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너리스 1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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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북소리]에서 소설을 소개합니다. 2013년 맨 부커상을 수상한 엘리너 캐턴(Eleanor Catton)의 <루미너리스(The Luminaries)>입니다. 맨부커상은 영국과 영연방 작가들이 발표한 작품 가운데 한 해의 최고 소설을 가리는 영국의 문학상입니다. 출판과 독서증진을 위한 독립기금인 북 트러스트(Book Trust)의 후원으로 1968년 시작한 이 상은 부커-맥코넬(Booker-McConnell)사가 주관하였기에 부커-맥코넬상이라고 부르다가 2002년부터는 금융기업인 맨그룹(Man group)이 5만 파운드의 상금을 내면서 후원을 시작하면서 맨-부커(Man-Booker)상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Wikipedia; Man Booker Prize; https://en.wikipedia.org/wiki/Man_Booker_Prize)


2011년 이 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http://blog.joins.com/yang412/12623266>를 읽고서 이 상의 무게를 알게 되었습니다.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사실로만 <루미너리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습니다. 엘리너 캐턴의 <루미너리스>가 맨-부커상의 역대 작품들 가운데 최연소 작가라는 점, 원작기준으로 800쪽에 달하는 가장 긴 작품이라는 기록을 세웠다는 점도 기억할만합니다. 특히 <루미너리스>는 데뷔작 <리허설>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천재성이 주목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엘리너 캐턴은 캐나다에서 출생하여 뉴질랜드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녀의 성장배경이 타스만해에 면한 뉴질랜드 남섬의 중간쯤에 있는 호키티카 지역을 중심무대로 하고, 골드러시가 한창이던 19세기 중반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게 했던 것 같습니다.(Wikipedia. West Coast Gold Rush; https://en.wikipedia.org/wiki/West_Coast_Gold_Rush) 뉴질랜드 골드러시의 중심지였던 오타고가 아닌 호키티카를 무대로 고른 것도 저자의 면밀함이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호키티카강의 어귀에 형성된 삼각주는 바다로 나가는 항로를 위협하는 요소로서 드나드는 배가 난파할 수 있는 의외의 상황을 설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황금을 둘러싼 인간의 탐욕을 점성술에 기반하여 설명합니다. 사실 점성술은 천문현상을 바탕으로 인간사를 설명하거나 예측하려는 기술입니다. 위키백과에서는 “점성술(占星術, astrology)은 인간 세계에서 천문학상의 현상과 사건이 관계가 있다고 믿는 신앙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서양에서 점성술은 태양과 달 그리고 다른 행성 객체들의 위치에 기반하여 개인의 성격을 설명하고 그들의 인생에서 미래의 사건을 예언한다고 주장되는 천궁도의 체계로 거의 대부분이 구성된다. 많은 문화가 천문학상의 사건에 중요성을 두고 있으며, 인도인과 중국인 그리고 마야인들은 천체 관찰로부터 지상의 사건을 예언하기 위한 정교한 체계들을 발전시켰다.”라고 설명합니다(위키백과, 점성술; https://ko.wikipedia.org/wiki/%EC%A0%90%EC%84%B1%EC%88%A0). 서양에서는 점성술을 ‘astrology’라고 해서 학문의 한 영역으로 격상시키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위키백과에서도 의사과학이라고 하지만, 회의주의자 마이클 셔머는 의사과학을 비과학 혹은 사이비과학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말 ‘점성술’이 적절한 용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양의 점성술은 개인의 출생시간에 해당하는 천궁도의 구성을 기반으로, 황도대에 있는, 양자리,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게자리, 사자자리, 처녀자리, 천칭자리, 전갈자리, 사수자리, 염소자리, 물병자리, 물고기자리 등 열 두 개의 별자리로 구분하여 개인별 특성을 부여하고, 태양,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일곱 개의 천체의 움직임으로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것입니다.(위키백과, 서양점성술; https://ko.wikipedia.org/wiki/%EC%84%9C%EC%96%91_%EC%A0%90%EC%84%B1%EC%88%A0) 저자가 <루미나리스>에 배치한 점성술적 요소를 살펴보면, 전체 이야기를 12개의 장으로 구분한 것이나 사건의 본질은 아니지만 사건이 전개되는데 기여하고, 사건으로 인하여 이해가 달라지는 12명의 등장인물을 별자리에 따라 배치한 것이 있습니다. 당연히 사건의 핵심이거나 사건해결을 주도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7명의 인물은 일곱 개의 천체에 해당하는데 사실 행성이라고 했지만, 태양을 행성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특이하게 사건의 중심에 있는 크로스비 웰스를 육지로 정하고 있는 점은 해석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떻든 점성술을 이야기를 설명하는 요소로 가져온 것은 신비감을 더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점성술에 대한 기본적인 앎이 부족한 저로서는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은 행성과 육지에 해당하는 8명의 등장인물들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핵심이며, 욕망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 별자리에 해당하는 12명은 핵심인물이 벌이는 사건에 끼어들어 사건을 변주하는 역할입니다. 물론 이들이 없었더라면 밋밋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번역된 책이 1권 528쪽, 2권 676쪽, 도합 1204쪽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를 아주 짧게 요약하면 프랜시스 카버와 리디아 그린웨이 그리고 크로스비 웰스 세 사람 사이에 엮인 삼각관계에 안나 웨더렐과 에머리 스테인스가 끼어들어 다각관계로 발전한 것입니다. 물론 여기 더하여 행성에 해당하는 나머지 인물과 별자리에 해당하는 12명의 등장인물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함으로서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건 전개의 핵심은 크로스비 웰스의 죽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이 자살 혹은 아편으로 인한 중독사 정도로 처리되고 오히려 그가 남긴 유산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경향으로 흐른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범죄와 관련된 법의학과 인연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사실 4부의 ‘팽가-와-와’라고 보았습니다. 안나 웨더렐과 에머리 스테인스가 리디아 그린웨이(크로스비 웰스의 부인이었다가 그의 사후에 프랜시스 카버와 재혼하게 됩니다.)-크로스비 웰스와 프랜시스 카버 사이에 황금 4천 파운드를 둘러싸고 벌인 음모와 관련하여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변호를 맡은 월터 무디에 의하여 무죄를 받게 되고, 의혹이 리디아와 카버로 튀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4부의 앞뒤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이 사건 범행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 상황설명의 백미는 1권의 전체에 해당하는 1부 ‘구 안의 구’입니다. 여기에서는 별자리에 해당하는 12명의 등장인물들이 크라운호텔 흡연실에 모였다가 우연하게 등장한 월터 무디에게 크로스비 웰스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에서 각자 알고 있는 정황과 역할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 이어지지만 크로스비-리디아-카버-스테인스-웨더렐 사이의 관계는 변죽을 울리는데 머물고 있어 사건의 정황을 꿰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만 이런 설정에서 제프리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크로스비의 죽음이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고 처리된 것처럼 교도소장 조지 셰퍼드가 모자장수 숙 용승을 살해한 것, 조지 셰퍼드의 형이 살해된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숙 용승이 무죄로 방면되었음에도 그 사건의 범인에 대한 후속조사가 언급되지 않은 점, 심지어 재판이 끝난 다음에 교도소로 향하던 프랜시스 카버가 누군가에 맞아 살해된 사건도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 등, 석연치 않은 점들이 적지 않습니다. 즉 <루미너리스>에 등장하는 4건의 변사사건을 저자는 가볍게 처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만 등장인물 특히 7명의 천체에 해당하는 사람들 사이에 얽힌 관계를 설명하는데 집중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점성술에 너무 몰입한 탓일까요? 점성술에 대한 저자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양자리는 집단적인 관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황소자리는 주관적인 태도를 단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쌍둥이자리의 규칙은 배타적이고, 게자리는 원인을 찾고, 사자자리는 목적을 추구하며, 처녀자리는 계획을 바란다.(2권 250쪽)” 그런데 저자는 별자리의 특성의 또 다른 의미를 제시합니다. “12궁의 두 번째 행동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천칭자리는 개념으로, 전갈자리는 재능으로, 궁수자리는 목소리로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염소자리에서 우리는 기억을 얻고, 물병자리에서는 통찰력을 얻는다. 그리고 12궁에서 가장 오래되고 마지막을 점하는 물고기자리에 와서야 일종의 자아를 얻어 완전해진다(2권 250쪽)” 그러니까 별자리는 삶의 궤적에 해당하는 것인가 봅니다.


별자리의 특성 뿐 아니라 행성의 움직임이 별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행성들은 움직이는 별들의 캔버스 속에서 위치를 바꾸었다. 태양은 기울어진 황도의 원을 따라 12분의 1만큼 전진했고, 이 움직임에 따라 전체적으로 새로운 세상의 규칙이, 새로운 시각이 나타나게 되었다.(2권 10쪽) <루미너리스>에서는 리디아가 점성술을 하는 것으로 등장합니다. 안나와 에머리의 관계를 예측하는 것에만 국한되기는 합니다만, 자신은 물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미래를 보았더라면 크로스비와 결혼을 미루고 카버를 기다려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결국 점성술을 하는 사람도 자신의 미래를 점칠 수 없다는 속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일은 <루미너리스>에 행성으로 등장하는 사람들도 나름의 별자리를 가지고 있을 터인데 행성의 역할을 부여한 것도 의문입니다.


<루미너리스>를 읽으면서 덤으로 챙기는 역사적 사실은 원주민 혹은 이주민에 대한 호주와 뉴질랜드 사람들의 시각입니다. 흔히 호주가 백호주의를 견지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주가 백호주의를 내세운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고 합니다. 1850년대 호주의 빅토리아주를 중심으로 한 골드러시가 일었을 때 많은 이민자가 몰려들었는데, 특히 중국계 이민자가 많아서 1881년에는 5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저임금의 중국인 노동자는 백인 노동자의 임금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1888년 중국계의 이민을 제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이를 더욱 강화하여 1896년에는 호주에서는 모든 유색인종을 배척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연방이 성립한 1901년에 통과된 이민제한법으로 정식 도입된 백호주의는 1975년 인종 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때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뉴질랜드의 경우는 호주처럼 법으로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원주민을 비롯한 유색인종을 비하하는 관념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루미너리스>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구 안의 구’를 읽기 시작하면서 월터 무디가 사건을 해결하는 핵심인물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즉,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애거서 크리스티의 에큘 포와르, 엘러리 퀸의 엘러리 퀸과 같은 캐릭터 말입니다, 하지만 ‘구 안의 구’에서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을 뿐이며, 재판과정에서 피고인 안나와 에머리의 변호인으로 등장하여 놀라운 반전을 이끌어내는 것을 보면서 관련 정보를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 작품은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단독 주연은 없고 여러 인물들이 일정한 역할을 맡는 구조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개별 등장인물의 성격이 드러날 수 있도록 구체적 묘사가 더해졌더라면 싶은데, 개별 인물이 행성에 해당하는 인물들의 행적을 증언하는 역할에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캐릭터가 모두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천체의 흐름에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점은 캐턴이 얼마나 많은 조사와 고민으로 완벽한 구조를 이루어냈는지 보여주며 감탄을 자아낸다.’라는 출판사의 요약을 보면, 책을 읽어가면서 무엇을 놓쳤나 되돌아보게 됩니다.


각설하고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기 때문에 책 읽는 이를 몰입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단원에 해당하는 12부에 등장하여 새로운 시작을 예감하는 두 남녀가 과연 누구인지도 의문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뒷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필자가 너무 구닥다리라서 최근 경향을 모르고 있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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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세상 - 나는 음식에서 삶을 배웠다, 환경부 선정 "2016 우수환경도서"
켈시 티머먼 지음, 문희경 옮김 / 부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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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불이를 외치던 것이 불과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네 밥상을 채우고 있는 음식의 식재료는 벌써 글로벌화가 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몇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음식에서 삶을 배웠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식탁 위의 세상>은 먹는 것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읽기였습니다. 미국인인 저자는 아무래도 우리네와는 즐겨 먹는 것이 다르기 때문인지, 커피, 초콜릿, 바나나, 바다가재, 사과주스 등의 원산지를 따지면서 미국산인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마침 커피는 이번에 다녀온 콜롬비아가 무대가 되고 있기도 하고, 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공정무역의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던 점에서 관심이 컸습니다. 콜롬비아를 떠나던 날 현지가이드는 공항에 있는 후안 발데스 커피숍에서 우리들에게 후안 발데스 커피를 한 잔씩 돌렸습니다. 이 후안 발데스 상표는 콜롬비아커피생산자협의회가 내세우고 있는데, “50만 명이 넘는 콜롬비아커피농부들이 뜻을 모아 전국커피기금을 조성하고 6천개가 넘는 학교를 지었습니다. 36만 명의 아이들이 산악지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25쪽)”라고 내세우는 것을 보면, 생산자의 수익을 보장하고 복지를 챙겨주는 공정무역의 대표적인 상표가 아닌가 싶습니다.


콜롬비아의 대표적인 커피생산지는 나리뇨인데, 나리뇨의 화산토에서 커피 농사를 지으면 커피나무에 특별한 성질이 더해져 품질이 향상되는 것으로 믿는다고 합니다. 콜롬비아의 경사가 급한 산비탈에 조성된 커피농장은 관리하는 것이 무서울 정도라고 합니다. 특히 반군들이 농장지역을 장악하고 있어 상당히 위태로운 면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코트디부아르, 부르키나파소, 가나 등 소위 아프리카의 황금해안 지역에서 생산하는 코코아의 경우는 콜롬비아 커피보다 생산 환경이 더 열악한 모양입니다. 특히 다국적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세계 식품 무역의 경우 다국적 기업의 횡포가 자심한 분야이기도 하며, 코코와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거의 노예수순이라고 폭로하고 있기도 합니다. 미국 시장에 공급되는 바나나는 주로 리카라콰에서 중앙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가 주요 생산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나나의 경우는 놀랍게도 1,200종이 넘는 품종이 있지만, 미국시장에 공급되는 품종은 캐번디시종인데, 비즈니스 모델로 굳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나나의 모든 유통체계가 캐번디시종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맛도 다소 떨어지고, 병충해에 취약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품종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다가재 역시 놀랍게도 니카라콰가 주 생산지라고 합니다. 문제는 잠수부들이 나서서 바다가재를 건져 올리는 체계로 되어 있어 잠수부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남획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니카라콰산 바다가재를 포획하는 과정을 설명하다가 몬토레이 수족관에서 주관하는 ‘수산물 감시 추천 가이드’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수산물을 먹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식품의 생산지를 직접 방문하여 확인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관련 업체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과주스는 생산하는 중국의 경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중국은 세계 제1위의 사과 생산국이라고 하는데, 맛에서도 우수한 품종이 재배되고 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사과의 경우는 소비자의 성향에 따라 각기 다른 품종을 키우는 경향이 있는 대표적인 작물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먹는 일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모두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잘못된 식습관을 정당화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잘라 말하였습니다. 바나나 한 개, 커피 한 잔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해야 하고, 특히 공정무역에 의한 생산물인지를 확인하는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공정무역의 핵심은 공급망의 투명성, 환경 및 사회 기준이 확립되어 있고, 모든 당사자들이 이익을 균등하게 가져가는 거래 관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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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마우리시오 라부페티 지음, 박채연 옮김 / 부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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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중남미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남미 국가에 관한 책을 읽게 된 것도 묘한 인연 같습니다. 남미국가들은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먼 지구 반대편에 있기 때문인지 지금까지는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브라질에서 월드컵대회가 열렸고, 금년에는 역시 브라질에서 올림픽경기가 열리는 등 다양한 이유로 남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소개하는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우루과이의 대통령을 지낸 호세 무히카의 독특한 삶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루과이라는 나라의 이름이 그리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특히 농업부문의 개방에 민감한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우루과이 라운드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 같습니다. 국제교역에서의 시장개방을 확대하고, 농산물 서비스와 지적재산권 분야에서의 새로운 세계교역질서를 마련하기 위하여 1986년 9월 우루과이의 푼타델에스테에서 시작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각료회담이 오랜 진통 끝에 1993년 12월 타결을 보게 되면서 일반적으로 ‘우루과이 라운드’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사이에 끼어 남대서양의 해안을 밑변으로 하는 삼각형 모양의 우루과이는 약 17만㎢(한반도의 0.798배)의 면적에 334만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로 수도는 대서양 해안에 있는 몬테비데오입니다. 저의 남미여행에서는 우루과이를 직접 방문하지는 못했고, 다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과수로 가면서 라플라타강 건너편이 우루과이라는 설명을 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도시 게릴라 활동의 경력을 가진 극단적인 행동주의자가 일국의 대통령을 지낼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우루과이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1536년 정복을 시작한 스페인 사람들은 파라과이의 아순시온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이 지역을 통치했을 뿐 우루과이 지역은 1680년 포르투갈 사람들이 정착할 때까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뒤 스페인 사람들이 포르투갈 사람들을 몰아내고 1726년에 몬테비데오를 세웠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우루과이는 독특한 위치에 있는데, 이 지역에는 원주민들이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유럽의 이주민들과 접촉이 거의 없었고, 19세기 중반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부터 이주해온 백인들로 우루과이는 인종적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백인국가가 된 것입니다.


파라과이가 181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부에노스아이레스와도 결별한 것과는 달리 우루과이는 1816년 포르투갈계인 브라질제국의 침입으로 합병되었고, 1828년까지 시스블라티네 지방으로 존재하다가 1830년에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완충국가로서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립후 우루과이는 까우디오(caudillo)라고 하는 정치 엘리트들이 블랑꼬스(Blancos, 보수주의, 백색당)와 꼴로라도스(Colorados, 자유주의, 홍색당)라는 전통적인 두 정당에 참여하여 공동참여와 타협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이끌어왔습니다.


20세기 초반 집권한 홍색당은 공익회사와 외국은행을 국유화하고, 연금법을 제정하였으며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등 진보적인 정책을 펼쳤으며, 수출과 수입대체를 통하여 꾸준한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까지 확장일로에 있던 수출과 극심한 보호무역에 기댄 산업화에 지나치게 의존하였던 것이 부메랑이 되어 수출이 부진해지면서 시작된 외환부족으로 국가의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난관에 봉착하게 되면서 20세기 중반 백색당이 집권에 성공하게 되지만, 이에 대한 반동으로 자본주의 체제 철폐를 내세운 뚜빠마로 민족해방운동이라는 도시 게릴라집단이 등장하게 됩니다. 중산층 직장인, 젊은 지식인, 학생들로 구성된 뚜빠마로는 폭력과 살인, 약탈을 저질렀으며 외국의 외교관을 납치하거나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군부 요인까지 살해하기에 이르면서 결국은 군부가 나서서 무장 게릴라들을 완벽하게 소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장게릴라와 무관한 사람들까지도 피해를 입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뚜빠마로의 극단적인 행동주의는 결국 군부독재를 불러와 1980년대 초반까지 군부가 정권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뚜빠마로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부패척결을 내세운 군부는 초기 경제상황이 호전되면서 민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80년대 들어 경제상황이 다시 악화되면서 민주주의로의 회귀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1984년 선거에서 홍색당의 훌리오 마리아 산귀네따가 대통령이 당선되어 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게 되었습니다(잰 니퍼스 블랙 편저, 라틴아메리카 문제와 전망 801-835, 이담출판사, 2012년; http://blog.joins.com/yang412/13813295)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가서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의 삶을 조명한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La Revolución Tranquila>라는 제목을 붙이기는 했습니다만, 그의 삶은 결코 조용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열네 살에 정치에 뛰어든 것도 범상치 않은데다가 젊은 시절 앞서 소개한 뚜빠마로의 지도자로 활동한 것이나,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몬테비데오 근교에 있는 농장주택에서 살고 있지만,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퇴임한 대통령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재임시절에 감추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이 불거졌거나, 무언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무히카 대통령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소탈하며 무소유의 삶을 주장하는 그의 철학이 세인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기에 언론은 그를 잊지 않고 챙기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세인들의 관심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그가 스타의식에 사로 잡혀 있거나 대통령직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남미국가의 경우는 선거에서 져 물러났던 대통령이 다시 권력을 잡는데 성공하는 사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을 쓴 마우리시오 라부페티는 우루과이의 기자이며 정치 칼럼니스트입니다. 다양한 해외매체와 무히카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무히카와 접촉할 기회가 많았던 것이 이 책을 쓰는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자는 무히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파악하여 부각시키고 있습니다만, 무히카의 삶의 궤적 가운데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 점까지도 잘 포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전기를 기록하는데 있어 객관적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저자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도시 게릴라 출신 무히카 대통령에 대한 용비어천가처럼 읽히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독자로 하여금 오히려 비판적 시각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부작용을 가지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저자는 무히카가 평화주의자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뚜빠마로스 경력이 지워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루과이의 도시게릴라운동이 저지른 잘못은 군부의 정치개입을 유발시킨 것이 가장 큰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활동과정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입니다. 게릴라요원을 고발한 사람이나, 정치적 표적을 제거하기 위한 살인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물론 투쟁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까지 살해한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민간인의 죽음에 대하여 ‘변명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결정된 일이었는지 나는 모르겠다’라면서 책임을 회피한 무히카의 변명은 한나라의 지도자감이라고 보기에는 도덕적이지 못하다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활동비를 확보하기 위하여 은행 등 있는 자들을 약탈한 것 역시 윤리적이지 못한 일입니다. 이와 같은 불법단체에서 지도자 역할을 한 사람이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가 정말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은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은 절대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될 일입니다. 만약에 뚜빠마로의 행적을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한다면 군부가 독재를 펴는 동안 저지른 잘못을 추궁할 논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결혼 허용이나 임신중절수술 그리고 마리화나의 재배유통을 합법화한 것을 대통령 재임 중 이룩한 특별한 성과라고 내세울만한 것인가 싶습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없는 것으로 충분한 일을 굳이 결혼까지 허용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것을 라틴아메리카지역의 고질적인 문제인 마약의 밀거래를 분쇄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처라고 칭송하는 것도 과연 옳은가 싶습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우리네 옛말처럼 합법화된 마리화나를 사용하여 얻은 일탈적인 쾌감을 맞본 사람들이 쾌감의 강도를 높이기 위하여 마약을 찾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던가, 시리아내전의 소용돌이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받아들이는 결정, 나아가 콜롬비아 게릴라와 정부 사이의 협상을 중계하겠다고 나서는 등의 국제정치에 나선 것은 2013년부터 노벨평화상의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시작된 두드러진 행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그 순수성이 의심된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실제로 저자 역시 무히카가 노벨평화상에 야망을 가지고 있음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성과 이외에 내정 운용에 있어서 무히카의 업적은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부정책은 민간부문이나 정부부문의 노동자들의 귀족적 행태로 인하여 개혁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좌파세력이 지배하고 있는 노동부문이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었지만, ‘좋지만 불확실한 변화보다는, 나쁘지만 잘 아는 현상유지가 더 낫다’는 해괴한 논리에 맞설 대책을 내놓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신중하지 못한 말로 벌어지는 구설수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무히카 전 대통령은 전형적인 포퓰리스트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퇴한 대통령 무히카가 즐기는 소탈한 삶이나 그가 주장해온 삶에 관한 철학은 분명 배울 점이 있습니다. 2013년 9월 유엔총회에서 무히카 대통령이 한 연설의 한 대목입니다. “우리는 비물질적인 오래된 신들을 희생시키고, ‘시장 신’을 사원에 모시고 있다. ‘시장 신’은 우리에게 경제, 정치, 습관, 삶을 설계해 주고, 할부금과 카드로 외적인 행복까지 융자해준다. 우리는 소비하고 또 소비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느끼고, 그렇게 못할 경우 좌절과 가난을 짊어지고 급기야 스스로를 소외시킨다.(51쪽)” 소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가 경계하는 소비주의는 소비자체 보다는 낭비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가난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필요한 것이 많아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으면 삶이 여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사실은 사회의 문제는 남의 삶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불어넣는 바람 때문에 사람들이 점점 더 갈증을 느끼게 되고, 사회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는 것 같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서도 땀 흘린 사람들이 쌓은 것들을 부러워하고 뺏을 궁리를 하는 것은 아닌가 돌아볼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무히카의 절제하고 자족하는 삶은 분명 배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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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
로버트 고든 지음, 유지연 옮김 / 펜타그램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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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외국여행이 일반화되었습니다. 해외여행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많다보니 여행관련 서적도 넘쳐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SNS에서도 만날 법한 신변잡기 수준의 값싼, 천편일률적인 감상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아서 금방 식상해지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소개하는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는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나 처음 나서는 사람 모두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류학(anthropology)이라는 분야는 인간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시간을 따라서 종으로는 인간 역사의 전시대를 통하고, 횡으로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에 관한 일체의 현상을 연구대상으로 합니다. 인류학은 다양한 영역으로 구분되고 있지만, 크게는 인간의 체질현상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체질인류학(體質人類學)과, 인간의 사회문화현상들을 인문·사회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으로 나눕니다.

 

9세기 중엽 서구에서 시작한 인류학은 서구중심의 비교해석이 중심을 이룬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역에 따른 다양한 인간현상들의 우열을 가리는 절대적인 기준은 있을 수 없고 상대적인 것으로 보는 상대적 관점이 확립되었습니다. 인류학의 기본이 되는 연구방법은 현지조사입니다. 연구대상이 되는 지역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관찰하고 질문하며 필요한 기록문서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행은 인류학 연구의 시발점이 되는 셈입니다.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을 쓴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은 미국 버몬트 대학교(The University of Vermont) 인류학과 교수이며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리 스테이트 대학교(The University of The Free State)의 연구원으로, 아프리카의 나미비아, 레소토,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리고 파푸아 뉴기니 등지의 현지 조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는 인류학적 연구를 위한 해외여행을 통하여 체득한 점들을 바탕으로 일반 사람들이 낯선 곳을 여행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였습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된 이 책의 제1부에서 저자는 메타여행적 특징들을 통하여 여행자들이 빠질 수 있는 잘못된 관점을 인류학적 시각으로 교정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고 합니다. 제2부는 현지인들과 유대 관계를 설정하고 구축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방법들을 정리하였는데, 해외여행에서 기억해야 할 실용적인 조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해외여행을 통하여 그곳 사람들의 관습과 문화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보다 생산적인 성과를 위한 계획을 짜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먼저 1부에 담긴 내용을 요약해보면, 1장에서는 인류학적 관점과 인류학자들이 현지조사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해외여행을 통하여 무언가를 배우려한다면 고려해볼 점들을 정리했습니다. 2장에서는 해외여행에 나서는 동기를 살펴보는데, 의외로 많은 해외여행자들에서 동기가 분명치 않다고 합니다. 2장이 자기성찰적 관점에서 해외여행을 보았다고 하면, 3장에서는 현지 사회가 여행객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살펴봅니다. 아마도 동상이몽일 가능성이 높은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4장에서는 해외여행에 대한 불안감과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법과 거주국에서는 볼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설명합니다. 5장에서는 여행안내서에 담긴 정보를 이해하는 방법과 실제 상황과의 차이도 설명합니다.

 

2부에서는 실용적인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6장에서는 여행 준비 목록을 짤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담았고, 7장에서는 여행에 꼭 가지고 가야 할 필수품이 무엇인지 소개합니다. 8장에서는 현지인과의 소통문제를 다룹니다. 현지인들과의 대화는 인류학 연구의 핵심이 되는 현지조사의 진수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런 활동을 둘러싼 쟁점들을 논합니다. 또한 돌아다니면서 어떻게 정보를 모으고 학습해야 하는지에 대하여도 이야기합니다. 9장에서는 여행객들이 간과하기 쉬운 안전과 건강문제입니다. 보통 여행안내서에서는 볼 수 없는 개인위생과 배변에 관한 이야기까지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10장에서는 글쓰기입니다. ‘왔노라! 보았노라! 느꼈노라!’에서 끝난다면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다녀온 해외여행이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퇴색될 것입니다. 여행의 완성은 글쓰기입니다. 해외여행을 통하여 얻은 지식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성찰함으로써 자신의 것으로 심화시키는데 글쓰기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좋은 이야기 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 저자의 몇 가지 조언은 특히 주목할만 합니다.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를 읽으면서 특히 눈길을 끌었던 점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저자는 ‘문화적 상대주의’ 개념이야말로 인류학이 성취한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합니다. 앞서 잠깐 언급하였습니다만, 서구중심으로 인류학이 태동할 무렵에는 서구중심적으로 다른 문화를 해석하는 경향으로 편견과 차별이 뚜렷했습니다. [북소리]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 슬픈 열대; http://blog.joins.com/yang412/13245374>

 

에서 레비-스토로스는 브라질 지역의 원주민과 조우한 서구사람들이 끊임없이 그 사회를 파괴하는 침략성을 보여 온 데 대하여 분노하고, 자신이 서구문명의 침입으로 인하여 파괴되고 사라져 버린 원주민 문명, 즉 ‘사라져버린 실체’를 탐구하고 있는 민족학자라는 역설적 직업을 가진 것에 대한 비통함을 토로하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해외여행에 나서는 이유는 대체적으로 다른 지역을 배우기 위하여, 혹은 자아발견을 위해서라고 합니다만, 여행동기가 분명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혹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새로운 상징을 수집하기 위한 키치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여행일수록 현지에서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현지인들에게 여행객은 보호막이 없는 먹잇감으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아프리카 잔지바르의 관광지의 분위기를 소개합니다. 이곳의 여행안내인 가운데 거머리라는 의미로 부르는 파파시(papasi)들은 ‘금방 떨어질 것 같은 잘 익은 과일’이라는 의미의 마도도(madodo)라고 부르는 젊은 여성 여행객을 목표로 접근하여 성관계를 맺어 궁극적으로는 아프리카를 탈출하는 기회로 삼으려한다는 것입니다.

 

변비에 관한 문제를 다룬 것처럼 해외여행에서의 저자의 관심대상은 거칠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해외여행에서의 성적 모험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만, 대체적으로 여행객과 현지인 사이의 관점의 차이가 존재할 수도 있으며, 그러한 모험을 시도하는 가운데 겪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하여도 적시하고 있습니다. 해외여행에서 즐긴 모험을 자랑하는 사람들의 후기에서는 자신이 당한 위험하고도 치욕스러운 부분을 읽어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여행기를 읽은 사람들은 그보다 더한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가 커다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좀 더 분별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은 절대적으로 기억해야 할 항목인 것입니다. ‘여행은 무모한 행동을 부추기는 것 같다’라고 전제한 저자는 ‘자기 나라 어디에서도 후미진 골목을 혼자 걷거나, 교회에 갈 때 노출이 심한 옷을 입거나, 모르는 사람 차에 선뜻 올라타지 않듯이 해외에서도 그런 짓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277쪽)’라고 경고합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참고하는 다양한 안내서에 관하여, 저자는 왜곡된 세계관이 넘쳐나고 있다고 잘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여행안내서는 정보제공, 홍보, 유인이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고는 하지만, 행선지의 이미지를 매력적이고 멋진 장소로 구축하고, 여행희망자에게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두 가지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결국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곳으로 여행을 떠날 마음이 생기도록 유혹합니다. 여행안내서는 그곳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보다는 화려한 볼거리와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대부분의ㅡ 여행자들은 여행안내서에 적힌 내용을 자신의 여행기에 복사하여 확산시키는 역할에 머무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행에 앞서 많은 것들을 꼼꼼하게 챙겨야 하겠지만, 저자는 건강문제를 제일 먼저 짚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한 달 이상 장기 체류하는 경우 떠나기 전에 건강 및 치과 검진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검진 결과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 검진은 가급적 출발 몇 주 전 아니면 몇 달 전에 받는 게 좋다.(164쪽)” 젊었을 적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던 항목입니다만, 얼마 전부터는 신경이 가장 많이 쓰이는 점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하다가 병원에 가야할 정도로 아프게 되면 자신의 여행을 망칠 뿐 아니라 일행에게도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해외여행은 분명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에 기획단계에서부터 일지를 쓰기 시작할 것을 권유합니다. 준비과정을 세세하게 적는 것은 물론 여행의 동기, 기대하는 바, 예상되는 두려움 등에 대하여도 적는다면 자신을 성찰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은퇴한 후에 세계를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블로그에 올려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모은 린 마틴 부부처럼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에 기여하고, 추종자들의 숭배를 받기도 합니다.(린 마틴 지음,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글담 펴냄, 2014년; http://blog.yes24.com/document/790618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블로그 혹은 웹로그의 형식으로 쓰는 개인기행문과 여행일기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인터넷에서 나타나고 있는 탈억제효과(외부 요인에 의하여 억제력을 잃는 현상)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 올린 글은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에게 공개됩니다. 글쓴이의 견해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지나친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2008년 광우병 파동에서 겪은 바 있습니다만, 도를 넘어서는 반응을 보인 익명의 독자들에게 별도의 대응을 하지 않은 저와는 달리 최근에는 고소고발과 같은 적극적 대응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우려하는 또 다른 점은 SNS에 올리는 글은 보통 깊이 생각하지 않고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특히 여행 중에는 사려 깊지 못한 표현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으로 끝났던 문건이 이제는 사이버세계에 영구히 남게 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는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일신상의 심각한 피해를 부르는 화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 글쓰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행경험을 글로 쓰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자기 과시와 출세를 위하여, 이해나 소통에 기여하고자, 혹은 단순한 즐거움을 위하여 등 다양한 이유로 글쓰기를 합니다. 여행경험을 글로 옮길 때는 읽는 이를 즐겁게 하고, 생각을 불러일으키도록 이야기를 풀어내야 합니다. ‘이야기를 구성해가는 일은 여기저기를 어수선하게 땜질하는 것과 같다(294쪽)’라고 저자는 말하면서, 머릿속에 있는 초안을 키보드로 바로 옮긴다는 생각은 버리라고 합니다. 저자 자신은 순서도를 만들어두면 이야기 조각들을 전체 맥락사이에서 연관성과 관계를 파악하는데 유용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순서도에 따라서 이야기들을 다시 매만져서 이야기의 논리가 유연하게 풀려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옮긴이는 특히 디지털 기기와 각종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즉각적 소통이 가능해진 SNS시대에 바람직한 여행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이 책의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해외여행에서뿐만 아니라 자기 삶의 모든 순강을 새로운 방식의 여행으로, 또 그런 여행을 창조적인 혁명적 순간으로 바꾸어 보기를 기대한다고 말합니

책이읽기,로버트 고던 지음,유한일 옮김, 폐던 류학자처럼 여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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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6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담은 아직은 한번도 써보지 않았네요. 도움이 되었습니다.

처음처럼 2016-02-23 01:27   좋아요 0 | URL
훗날 여행을 돌아보는데도 여행기는 많은 도움을 준답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구랍 28일 한일 양국의 오랜 현안이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협상이 타결되었습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책임을 질 일이 없다고 발뺌을 해왔던 것인데, 이날 일본의 기시다 외상은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밝혔으며,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라고 해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연합뉴스 2015년 12월 28일자 기사, “한일 ‘軍위안부 문제’ 최종타결…일본 ‘책임통감’(2보)”]

 

군위안부는 과거에 정신대(挺身隊)라고 불렀는데, 노동력을 착취당한 근로정신대와 성적 착취를 당한 종군위안부를 포괄하던 명칭입니다. 일제는 여성을 전쟁에 징용하기 위하여 ‘여자 근로동원 촉진에 관한 건’을 결정하고 ‘여자근로정신대’를 편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일합병 이후 조선의 여성을 일본으로 팔아넘겨 매춘행위를 시키는 일이 흔했다고 합니다. 1932년 상하이 사변(上海事變) 무렵 일본군이 민간여성을 강간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오카무라 야스지(岡村) 중장은 나가사키(長崎)의 지사에게 군대위안부 유치를 요청하였다고 합니다. 민간의 원성을 잠재울 뿐만 아니라 성병의 위험을 방지하는 효과를 노린 셈입니다. 나아가 일본군부는 유교적 윤리교육이 이어온 조선의 여성들에는 성병의 위험이 없을 것이라고 보아 미혼의 조선 여성이 종군위안부로 적절하다는 판단을 하였다고 합니다.

 

일본군이 개입하여 치밀하게 추진되었다는 증거로 인용되는 ‘제2차 특별요원 진출에 관한 조회(1942년 5월 발송)’에 따르면 29~35명의 병사 당 1명의 위안부를 두는 것으로 하고 지역별로 할당하여 동원토록 했다는 것입니다. 태평양전쟁기간 중 일본군은 미얀마, 트랙 섬, 필리핀, 테니안 섬, 마리아 군도, 수마트라, 셀레베스, 인도네시아, 오키나와(沖縄) 등지에서 위안소를 운영하였고, 동원된 정신대의 전체규모는 17만~2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조선 여성이 80% 정도를 차지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다음백과사전, ‘정신대’편 참조;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19j1238b)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먼저 짚어본 것은 2010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작품은 페루 육군이 운영하였던 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는 서문에서 “아마존 수비대원들의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하여 페루 군부가 조직했던 ‘특별봉사대’라는 소설의 이야기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5쪽)”라고 전제하고, “1958년과 1962년에 아마존 지역을 방문하면서 너무나 확장되고 왜곡된 나머지 잔혹하고 처참한 우스개 꼴이 되고 만 특별봉사대의 존재에 관해 알게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주 진지한 어조로 사건을 말하려다가 이 이야기가 익살과 농담과 웃음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1956년 8월 창설된 특별봉사대가 1958년 12월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으로 1959년 폐지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일본군이 군위안소를 운영하였다는 사실을 페루 군부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착상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본이 점령지의 여성을 강제로 동원하였던 것과는 달리 페루 군부가 직업여성을 활용한 시설을 운용한 것도 역시 일본에서 배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일본은 청일전쟁 때에도 일본여성으로 구성된 위안소를 설치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인 위안부는 선불을 받았으며 돈을 갚으면 그만 둘 수 있었다고 합니다.

 

페루 리마에 있는 육군병참사령부에서는 아마존 지역의 수비대가 저지르는 끔찍한 만행을 중단시키기 위한 특별대책을 수립하고 그 책임자로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를 이키토스에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판토하대위를 책임자로 선정한 것은 ‘천부적인 조직력, 정확하고 엄밀한 질서 의식, 행정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효율적이고 진정한 감화력으로 연대 행정을 이끌었다’라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야기의 전체를 통하여 판토하대위에 대한 이런 평가가 아주 정확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페루 육군의 고민을 해결할 적임자였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아마존 수비대가 일으키고 있는 문제는 주둔 지역의 민간 여성들을 겁탈하는 일이 잦다는 것입니다. 1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43명의 여성이 임신을 할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늠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던 모양입니다. 당연히 지역주민의 분노가 끓어올랐을 터이나 지역 군부대의 조처라는 것이 사건을 저지른 병사와 피해를 입은 여성을 강제로 결혼시키는 정도였던 것입니다. 물론 처벌도 하고 경고도 했다고는 하지만 그 수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사실 군부대를 운용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엄정한 군기를 유지하는 일입니다. 특히 지역민과 마찰을 빚는 일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군기를 엄정하게 하는데 있어 지위의 고하를 따지지 않은 사례로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를 들기도 합니다. 보리가 한참 자랄 무렵 허도로 출정하게 된 조조는 “농작물을 해치는 자가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목을 베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들의 행패로 백성들이 죽어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조조였고, 민심을 잃으면 전투에서 승리를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리밭을 따라 행군을 하던 중, 조조의 말이 갑자기 날아오른 꿩에 놀라 날뛰면서 밭으로 뛰어들어 보리를 밟았습니다. 바로 칼을 뽑은 조조는 “내 스스로 목을 베어 군령의 준엄함을 보이겠노라!”면서 자신의 목을 찌르려고 하였습니다. 곁에 있던 참모들이 놀란 가운데 곽가가 “춘추의 법은 귀인에게는 해당치 않는다”라며 설득하였고, 조조는 못이기는 체하면서 자신의 목 대신 상투를 장대에 걸었습니다. 이에 곽가는 “승상이 보리밭을 침범해 마땅히 참수해야 하지만 특별히 머리털을 자르는 것으로 대신하니 그대들은 더욱 조심하라!”라고 해서 병사들로 하여금 군령의 엄중함을 깨닫게 했다는 것이며, 백성들은 조조를 우러러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페루의 육군도 군기와 군령의 엄정함을 보였더라면 병사들이 일탈된 행동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성적 욕망을 해결해주기 위하여 ‘수비대와 국경 및 인근 초소를 위한 특별봉사대(줄여서 수국초특)’를 창설키로 했던 것입니다. 판토하대위는 군인신분을 감추고 마치 민간이 운영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창녀를 고용하여 아마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의 요청에 따라서 공급하기 시작합니다. 이키토스에는 이미 성매매를 업으로 삼는 업소나 개인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세탁부라는 이름의 여성들이 있었던 것을 보면 수국초특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밀림에 흩어져 있는 부대에 수국초특 대원들을 보내기 위해서는 수송수단이 필요했고, 해군에서는 병원선으로 사용되던 군함 파치테아를, 그리고 공군에서는 카탈리나 수상비행기 ‘레케나’호를 제공하여 수국초특에서 업무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하지만, 이름을 각각 ‘이브’와 ‘델릴라’로 바꾸어 배와 비행기가 군소속이라는 사실을 감추었습니다. 결국 수국초특은 페루 육군의 병참사령부가 창녀들을 모아 운영한 군위안부 조직이었던 것입니다.

 

1956년 8월 창설된 수국초특은 아마존 수비대의 열렬한 반응과 병사들이 민간 여성을 대상으로 일어나던 겁탈사건이 사라지면서 규모를 확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발단은 수국초특이 군부대만을 지원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오지의 일반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한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오지의 주민 몇 사람이 수국초특 소속의 여성을 태우고 수비대로 향하는 배를 납치하고 대원들을 겁탈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상황을 받고 출동한 군부대와 교전하는 과정에서 수국초특 소속의 여성 미스 브라질- 판토하대위의 아내가 남편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이키토스를 떠난 뒤에 연인관계로 발전하였던 것입니다-이 수비대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판토하대위는 휘하의 장병을 차출하여 미스 브라질의 장례식에서 의전을 갖추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도 그동안 감추었던 신분을 공개하여 육군 대위의 정복을 입고서 추도사를 낭독하였습니다. 결국 비밀리에 운영하던 수국초특이 군 조직임이 드러나면서 페루 군부가 곤경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비밀리라고는 하지만 외면적으로는 민간사업체가 군부와 독점적 사업을 해온 것으로 위장되어있던 수국초특이 사실은 군이 운영하던 시설이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판토하대위가 그와 같은 선택을 한 것은 수국초특이라는 조직이 결국은 군에 소속되어 있으므로 미스 브라질은 군인에 걸맞는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일종의 순국이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군 고위층은 기밀을 유지해야 할 사안을 나서서 공개한 판토하대위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대위에게 전역을 종용하지만, 뼈 속까지 군인인 판토하대위는 어떠한 처분을 받더라도 전역은 불가하다고 버티게 됩니다. 생각 같아서는 미스 브라질이 교전 중에 아군의 총탄에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만, 판토하대위는 군의 위상을 고려하여 이 또한 묻기로 한 것 같습니다. 결국 판토하대위는 한직이라고 할 수 있는 티티카카호 부근에 있는 포마타 수비대로 전출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됩니다. 판토하대위로서는 다행스러운 처분인 셈이고, 더욱 다행인 것은 기밀유지를 위하여 가족들에게까지 맡게 된 업무에 대하여 설명하지 않은 까닭에 헤어졌던 아내와 포마타 수비대에서 재회하게 된 것입니다.

 

판토하대위가 창설한 수국초특이 아마존 수비대의 뜨거운 호응을 받아가며 조직을 늘려 가는데, 이를 먹잇감으로 여기고 달려드는 군상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것은 한편으로는 역겨우면서도 이야기에 양념을 더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광대한 아마존지역의 특성에 따라 인기를 끌고 있는 라디오 아마존의 ‘신치의 소리’를 진행하는 헤르만 라우다노 로살레스입니다. 일명 신치라고 부르는 로살레스는 판토하대위를 찾아와 사업을 보호해주겠다는 명목으로 돈을 요구합니다. 첫 만남에서는 단칼에 거절했지만, 수국초특이 군부대의 지원을 받아가면서 매춘사업을 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방송이 나가면서 대위는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하고, 주머니를 털어 신치가 요구하는 돈을 제공합니다.

 

수국초특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판토하대위를 곤경에 빠트린 것은 외국인 프란치스코 형제가 설립한 ‘방주의 형제단’이라는 신흥종교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동물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흘린 피를 받아 몸에 바르는 행위로 신도들을 끌어 모으다가 나중에는 어린 아이를 그리고 어른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탈적인 행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죽은 이를 성자로 숭배하도록 이끄는 사이비 종교집단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라틴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천주교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토착신앙과 결합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은 지역적 특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읽으면서 저는 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금방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오랫동안 화제가 되면서도 이 작품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페루의 수국초특은 군이 개입하여 설치 운영하고는 있다고 하지만 성매매여성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기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았기 때문일까요?

 

이 작품의 독특한 구성은 다양한 장면들을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은 가운데 섞여 있는 점입니다. 장면의 전환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이야기의 맥락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겉다르고 속다른 페루 군부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군기문제를 엉뚱한 방향에서 해결해보겠다는 발상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나마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오랫동안 화제가 된 탓인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제 자신이 못마땅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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