소결핍에 10시간은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문제는 신경세포가 아니라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모세혈관의 내피세포들입니다. 산소결핍이 4~5분 경과하면 손상을 입은 내피세포들이 팽창하여 적혈구가 모세혈관을 지나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네덜란드에서 뇌은행을 처음 설립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운 점이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정리를 해보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뇌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을 쉽고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쉽게 읽힌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뇌다

디크 스왑 지음

신순림 옮김

568쪽

2015년 4월 30일

열린책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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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 2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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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읽었던 <영감한 친구들1; http://blog.joins.com/yang412/13660344>의 후편을 읽었습니다. 전편을 읽으면서 ‘아서와 조지는 언제부터 만나게 될까?’, 그리고 ‘어떤 활약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를 이어갔지만, 전편이 끝날 때까지, 심지어는 조지가 부당한 판결을 받아 형기를 마칠 때까지도 만남이 없었던 것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사실 <영감한 친구들2>는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의 마무리에 해당하는 부분이지만, 영국의 사법체계의 측면에서 본다면 새로운 시작과 마무리하고 할 수 있겠습니다.

 

3부의 첫 번째 이야기 ‘아서와 조지’에서 두 사람은 드디어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역시 조지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인한 것입니다. 형기는 마쳤지만, 요즘 개념으로 치면 복권이 되어야 사무변호사의 자격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조지가, 이미 셜록 홈스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 명성을 얻게 된 아서에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쇄도하는 수많은 청탁편지를 흘려보내곤 하던 아서는 조지의 사연에 꽂히면서 만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아서는 조지가 무죄임을 직감하게 된 것입니다.

 

아서는 즉시 조지의 사건 전모를 밝히기 위하여 재조사에 들어가고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정황을 확인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새로운 사실들이 들어나지만 조지의 사건을 다시 심리할 수는 없었던가 봅니다. 그 이유는 당시까지만 해도 영국의 사법제도는 단심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것이었고, 사건의 번복은 내무장관의 소관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지의 사건이 심리되는 과정에서 조지가 지독한 근시라는 사실은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사건을 조사한 검찰 쪽에서 일부러 빠트렸을 수도 있었겠지만, 피고측이 유리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독한 근시가 한밤중에 동물을 훼손하는 사건을 저지른다는 것은 현대에 와서도 쉽지 않은 노릇입니다.

 

사실 아서가 사건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인도출신인 조지의 가족에 대한 사법당국의 편향된 시각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납니다. 인종적 편견이 사건과는 무관한 조지를 범인으로 몰아갔던 것입니다. 어떻든 조지는 내무장관의 사면을 얻어내는데 성공합니다만, 그러기까지는 아서의 적극적인 수사와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한 언론플레이가 주효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서는 조지의 동급생인 로이든 샤프가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를 체포하여 수사가 진행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진짜 범인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조지가 범인일 수 없는 제반 증거를 바탕으로 무죄를 밝혀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서경이 로이든 샤퍼가 범인임을 추론해가는 과정에 당시 조지를 범인으로 몰아가던 방식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조지가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아서경은 편지를 시작점으로 삼아 로이든 샤프의 모든 행적을 추론해냈고, 편지들을 들어 샤프가 유죄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전에 조지에게 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이었다.(199쪽)”

 

조지의 사건을 조사한 위원회에서 내린 결론은 “결백하지만 유죄.”였다. 결백하지만 경찰이 합당한 수사를 할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방해했고, 스스로를 문제로 몰아넣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백하지만 징역을 살은 것은 부당하지 않고, 사과는 물론 보상금을 받을 자격은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도 비슷한 맥락의 선고가 내려지는 경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의 사법체계에서는 잘못된 유죄선고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무장관에게 청원서를 보내는 것뿐이라서 장관은 한해 수백 수천통의 청원서를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조지의 사건을 계기로 항고법원을 설치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방법이 논의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조지의 사건이 마무리된 다음에 아서는 죽음을 맞게 되는데,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으로 나오는 아서의 추모식에서 영매를 불러내는 심령행사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 점은 사족 같기만 합니다.

 

역사적 사실들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팩션소설로서 과거의 영국인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문화적 차이로 인한 이해의 한계를 감안해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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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
정은선 지음 / 예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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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다녀오기가 버킷 리스트의 윗줄에 올라 있기 때문인지 남미에 관련된 책에 눈이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정은선님의 <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 역시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눈길을 끌어 빌려온 책입니다. 스르륵 넘겨보는 책장 사이로 무수한 사진들이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기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첫 장면부터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여행에세이를 빙자한 소설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찌되었거나 서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에는 OK김(이 사람 정체가 분명치 않습니다. 음식점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것 같은데 투자자이거나, 인테리어 전문가 같기도 합니다)와 원포토(이 사람은 전문사진작가입니다.)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교차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합니다. 무대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바뀌는 것은 당연지사겠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갑자기 정체불명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OK김이 뒤쫓는 여자로 착각하였습니다만, 제3의 등장인물입니다. 원포토는 페루를 거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오지만 결국은 게스트하우스OJ로 모이게 되고, 이곳에서 제4의 인물과 이야기의 중심에는 OJ, 즉 옥자여사가 있습니다.

 

네 사람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행지의 게스트하우스에 모여드는 여행자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온 곳도 다르지만 아마 갈 곳도 다른 게스트하우스의 사람들처럼 이들은 따로 또 같이 움직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다만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은 모든 게스트를 상대하는 것처럼 이야기 중심에 있는 옥자여사가 등장인물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영상소설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안고 있는 문제, 즉 무언가를 찾기 위하여 혹은 무언가를 버리기 위하여 아니면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의 사연을 따라가면서 아르헨티나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을 사진과 함께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이야기의 분위기에 꼭 맞는 사진을 배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작가께서는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면서 찍어온 사진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구성하였거나 아니면 미리 구성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사진을 찍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여행에세이이기도 합니다. 여행에 관한 작가의 내공이 엿보이는 부분은 교차되는 이야기의 머리에 다양한 나라의 입국도장을 새겨둔 점입니다. 전분 새겨보지는 않았습니다만, 몇 가지의 입국도장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등장인물마다 고유한 것을 정했더라면 어떨까 싶습니다. 어떻든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교차되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끔씩은 두 사람씩 동행하기도 합니다만, 중심이 되는 등장인물에 따라 찍어주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여행에세이로의 성격대로 아르헨티나의 특징들이 간결하게 잘 표현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여긴 부에노스아이레스야. 부지런하게 놀아야 해! 아니면 부지런히 쉬든가1(88쪽)”, “여긴, 게으른자들의 천국이야. 게으른 자들이 노는 걸 좋아하잖아.(90쪽)”, “아르헨티나 쇠고기가 왜 좋은지 아십니까? (…) 소들이 행복하기 때문에 맛있는 겁니다. 넓은 들판에서 자연과 함께 자라니까요. 따듯한 햇볕을 받으면서 자연의 풀을 뜯습니다. 사료나 성장호르몬은 아르헨티나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요.(96쪽)”, 아참 그리고 소설 속의 이야기는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12월 23일부터 시작해서 12월 31일에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숱한 사연들이 과연 이토록 짧은 기간에 소화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다양한 모습도 좋지만, 역시 이과수폭포의 웅장한 모습과 세상의 끝 칼리파테의 쓸쓸해 보이는 빙하의 모습은 정말 압권인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과 관련된 군상들로 OK김과 로사, 원포토와 배우 최지은, 나작가와 PD, 박벤처와 운동권출신 와이프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옥자여사와 그녀의 남편은 독특한 컨셉인 듯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다녀와서 읽으면 재미가 더할 것이 분명한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잘 읽히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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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로부터의 선물 - 세계도시여행
이나미 글 사진 / 안그라픽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조만간 터키에 가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해 스페인을 다녀오고서 여행은 준비된 만큼 즐길 수 있다는 진리를 확인하였기에 터키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선적으로는 여행지의 역사, 예술, 사회적 배경 등을 우선적으로 챙겨보고 있습니다. 여행관련 서적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여행을 통하여 느낀 바를 적은 책들은 개인의 성향에 크게 좌우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탄불로부터의 선물> 역시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터키에서 보아야 할 것들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숙소 찬가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조금은 의외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저자에게는 크게 인상적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숙소가 여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가 되는가 하는 문제는 여행자마다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 다른 곳과는 다른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터키의 전통에 관한 저자 나름대로의 해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히잡을 쓴 여성들을 바라보면서 ‘히잡 속에 갇힌 여성의 삶에 대해, 여성에 대해 설정되어 있는 불공평한 종교적 규율에 대하 깊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26쪽)’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뒤에 가서는 무슬림 여성의 삶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부분도 ‘히잡은 남성우월주의적 발상의 종교적 억압이다-와 같은 우리들의 생각이 무슬림 여성들에게도 모두 공감을 얻으리라는 가정은 경솔하였다.(262쪽)’라는 고백 역시 일방적은 추론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일단 그곳에 오래 머물면서 그들의 삶에 들어가지 않고서 피상적으로 관찰하는 것만으로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잠시 스쳐 지나는 인상으로 그들을 재단하지는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야 소피아성당이나 지하궁전, 메블레비 템플에서의 세마의식 등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저자의 뛰어난 감성과 표현력을 엿볼 수 있고,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담소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일상을 마치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듯 적어놓고 있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나중에서야 미루어 짐작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서는 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집 딸은 작년에 시집 가더니 벌써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네, 걸음마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집 손주가 벌써 유치원에 가게 되었구나, 공부 잘하던 옆집 아들이 박사학위를 받았단다, 노환으로 누워계신 뒷집 어르신 병세는 원만하신가.... 와 같은 인사말들이 평화롭게 오고가는 장면은 꼭 언어로 소통할 수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244쪽)”

 

따님과 함께 간 터키 여행에서 클럽까지 순례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그 클럽에서 터키 전통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연주되고 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하는 모습이 우리네와 다르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기는 합니다만.... 한 가지 더, 터키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을 곳곳에 영어로 늘어놓은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영어라는 생각이셨겠지만, 꼭 그래야 했을까요? “어느새 12시가 넘고 클럽 안의 열기는 점점 고조되어 간다. Hassan is coming.(214쪽)” 누군가는 여행지에서 조심해야 할 부분이 현지인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무탈하게 여행을 즐기셨을 수도 있겠지만, 저자의 정보에 따라서 클럽을 찾아나선 젊은 여성들이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당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니 불편한 느낌만 늘어놓은 셈이 되어 훌륭한 여행을 마치고 좋은 정보를 담아주신 저자에게 누가 되는 점이 큰 것 같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습니다.

 

책의 편집이 불편한 점도 적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인데, 쪽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헌책과 같은 느낌을 주도록 색깔과 디자인을 처리하고 있어 산뜻한 맛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면을 모두 차지하거나 심지어는 두면에 걸쳐 사진을 처리하고 있는 것도 공연히 쪽수를 늘리기 위한 것 아닌가 하는 불편한 느낌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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