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뇌다
디크 스왑 지음, 신순림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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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의 한 분야인 신경병리학을 공부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신경계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도록 만든 구조가 바로 대뇌이기 때문에 그만큼 복잡하고 신비하기까지 한 기관이기 때문에 지금도 밝혀지지 않고 있는 점이 많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관심대상이 점점 확대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뇌에 관한 무한한 호기심을 채워주는 책을 만났습니다.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뇌과학자 디크 스왑이 쓴 <우리는 우리 뇌다>입니다.

 

우리에게 네덜란드는 그저 튤립의 고장으로 고정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유럽의 상권을 움켜쥐고 해외에 수많은 식민지를 두었던 대단한 나라입니다. 바로 유럽의 패권이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넘어가던 힘의 공백기를 잘 활용한 덕분이기도 합니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지금의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펠리페2세의 이단심문과 스페인군의 도심주둔을 계기로 독립운동을 벌였습니다.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 등의 지원을 받은 북부 7개주는 1581년 먼저 독립을 선언하여 홀란드를 세웠고, 벨기에에 속하는 남부는 뒤에 독립하였습니다. 홀란드는 모직물산업과 어업 그리고 무역과 금융업을 기반으로 하여 융성할 수 있었는데, 모직물산업은 가톨릭을 국교로 삼은 펠리페2세가 축출한 무슬림과 유대인이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룩한 것이었습니다. 홀란드는 인도에 세운 동인도회사를 기반으로 하여 아시아무역을 장악하였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모델로 하여 성장했던 것입니다. 네덜란드는 오늘 날에도 유럽의 무역과 상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최문형 지음, 유럽이란 무엇인가 198-263쪽, 지식산업사 , 2009년; http://blog.joins.com/yang412/11033715)

 

저자는 “뇌는 우리가 생각하고 배우고 보고 듣고,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그리고 유쾌한 것과 불쾌한 것을 구별할 때 사용하는 우리 신체의 일부이다.”라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하여, 뇌야말로 우리가 왜 현재의 우리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변을 숨기고 있는 기관이라고 추론하고 ‘우리는 우리 뇌다’라는 명제를 세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정신은 뇌에 자리하고 있는 수십억 개의 신경세포들이 빚어내는 상호작용의 산물입니다. 야코프 몰레쇼트의 말대로 ‘콩팥이 소변을 생산하듯 뇌는 정신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인간이 인간일 수 있도록 만든 뇌의 신비를 시작부터 끝까지 뒤쫓고 있습니다. 즉 수태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변화를 요약한 것입니다. 다만 수태에서 출산에 이르기까지 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보다는 태아가 자궁 안에서 지내는 동안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중독성물질이나 의약품 등으로 인하여 생길 수 있는 발달장애는 물론 태아가 만들어내는 호르몬들이 부모를 어떻게 자극하여 모성행동 혹은 부성행동을 하도록 하는가, 성에 따른 행동의 차이가 어떻게 발현하는가, 심지어는 동성애적 경향이나 소아성애증이 생기는 이유 등입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의 원인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즉 동성애는 당사자의 선택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동성애는 치유가 가능한 질환이라는 미국사회의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동성애적 성향은 태아가 자궁 안에 있는 동안 결정되는데, 여야의 경우는 유산방지목적으로 투여하는 디에틸스틸베롤이나 각성제로 사용하는 암페타민, 혹은 니코틴 등이 동성애적 경향을 높인다고 합니다. 남아의 경우에는 손위 남자형제의 수와 동성애적 성향의 가능성이 비례한다는 가설이 있는데, 아들이 자궁 안에서 분비하는 남성 물질에 대한 모체의 방어기제가 임신이 반복될수록 강화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흔히는 동물세계에는 동성애가 없다고 말하지만, 지금까지 약 1,500종의 동물에서 동성애적 행동이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임신 기간 동안 수컷들 속에 노출되어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암컷 쥐는 다른 암컷 쥐와 교미한다고 합니다.

 

출산의 신비에 관해서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통상 모체에서 40주를 전후하여 2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태아가 모체를 떠나는 시점이 어떻게 결정되는가 하는 것도 아주 흥미로운 점입니다. 필자의 작은 아이는 42주를 채웠는데도 세상에 나올 기미가 없어 유도분만으로 출산했던 적이 있어 호기심이 남아있었던 모양입니다. 출산과정은 산모의 뇌에서 분비하는 옥시토신이 자궁을 수축시키면서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태아 역시 뇌에서 옥시토신을 분비하여 자궁수축을 유발시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출산은 태아의 혈당치가 떨어지면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태아의 혈당치가 떨어진다는 의미는 모체가 태아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없을 정도로 태아가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태아가 소모하는 신진대사량이 모체의 15퍼센트를 넘기면서 진통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산모의 생체시계가 작동하여 분만이 야간, 특히 이른 새벽에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수면이 부족한 산부인과 인턴을 괴롭히는 새벽분만이 많은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자는 분만이 순탄하지 않은 난산으로 인한 뇌발달장애로 부터 시작하여 우울증, 프래더윌리 증후군, 비만증, 군발성 두통, 기면증, 신경성 거식증, 자폐증 등, 뇌와 관련된 다양한 질환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대마초와 엑스터시와 같은 향정신성 물질이 뇌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마초(마리화나)의 경우는 긴장 완화와 종교적 혹은 의료적 목적으로 오랫동안 이용되어 왔는데 일부 국가에서는 통증, 불안 및 수면장애, 암환자의 오심을 억제하기 위하여 처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습관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진 대마초의 품질이 개선되면서 중독성 환각제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대마초를 오랫동안 피우면 다양한 뇌부위에서 변화를 일으켜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해마위축(기억이 감퇴됩니다), 편도체 위축(불안과 공격성 그리고 성행동의 변화가 나타납니다)과 같은 형태적 변화는 물론 정신분열증과 같은 기능적 장애도 유발시킨다고 합니다.

 

폭력적 성향이 왜 나타나게 되는지 별도의 장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폭력적 행동이 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인간은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공격성을 가진 종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공격성은 성별, 유전적 소인, 모태의 환경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임신의 중간 단계에 남성호르몬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경우 공격성이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 환경에 따라서 공격성이 늘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폭력을 예찬하는 영화나 컴퓨터게임이 공격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뇌에 있는 편도체가 공격성을 좌우하는 역할을 하는데, 편도체의 어떤 부위를 자극하면 공격성이 누그러지고 어떤 부위가 자극되면 공격성이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알츠하이머병과 같이 편도체에 변화가 생기면 공격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치매로 요양원에서 지내던 81세의 여성이 룸메이트를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역시 별도의 장으로 구분한 자폐증에 관한 내용도 주목할 만합니다. 아스퍼거증후군을 앓고 있는 대니얼 태멋을 인용한 자폐증에 관한 이야기에서 저자는 일부 자폐증 환자가 나타낼 수 있는 서번트 특성을 중점적으로 설명합니다. 자폐증을 일종의 발달장애라고 규정하면서도 유전적 요인을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은 지난 20년간 자폐증환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이유가 진단관행이 변한 것 때문이라는 앨런 프랜시스교수의 진단과는 배치되는 것 같습니다. 프랜시스교수는 DSM-IV에 아스퍼거증후군을 새로 넣으면서 자폐증 환자가 세배가 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정상인 범위에 속하는 괴짜와 아스퍼거증후군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앨런 프랜시스 지음,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223-226쪽, 사이언스북스, 2014년; http://blog.joins.com/yang412/13392396).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대표적인 뇌질환 역시 저의 관심분야이기는 합니다만, <우리는 우리 뇌다>에서 제가 가장 열심히 읽은 부분은 13장 도덕적 행동, 15장 신경 신학: 뇌와 종교, 16장 하늘과 땅 사이에 더 이상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17장 자유 의지-아름다운 환상 등입니다. 바로 정신세계와 관련된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도덕적 행동에 관한 내용을 보면 인간이 동물적 충동을 억제하고 인간다울 수 있었던 것은 도덕적 결정을 관장하는 전전두엽이 발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전전두피질은 인지된 감정이 도덕적 관점에 합당한지를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전전두 피질은 사회적 신호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충동적이고 이기적인 반응들을 억제한다.(349쪽)”라는 것입니다. 영장류에서도 볼 수 있는 도덕적 규범은 사회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개인에게 일정한 수준의 제약을 두는 일종의 사회계약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도덕적 결정을 하는데 있어 뚜렷한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신의 존재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가 하는 의문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즉각 이해할 수 없을 때마다 신을 찾는다. 이를 통해 뇌조직의 소모와 손상을 줄일 수 있다.(379쪽)”라고 한 에드워드 애비의 말을 인용한 것은 종교가 인간에게 진화적 이점을 가져다주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모든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언어, 도구 제작, 음악, 예술 그리고 종교 등 다섯 가지 특징적인 표현방식은 진화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합니다. 앞서 도덕적 규범이 집단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처럼 종교 역시 집단을 유지하기 위하여 신의 이름으로 개개인에게 많은 규범을 부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종교가 가져온 진화적 이점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첫째. 종교는 집단을 결속시킨다, 둘째. 신앙에서 유래하는 계명과 금기는 집단보호의 측면에서 다양한 이점을 제공한다, 셋째. 어려운 시기에 종교적인 신념이 신자들에게 위로와 도움을 주는 반면에, 무신론자들은 신의 도움 없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넷째. 신은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것에 답변을 한다, 다섯째. 종교는 사후의 삶을 약속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는 듯하다, 여섯째. 내가 믿는 신의 이름으로 다른 집단을 죽여도 되는 것은 항상 종교의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저자는 종교가 가진 진화적 이점을 말하면서도 종교가 없었다면 인간은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임사체험을 바탕으로 주장하고 있는 영혼의 존재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제시합니다. 임사체험자들이 주장하는 바들이 뇌과학으로 충분히 설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신학에서 오랫동안 주장해온 자유의지 역시 환상에 불과하다는 입장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필자는 우리가 인식하기 전에 신경세포가 활동을 하더라는 뇌신경생리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유 의지는 없다’는 결론에 이른 샘 해리스박사의 <자유의지는 없다; http://blog.joins.com/yang412/13064786>를 읽고서 다소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를 했던 것처럼 인간의 모든 선택이 찰나적인 직관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저자의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불과 18쪽으로 요약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나 싶습니다. 그만큼 죽음은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다룬 내용 가운데 잘못된 저의 앎을 고쳐야 할 점을 발견한 것도 큰 수확입니다. 흔히 심장이 멎어 뇌의 신경세포에 산소공급이 중단된 상태가 4~5분 경과하면 심각한 손상을 받아 돌이킬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뇌의 신경세포들은 사후 10시간 이내에 추출해도 배양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신경세포는 산소결핍에 10시간은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문제는 신경세포가 아니라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모세혈관의 내피세포들입니다. 산소결핍이 4~5분 경과하면 손상을 입은 내피세포들이 팽창하여 적혈구가 모세혈관을 지나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네덜란드에서 뇌은행을 처음 설립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운 점이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정리를 해보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뇌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을 쉽고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쉽게 읽힌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뇌다

디크 스왑 지음

신순림 옮김

568쪽

2015년 4월 30일

열린책들 펴냄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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