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 - 라틴아메리카 문화기행
우석균 지음 / 해나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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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를 다녀오는 사람들도 많아지면서 남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알맹이 없는 여행기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남미를 안내하는 제대로 된 읽을거리는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 특히 안데스 민속음악과 독립 후에 들어선 독재정권에 맞서던 민중음악들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는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책을 쓴 우석균박사는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페루의 가톨릭 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페루사람들의 삶을 몸으로 느낀 바를 녹여내고 있어 공감이 더했던 것 같습니다. 서울을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저자는 코르도바-투쿠만-살타-후후이-포토시-라파스-푸노를 거쳐 쿠스코에 이르는 길을 때로는 택시를 대절하여 혹은 버스로 이동하면서 라틴아메리카 민중음악의 성지를 직접 방문하여 그들의 음악과 축제를 직접 듣고 체험한 결과를 정리해냈습니다.

 

사실 음악, 특히 라틴음악은 아는 바가 거의 없어 여기 나오는 가수나 음악은 한 곡을 제외하고는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그 한 곡은 사이먼과 가펑클이 안데스 민요를 편곡한 <철새는 날아가고>입니다. 첫머리에 나오는 전설적인 탱고가수 카를로스 가르델의 <내 사랑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부터 메르세데스 소사, 알폰시나 스트로니, 아타왈파 유팡키 등등 모두 처음 듣는 이름들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유팡키가 여생을 보냈고 묻힌 세로콜로라도까지 택시를 대절하여 방문하는 열성을 보였답니다. 생각해보면 저 역시 어느 해던가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현대병리학의 태두라고 할 비르효의 무덤을 찾아서 헌화를 한 적이 있는 것 처럼, 저자 역시 기리는 마음을 표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단순하게 가수나 노래 뿐 아니라 탱고를 연주하는 반도네온, 안데스 전통의 민속악기들, 시쿠, 차랑고, 안데스 하프 등에 대하여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노래들의 가사를 싣고 있는데, 하나 같이 노랫말들이 비장한 듯한 것은 노래들이 주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문인 마리아 엘레나 월쉬가 작사작곡하고, 아르헨티나의 국민가수 메르세데스 소사가 부른 <매미처럼>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숱하게 나를 죽였고 / 숱하게 나는 죽었네. / 그러나 나는 여기 다시 부활하고 있지. / 불행에 감사드리고 / 비수를 움켜쥔 손에도 감사를 드리네. / 서투르게 나를 줄였기에 / 계속 노래할 수 있었으니. // 매미처럼 태양을 향해 노래하네, / 일 년간 지하에 있다가. / 전쟁에서 돌아오는 / 생존자들처럼.(32쪽)”

 

여행을 하면서 직접 찍은 사진들은 물론 자료사진 그리고 현지에 지원해준 다양한 사진들도 책의 내용을 풍성하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특히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비올레타 파라가 태어난 산카를로스에서 만난 칠레의 평원은 노란꽃 - 아마도 유채꽃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 이 만발하고 있어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사진을 오랫동안 넘기지 못했습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남미여행이 계획대로 되면 저자가 다닌 도시 가운데 몇 곳을 가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라틴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이 벌써 10년이 되었으니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듣기로는 칠레도 독재정권이 종식되어 이제는 민주정부가 들어서 과거를 청산하는 작업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자는 음악에 관한 책을 쓰는 일이 일종의 외도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만, 학문 간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통섭의 시대에 오히려 권장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구촌은 날로 좁아지고 있어 앎의 지평을 넓혀가기에는 제대로 된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한 세상입니다. 특히 남미에 관해서 말입니다. 남미의 문화, 특히 음악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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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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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에도 묘하게 비슷한 성격의 책을 몰아서 읽게 되는 쏠림 현상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해 부터 다니기 시작한 해외여행을 준비하기 위한 책읽기에 몰입하고 있습니다만, 사이사이에는 다른 분야의 책들을 읽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가족이나 친지와 같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분들을 위한 책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어제 리뷰를 정리한 이시하라 가즈코의 <나에게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 http://blog.joins.com/yang412/13813712>가 있고, 다음 주에 긴 호흡으로 리뷰를 쓰게 될 최광현의 <가족의 발견>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의 경우에는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다보면 상처를 받을 일이 많아진다면서 ‘자기 위주’의 삶을 살기를 권하기도 합니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주인공 아오야마는 사무실에서도 말단인 처지에 실적도 변변치 못해 부장으로부터 닦달을 당하는데 겨우 따낸 계약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여 계약이 취소당할 위기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말단 회사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오야마처럼 사무실에서 궁지에 몰리게 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한번쯤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만두었을 때 오라는 데가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은 갈 데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고 주눅이 든 채로 눈칫밥을 먹어가면서 버티기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포자기에 빠져 세상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사람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아오야마 역시 안타까운 사례에 속할 수도 있었는데, 기연(奇緣)을 만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사는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요? 지금 당장은 죽고 못살 것 같은 일도 다른 시각에서 살펴보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주인공 아오야마가 퇴근길 전철역에서 휘청거리는 모습을 위태롭게 본 야마모토가 구원의 손을 내밀어준다는 것은 너무 우연에 기대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이 알고 보니 이미 죽은 사람이더라는 설정은 뒷골이 서늘한 느낌이 들어 여름에 읽으면 제격이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반전..... 너무 소설적이라서 현실감이 떨어져 보이는 느낌이 남은 것이 아쉽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야마모토가 초면의 아오야마에게 손을 내민 까닭을 “그날의 너와 똑같은 표정을 한 녀석을 아니까(106)”라는 알듯 모를 듯한 말로 설명했지만, 책을 읽는 저 역시 아오야마처럼 그 의미가 금방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야 주인공 앞에 나타난 야마모토가 심리상담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나 아오야마 역시 같은 길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작가는 이 책을 일종의 고단한 현실에 괴로워하는 직장인의 마음을 풀어주는 묘방(妙方)을 제시하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당장 죽을 듯이 고통스러운 일도 생각을 바꾸어 보면 그저 한바탕 바람으로 지나가는 일이더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 말입니다. 회사가 나를 힘들게 하면 굳이 버티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가진 힘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아보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닐 것입니다.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가 많으면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작가의 첫 작품이 베스트셀러에 들 수 있었던 것은 드라마 <미생>처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인공, 그리고 신문지상을 통해서 흔히 만나는 불행한 사건들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느끼는 보통사람들의 감성을 일깨울 수 있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독자의 감성을 잘 읽어낸 작가의 후속작을 기대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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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잉카
김동완.김선미.한은경 지음 / 지성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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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여행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한여름 밤의 꿈, 잉카>는 2003년 8월 20일부터 9월 5일까지 LG IBM과 스포츠서울 그리고 대학내일이 후원하고 16명의 대학생들이 참여한 잉카, 아마존 탐사여행을 보고서입니다. 여정은 페루의 쿠스코와 마추픽추, 푸에르토 말도나도 그리고 브라질의 사웅파울루와 이과수 폭포 등 2개국의 다섯 곳을 돌아보는 것이었가 봅니다. 16명의 참가자들 가운데 김동완, 김선미, 한은경 등 세 명의 학생들이 대표로 책을 꾸몄던가 봅니다.

 

젊은이들로 구성된 탐사대였던 까닭에 조금은 용감하면서도 여행길에서 만나는 외국 사람들과도 스스럼 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전편을 통하여 아쉬운 점은 주로 먹는 것 노는 것 이외에 여행지에 대하여 심도 있는 내용이 별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전 준비도 별로 없었던 것 같고, 다녀온 다음에도 현지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보완하는 노력의 흔적이 별로 없이 그저 그렇더라는 감흥 정도를 나열하고 있어서 실망스러운 보고서였습니다. 예를 들면 쿠스코에 도착한 탐사대원 가운데는 고산병을 악화시킬 수 있는 행동을 보인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탐사일정을 탐사대원들이 스스로 짠 것 같은 흔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주최측에서 짜놓은 일정을 피동적으로 따라가는데, 그 일정마저도 여유가 넘치는 것 같다는 인상입니다.

 

잉카인들이 마추픽추를 세운 이유가 피사로가 이끌고 온 스페인군대 때문이었다는 설명도 타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스페인 군대의 가공할 화력에 무너진 잉카인들이 우르밤바계곡의 정상으로 도피해서 지은 공중도시가 바로 맞추픽추라는 설명입니다.

 

맞추픽추의 캠핑장에서 밤새워 술을 마시고 춤을 춘 것도 모자라 쿠스코에 내려와서도 다시 나이트클럽에서 밤새워 춤을 추고 놀았다고 적었는데, 여정이 힘들수록 체력을 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여행의 기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젊음을 과신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이트클럽도 그랬지만, 카지노까지 섭렵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적은 것도 눈에 거슬린다. 물론 기분전환을 위하여 가볍게 즐긴 것이었고, 생각지 못한 잭팟을 횡재한 다음에 바로 그만 두었다고는 했습니다만, 그리 대학생 신분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16명의 탐사대원들의 탐사행적은 물론 이후의 행적을 제대로 적고 있지 않습니다만, 대체적으로 보면 책을 쓴 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남미 탐사를 다녀온 효과가 남미특산의 애완동물을 키우고, 우리나라에 문을 열고 있는 남미 음식을 즐기러 다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면 그 멀리 남미까지 탐사를 다녀오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페인어를 배우고 탱고에 빠지는 것도 그저 개인적인 호사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적어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넘어 역사는 물론 경제, 사회, 예술 등 다방면에서의 인식의 깊이를 더하는 활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젊은이들이니까요.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리교사들의 연수보고서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와 너무 비교된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선생님들께서 연수 목적으로 다녀온 것이기 때문에 출발부터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떠난 것과 같이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학생들의 남미 탐사대 역시 제출한 제안서를 심사하여 선발하였다고 했는데, 어떤 내용을 제안하였고, 그 제안이 어떻게 탐사에 반영되어 결과를 얻었는지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형식적인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기왕에 보고서를 쓸 양이었다면 보완할 것은 철저하게 보완을 하고 적절치 못한 것은 제외하는 편집의 묘를 살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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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 - 괴로운 과거를 잊고 나를 지키는 법
이시하라 가즈코 지음, 정혜주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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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만, 옛날 일을 잘 기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가면서 옛날 기억이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나쁜 기억일수록 오래까지 남아서 괴롭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마음에 담아두던 나쁜 기억이 있습니다만, 언젠가 부터는 엷어지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나쁜 기억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되새김질을 하지 않으면 나쁜 기억도 그저 옛일로 사라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괴로운 과거를 잊고 나를 지키는 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나에게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는 바로 그저 지나칠 수도 있는 말 한 마디가 칼날이 되어 마음을 후벼 파서 상처로 남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치유의 길로 안내하기 위한 조언을 들려주기 위한 책이기도 합니다. 상처를 잘 받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을 우선시 하는 ‘타인 위주’의 삶을 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편하게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욕하면서도 속으로는 닮고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저자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인생을 되찾기 위해서는 ‘자기 위주’로 생각하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에게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의 저자는 ‘자기 위주의 심리학’이라는 독특한 영역을 개척한 일본의 심리치유사 이시하라 가즈코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쉽게 상처를 받는 사람들의 유형을 진단하고 스스로를 강하게 만드는 비법을 소개합니다. ‘상처-후회-용서-희생-복수’로 이어지는 기전을 통하여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상처’편에서는 남의 말에 쉽게 상처받는 사람의 특성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후회’편에서는 왜 과거의 상처를 지우지 못하는 사람의 특성을 설명합니다. ‘용서’편에서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이 어렵지만 아픈 과거로부터 탈출하는 첫걸음이 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희생’편에서는 남을 위하여 더 이상 자신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복수’편에서는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것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하는 멋진 복수라는 것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을 바로 망각이라는 재능이라고 합니다. 보고 들은 것을 모두 기억한다는 것은 얼핏 보면 큰 재능으로 보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재앙이라고 해야 합니다. 온갖 상념들이 서로 엉겨서 뒤죽박죽되면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적당하게 잊고 사는 것이야말로 잘 사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뇌가 괴로운 과거를 지울 수 있도록 진화된 것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아픈 과거는 잊어버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처받은 일을 없었던 것으로 치고 덮어버리거나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거나 외면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과거를 지우려면 잊어버리려 노력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상처가 되었던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려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가려내라고 합니다.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면 내가 상처를 받을 상황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죽을 때까지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을 털어놓는 것으로 상처가 치유될 수도 있습니다. 꼭 그 사람을 만나지 않더라도 글을 쓰는 것으로도 충분히 무거운 짐을 덜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과거에 묶여서 지금 행복하지 못한 것은 큰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는 과거로 돌리고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


이시하라 가즈코 지음

정혜주 옮김

208쪽

2015년 12월 18일

동양북스 펴냄


목차


시작하며 아직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까?


Keyword 1 상처 “그때 그 일은 절대 못 잊어!”

Keyword 2 후회 “나는 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Keyword 3 용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을까?”

Keyword 4 희생 “나는 더 이상 희생하지 않기로 했다”

Keyword 5 복수 “행복해지는 것이 가장 큰 복수다”


옮긴이의 말 과거를 지우려면 먼저 과거를 떠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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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빛 베네치아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7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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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나절에 불과하였지만, 베네치아에 머물렀던 느낌을 정리해보려고 고른 책입니다. <로마인 이야기>로 잘 알려진 시오노 나나미의의 베네치아-피렌체-로마로 이어지는 도시를 주제로 한 삼부작 소설의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표지를 열면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사진들과 그 장면의 일부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목차, 작가의 말 순서로 이어집니다. 작가의 말에도 밝혔습니다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남녀 주인공, 그러니까 마르코 단돌로와 올림피아를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거의 다 역사적 신존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홍빛 베네치아>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들을 모아 작가가 창조한 두 주인공을 짜깁기해 넣어 서로 연결해낸 것입니다. 이런 작업을 작가는 패치워크라고 했습니다만, 팩트와 픽션을 가미한 팩션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르네상스가 전성기를 지나 쇠퇴기에 접어든 직후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융성기는 소설로 쓸 필요도 없을 만큼 자체만으로 이미 극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시대적 배경은 1520년대의 초반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동쪽으로는 슐레이만1세(1494년 - 1566년)의 오스만투르크가 발칸반도를 북상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스페인의 국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로스 1세(1500-1558)가 이탈리아반도까지 넘보고 있어 베네치아의 운명이 풍전등화와도 같을 때입니다. 당시 베네치아는 안드레아 그리티(1455년 - 1538년)가 베네치아 공화국의 제77대 도제(재임 : 1523년 ~ 1538년)로 부임하였을 때입니다.

 

작가는 당시 지중해를 중심으로 각축을 벌이던 나라들이 힘의 균형을 찾아서 격돌하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역사소설을 읽을 때 팩트와 창작을 가름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를 놓치면 작가가 가공해낸 것을 역사적 사실인 것으로 오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홍빛 베네치아>를 읽으면서 베네치아의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는 법과 해상도시 베네치아의 건설에 숨어 있는 수비전략, 16세기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 뒤에 숨어 있는 배경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네치아를 방문했을 때 가이드를 따라서 뒷골목으로 스며들면서 자칫하면 길을 잃고 헤맬 수 있겠다는 두려움 같은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주홍빛 베네치아>를 미리 읽었더라면 고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확실히 베네치아 시가지는 운하도 골목도 미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네치아 사람들에게는 미로가 아니다.(…) 베네치아인은 이 미로를 미로가 아니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걸어가는 방향을 따라 걸어가면 되기 때문이다(245쪽)”

 

베네치아는 리알토 일대에 흩어져 있는 지반이 튼튼한 섬들을 다리로 연결하고 섬 사이를 흐르는 물길을 운하로 살리면서 단단히 다져나가는 방식으로 넓혔다고 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온통 바다로밖에 보이지 않는 석호 안에도 천연의 물길이 그물눈처럼 지나고 있다고 합니다. 천연의 물길은 대형선박이 다닐 수 있는 수심 10여 미터 되는 것도 있고, 수심이 1미터도 되지 않는 얕은 것도 있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나무말뚝을 박아 배가 다닐 수 있는 물길을 표시해두지만, 적이 쳐들어오면 말뚝을 뽑아낸다고 하는데, 석호 안에 있는 물길을 모르는 적의 배는 얕을 여울에 좌초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작은 배가 구성된 함대로 접근해서 적을 섬멸하였다고 합니다.

 

오스만제국은 헝가리를 점령하고 합스부르크가의 오스트리아 빈을 공략하다가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오스만제국의 오스트리아 침공의 배경에는 카를로스1세의 이탈리아반도 점유계획과 맞물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에스파냐와 베네치아의 대외전략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었는데, 베네치아는 외국과의 교역을 통하여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에스파냐는 외국을 영유함으로써 번영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대등함과 종속의 차이는 아주 큰 것입니다. 따라서 에스파냐의 무력에 굴복하면 외형상으로 국가의 형태는 유지할 수 있겠지만, 베네치아의 혼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본 당시 베네치아 지도층은 오스만제국과의 물밑 접촉을 통하여 오스트리아를 치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베네치가아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의 협공을 피하려는 전략적 외교술을 발휘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주홍빛 베네치아>에는 에스파냐와 베네치아 그리고 오스만제국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정보전과 외교술, 여기에 사랑이야기로 양념을 더해서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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