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마우리시오 라부페티 지음, 박채연 옮김 / 부키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최근 중남미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남미 국가에 관한 책을 읽게 된 것도 묘한 인연 같습니다. 남미국가들은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먼 지구 반대편에 있기 때문인지 지금까지는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브라질에서 월드컵대회가 열렸고, 금년에는 역시 브라질에서 올림픽경기가 열리는 등 다양한 이유로 남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소개하는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우루과이의 대통령을 지낸 호세 무히카의 독특한 삶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루과이라는 나라의 이름이 그리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특히 농업부문의 개방에 민감한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우루과이 라운드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 같습니다. 국제교역에서의 시장개방을 확대하고, 농산물 서비스와 지적재산권 분야에서의 새로운 세계교역질서를 마련하기 위하여 1986년 9월 우루과이의 푼타델에스테에서 시작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각료회담이 오랜 진통 끝에 1993년 12월 타결을 보게 되면서 일반적으로 ‘우루과이 라운드’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사이에 끼어 남대서양의 해안을 밑변으로 하는 삼각형 모양의 우루과이는 약 17만㎢(한반도의 0.798배)의 면적에 334만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로 수도는 대서양 해안에 있는 몬테비데오입니다. 저의 남미여행에서는 우루과이를 직접 방문하지는 못했고, 다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과수로 가면서 라플라타강 건너편이 우루과이라는 설명을 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도시 게릴라 활동의 경력을 가진 극단적인 행동주의자가 일국의 대통령을 지낼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우루과이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1536년 정복을 시작한 스페인 사람들은 파라과이의 아순시온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이 지역을 통치했을 뿐 우루과이 지역은 1680년 포르투갈 사람들이 정착할 때까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뒤 스페인 사람들이 포르투갈 사람들을 몰아내고 1726년에 몬테비데오를 세웠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우루과이는 독특한 위치에 있는데, 이 지역에는 원주민들이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유럽의 이주민들과 접촉이 거의 없었고, 19세기 중반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부터 이주해온 백인들로 우루과이는 인종적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백인국가가 된 것입니다.


파라과이가 181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부에노스아이레스와도 결별한 것과는 달리 우루과이는 1816년 포르투갈계인 브라질제국의 침입으로 합병되었고, 1828년까지 시스블라티네 지방으로 존재하다가 1830년에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완충국가로서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립후 우루과이는 까우디오(caudillo)라고 하는 정치 엘리트들이 블랑꼬스(Blancos, 보수주의, 백색당)와 꼴로라도스(Colorados, 자유주의, 홍색당)라는 전통적인 두 정당에 참여하여 공동참여와 타협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이끌어왔습니다.


20세기 초반 집권한 홍색당은 공익회사와 외국은행을 국유화하고, 연금법을 제정하였으며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등 진보적인 정책을 펼쳤으며, 수출과 수입대체를 통하여 꾸준한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까지 확장일로에 있던 수출과 극심한 보호무역에 기댄 산업화에 지나치게 의존하였던 것이 부메랑이 되어 수출이 부진해지면서 시작된 외환부족으로 국가의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난관에 봉착하게 되면서 20세기 중반 백색당이 집권에 성공하게 되지만, 이에 대한 반동으로 자본주의 체제 철폐를 내세운 뚜빠마로 민족해방운동이라는 도시 게릴라집단이 등장하게 됩니다. 중산층 직장인, 젊은 지식인, 학생들로 구성된 뚜빠마로는 폭력과 살인, 약탈을 저질렀으며 외국의 외교관을 납치하거나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군부 요인까지 살해하기에 이르면서 결국은 군부가 나서서 무장 게릴라들을 완벽하게 소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장게릴라와 무관한 사람들까지도 피해를 입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뚜빠마로의 극단적인 행동주의는 결국 군부독재를 불러와 1980년대 초반까지 군부가 정권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뚜빠마로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부패척결을 내세운 군부는 초기 경제상황이 호전되면서 민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80년대 들어 경제상황이 다시 악화되면서 민주주의로의 회귀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1984년 선거에서 홍색당의 훌리오 마리아 산귀네따가 대통령이 당선되어 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게 되었습니다(잰 니퍼스 블랙 편저, 라틴아메리카 문제와 전망 801-835, 이담출판사, 2012년; http://blog.joins.com/yang412/13813295)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가서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의 삶을 조명한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La Revolución Tranquila>라는 제목을 붙이기는 했습니다만, 그의 삶은 결코 조용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열네 살에 정치에 뛰어든 것도 범상치 않은데다가 젊은 시절 앞서 소개한 뚜빠마로의 지도자로 활동한 것이나,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몬테비데오 근교에 있는 농장주택에서 살고 있지만,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퇴임한 대통령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재임시절에 감추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이 불거졌거나, 무언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무히카 대통령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소탈하며 무소유의 삶을 주장하는 그의 철학이 세인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기에 언론은 그를 잊지 않고 챙기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세인들의 관심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그가 스타의식에 사로 잡혀 있거나 대통령직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남미국가의 경우는 선거에서 져 물러났던 대통령이 다시 권력을 잡는데 성공하는 사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을 쓴 마우리시오 라부페티는 우루과이의 기자이며 정치 칼럼니스트입니다. 다양한 해외매체와 무히카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무히카와 접촉할 기회가 많았던 것이 이 책을 쓰는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자는 무히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파악하여 부각시키고 있습니다만, 무히카의 삶의 궤적 가운데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 점까지도 잘 포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전기를 기록하는데 있어 객관적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저자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도시 게릴라 출신 무히카 대통령에 대한 용비어천가처럼 읽히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독자로 하여금 오히려 비판적 시각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부작용을 가지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저자는 무히카가 평화주의자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뚜빠마로스 경력이 지워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루과이의 도시게릴라운동이 저지른 잘못은 군부의 정치개입을 유발시킨 것이 가장 큰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활동과정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입니다. 게릴라요원을 고발한 사람이나, 정치적 표적을 제거하기 위한 살인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물론 투쟁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까지 살해한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민간인의 죽음에 대하여 ‘변명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결정된 일이었는지 나는 모르겠다’라면서 책임을 회피한 무히카의 변명은 한나라의 지도자감이라고 보기에는 도덕적이지 못하다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활동비를 확보하기 위하여 은행 등 있는 자들을 약탈한 것 역시 윤리적이지 못한 일입니다. 이와 같은 불법단체에서 지도자 역할을 한 사람이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가 정말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은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은 절대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될 일입니다. 만약에 뚜빠마로의 행적을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한다면 군부가 독재를 펴는 동안 저지른 잘못을 추궁할 논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결혼 허용이나 임신중절수술 그리고 마리화나의 재배유통을 합법화한 것을 대통령 재임 중 이룩한 특별한 성과라고 내세울만한 것인가 싶습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없는 것으로 충분한 일을 굳이 결혼까지 허용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것을 라틴아메리카지역의 고질적인 문제인 마약의 밀거래를 분쇄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처라고 칭송하는 것도 과연 옳은가 싶습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우리네 옛말처럼 합법화된 마리화나를 사용하여 얻은 일탈적인 쾌감을 맞본 사람들이 쾌감의 강도를 높이기 위하여 마약을 찾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던가, 시리아내전의 소용돌이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받아들이는 결정, 나아가 콜롬비아 게릴라와 정부 사이의 협상을 중계하겠다고 나서는 등의 국제정치에 나선 것은 2013년부터 노벨평화상의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시작된 두드러진 행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그 순수성이 의심된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실제로 저자 역시 무히카가 노벨평화상에 야망을 가지고 있음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성과 이외에 내정 운용에 있어서 무히카의 업적은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부정책은 민간부문이나 정부부문의 노동자들의 귀족적 행태로 인하여 개혁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좌파세력이 지배하고 있는 노동부문이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었지만, ‘좋지만 불확실한 변화보다는, 나쁘지만 잘 아는 현상유지가 더 낫다’는 해괴한 논리에 맞설 대책을 내놓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신중하지 못한 말로 벌어지는 구설수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무히카 전 대통령은 전형적인 포퓰리스트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퇴한 대통령 무히카가 즐기는 소탈한 삶이나 그가 주장해온 삶에 관한 철학은 분명 배울 점이 있습니다. 2013년 9월 유엔총회에서 무히카 대통령이 한 연설의 한 대목입니다. “우리는 비물질적인 오래된 신들을 희생시키고, ‘시장 신’을 사원에 모시고 있다. ‘시장 신’은 우리에게 경제, 정치, 습관, 삶을 설계해 주고, 할부금과 카드로 외적인 행복까지 융자해준다. 우리는 소비하고 또 소비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느끼고, 그렇게 못할 경우 좌절과 가난을 짊어지고 급기야 스스로를 소외시킨다.(51쪽)” 소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가 경계하는 소비주의는 소비자체 보다는 낭비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가난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필요한 것이 많아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으면 삶이 여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사실은 사회의 문제는 남의 삶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불어넣는 바람 때문에 사람들이 점점 더 갈증을 느끼게 되고, 사회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는 것 같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서도 땀 흘린 사람들이 쌓은 것들을 부러워하고 뺏을 궁리를 하는 것은 아닌가 돌아볼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무히카의 절제하고 자족하는 삶은 분명 배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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