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쪼가리 자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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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정체성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게 했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저자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을 읽게 되었습니다. 과연 완벽하게 반쪽으로 나뉜 인간이 각각 생존 가능할 것인가는 차치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이 선함과 악함을 공유하고 있다고 저자는 전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함만으로도, 혹은 악함만으로도 완벽하지는 못하다는 생각에 동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꼬투리잡기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도대체 말이 안되는 상황이 너무 많기는 합니다. 포탄이 맞아 조각이 난 젊은이의 신체를 긁어모아 반쪽의 몸을 만들어내는 신묘한 의술도 그렇구요, 포탄이 부족한 포병부대가 화약가루를 보충하기 위하여 흙을 채로 친다는 상황설명도 그렇습니다. 나머지 반은 수도자들이 구해서 또 다른 반쪽을 살려냈다는 설정도 그런데, 몸의 오른쪽이 악함을, 왼쪽이 선함을 대표한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젊은 메다르도자작의 불행이 시작된 기독교도와 투르크간의 전쟁은 아마도 교황의 요청에 따라서 오스만투르크를 상대로 했던 십자군 전쟁을 이르는 것 같습니다만, 십자군전쟁이 1095년부터 1456년까지 진행되었고, 오스만제국이 아나톨리아, 즉 지금의 터키반도 전역을 정복한 것이 1481년이며, 십자군을 패퇴시켰던 것이 1444년이니 아마도 이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때 유럽의 기독교군대에 위안소가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병영입구 한쪽에는 천막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화려하게 수놓인 비단옷을 입고 가슴을 드러낸 채 천막 안에 서 있던 뚱뚱한 여자들이 그들을 복 고함 치며 폭소를 터뜨렸다.(11쪽)” 일본군이 러일전쟁 때 러시아로부터 위안소 운영을 배워왔다는 것이 사실인가 봅니다.


저자는 반쪽으로 나뉜 메다르도자작을 통하여 인간의 이중인격을 나타내려 한 것 같습니다. <반쪼가리 자작>의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극단적인 두 가지 성격이 충돌하는 다중인격장애를 앓는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이중적 가치기준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에 들어와 그런 성향이 더 강화되어가는 경향에 대하여 작가가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신체적 장애를 가진 자작이야 그렇다고 쳐도,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하여 쾌락을 추구하는 한센병 환자들, 종교적 윤리를 내세워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위그노들을 비롯하여 등장인물 가운데 많은 사람들 역시 비정상적인 생각과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작가는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며 그런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자연의 섭리는 극단으로 치우친 것들을 가운데로 이끌어내 균형을 맞추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함과 악함의 양 극단에 있는 각각 반쪽의 메다르도자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작가는 사랑을 내세웠습니다. 즉 파멜라라는 젊은 여성을 악한 반쪽과 선한 반쪽이 모두 사랑하게 만든 것입니다. 나아가 파멜라는 두 사람의 사랑을 하나로 승화시켜보려는 시도를 하지만 두 사람의 갈등이 극대화되어 결투를 하는 상황을 맞게 되고, 둘 중 하나가 죽음을 맞을 수도 있는 결투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악함과 선함의 반쪽들이 다시 하나로 결합하게 된다는 해피앤딩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많이 억지스러운 설정이지만, 동화 같은 소설이라서 충분히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쪼가리 자작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재결합한 다음에는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인간은 결코 현명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입니다. 현명한 자작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마을이 행복한 시대를 맞을 수 있었을까요? 세상이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의 힘으로는 그것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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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 손호철의 세계를 가다 1
손호철 지음 / 이매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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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서 2006년까지, 남들은 한번 가보기도 어려운 라틴 아메리카를 무려 다섯 번이나 찾았던 진보 정치학자의 여행기입니다. 민교협 공동의장을 비롯하여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자문위원장을 지낸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손호철교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달반을 1~3나라를 집중해서 돌아보는 일정을 소화했다고 합니다. 쿠바, 멕시코,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네수엘라, 과테말라 등 8개국이나 되고, 특히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4개국은 두 차례씩 방문하는 호사(?) 누렸으니 깊이 있는 사유의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 국가에서 저자가 관심을 보였던 부분은 최근 지구촌 국가들이 향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체제에 대하여 대립각을 세웠던 진보 좌파세력의 부침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서의 저자의 활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글 순서는 방문순서와는 무관하게 저자의 관심사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쿠바가 제일 먼저 다룬 것은 아마도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잘 버텨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쿠바의 곳곳에서 숨어 있는 미국의 흔적들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심정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게바라의 뜨거운 정신은 없고 게바라를 팔아 외화벌이로 연명하고 있는 쿠바의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쿠바가 이렇게라도 돈을 버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했다.(36쪽)” 어때서일까요?


미국이나 유럽이 라틴아메리카에 대하여 취해온 바에 대하여 지나치게 민감해 보이는 대목은 베네주엘라에서 콜럼버스의 동상이 내려진 것에서 볼 수 있는데, 저자는 굳이 콜럼버스기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정복’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콜럼버스는 당시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발견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정복사업은 다른 스페인 사람들이 총대를 맺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구바의 의료인들이 베네주엘라에서 국제연대차원의 무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적은 것도 사실과 다른 것입니다. 사실 쿠바가 의료진을 파견하는 대신 베네주엘라로부터 석유를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5월 광장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 1976년의 ‘더러운 전쟁’을 벌인 독재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5월의 어머니회의 강령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첫째, 우리의 자식들은 죽은 것이 아니고 현재의 민주화 운동 속에 살아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체발굴을 거부한다. 모든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모두 우리 자식들이다. 둘째, 우리는 어떠한 기념물 건립도 반대한다. 기념물 건립은 우리 자식들의 민주화 투쟁 정신을 화것화시켜 건축물과 돌 속에 가두는 것이다. 우리 자식들의 정신은 기념물이 아니라 현재의 투쟁을 통해 기념되고 계승되어야 한다. 셋째, 우리는 어떠한 금전 보상도 거부한다. 생명은 생명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지 어떠한 금전으로도 대치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을 금전으로 격하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118-119쪽)”


눈에 띄는 대목은 2007에 나온 책이라서인지 김대중정부에서 노무현정부로 이어지면서 대한민국 역시 날로 심화되어가고 있는 사회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무비판적으로 도입한 신자유주의에 매몰되어있다는 비판입니다. 이어서 보수정권이 들어섰을 때 진보세력들은 책임을 보수세력에게 떠밀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아즈텍문명의 인신공양이 관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는 점을 짚으려합니다. 유카탄반도의 치첸이사에 있는 세노테에서 저자는 ‘가뭄 같은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해 산 사람을 우물에 던져 넣던 야만성을 끔찍하게 느껴졌다(240쪽)’라고 적은 반면, ‘자신과는 다르다는 이유(특히 인신공양)로, 원주민을 쳐부숴야 할 야만으로 단정해 강제로 기독교와 서구문명을 심으려 했던 스페인의 행동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247쪽)'라고 했습니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문명을 비판하는 일은 역시 조심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족이 될 듯합니다만,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최근 우경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심지어 제가 방문했던 페루에서는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나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4월에 치러진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고 6월의 결선투표를 남기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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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년마다 퇴사를 결심한다
마쓰다 고타 지음, 오경순 옮김 / 이담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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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주에도 마음의 갈등을 빚는 일이 있었습니다만, 직장인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경험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가 심각하다면 회사를 그만둘 것을 심각하게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여섯 번째 직장인데 대체로 4년마다 회사를 옮겼는데, 지금의 회사는 8년째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잘 맞는지, 아니면 나이가 든 탓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을 써보았을 수도 있는 ‘사직서’를 언제라도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라고 권하는 책을 만났습니다. 카페 체인인 털리스 재팬을 설립했고, 지금은 털리스 커피 인터내셔날의 회장인 마쓰다 고타의 <나는 5년마다 퇴사를 결심한다>입니다. 물론 저자도 대학을 졸업하고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서 입사했던 산와은행을 그만두고 털리스 재팬을 설립했는데, 산와은행에 다닌 기간이 5년여쯤 되었나 봅니다.


사실 저자가 제안하는 5년마다 퇴사를 결심하라는 말의 요점은 5년마다 회사를 옮기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최선을 다하여 회사 일을 하되, 5년을 주기로 스스로를 평가해서 변화를 꾀하는 계기로 삼으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우리가 어떤 단계를 거쳐 숙달이 되기까지는 대체로 5년이라는 기간이 걸린다고 본다.’라는 저자의 설명은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문에 적은 5년 단위로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제안을 설명하기 위하여 저자는 5개의 장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인생을 개척하는 목적과 목표를 정립하기 위하여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를 설명했고, 2장에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패의 과정에서 배울 점이 없다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실패에서 배운 것들이 다음에 성공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3장에서는 머릿속에서만 상황을 그려보지 말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몸으로 겪어보라고 합니다. 4장에서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주문합니다.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된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마지막 5장에서는 즐겁게 일하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는 일이 괴로우면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일도 즐거운 마음에서 한다면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저자는 목적을 명확하게 하고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목표를 상세하게 세우면 일상이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PDCI(Plan, Do, Check, Improve) 즉,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확인 평가하고, 개선하는’ 체계를 갖출 것을 권합니다. 매5년마다 PDCI체계를 거듭하다보면 어느 날 달라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부피가 작아서 가벼워 보일 수도 있으며, 일본 책 특유의 가벼운 읽을거리 같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간략해 보일 수도 있는 핵심을 실천하기도 쉬울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특유의 정서와는 다른 저자의 분위기는 아마도 아버지를 따라서 세네갈, 미국 등지에서 생활했던 성장배경이나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익힌 미식축구를 귀국 후 대학에 다니면서 취미활동으로 이어갔던 것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특유의 조직문화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입시나 입사 등의 과정이 유리알처럼 투명하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오기도 합니다만, 일본은 학연, 지연과 같은 연줄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미식축구부의 선배가 스카우트를 해온 것을 보면 말입니다. 물론 저자는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서 직장을 결정했다고 합니다만, 우리나라처럼 회사가 신입사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일할 회사를 선택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참신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그렇게 될까 부럽기도 합니다. 어떻든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했으니, 우리식대로 잘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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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동유럽을 만나라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최도성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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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하면 지정학적 개념보다는 정치적 개념으로 따져서 과거 소련의 영향권에 있던 동독,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알바니아, 폴란드 등 8개국을 떠올립니다. 소련이 무너지고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민주화되면서 개념에 변화가 생기게 된 것 같습니다. 여행업계의 구분으로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등 7개국을 발칸국가로 구분하고, 체코, 폴란드, 헝가리,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등 5개국을 동유럽국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시작한 유럽여행이 터키를 거쳐 발칸에 이르렀고, 이제는 동유럽으로 이어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행을 준비하기 위한 책읽기가 동유럽에 쏠리고 있는 셈입니다. 영문학자 최도성 교수님의 <일생에 한번은 동유럽을 만나라>도 같은 맥락의 책읽기입니다. 다만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 3개국만 다루고 있는 것이 아쉬운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슬로바키아는 사전에 준비했던 여행지가 아니었던지 소략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대신 체코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 될 것 같습니다.


예술, 문학, 음악,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여행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어서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이야기를 전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 나름대로의 해설을 덧붙이고 있는 점이 특징인데, 때로는 지나치게 확대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의 여행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유여행의 참 멋을 잘 살리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지에서 현지인이건 같은 여행자건 간에 쉽게 사귀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입니다. 천성적으로 붙임성이 아주 좋으신 모양입니다. 그런 인연들이 다음 여행지에까지 이어지는 것도 부지런히 인맥을 만드는 노력을 쌓다보면 덤으로 생기는 행운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때로는 모호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대인에 관한 내용을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소개한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후예라고 믿고 있지 아브라함을 유일신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독교의 등장으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터전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에 맞섰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사울을 초대왕으로 하는 히브리왕국은 북쪽의 이스라엘왕국과 남쪽의 유다왕국으로 갈라졌다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게 멸망하고 말았는데,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원정 이후에 들어선 셀레우코스왕조 때 다시 유대인 왕국을 세웠던 것입니다. 기원전 63년 로마제국의 지배아래 들어가게 된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탄압과 수탈이 자심해지자 봉기하여 로마에 대항하였다가 패하면서 유대인들을 살던 곳에서 떠나도록 했던 것입니다.


특히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면서 예수를 처형한 책임을 피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면서 유럽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을 미워하게 만들었던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이유에 더하여 이민족의 오랜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남기 위하여 근면과 학습을 몸에 익힌 유대인들은 어디에 가더라고 사회의 핵심을 이루었던 것인데, 특히 학계와 상업을 장악하면서 부를 축적하는 모습을 시샘하는 사람들이 더욱 유대인들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판인데, 평소 미워하던 사람들이 명예와 부를 쌓아가니 더욱 배가 아팠을 것입니다.


간혹 가다 지나치게 수사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역에서 내려 주변을 걸었다. 들에는 노란 유채꽃이 녹색의 풀들과 어우러져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고요히 떠 있었다. 나는 그 아래 펼쳐진 보헤미아 들판을 바라보며 천연의 공기를 마음껏 호흡했다. 시냇물 소리, 이끼 낀 돌길, 바스락거리며 팔랑이는 진녹색 이파리, 어느 것 하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167쪽)” 여행기가 담백하면 좋겠다는 개인적 취향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 더, 유럽에서 보고 느낀 것을 굳이 같은 시기의 우리역사와 비교해서 지나치게 추켜올리는 듯한 분위기도 공연히 떨떠름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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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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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터라서 제목에 ‘여행’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눈길이 가곤합니다. 더구나 한 때 몰입하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이라고 해서 집어 들었습니다. 여행의 책이라고 하는데 제목에서 보면 공기, 흙, 불 그리고 물의 세계라는 소제목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물질의 본질에 관한 고대 그리스의 4원소설이 먼저 생각나면서 여행과 어떻게 연관을 지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제목대로 ‘여행의 책’이 읽는 사람을 여행으로 초대한다는 이야기로 운을 떼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저는 가장 가뿐하고 은근하고 간편한 여행으로 당신을 안내할 수 있다’고 하네요. 여행하면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은데 간편한 여행을 할 수 있다니, 점점 흥미를 돋구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책을 읽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모시게 된다고 합니다. ‘좋은 책이란 그대 자신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거울’이라고 슬며시 자신을 추켜세우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여행의 책’은 공간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수천의 다른 사람들 곁으로 읽는 이를 안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행의 책과 함께 여행을 떠나려면 우선 속박에서 벗어나야한다고 했습니다. 살갗을 누르는 모든 것을 벗고 풀고 빼낸다는 것인데, 상상해보면 조금은 편할 듯 불편할 것 같습니다. 환경이 쾌적해야 함은 물론이고 전화기도 내려놓고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라고 합니다. 이렇듯 요란을 떤다면 결코 간편하게 떠나는 여행이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떻든 준비가 끝나면 유체이탈을 하듯 비상하여 지붕을 뚫고 하늘로 날아오르라고 합니다. 가능할까?


그리하여 하늘을 날아 공기의 세계부터 여행을 시작합니다. 딱히 어디라고 할 것도 없는 화산이나 항구를 구경하기도 하는데, 사실을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경험해보지 않은 곳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여행의 책’의 어떠한 도움이 있더라도 가볼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기의 세계를 돌아본 다음에는 흙의 세계로 가는데, 흙의 세계는 땅 밑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자신이 꿈꾸던 장소에 집을 짓고 유유자적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불의 세계는 싸움터가 됩니다. 고대 트로이 전쟁으로부터 크림전쟁, 태평천국의 난, 남아프리카의 보어전쟁, 미국의 남북전쟁, 러시아혁명, 제2차 세계대전, 심지어는 한국전쟁까지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싸움터로 나아가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싸움이라고 합니다. 체제나 조직, 질병, 불운 그리고 죽음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는 법을 익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물의 세계는 휴식의 세계이면서도 현실로 돌아오는 여정입니다. 불의 세계에서는 갑옷을 입고 무장을 하고는 다양한 적들과 싸우느라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면 이곳 물의 세계에서는 편안하고 아늑할 것이라고 합니다. 역시 모두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리스 철학의 4원소설에 대한 언급이 나오네요... ‘그대가 4원소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다가갔던 더욱 영적인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다.(152쪽)’ 그러니까 독서는 무한한 세계를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정신의 여행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독서를 통하여 정신을 완성해갈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행을 한 뒤로 그대의 몸은 안팎으로 완벽하게 평형을 이루고 있다.(153쪽)‘


155쪽에 불과한 얄팍한 책이 읽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세계를 여행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안내하였는데, 이제는 ‘여행의 책’이 안내를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몸을 일으켜 원하는 어디라도 가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작이 어려울 뿐이지 한번 해본 일을 두 번째 할 때는 일단 쉬운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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