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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 손호철의 세계를 가다 1
손호철 지음 / 이매진 / 2007년 4월
평점 :
2001년에서 2006년까지, 남들은 한번 가보기도 어려운 라틴 아메리카를 무려 다섯 번이나 찾았던 진보 정치학자의 여행기입니다. 민교협 공동의장을 비롯하여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자문위원장을 지낸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손호철교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달반을 1~3나라를 집중해서 돌아보는 일정을 소화했다고 합니다. 쿠바, 멕시코,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네수엘라, 과테말라 등 8개국이나 되고, 특히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4개국은 두 차례씩 방문하는 호사(?) 누렸으니 깊이 있는 사유의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 국가에서 저자가 관심을 보였던 부분은 최근 지구촌 국가들이 향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체제에 대하여 대립각을 세웠던 진보 좌파세력의 부침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서의 저자의 활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글 순서는 방문순서와는 무관하게 저자의 관심사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쿠바가 제일 먼저 다룬 것은 아마도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잘 버텨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쿠바의 곳곳에서 숨어 있는 미국의 흔적들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심정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게바라의 뜨거운 정신은 없고 게바라를 팔아 외화벌이로 연명하고 있는 쿠바의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쿠바가 이렇게라도 돈을 버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했다.(36쪽)” 어때서일까요?
미국이나 유럽이 라틴아메리카에 대하여 취해온 바에 대하여 지나치게 민감해 보이는 대목은 베네주엘라에서 콜럼버스의 동상이 내려진 것에서 볼 수 있는데, 저자는 굳이 콜럼버스기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정복’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콜럼버스는 당시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발견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정복사업은 다른 스페인 사람들이 총대를 맺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구바의 의료인들이 베네주엘라에서 국제연대차원의 무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적은 것도 사실과 다른 것입니다. 사실 쿠바가 의료진을 파견하는 대신 베네주엘라로부터 석유를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5월 광장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 1976년의 ‘더러운 전쟁’을 벌인 독재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5월의 어머니회의 강령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첫째, 우리의 자식들은 죽은 것이 아니고 현재의 민주화 운동 속에 살아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체발굴을 거부한다. 모든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모두 우리 자식들이다. 둘째, 우리는 어떠한 기념물 건립도 반대한다. 기념물 건립은 우리 자식들의 민주화 투쟁 정신을 화것화시켜 건축물과 돌 속에 가두는 것이다. 우리 자식들의 정신은 기념물이 아니라 현재의 투쟁을 통해 기념되고 계승되어야 한다. 셋째, 우리는 어떠한 금전 보상도 거부한다. 생명은 생명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지 어떠한 금전으로도 대치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을 금전으로 격하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118-119쪽)”
눈에 띄는 대목은 2007에 나온 책이라서인지 김대중정부에서 노무현정부로 이어지면서 대한민국 역시 날로 심화되어가고 있는 사회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무비판적으로 도입한 신자유주의에 매몰되어있다는 비판입니다. 이어서 보수정권이 들어섰을 때 진보세력들은 책임을 보수세력에게 떠밀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아즈텍문명의 인신공양이 관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는 점을 짚으려합니다. 유카탄반도의 치첸이사에 있는 세노테에서 저자는 ‘가뭄 같은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해 산 사람을 우물에 던져 넣던 야만성을 끔찍하게 느껴졌다(240쪽)’라고 적은 반면, ‘자신과는 다르다는 이유(특히 인신공양)로, 원주민을 쳐부숴야 할 야만으로 단정해 강제로 기독교와 서구문명을 심으려 했던 스페인의 행동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247쪽)'라고 했습니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문명을 비판하는 일은 역시 조심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족이 될 듯합니다만,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최근 우경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심지어 제가 방문했던 페루에서는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나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4월에 치러진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고 6월의 결선투표를 남기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