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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비밀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는 우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도 충분하지 못한 가 봅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행위라고 해도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가 봅니다. 충동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은 시절에 저지른 살인을 감추고 살았지만 첫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누군가에게라도 고백을 해야 마음속에 들어앉은 돌의 무게가 다소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을까요?
리안 모리아티의 <허즈번드 시크릿>은 우연히 발견한 남편의 편지의 겉봉에 쓰여 있는 “나의 아내 세실리아 피츠페트릭에게, 반드시 내가 죽은 뒤에 열어볼 것”이라는 문구를 발견한 아내의 고심에서 먼저 인간의 속성을 보여줍니다. 금하는 일을 지키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판도라의 상자>라는 신화가 등장했겠습니까?
사리판단이 성숙하지 않은 시절 우연히 저지른 살인사건은 피해자 가족의 삶을 무너뜨리고, 오랜 세월을 웅크리고 있다가 또 다른 범죄를 낳게 되는 것을 보면 악연의 첫 고리를 꿰는 일이 무서운 비극을 잉태하는 일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악연의 사슬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작가는 세 개의 이야기를 별도로 시작합니다. 세실리아와 존 폴 부부 그리고 세 딸, 테스와 남편 윌 그리고 사촌 펠리시티, 레이첼과 아들 롭 그리고 며느리 로렌 등 세 가족에게 부활절이 들어있는 한 주일 동안에 일어난 일을 담고 있습니다. 옴니버스 형식을 교차되는 세 가족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도대체 세 가족이 어디에서 접점을 이루고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우선 먼저 노출된 비밀에 대하여, 과연 세실리아는 존 폴의 과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습니다. 폴의 어머니처럼 가족이라는 이유로 감싸 안는 것이 최선일까? 하지만 자수를 하고 잘못을 빌도록 이끌어가는 것이 옳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결정이 결코 쉽지만은 아닐 터이나, 묵은 악연의 고리를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오해를 받은 코너 휘트비선생이 애꿎은 희생양이 되지 않는 것은 사필귀정이라는 진리를 지키기 위한 장치였을 것 같습니다.
세 가족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궁극적으로는 오래 전에 있었던 레이첼의 딸 자니의 죽음과 연결이 되는데, 그리고 보면 존 폴과 코너 휘트비, 지니와 테스 사이의 사랑방정식이 제대로 풀려가지 못하고 삐걱대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는데, 그 사건의 배경에는 의외의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존 폴이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신고를 하였더라면 평생의 마음고생은 물론, 악연의 고리로 인하여 딸 폴리가 희생되는 안타까운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부활절 일요일에 사건을 통하여 무너져 내린 세 가족이 어떤 상황을 맞게 될지를 보여주는데, 특히 세실리아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 딸 폴리가 의식을 되찾으면서, 장애를 극복하면서 건강하게 자랄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테스의 남편 윌 역시 펠리시티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다시 테스에게로 돌아오는데, 테스 역시 그 사이에 옛연인 코너 휘트비와의 일탈을 정리하고 남편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과연 이런 결정이 쉬울까 싶기는 합니다.
이미 흘러간 물처럼 일어난 사건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지만, 에필로그를 통하여 작가는 “만약에 이랬더라면~~”하는 가정 아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갔을까 유추해보고 있습니다. 테스의 둘째 아이가 윌의 아이인지 코너의 아이인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의 경우는 유전자검사를 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을 터이나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 같습니다. 악연의 고리를 처음 만들어냈던 존 폴 역시 자니가 마르판증후군이라는 선천성 질환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자니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병원에 갈 수 있도록 했을 것입니다. 또한 자니를 담당한 부검의가 일을 제대로 했더라면 자니의 사인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면 <허즈번드 시크릿>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어떤 길로 가게 될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도 그편이 나을 것이다. 어떤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남는다. 판도라에게 물어보자(535쪽)”라고 마무리한 작가의 생각이 어디에 있든지, 최선의 삶이란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일이 없으면 일단 필요조건은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