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바라본 아르헨티나 - 루이사 발렌수엘라 중단편선
루이사 발렌수엘라 지음, 조혜진 외 옮김 / 소명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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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여성작가 루이사 발렌수엘라의 중·단편소설 모음집입니다. 1938년에 태어났으니까, ‘추악한 전쟁(Dirty War:1976~1983)’이라고 일컬어지는 군부 독재정권과 그 전후의 아르헨티나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작품에 녹아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추악한 전쟁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고 불법적이고 잔인하게 반대파와 좌파를 탄압하던 시기를 말합니다. 집권초기 위기상황의 재정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였지만, 임금동결과 금융규제철폐로 외채가 늘어나는 듯 사회가 불안정하게 되면서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던 것입니다. 추악한 전쟁기간 중에 수천명의 행방불명자가 생겼고, 지금도 5월의 광장에는 희생자들을 찾는 어머니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하여 공포에 찌든 아르헨티나의 사회상, 특히 독재정권 치하에서 여성에게 가해졌던 폭력의 실상을 충격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침대에서 바라본 아르헨티나>에는 ‘여기에서는 희한한 일이 일어난다’, ‘무기의 변화’, ‘대칭’, ‘침대에서 본 국가현실’ 등 네 편의 중단편 소설과 두편의 에세이 ‘인류학과 페미니즘 문학’, ‘반역하는 말’을 싣고 있습니다. 군부독재시절 아르헨티나의 사회상이 얼마나 끔찍했는가하는 것을 작품마다 독특하게 그리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희한한 일이 일어난다’에서는 누군가가 잃어버린 분실물을 습득한 시민들이 이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횡액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냥 경찰서에 신고하면 될 것 같은데, 공연한 오해를 사지 않을까 겁낼 정도로 무서운 세상이었던 모양입니다.


‘무기의 변화’에서 로케대령은 라우라라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성을 성적노리개로 삼는데, 알고 보니 자신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여성을 감옥에서 빼내 성적으로 학대함으로써 복수를 하였던 것으로, 군부에 의하여 저질러졌던 고문과 실종자에 관한 문제에 더하여 여성에 대한 성적폭력의 실상을 그렸습니다. 사실을 읽으면서도 불편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상황묘사가 적나라하였습니다. ‘대칭’은 1947년과 1977년이라는 두 시점을 배경으로 하여 두 씽의 남녀관계를 비교하면서, 세월이 흘러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는 것은 적당이 덮어주는 관행 탓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침대에서 본 국가현실’은 마치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오랜만에 귀국한 여주인공은 컨트리클럽에 있는 친구의 방갈로를 빌어 쉬게 되는데, 그녀가 쉬는 방갈로에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몇 가지 상황이 묘하게 겹치면서 혼란스럽게 됩니다. 군부의 탄압으로 몰락한 기층민들은 침대 밑에 숨어서 여주인공의 물건을 훔쳐가고, 창문 밖으로부터는 훈련 중인 군인들이 들어오고, 시중을 드는 마리아를 통하여 시간 단위로 환율이 치솟는 불안정한 경제상황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안정적이어야 할 의사는 택시를 운전해서 수입을 보전하는 이중생활을 하고, 동시에 성적으로 여주인공과 엮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현실에는 여러 층위가 겹쳐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하지않고, 군부대나 빈민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한 여자가 은신처를 떠나 머나먼 컨트리클럽으로 갔다.(92쪽)’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저자는 추악한 전쟁이 끝나고서 귀국을 했기 때문에 저자의 자전적인 기록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외국에 체류하면서 전해들었던 조국의 끔찍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기록하였다고 보이는데, 옮긴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오랜 망명생활을 청산한 후 본국으로 돌아와서 느끼는 갈등과 부적응을 그린 자전적 성격의 이 소설에서 발렌수엘라는 권력이 폭력을 직접적인 형태로 행사할 때보다 미디어를 통해 거대 담론을 유포하는 간접적이고도 은근한 방식을 취할 때 정점을 이룬다는 사실을 지적한다.(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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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보장 - 5천만 결정장애 국민들의 속 시원한 고민 해결 상담소
송은이.김숙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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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김숙씨와 송은희씨가 잘 나가시나 봅니다. 하는 일마다 대박을 내시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팟캐스트라는 것이 어떻게 하는지는 대충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만, 찾아서 듣거나 사연을 보내는 분들이 많은가 봅니다. 그렇게 시작한 팟캐스트가 인기몰이를 하자 공중파까지 진출하시고, 단행본까지 내셨다니 정말 대단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두 분이 진행하시는 팟캐스트의 내용은 친구에게도 물어보지 못할 비밀을 들어주고, 그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해서 이름이 <비밀보장>이라 하셨다는데, 이래도 되는 것인지 먼저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라서 지켜줘야 할 일이라면 방송을 하면 안될 것 같고, 책으로까지 내는 것은 더욱 안될 말이 아닐까요? 이제는 공중파에서 전국방방곡곡을 넘어 세계로, 우주로(까지는 지나쳤나요) 소문낼 일이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책으로 나온 <비밀보장>에는 그동안 방송된 사연 가운데 고르고 고른 74개의 고민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주제는 별거 아닌 별거 같은 고민, 연애, 결혼, 금전, 취준 및 신입사원들 고민, 법률상담 등입니다. 그런데 읽고 보니 여기 나온 사연들은 언젠가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일상적이고, 고민이랄 것도 없는 고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이 진행하는 팟캐스트가 청취자의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아마도 두 분이 걸쭉한 입담과 두 분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화연결로 초대하는 전문가(?)의 깊이 있는 조언이 듣는이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설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방송으로 진행한 것을 활자로 담아냈을 때 방송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두 분이서 문제를 두고 주고받았던 내용이나 전문가의 조언을 대화체로 구성하였고, 특히 중요한 부분은 활자를 키우고, 점을 찍어 강조하였는데, 꼭 이래야만 했을까 싶었습니다.

다만 고민생들이 내놓은 문제에 대한 답변은 두 분의 연배와는 달리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에 꼭 맞는 것 같다는, 그러니까 제 생각과는 거리가 꽤나 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분의 직업을 생각한다면 문제의 정답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솔직히 조금 들었습니다. 물론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연에 대하여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하지마’라고 조언하는 것을 보면 진지한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면접 때문에 고민하는 분에 대한 답변도 명쾌하면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첫키스를 어디에서 할까? 혹은 결혼 날짜를 잡았는데 자고 싶다는 예비신랑에게 뭐라 답변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고민할 것 없이 그냥 자라고 답변해준다는 것이 옛날과 달라진 점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답변해주신 분들은 고민상담에 드린 답변이 문제가 된다면 책임을 지실거죠? 특집으로 정리한 법률상담소에서는 이런 문제는 다루지 않으셨던데....

앞에서부터 [쉬어가는 코너]에 나오던 이영자씨가 언제쯤 등장하나 궁금했는데, 결국은 특집코너에 나오시는 것을 보고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편집과 관련해서 한 말씀 드린다면, 개인적으로는 깔끔한 종이에 까만 활자로 찍은 글이 쉽게 읽히는 편입니다. 알록달록한 색지에 총천연색으로 강조한 활자는 시선을 교란시키는 듯해서... 그런데 요즈음 젊은이들은 이런 편집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세대차이란 것이 분명 있기는 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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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열린책들 세계문학 54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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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5년 11월 1일 리스본을 강타한 대지진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정리한 니콜라스 시라디의 <운명의 날; http://blog.joins.com/yang412/13586205>을 읽다보면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철학자 볼테르가 쓴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서 리스본 재난을 그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진즉에 읽어보려던 것이 늦어졌습니다.


볼테르(Voltaire)를 필명으로 쓴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François Marie Arouet; 1694년 11월 21일 ~ 1778년 5월 30일)는 잘 알려진 작가이기도 합니다. 파리의 공증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귀족에게 결투를 신청하였다고 해서 바스티유감옥에 투옥되었다가 영국으로 추방되었습니다. 영국에서 로크와 뉴턴의 영향을 받고 귀국한 그는 계몽주의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평생 왕성한 활동을 벌였으며, 특히 당시 광신주의에 사로잡혀있던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하여 꾸준하게 비판을 하였습니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는 그의 철학이 잘 녹아있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독일 베스트팔렌 지역의 툰더베르크 남작의 성에서 살던 캉디드라는 순박한 청년이 남작의 딸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쫓겨나, 불가리아군에 끌려갔다가 아바르족과의 전투에서 탈출하여 네덜란드를 거쳐 리스본에 도착하는 순간 대지진이 일어납니다. 그래도 운명은 캉디드의 편이었는지 폐허 속에서 이인을 만나고, 죽은 줄만 알았던 남작의 딸 퀴네공드양과 재회하게 됩니다.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구명하여 리스본으로 팔려온 그녀는 종교재판소장과 유대인 상인의 정부가 되어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을 살해한 캉디드는 퀴네공드양과 함께 스페인의 카디스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해서 만난 총독은 퀴네공드양에게 눈독을 들이고, 포르투갈에서 뒤쫓아온 체포조를 피하여 파라과이로 도망갑니다. 그곳에서 역시 죽은 것으로 알았던 퀴네공드양의 오빠를 만나지만, 그녀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오빠를 찔러 죽이고 다시 달아나게 됩니다. 캉디드는 전설의 땅 엘도라도에 들어가게 되지만, 안락한 곳에 안주할 팔자는 아니었던지 엘도라도를 떠나 유럽으로 돌아갈 길을 모색합니다. 수리남에 도착하여 퀴네공드양이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배를 구하려다가 선장에게 엘도라도에서 가져온 보물을 몽땅 빼앗기고, 결국은 보르도행 배를 타게 됩니다. 카캄보와 약속한 베네치아까지 가게 된 캉디드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종으로 일하고 있다는 퀴네공드양을 만나로 갑니다. 콘스탄티노플로 가는 배에서 다시 죽은 줄만 알았던 팡글로스선생과 퀴네공드양의 오빠와도 재회합니다. 엘도라도를 떠날 때는 엄청난 부를 쥐었지만, 결곡 유대인들에게 속아서 빈털터리가 되었고, 겨우 마련한 작은 땅을 같이 일구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캉디드는 세상은 ‘최선最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어왔지만, 온 유럽과 라틴아메리카를 주유하여 발칸에 정착하게 되면서 “태초에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태어난 것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199쪽)”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공리공론을 집어치우고 일에 매달리는 것이 삶을 견뎌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에 모두들 공감하게 됩니다. 긍정주의 철학자 팡글로스도, 염세주의 철학자 마르틴도, 그리고 캉디드도 말입니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서 작가는 당시 유행하던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 즉 현 세계가 최선의 세계라는 주장이 공허하다는 것을 입증학자 했던 것입니다. 읽다보면 주요 등장인물이 신출귀몰하게도 죽음을 피하는 초능력 혹은 행운을 다반사로 만나고, 또 이런 사람들이 다시 만나는 우연의 연속이라는 점이 신선함을 떨어뜨립니다만, 그래도 당시 대중들에게는 천하를 주유하는 주인공을 따라서 이국풍경을 그려볼 수 있는 신선함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모두 30개의 에피소드에는 주인공 캉디드가 겪은 일 외에도 주요 등장인물들의 이국적인 경험도 곁들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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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회와 그 적들 - 그들이 말하지 않는 복지 국가에 대한 오해와 진실
가오롄쿠이 지음, 김태성 외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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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유보되어 있던 복지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분출하고 있습니다. 물론 필수적인 복지는 그동안에도 조금씩 개선해왔지만, 이제는 보편적 복지로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복지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재원이 필요하고, 재원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복지사회 구현을 위한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분야에 대한 앎이 선행되고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번 주 [북소리]에서 <복지사회와 그 적들>을 선정한 이유입니다.


<복지사회와 그 적들>은 홍콩 루이쿠(睿庫)연구원의 가오롄쿠이(高蓮奎)부원장이 쓴 책입니다. 저자는 평형 경제학 원리, 신복지사회 이론 등을 발표한 경제학자로 중국 런민대 충양금융연구원과도 인연이 있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세계는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하고 그 해법으로 ‘저생존원가형 사회’모델을 제시하였습니다. 현재 선진 각국이 추구해온 복지사회 모형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복지사회는 인류의 생로병사와 교육 등 큰 문제들을 해결하지만 저생존원가형 사회는 인류의 의식주 등 세부적인 문제들을 해결을 것(11쪽)”이라고 주장합니다. 책의 내용을 읽다보면 저자가 제시하는 보완된 복지사회의 모형은 중국이 추구할 복지사회의 형식이 되어야 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모두 7개의 장으로 구분된 <복지사회와 그 적들>에서 저자는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사회’에 대한 개념 가운데 오해하고 있는 점을 짚었습니다. 복지국가가 효율이 낮다는 주장을 비롯하여 그리스 부채위기가 무리한 복지지출이라는 설명이 틀렸다는 것 등을 담고 있습니다.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그리고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5개국의 복지사회 모형을 인용하여 이들이 고효율적인 복지사회를 운용하고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2008년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파고에 휩쓸리면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습니다. 금융산업을 육성하면서 몰려든 외국자본의 덕으로 복지국가체계를 구축하였던 것이 거꾸로 발목을 잡은 셈입니다. 아이슬란드의 위기대처방안도 독특해서 은행들은 망하게 두고, 국민들의 가계부채 탕감과 실업수당 지급 확충 등을 통하여 구제금융을 졸업할 수 있었다고 해서 복지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례로 인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고효율의 복지사회를 구현하고 있는 북유럽 5개국과 다른 나라들이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구규모가 다르고, 자원 보유현황도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정책을 적용할 수 없는 원천적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지목되던 한국과 대만, 홍콩과 싱가포르 가운데 사회보장을 건국의 기초로 한 싱가포르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사회복지를 경시하는 편이었다는 지적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싱가포르의 정책기조는 ‘네 마리의 용 가운데 유일하게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룬 선진국이다.(129쪽)’라고 잘라 말합니다. 1인당 GDP를 단순비교한 결과라고 보이지만, 이면의 정치나 사회구조 등에 눈을 돌리면 과연 그럴까 싶습니다.


저자는 복지사회 구현에 반대하는 논리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7 가지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합니다. “1. 복지사회는 부자 나라에서만 가능하다, 2. 복지사회는 저효율을 야기한다, 3. 복지국가는 실패했다, 4. 복지사회는 시민적 자유를 훼손한다, 5. 복지사회는 국가부채를 늘린다, 6. 복지는 사람들을 나타하게 만든다, 7. 부자의 자선으로 사회복지를 대신할 수 있다.(67-76쪽)” 물론 저자의 주장이 타당합니다만, 견강부회한 점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복지사회는 부자나라가 아니더라도 가능하다는 주장은 결국 모든 나라가 복지사회를 지향한다는 것인데, 모든 나라가 추구하는 복지사회의 수준이 동일해야 되는가도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결국 복지라는 개념도 사회구성원들이 전반적으로 받아들 수 있는 수준이라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복지사회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눈높이와 그 사회가 부담할 수 있는 능력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에 따라 정책이 결정될 것 같습니다.


제2장과 제3장은 복지사회가 발전되어 온 과정을 독일, 영국, 북유럽 각국 그리고 미국 등이 시행해온 복지정책들을 살펴가며 설명합니다. 특히 제3장에서는 미국과 영국의 복지정책이 후퇴하게 된 배경을 별도로 다루었습니다. 두 나라가 복지정책의 기조를 바꾸게 된 원인은 중동전쟁에 따른 유가파동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뛰는 물가를 잡기 위하여 대처가 선택한 방법은 화폐발행과 공공지출을 줄이고 은행금리를 높였으며, 공기업민영화, 소득세 감면, 노조 권한 축소 등이었습니다. 저자는 이를 전후 노동당이 세운 복지사회를 일거에 무너뜨렸다고 몰아붙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레이건대통령이 감세를 주축으로 경제회복을 꾀한 정책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감세정책을 통하여 기업활동을 활성화시킴으로서 경기회복을 도모한 것은 그렇다 치고, 감세정책은 결과적으로 중산층의 해체를 가져왔다는 지적입니다. 결국 대처와 레이건대통령이 선택한 경제정책은 중산층의 몰락을 가져오고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분석입니다.


저자는 감세를 통한 민간기업 활동 지원이 결코 국민들을 부유하게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민간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는 정책인데, 저자는 오히려 민간기업보다는 공영기업이 일자리를 만드는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공기업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좋은데, 생산효율성의 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공기업을 방만하게 운영하다 결국은 국민의 세금으로 적자를 메웠던 사례들을 알고 있습니다. 공기업 민영화는 민간기업이 가지고 있는 조직관리기법으로 생산효율성을 높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인데, 공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민영화되었을 때 필연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경쟁을 감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민영화에 반대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볼 일입니다.


저자는 복지사회가 경제의 증진을 촉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 나라가 선진국대열에 진입하려면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첫 번째 단계는 산업화와 도시화이고, 두 번째 단계는 자주적 혁신과 산업의 자립,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사회복지와 사회보장제도의 수립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단계를 거치면 1인당GDP가 1만 달러에 이르고, 두 번째 단계를 거치면 2만 달러, 세 번째 단계를 거치면 4만 달러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수요적 측면에서 설명한다면, “산업화와 도시화는 농촌의 소비잠재력을 발굴해 냄으로써 경제 성장을 실현할 수 있게 하고, 자주적 혁신과 산업의 자립은 산업사슬의 부가가치를 창출함으로써 경제성장의 실현을 도와주며, 복지사회건설을 중․저소득층과 노인층의 소비를 높임으로써 경제 성장을 가속화한다(184쪽)”라는 것입니다. 한국과 대만이 일인당 GDP가 2만 달러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적절한 시기에 세 번째 단계로 진입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밖에도 국제경제를 휘청거리게 한 몇 개의 사건으로 인하여 성장의 탄력을 이어가지 못한 것이 더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복지사회구현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에 관한 저자의 관심은 중국으로 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산업화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중국이 어떠한 복지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옳은가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실 중국사회는 과거 공산주의를 기반으로 한 복지가 시행되어왔는데, 이를 대체할 새로운 복지제도를 수립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현재 중국의 경제학계의 동향을 케인스주의나 신자유주의가 아닌 포퓰리즘 경제학이라고 진단한 저자는 삼류경제학자들이 중국의 경제체계를 좌지우지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합니다. 마르크스경제학이 퇴조한 이후 중국 경제학계는 하이에크를 추종하는 경제학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하이에크의 삶은 물론 그가 세운 이론들을 모두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하이에크는 시장중심의 자유지상주의를 주장했는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지만, 정부와 시장사이의 경계에 대한 구체적 제안은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노조의 권리를 반대하고 인권을 반대했으며, 민주주의에도 반대했다고 주장합니다. ‘필사적으로 민주주의의 위해성을 과장함으로써 국민이 경제적 자유에 만족하면서 정치적 자유는 지나치게 추구하지 않도록 유도하고자 했다.(247쪽)’라는 것입니다. 저자가 일방적으로 하이에크를 몰아세우고 있어, 아무래도 하이에크의 주장을 따로 읽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이에크는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이 커지면 반드시 전체주의가 된다고 한 적은 없으며, 다만 정부역할이 커졌을 때 드는 비용에 대하여 경고한 바는 있다고 합니다.


제5장 세계 주요 국가들의 복지현황에서 다루고 있는 세계 주요 국가의 4가지 의료보장형태도 참고할만합니다. 영국을 비롯한 캐나다와 호주 등 영연방국가 및 스웨덴 등 북유럽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국가의료보험모형이 있고, 독일, 일본, 우리나라 등의 사회보험 모형, 미국이 대표적인 개인 의료보험모형, 그리고 프랑스와 같은 혼합형이 있습니다. 영국이 시행하는 국가의료보험모형에서는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의료기관의 접근성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재정부담이 폭증할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어느 정도는 서비스 제공의 제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소비자의 불만이 커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민영의료보험은 납부하는 보험료의 수준에 따라서 차별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환자가 동일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평등성이 유독 의료서비스 분야에서만 요구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적용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부자들이 민영의료보험으로 이탈하게 되면 사회보험의 재정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 역시 민영의료보험의 도입을 어렵게 하는 것 같습니다. 독일이 공공의료보험에 민영 의료보험을 더하여 운용함으로써 서로 보완하는 방식을 참고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가 <복지사회와 그 적들>에 담아내고 싶었던 것은 중국의 발전전략으로 보입니다. 이미 G2의 위치에 올라선 중국이지만 국가전체를 놓고 보면 개발도상국 수준에 겨우 올라선 중국이 중진국 함정을 피해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앞서 제시한 세 가지 단계의 마지막 사회복지와 사회보장제도의 수립에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2015년 기준 13억 7천만 명에 달하는 국민을 보유한 중국이 복지사회로 진입이 성공하기 위하여 지금까지의 공산주의 체제는 물론 서구의 발전모형인 자본주의체제가 아닌 새로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저생존원가형 사회’를 제시합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인류 모두를 복지사회로 이끌기에는 결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지국가의 복지프로그램은 다양하면서도 원가가 높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높은 복지수준을 달성하려면 세수를 늘린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공산주의의 철학에 따라 모두가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복지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고복지 고세수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생존원가가 낮은 복지사회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존원가를 낮추면서도 품질을 높게 유지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북유럽 모형의 복지정책을 당장 시행하는 것은 어려우니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와 같은 모형의 복지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중국은 상당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 마지막 장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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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광고인 - 광고인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스토리 가이드북 직업공감 시리즈 3
이구익 지음 / 이담북스 / 201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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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북스가 기획한 청소년들이 진로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스토리 가이드북 시리즈’로 나온 책입니다. 지난 해 나온 윤은숙님의 <승무원, 언니처럼; http://blog.joins.com/yang412/13742514>은 스튜어디스를 꿈꾸는 소녀들을 위한 기획이었고, 이샘물기자님의 <기자로 말할 것; http://blog.joins.com/yang412/13815634>은 기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위한 기획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요즈음 젊은이들이 꿈꾸는 직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반면에 그 분야에서 하게 될 일이나 그 분야에 들어가는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자료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읽어본 두 책 모두 청소년들 취향에 맞추어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졌습니다.


디지털 전문 종합광고회사 크리에이티브마스를 창업한 광고인 이구익님이 쓴 <벌거벗은 광고인>은 광고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참고할만한 가이드북이 될 것 같습니다. 앞선 책들의 저자가 여성들인 것과 달리 이주익님은 남성적이라는 느낌이 강한 기획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저자가 광고인으로 사는 모습을 삽화로 잘 표현하고 있고, 책을 읽는 젊은이들이 궁금해 할 것으로 예상되는 질문들에 안성맞춤한 답변을 내놓고 있습니다.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광고인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 광고인이 되기 위한 모든 것, 광고회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 광고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설명하고, 예상질문을 뽑아 답변을 짧게 정리하였습니다. 사실은 질문이 엄청나게 많을 것으로 예상하셨는지, 설명은 두어 장으로 요약하고 질의응답에 주안점을 둔 것 같이,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는데, 아마도 기획단계에서 광고분야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질문을 미리 받았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치밀한 기획 끝에 탄생한 책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실 저도 광고라는 영역에 대하여 아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 역시 광고를 의뢰하는 일이 별로 없는 탓에 문외한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광고에 관한 지식은 <광고천재 이태백>을 시청하면서 얻어들은 것 밖에 없습니다. 광고인은 창조적인 일을 하기 때문에 남들과는 뇌구조 자체가 다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창조적인 무엇을 만들어내는 천재는 몇 안 된다고 믿고 있고, 다들 누군가 해놓은 일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얹어가는 것으로 충분하며, 요즈음에는 집단지성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이 있다는 정도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광고를 공부할 수 있는 과정은 아직 없다고 합니다. 광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 광고인들이 진행하는 광고캠프나 광고세미나 등이 전부라고 하니 여건이 참 열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창조적인 무엇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영역에 대한 앎이 선행한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책, 영화, 미술, 음악 등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경험을 쌓는 일이 선행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광고를 배울 수 있는 배움의 터전도 없고, 그렇다고 광고일을 먼저 시작한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하여 남겨둔 비급(秘笈)도 없는 열악한 여건에 이구익님이 지은 <벌거벗은 광고인>은 분명 좋은 가이드북이 될 것 같습니다. 광고라는 영역에서 닥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을 담으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광고회사에 입사할 때, 혹은 회사를 옮길 때 부딪혀야 하는 면접을 치러야 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안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 역시 이 책을 통하여 광고일을 하시는 분들의 애로사항을 알게 되었으니 혹시 광고일을 하시는 분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 오해를 살 일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책읽기는 결코 손해보는 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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