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회와 그 적들 - 그들이 말하지 않는 복지 국가에 대한 오해와 진실
가오롄쿠이 지음, 김태성 외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유보되어 있던 복지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분출하고 있습니다. 물론 필수적인 복지는 그동안에도 조금씩 개선해왔지만, 이제는 보편적 복지로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복지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재원이 필요하고, 재원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복지사회 구현을 위한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분야에 대한 앎이 선행되고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번 주 [북소리]에서 <복지사회와 그 적들>을 선정한 이유입니다.


<복지사회와 그 적들>은 홍콩 루이쿠(睿庫)연구원의 가오롄쿠이(高蓮奎)부원장이 쓴 책입니다. 저자는 평형 경제학 원리, 신복지사회 이론 등을 발표한 경제학자로 중국 런민대 충양금융연구원과도 인연이 있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세계는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하고 그 해법으로 ‘저생존원가형 사회’모델을 제시하였습니다. 현재 선진 각국이 추구해온 복지사회 모형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복지사회는 인류의 생로병사와 교육 등 큰 문제들을 해결하지만 저생존원가형 사회는 인류의 의식주 등 세부적인 문제들을 해결을 것(11쪽)”이라고 주장합니다. 책의 내용을 읽다보면 저자가 제시하는 보완된 복지사회의 모형은 중국이 추구할 복지사회의 형식이 되어야 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모두 7개의 장으로 구분된 <복지사회와 그 적들>에서 저자는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사회’에 대한 개념 가운데 오해하고 있는 점을 짚었습니다. 복지국가가 효율이 낮다는 주장을 비롯하여 그리스 부채위기가 무리한 복지지출이라는 설명이 틀렸다는 것 등을 담고 있습니다.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그리고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5개국의 복지사회 모형을 인용하여 이들이 고효율적인 복지사회를 운용하고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2008년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파고에 휩쓸리면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습니다. 금융산업을 육성하면서 몰려든 외국자본의 덕으로 복지국가체계를 구축하였던 것이 거꾸로 발목을 잡은 셈입니다. 아이슬란드의 위기대처방안도 독특해서 은행들은 망하게 두고, 국민들의 가계부채 탕감과 실업수당 지급 확충 등을 통하여 구제금융을 졸업할 수 있었다고 해서 복지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례로 인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고효율의 복지사회를 구현하고 있는 북유럽 5개국과 다른 나라들이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구규모가 다르고, 자원 보유현황도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정책을 적용할 수 없는 원천적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지목되던 한국과 대만, 홍콩과 싱가포르 가운데 사회보장을 건국의 기초로 한 싱가포르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사회복지를 경시하는 편이었다는 지적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싱가포르의 정책기조는 ‘네 마리의 용 가운데 유일하게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룬 선진국이다.(129쪽)’라고 잘라 말합니다. 1인당 GDP를 단순비교한 결과라고 보이지만, 이면의 정치나 사회구조 등에 눈을 돌리면 과연 그럴까 싶습니다.


저자는 복지사회 구현에 반대하는 논리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7 가지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합니다. “1. 복지사회는 부자 나라에서만 가능하다, 2. 복지사회는 저효율을 야기한다, 3. 복지국가는 실패했다, 4. 복지사회는 시민적 자유를 훼손한다, 5. 복지사회는 국가부채를 늘린다, 6. 복지는 사람들을 나타하게 만든다, 7. 부자의 자선으로 사회복지를 대신할 수 있다.(67-76쪽)” 물론 저자의 주장이 타당합니다만, 견강부회한 점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복지사회는 부자나라가 아니더라도 가능하다는 주장은 결국 모든 나라가 복지사회를 지향한다는 것인데, 모든 나라가 추구하는 복지사회의 수준이 동일해야 되는가도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결국 복지라는 개념도 사회구성원들이 전반적으로 받아들 수 있는 수준이라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복지사회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눈높이와 그 사회가 부담할 수 있는 능력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에 따라 정책이 결정될 것 같습니다.


제2장과 제3장은 복지사회가 발전되어 온 과정을 독일, 영국, 북유럽 각국 그리고 미국 등이 시행해온 복지정책들을 살펴가며 설명합니다. 특히 제3장에서는 미국과 영국의 복지정책이 후퇴하게 된 배경을 별도로 다루었습니다. 두 나라가 복지정책의 기조를 바꾸게 된 원인은 중동전쟁에 따른 유가파동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뛰는 물가를 잡기 위하여 대처가 선택한 방법은 화폐발행과 공공지출을 줄이고 은행금리를 높였으며, 공기업민영화, 소득세 감면, 노조 권한 축소 등이었습니다. 저자는 이를 전후 노동당이 세운 복지사회를 일거에 무너뜨렸다고 몰아붙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레이건대통령이 감세를 주축으로 경제회복을 꾀한 정책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감세정책을 통하여 기업활동을 활성화시킴으로서 경기회복을 도모한 것은 그렇다 치고, 감세정책은 결과적으로 중산층의 해체를 가져왔다는 지적입니다. 결국 대처와 레이건대통령이 선택한 경제정책은 중산층의 몰락을 가져오고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분석입니다.


저자는 감세를 통한 민간기업 활동 지원이 결코 국민들을 부유하게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민간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는 정책인데, 저자는 오히려 민간기업보다는 공영기업이 일자리를 만드는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공기업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좋은데, 생산효율성의 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공기업을 방만하게 운영하다 결국은 국민의 세금으로 적자를 메웠던 사례들을 알고 있습니다. 공기업 민영화는 민간기업이 가지고 있는 조직관리기법으로 생산효율성을 높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인데, 공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민영화되었을 때 필연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경쟁을 감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민영화에 반대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볼 일입니다.


저자는 복지사회가 경제의 증진을 촉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 나라가 선진국대열에 진입하려면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첫 번째 단계는 산업화와 도시화이고, 두 번째 단계는 자주적 혁신과 산업의 자립,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사회복지와 사회보장제도의 수립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단계를 거치면 1인당GDP가 1만 달러에 이르고, 두 번째 단계를 거치면 2만 달러, 세 번째 단계를 거치면 4만 달러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수요적 측면에서 설명한다면, “산업화와 도시화는 농촌의 소비잠재력을 발굴해 냄으로써 경제 성장을 실현할 수 있게 하고, 자주적 혁신과 산업의 자립은 산업사슬의 부가가치를 창출함으로써 경제성장의 실현을 도와주며, 복지사회건설을 중․저소득층과 노인층의 소비를 높임으로써 경제 성장을 가속화한다(184쪽)”라는 것입니다. 한국과 대만이 일인당 GDP가 2만 달러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적절한 시기에 세 번째 단계로 진입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밖에도 국제경제를 휘청거리게 한 몇 개의 사건으로 인하여 성장의 탄력을 이어가지 못한 것이 더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복지사회구현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에 관한 저자의 관심은 중국으로 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산업화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중국이 어떠한 복지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옳은가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실 중국사회는 과거 공산주의를 기반으로 한 복지가 시행되어왔는데, 이를 대체할 새로운 복지제도를 수립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현재 중국의 경제학계의 동향을 케인스주의나 신자유주의가 아닌 포퓰리즘 경제학이라고 진단한 저자는 삼류경제학자들이 중국의 경제체계를 좌지우지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합니다. 마르크스경제학이 퇴조한 이후 중국 경제학계는 하이에크를 추종하는 경제학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하이에크의 삶은 물론 그가 세운 이론들을 모두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하이에크는 시장중심의 자유지상주의를 주장했는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지만, 정부와 시장사이의 경계에 대한 구체적 제안은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노조의 권리를 반대하고 인권을 반대했으며, 민주주의에도 반대했다고 주장합니다. ‘필사적으로 민주주의의 위해성을 과장함으로써 국민이 경제적 자유에 만족하면서 정치적 자유는 지나치게 추구하지 않도록 유도하고자 했다.(247쪽)’라는 것입니다. 저자가 일방적으로 하이에크를 몰아세우고 있어, 아무래도 하이에크의 주장을 따로 읽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이에크는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이 커지면 반드시 전체주의가 된다고 한 적은 없으며, 다만 정부역할이 커졌을 때 드는 비용에 대하여 경고한 바는 있다고 합니다.


제5장 세계 주요 국가들의 복지현황에서 다루고 있는 세계 주요 국가의 4가지 의료보장형태도 참고할만합니다. 영국을 비롯한 캐나다와 호주 등 영연방국가 및 스웨덴 등 북유럽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국가의료보험모형이 있고, 독일, 일본, 우리나라 등의 사회보험 모형, 미국이 대표적인 개인 의료보험모형, 그리고 프랑스와 같은 혼합형이 있습니다. 영국이 시행하는 국가의료보험모형에서는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의료기관의 접근성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재정부담이 폭증할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어느 정도는 서비스 제공의 제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소비자의 불만이 커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민영의료보험은 납부하는 보험료의 수준에 따라서 차별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환자가 동일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평등성이 유독 의료서비스 분야에서만 요구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적용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부자들이 민영의료보험으로 이탈하게 되면 사회보험의 재정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 역시 민영의료보험의 도입을 어렵게 하는 것 같습니다. 독일이 공공의료보험에 민영 의료보험을 더하여 운용함으로써 서로 보완하는 방식을 참고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가 <복지사회와 그 적들>에 담아내고 싶었던 것은 중국의 발전전략으로 보입니다. 이미 G2의 위치에 올라선 중국이지만 국가전체를 놓고 보면 개발도상국 수준에 겨우 올라선 중국이 중진국 함정을 피해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앞서 제시한 세 가지 단계의 마지막 사회복지와 사회보장제도의 수립에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2015년 기준 13억 7천만 명에 달하는 국민을 보유한 중국이 복지사회로 진입이 성공하기 위하여 지금까지의 공산주의 체제는 물론 서구의 발전모형인 자본주의체제가 아닌 새로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저생존원가형 사회’를 제시합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인류 모두를 복지사회로 이끌기에는 결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지국가의 복지프로그램은 다양하면서도 원가가 높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높은 복지수준을 달성하려면 세수를 늘린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공산주의의 철학에 따라 모두가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복지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고복지 고세수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생존원가가 낮은 복지사회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존원가를 낮추면서도 품질을 높게 유지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북유럽 모형의 복지정책을 당장 시행하는 것은 어려우니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와 같은 모형의 복지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중국은 상당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 마지막 장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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