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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
로버트 고든 지음, 유지연 옮김 / 펜타그램 / 2014년 7월
평점 :
외국의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외국여행이 일반화되었습니다. 해외여행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많다보니 여행관련 서적도 넘쳐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SNS에서도 만날 법한 신변잡기 수준의 값싼, 천편일률적인 감상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아서 금방 식상해지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소개하는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는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나 처음 나서는 사람 모두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류학(anthropology)이라는 분야는 인간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시간을 따라서 종으로는 인간 역사의 전시대를 통하고, 횡으로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에 관한 일체의 현상을 연구대상으로 합니다. 인류학은 다양한 영역으로 구분되고 있지만, 크게는 인간의 체질현상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체질인류학(體質人類學)과, 인간의 사회문화현상들을 인문·사회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으로 나눕니다.
9세기 중엽 서구에서 시작한 인류학은 서구중심의 비교해석이 중심을 이룬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역에 따른 다양한 인간현상들의 우열을 가리는 절대적인 기준은 있을 수 없고 상대적인 것으로 보는 상대적 관점이 확립되었습니다. 인류학의 기본이 되는 연구방법은 현지조사입니다. 연구대상이 되는 지역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관찰하고 질문하며 필요한 기록문서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행은 인류학 연구의 시발점이 되는 셈입니다.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을 쓴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은 미국 버몬트 대학교(The University of Vermont) 인류학과 교수이며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리 스테이트 대학교(The University of The Free State)의 연구원으로, 아프리카의 나미비아, 레소토,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리고 파푸아 뉴기니 등지의 현지 조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는 인류학적 연구를 위한 해외여행을 통하여 체득한 점들을 바탕으로 일반 사람들이 낯선 곳을 여행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였습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된 이 책의 제1부에서 저자는 메타여행적 특징들을 통하여 여행자들이 빠질 수 있는 잘못된 관점을 인류학적 시각으로 교정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고 합니다. 제2부는 현지인들과 유대 관계를 설정하고 구축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방법들을 정리하였는데, 해외여행에서 기억해야 할 실용적인 조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해외여행을 통하여 그곳 사람들의 관습과 문화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보다 생산적인 성과를 위한 계획을 짜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먼저 1부에 담긴 내용을 요약해보면, 1장에서는 인류학적 관점과 인류학자들이 현지조사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해외여행을 통하여 무언가를 배우려한다면 고려해볼 점들을 정리했습니다. 2장에서는 해외여행에 나서는 동기를 살펴보는데, 의외로 많은 해외여행자들에서 동기가 분명치 않다고 합니다. 2장이 자기성찰적 관점에서 해외여행을 보았다고 하면, 3장에서는 현지 사회가 여행객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살펴봅니다. 아마도 동상이몽일 가능성이 높은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4장에서는 해외여행에 대한 불안감과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법과 거주국에서는 볼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설명합니다. 5장에서는 여행안내서에 담긴 정보를 이해하는 방법과 실제 상황과의 차이도 설명합니다.
2부에서는 실용적인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6장에서는 여행 준비 목록을 짤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담았고, 7장에서는 여행에 꼭 가지고 가야 할 필수품이 무엇인지 소개합니다. 8장에서는 현지인과의 소통문제를 다룹니다. 현지인들과의 대화는 인류학 연구의 핵심이 되는 현지조사의 진수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런 활동을 둘러싼 쟁점들을 논합니다. 또한 돌아다니면서 어떻게 정보를 모으고 학습해야 하는지에 대하여도 이야기합니다. 9장에서는 여행객들이 간과하기 쉬운 안전과 건강문제입니다. 보통 여행안내서에서는 볼 수 없는 개인위생과 배변에 관한 이야기까지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10장에서는 글쓰기입니다. ‘왔노라! 보았노라! 느꼈노라!’에서 끝난다면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다녀온 해외여행이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퇴색될 것입니다. 여행의 완성은 글쓰기입니다. 해외여행을 통하여 얻은 지식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성찰함으로써 자신의 것으로 심화시키는데 글쓰기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좋은 이야기 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 저자의 몇 가지 조언은 특히 주목할만 합니다.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를 읽으면서 특히 눈길을 끌었던 점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저자는 ‘문화적 상대주의’ 개념이야말로 인류학이 성취한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합니다. 앞서 잠깐 언급하였습니다만, 서구중심으로 인류학이 태동할 무렵에는 서구중심적으로 다른 문화를 해석하는 경향으로 편견과 차별이 뚜렷했습니다. [북소리]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
슬픈 열대; http://blog.joins.com/yang412/13245374>
에서 레비-스토로스는 브라질 지역의 원주민과 조우한 서구사람들이 끊임없이 그 사회를 파괴하는 침략성을 보여 온 데 대하여 분노하고, 자신이 서구문명의 침입으로 인하여 파괴되고 사라져 버린 원주민 문명, 즉 ‘사라져버린 실체’를 탐구하고 있는 민족학자라는 역설적 직업을 가진 것에 대한 비통함을 토로하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해외여행에 나서는 이유는 대체적으로 다른 지역을 배우기 위하여, 혹은 자아발견을 위해서라고 합니다만, 여행동기가 분명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혹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새로운 상징을 수집하기 위한 키치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여행일수록 현지에서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현지인들에게 여행객은 보호막이 없는 먹잇감으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아프리카 잔지바르의 관광지의 분위기를 소개합니다. 이곳의 여행안내인 가운데 거머리라는 의미로 부르는 파파시(papasi)들은 ‘금방 떨어질 것 같은 잘 익은 과일’이라는 의미의 마도도(madodo)라고 부르는 젊은 여성 여행객을 목표로 접근하여 성관계를 맺어 궁극적으로는 아프리카를 탈출하는 기회로 삼으려한다는 것입니다.
변비에 관한 문제를 다룬 것처럼 해외여행에서의 저자의 관심대상은 거칠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해외여행에서의 성적 모험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만, 대체적으로 여행객과 현지인 사이의 관점의 차이가 존재할 수도 있으며, 그러한 모험을 시도하는 가운데 겪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하여도 적시하고 있습니다. 해외여행에서 즐긴 모험을 자랑하는 사람들의 후기에서는 자신이 당한 위험하고도 치욕스러운 부분을 읽어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여행기를 읽은 사람들은 그보다 더한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가 커다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좀 더 분별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은 절대적으로 기억해야 할 항목인 것입니다. ‘여행은 무모한 행동을 부추기는 것 같다’라고 전제한 저자는 ‘자기 나라 어디에서도 후미진 골목을 혼자 걷거나, 교회에 갈 때 노출이 심한 옷을 입거나, 모르는 사람 차에 선뜻 올라타지 않듯이 해외에서도 그런 짓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277쪽)’라고 경고합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참고하는 다양한 안내서에 관하여, 저자는 왜곡된 세계관이 넘쳐나고 있다고 잘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여행안내서는 정보제공, 홍보, 유인이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고는 하지만, 행선지의 이미지를 매력적이고 멋진 장소로 구축하고, 여행희망자에게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두 가지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결국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곳으로 여행을 떠날 마음이 생기도록 유혹합니다. 여행안내서는 그곳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보다는 화려한 볼거리와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대부분의ㅡ 여행자들은 여행안내서에 적힌 내용을 자신의 여행기에 복사하여 확산시키는 역할에 머무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행에 앞서 많은 것들을 꼼꼼하게 챙겨야 하겠지만, 저자는 건강문제를 제일 먼저 짚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한 달 이상 장기 체류하는 경우 떠나기 전에 건강 및 치과 검진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검진 결과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 검진은 가급적 출발 몇 주 전 아니면 몇 달 전에 받는 게 좋다.(164쪽)” 젊었을 적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던 항목입니다만, 얼마 전부터는 신경이 가장 많이 쓰이는 점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하다가 병원에 가야할 정도로 아프게 되면 자신의 여행을 망칠 뿐 아니라 일행에게도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해외여행은 분명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에 기획단계에서부터 일지를 쓰기 시작할 것을 권유합니다. 준비과정을 세세하게 적는 것은 물론 여행의 동기, 기대하는 바, 예상되는 두려움 등에 대하여도 적는다면 자신을 성찰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은퇴한 후에 세계를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블로그에 올려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모은 린 마틴 부부처럼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에 기여하고, 추종자들의 숭배를 받기도 합니다.(린 마틴 지음,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글담 펴냄, 2014년; http://blog.yes24.com/document/790618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블로그 혹은 웹로그의 형식으로 쓰는 개인기행문과 여행일기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인터넷에서 나타나고 있는 탈억제효과(외부 요인에 의하여 억제력을 잃는 현상)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 올린 글은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에게 공개됩니다. 글쓴이의 견해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지나친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2008년 광우병 파동에서 겪은 바 있습니다만, 도를 넘어서는 반응을 보인 익명의 독자들에게 별도의 대응을 하지 않은 저와는 달리 최근에는 고소고발과 같은 적극적 대응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우려하는 또 다른 점은 SNS에 올리는 글은 보통 깊이 생각하지 않고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특히 여행 중에는 사려 깊지 못한 표현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으로 끝났던 문건이 이제는 사이버세계에 영구히 남게 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는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일신상의 심각한 피해를 부르는 화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 글쓰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행경험을 글로 쓰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자기 과시와 출세를 위하여, 이해나 소통에 기여하고자, 혹은 단순한 즐거움을 위하여 등 다양한 이유로 글쓰기를 합니다. 여행경험을 글로 옮길 때는 읽는 이를 즐겁게 하고, 생각을 불러일으키도록 이야기를 풀어내야 합니다. ‘이야기를 구성해가는 일은 여기저기를 어수선하게 땜질하는 것과 같다(294쪽)’라고 저자는 말하면서, 머릿속에 있는 초안을 키보드로 바로 옮긴다는 생각은 버리라고 합니다. 저자 자신은 순서도를 만들어두면 이야기 조각들을 전체 맥락사이에서 연관성과 관계를 파악하는데 유용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순서도에 따라서 이야기들을 다시 매만져서 이야기의 논리가 유연하게 풀려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옮긴이는 특히 디지털 기기와 각종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즉각적 소통이 가능해진 SNS시대에 바람직한 여행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이 책의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해외여행에서뿐만 아니라 자기 삶의 모든 순강을 새로운 방식의 여행으로, 또 그런 여행을 창조적인 혁명적 순간으로 바꾸어 보기를 기대한다고 말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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