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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빛 베네치아 ㅣ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7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한나절에 불과하였지만, 베네치아에 머물렀던 느낌을 정리해보려고 고른 책입니다. <로마인 이야기>로 잘 알려진 시오노 나나미의의 베네치아-피렌체-로마로 이어지는 도시를 주제로 한 삼부작 소설의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표지를 열면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사진들과 그 장면의 일부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목차, 작가의 말 순서로 이어집니다. 작가의 말에도 밝혔습니다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남녀 주인공, 그러니까 마르코 단돌로와 올림피아를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거의 다 역사적 신존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홍빛 베네치아>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들을 모아 작가가 창조한 두 주인공을 짜깁기해 넣어 서로 연결해낸 것입니다. 이런 작업을 작가는 패치워크라고 했습니다만, 팩트와 픽션을 가미한 팩션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르네상스가 전성기를 지나 쇠퇴기에 접어든 직후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융성기는 소설로 쓸 필요도 없을 만큼 자체만으로 이미 극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시대적 배경은 1520년대의 초반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동쪽으로는 슐레이만1세(1494년 - 1566년)의 오스만투르크가 발칸반도를 북상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스페인의 국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로스 1세(1500-1558)가 이탈리아반도까지 넘보고 있어 베네치아의 운명이 풍전등화와도 같을 때입니다. 당시 베네치아는 안드레아 그리티(1455년 - 1538년)가 베네치아 공화국의 제77대 도제(재임 : 1523년 ~ 1538년)로 부임하였을 때입니다.
작가는 당시 지중해를 중심으로 각축을 벌이던 나라들이 힘의 균형을 찾아서 격돌하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역사소설을 읽을 때 팩트와 창작을 가름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를 놓치면 작가가 가공해낸 것을 역사적 사실인 것으로 오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홍빛 베네치아>를 읽으면서 베네치아의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는 법과 해상도시 베네치아의 건설에 숨어 있는 수비전략, 16세기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 뒤에 숨어 있는 배경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네치아를 방문했을 때 가이드를 따라서 뒷골목으로 스며들면서 자칫하면 길을 잃고 헤맬 수 있겠다는 두려움 같은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주홍빛 베네치아>를 미리 읽었더라면 고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확실히 베네치아 시가지는 운하도 골목도 미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네치아 사람들에게는 미로가 아니다.(…) 베네치아인은 이 미로를 미로가 아니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걸어가는 방향을 따라 걸어가면 되기 때문이다(245쪽)”
베네치아는 리알토 일대에 흩어져 있는 지반이 튼튼한 섬들을 다리로 연결하고 섬 사이를 흐르는 물길을 운하로 살리면서 단단히 다져나가는 방식으로 넓혔다고 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온통 바다로밖에 보이지 않는 석호 안에도 천연의 물길이 그물눈처럼 지나고 있다고 합니다. 천연의 물길은 대형선박이 다닐 수 있는 수심 10여 미터 되는 것도 있고, 수심이 1미터도 되지 않는 얕은 것도 있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나무말뚝을 박아 배가 다닐 수 있는 물길을 표시해두지만, 적이 쳐들어오면 말뚝을 뽑아낸다고 하는데, 석호 안에 있는 물길을 모르는 적의 배는 얕을 여울에 좌초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작은 배가 구성된 함대로 접근해서 적을 섬멸하였다고 합니다.
오스만제국은 헝가리를 점령하고 합스부르크가의 오스트리아 빈을 공략하다가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오스만제국의 오스트리아 침공의 배경에는 카를로스1세의 이탈리아반도 점유계획과 맞물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에스파냐와 베네치아의 대외전략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었는데, 베네치아는 외국과의 교역을 통하여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에스파냐는 외국을 영유함으로써 번영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대등함과 종속의 차이는 아주 큰 것입니다. 따라서 에스파냐의 무력에 굴복하면 외형상으로 국가의 형태는 유지할 수 있겠지만, 베네치아의 혼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본 당시 베네치아 지도층은 오스만제국과의 물밑 접촉을 통하여 오스트리아를 치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베네치가아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의 협공을 피하려는 전략적 외교술을 발휘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주홍빛 베네치아>에는 에스파냐와 베네치아 그리고 오스만제국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정보전과 외교술, 여기에 사랑이야기로 양념을 더해서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