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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리스 1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평점 :
오랜만에 [북소리]에서 소설을 소개합니다. 2013년 맨 부커상을 수상한 엘리너 캐턴(Eleanor Catton)의 <루미너리스(The Luminaries)>입니다. 맨부커상은 영국과 영연방 작가들이 발표한 작품 가운데 한 해의 최고 소설을 가리는 영국의 문학상입니다. 출판과 독서증진을 위한 독립기금인 북 트러스트(Book Trust)의 후원으로 1968년 시작한 이 상은 부커-맥코넬(Booker-McConnell)사가 주관하였기에 부커-맥코넬상이라고 부르다가 2002년부터는 금융기업인 맨그룹(Man group)이 5만 파운드의 상금을 내면서 후원을 시작하면서 맨-부커(Man-Booker)상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Wikipedia; Man Booker Prize; https://en.wikipedia.org/wiki/Man_Booker_Prize)
2011년 이 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http://blog.joins.com/yang412/12623266>를 읽고서 이 상의 무게를 알게 되었습니다.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사실로만 <루미너리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습니다. 엘리너 캐턴의 <루미너리스>가 맨-부커상의 역대 작품들 가운데 최연소 작가라는 점, 원작기준으로 800쪽에 달하는 가장 긴 작품이라는 기록을 세웠다는 점도 기억할만합니다. 특히 <루미너리스>는 데뷔작 <리허설>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천재성이 주목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엘리너 캐턴은 캐나다에서 출생하여 뉴질랜드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녀의 성장배경이 타스만해에 면한 뉴질랜드 남섬의 중간쯤에 있는 호키티카 지역을 중심무대로 하고, 골드러시가 한창이던 19세기 중반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게 했던 것 같습니다.(Wikipedia. West Coast Gold Rush; https://en.wikipedia.org/wiki/West_Coast_Gold_Rush) 뉴질랜드 골드러시의 중심지였던 오타고가 아닌 호키티카를 무대로 고른 것도 저자의 면밀함이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호키티카강의 어귀에 형성된 삼각주는 바다로 나가는 항로를 위협하는 요소로서 드나드는 배가 난파할 수 있는 의외의 상황을 설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황금을 둘러싼 인간의 탐욕을 점성술에 기반하여 설명합니다. 사실 점성술은 천문현상을 바탕으로 인간사를 설명하거나 예측하려는 기술입니다. 위키백과에서는 “점성술(占星術, astrology)은 인간 세계에서 천문학상의 현상과 사건이 관계가 있다고 믿는 신앙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서양에서 점성술은 태양과 달 그리고 다른 행성 객체들의 위치에 기반하여 개인의 성격을 설명하고 그들의 인생에서 미래의 사건을 예언한다고 주장되는 천궁도의 체계로 거의 대부분이 구성된다. 많은 문화가 천문학상의 사건에 중요성을 두고 있으며, 인도인과 중국인 그리고 마야인들은 천체 관찰로부터 지상의 사건을 예언하기 위한 정교한 체계들을 발전시켰다.”라고 설명합니다(위키백과, 점성술; https://ko.wikipedia.org/wiki/%EC%A0%90%EC%84%B1%EC%88%A0). 서양에서는 점성술을 ‘astrology’라고 해서 학문의 한 영역으로 격상시키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위키백과에서도 의사과학이라고 하지만, 회의주의자 마이클 셔머는 의사과학을 비과학 혹은 사이비과학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말 ‘점성술’이 적절한 용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양의 점성술은 개인의 출생시간에 해당하는 천궁도의 구성을 기반으로, 황도대에 있는, 양자리,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게자리, 사자자리, 처녀자리, 천칭자리, 전갈자리, 사수자리, 염소자리, 물병자리, 물고기자리 등 열 두 개의 별자리로 구분하여 개인별 특성을 부여하고, 태양,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일곱 개의 천체의 움직임으로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것입니다.(위키백과, 서양점성술; https://ko.wikipedia.org/wiki/%EC%84%9C%EC%96%91_%EC%A0%90%EC%84%B1%EC%88%A0) 저자가 <루미나리스>에 배치한 점성술적 요소를 살펴보면, 전체 이야기를 12개의 장으로 구분한 것이나 사건의 본질은 아니지만 사건이 전개되는데 기여하고, 사건으로 인하여 이해가 달라지는 12명의 등장인물을 별자리에 따라 배치한 것이 있습니다. 당연히 사건의 핵심이거나 사건해결을 주도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7명의 인물은 일곱 개의 천체에 해당하는데 사실 행성이라고 했지만, 태양을 행성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특이하게 사건의 중심에 있는 크로스비 웰스를 육지로 정하고 있는 점은 해석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떻든 점성술을 이야기를 설명하는 요소로 가져온 것은 신비감을 더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점성술에 대한 기본적인 앎이 부족한 저로서는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은 행성과 육지에 해당하는 8명의 등장인물들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핵심이며, 욕망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 별자리에 해당하는 12명은 핵심인물이 벌이는 사건에 끼어들어 사건을 변주하는 역할입니다. 물론 이들이 없었더라면 밋밋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번역된 책이 1권 528쪽, 2권 676쪽, 도합 1204쪽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를 아주 짧게 요약하면 프랜시스 카버와 리디아 그린웨이 그리고 크로스비 웰스 세 사람 사이에 엮인 삼각관계에 안나 웨더렐과 에머리 스테인스가 끼어들어 다각관계로 발전한 것입니다. 물론 여기 더하여 행성에 해당하는 나머지 인물과 별자리에 해당하는 12명의 등장인물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함으로서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건 전개의 핵심은 크로스비 웰스의 죽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이 자살 혹은 아편으로 인한 중독사 정도로 처리되고 오히려 그가 남긴 유산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경향으로 흐른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범죄와 관련된 법의학과 인연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사실 4부의 ‘팽가-와-와’라고 보았습니다. 안나 웨더렐과 에머리 스테인스가 리디아 그린웨이(크로스비 웰스의 부인이었다가 그의 사후에 프랜시스 카버와 재혼하게 됩니다.)-크로스비 웰스와 프랜시스 카버 사이에 황금 4천 파운드를 둘러싸고 벌인 음모와 관련하여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변호를 맡은 월터 무디에 의하여 무죄를 받게 되고, 의혹이 리디아와 카버로 튀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4부의 앞뒤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이 사건 범행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 상황설명의 백미는 1권의 전체에 해당하는 1부 ‘구 안의 구’입니다. 여기에서는 별자리에 해당하는 12명의 등장인물들이 크라운호텔 흡연실에 모였다가 우연하게 등장한 월터 무디에게 크로스비 웰스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에서 각자 알고 있는 정황과 역할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 이어지지만 크로스비-리디아-카버-스테인스-웨더렐 사이의 관계는 변죽을 울리는데 머물고 있어 사건의 정황을 꿰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만 이런 설정에서 제프리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크로스비의 죽음이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고 처리된 것처럼 교도소장 조지 셰퍼드가 모자장수 숙 용승을 살해한 것, 조지 셰퍼드의 형이 살해된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숙 용승이 무죄로 방면되었음에도 그 사건의 범인에 대한 후속조사가 언급되지 않은 점, 심지어 재판이 끝난 다음에 교도소로 향하던 프랜시스 카버가 누군가에 맞아 살해된 사건도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 등, 석연치 않은 점들이 적지 않습니다. 즉 <루미너리스>에 등장하는 4건의 변사사건을 저자는 가볍게 처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만 등장인물 특히 7명의 천체에 해당하는 사람들 사이에 얽힌 관계를 설명하는데 집중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점성술에 너무 몰입한 탓일까요? 점성술에 대한 저자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양자리는 집단적인 관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황소자리는 주관적인 태도를 단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쌍둥이자리의 규칙은 배타적이고, 게자리는 원인을 찾고, 사자자리는 목적을 추구하며, 처녀자리는 계획을 바란다.(2권 250쪽)” 그런데 저자는 별자리의 특성의 또 다른 의미를 제시합니다. “12궁의 두 번째 행동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천칭자리는 개념으로, 전갈자리는 재능으로, 궁수자리는 목소리로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염소자리에서 우리는 기억을 얻고, 물병자리에서는 통찰력을 얻는다. 그리고 12궁에서 가장 오래되고 마지막을 점하는 물고기자리에 와서야 일종의 자아를 얻어 완전해진다(2권 250쪽)” 그러니까 별자리는 삶의 궤적에 해당하는 것인가 봅니다.
별자리의 특성 뿐 아니라 행성의 움직임이 별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행성들은 움직이는 별들의 캔버스 속에서 위치를 바꾸었다. 태양은 기울어진 황도의 원을 따라 12분의 1만큼 전진했고, 이 움직임에 따라 전체적으로 새로운 세상의 규칙이, 새로운 시각이 나타나게 되었다.(2권 10쪽) <루미너리스>에서는 리디아가 점성술을 하는 것으로 등장합니다. 안나와 에머리의 관계를 예측하는 것에만 국한되기는 합니다만, 자신은 물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미래를 보았더라면 크로스비와 결혼을 미루고 카버를 기다려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결국 점성술을 하는 사람도 자신의 미래를 점칠 수 없다는 속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일은 <루미너리스>에 행성으로 등장하는 사람들도 나름의 별자리를 가지고 있을 터인데 행성의 역할을 부여한 것도 의문입니다.
<루미너리스>를 읽으면서 덤으로 챙기는 역사적 사실은 원주민 혹은 이주민에 대한 호주와 뉴질랜드 사람들의 시각입니다. 흔히 호주가 백호주의를 견지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주가 백호주의를 내세운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고 합니다. 1850년대 호주의 빅토리아주를 중심으로 한 골드러시가 일었을 때 많은 이민자가 몰려들었는데, 특히 중국계 이민자가 많아서 1881년에는 5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저임금의 중국인 노동자는 백인 노동자의 임금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1888년 중국계의 이민을 제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이를 더욱 강화하여 1896년에는 호주에서는 모든 유색인종을 배척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연방이 성립한 1901년에 통과된 이민제한법으로 정식 도입된 백호주의는 1975년 인종 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때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뉴질랜드의 경우는 호주처럼 법으로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원주민을 비롯한 유색인종을 비하하는 관념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루미너리스>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구 안의 구’를 읽기 시작하면서 월터 무디가 사건을 해결하는 핵심인물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즉,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애거서 크리스티의 에큘 포와르, 엘러리 퀸의 엘러리 퀸과 같은 캐릭터 말입니다, 하지만 ‘구 안의 구’에서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을 뿐이며, 재판과정에서 피고인 안나와 에머리의 변호인으로 등장하여 놀라운 반전을 이끌어내는 것을 보면서 관련 정보를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 작품은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단독 주연은 없고 여러 인물들이 일정한 역할을 맡는 구조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개별 등장인물의 성격이 드러날 수 있도록 구체적 묘사가 더해졌더라면 싶은데, 개별 인물이 행성에 해당하는 인물들의 행적을 증언하는 역할에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캐릭터가 모두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천체의 흐름에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점은 캐턴이 얼마나 많은 조사와 고민으로 완벽한 구조를 이루어냈는지 보여주며 감탄을 자아낸다.’라는 출판사의 요약을 보면, 책을 읽어가면서 무엇을 놓쳤나 되돌아보게 됩니다.
각설하고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기 때문에 책 읽는 이를 몰입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단원에 해당하는 12부에 등장하여 새로운 시작을 예감하는 두 남녀가 과연 누구인지도 의문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뒷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필자가 너무 구닥다리라서 최근 경향을 모르고 있는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