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평전
다니엘 살바토레 시페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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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움베르토 에코의 부음이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들처럼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작품을 읽을 수 없다는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가운데 읽은 것보다 읽지 않는 것이 더 많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의 작품은 때로 인내심이나 집중력을 시험하는 듯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다니엘 살바토레 시페르의 <움베르토 에코 평전>을 읽게 된 것도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에 대한’ 부분이 빠져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흔히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작가, 그리고 기호학자, 역사학자’로 소개됩니다만, 이 책에서는 ‘미학사가, 기호학자, 문학 비평가, 매스 미디어 사회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설명합니다. 아마도 그의 글쓰기 여정에 따라 만들어진 호칭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에코가 쓴 글에 일관적으로 깃들여 있는 정신을 규명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미의 역사; http://blog.joins.com/yang41213508185>, <추의 역사; http://blog.joins.com/yang412/13595766>, <긍극의 리스트; http://blog.joins.com/yang412/13493806>등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 같습니다만, 에코의 저작은 우선 다양하고 방대한 지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움베르토 에코 평전>에서 에코의 글쓰기를 미학적 단계, 기호학적 단계, 문학적 단계로 구분하였습니다. 에코의 글쓰기는 중세미학의 연구로 시작했습니다. 1954년 통과한 박사학위 논문을 1956년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적 문제>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한 것이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관심이 미학에서 기호학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중세미학을 연구하면서 전위적 경향의 작가와 예술가를 접촉하면서 제임스 조이스를 재발견하게 되었고, ‘중세에 대한 애정과 현대성에 대한 열정이라는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양극 사이를 오가야 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기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작가로의 변신은 현실적인 이유로 이탈리아 텔레비전 방송의 교양프로그램제작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큰 미술관에 가보면 르네상스 시대와 중세시대의 미술작품들은 한눈으로 보아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선이 분명하고 채색도 단순하며, 원근감도 없으니 그림을 볼 줄 모르는 제가 보기에는 촌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저와 같은 사람을 향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에코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미학이 결여된 시대는 중세가 아니었다. 오히려 현대 세계가 너무 협소한 의미의 미학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43쪽)”라고 했답니다. 제가 생각해도 현대미술이 중세미술보다 나은 점이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종교중심의 중세시대 미학의 관점은 신이 현현하는 순간으로 간주했음에도 불구하고 토마스 아퀴나스로 대표되는 중세에 미적관조개념이 존재했다고 에코는 보았던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에 대한 분석은 1962년 출간된 <열린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데,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과 조이스의 <피니건의 경야>를 비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기호학에 관한 에코의 저작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읽어본 작품이 없는 까닭에 쉽게 와닿지 않더라는 말씀으로 건너 뛰겠습니다.


문학적 단계에서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그리고 <전날의 섬>을 다루었습니다. 모두에서 저자는 <장미의 이름>이 탄생과정을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한 이유를 분석합니다.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프라하의 봄을 녹여내려는 이유였을 것 같기도합니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에서 배경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당시 여건상 면책의 빌미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합니다만, 에코가 굳이 이런 방식을 인용한 까닭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중세판 탐정놀이를 다룬 <장미의 이름; http://blog.joins.com/yang412/12891200>에는 다양한 트릭이 숨겨 있습니다만, 그 안에는 보르헤스의 ‘도서관’과 ‘미로’의 개념이 숨겨져 있을 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까지 연계하는 놀라운 확장성을 보여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에코의 작품들, 작품관에 대한 비평서인만큼 읽어내는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만, 그의 작품들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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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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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미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온 ‘세상의 모든 아침’의 진정한 의미가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Tous les matins du monde sont sans retour)(124쪽)”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17세기 비올라 다 감바의 거장 생트 콜롱브의 예술혼을 그려낸 <세상의 모든 아침>을 읽고서야 말입니다. 파스칼 키냐르는 이 작품을 통하여 ‘현재진행형’의 상실을 은유하고 환유했다고 옮긴이는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 의미가 참 난해한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유명한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였던 마랭 마레의 스승이었다는 생트 콜롱브가 비올라 다 감바에 현을 하나 덧붙여 더 깊은 저음을 연주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콜롱브씨는 아내가 죽은 다음에 비올라 다 감바에 빠져드는데,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자연 자체를 비올라 다 감바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죽은 아내를 불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는 기술을 배우고자 찾아온 마렝 마라의 연주가 끝나자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는 몸의 자세를 알고 있네. 연주에 감정도 부족하지 않고, 가볍게 활을 놀리고 잘도 퉁기지. 왼손은 다람쥐처럼 날쌔고, 생쥐처럼 잘도 내빼지. 꾸밈음은 기가 막히고 때론 매력적이지. 하지만 난 음악은 듣지 못했네(52쪽)” 즉 기교는 훌륭하지만 진정한 음을 연주해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로 받아주었지만, 그가 왕 앞에서 연주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내치고 말았습니다. 왕으로부터 궁정악장으로 초대받았던 생트 콜롱브씨가 거절했던 것은 진정한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스승으로부터 내쳐진 마랭 마라를 사랑한 큰 딸 마들렌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연주기술을 전수합니다. 결국 아버지에게 들켜서 사단이 나지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바람에 봉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왕의 궁정악단에 들어가게 된 마랭 마라는 마들렌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상심한 마들렌은 오래 앓게 되고, 그녀를 찾아온 마랭 마라가 연주하는 「꿈꾸는 여인」을 듣고는 목을 매 세상을 하직합니다.


작가는 생트 콜롱브씨를 통하여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는 자세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활을 켤 때 내가 찢는 것은 살아 있는 내 작은 심장조각이네. 내가 하는 건 어떤 공휴일도 없이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거네. 그렇게 내 운명을 완성하는 거지.(75쪽)” 어쩌면 아내의 죽음이 생크 콜롱브씨의 이런 삶을 결정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서 그녀를 다시 불러낼 수 있는 방편으로서 비올라 다 감바를 경지에 이르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든 아버지의 사랑은 지고지순한데 반하여 마들렌과 동생 투아네트의 사랑은 그저 경박해 보이기만 합니다.


배움의 과정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마랭 마라 역시 어느 날 자신이 쌓아온 음악적 성취가 덧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스승의 집을 엿보던 그는 누구냐고 묻는 스승에게 ‘궁을 도망쳐 음악을 찾는 이요’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음악에서 무엇을 찾으시오?’라는 질문에는 ‘회한과 눈물을 찾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제자는 마지막 수업을 청하고, 스승은 첫 수업을 베풀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음악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왕도, 신도, 귀도, 황금도, 영광도, 침묵도, 경쟁자도, 사랑도, 회한도, 단념도, 죽은자도 아닌 자신을 태우는 일이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눈물들」과 「카론의 배」, 를 비롯한 「회한의 무덤」, 전체를 연주합니다. 두 사람을 마주보고 눈물을 흘리다가 웃게 됩니다. 콜롱브씨는 자신의 연주를 이해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 작품을 통하여 작가는 언어가 아니라 언어의 근원에 닿아야 한다고 옮긴이는 해설을 마무리합니다. 그러면서 언어의 근원이 무엇이고,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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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 떠나는 동유럽 지중해 배낭여행
조주영 지음 / 한비미디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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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눈에 띈 책입니다. 하지만 여행 자체보다는 특별한 목적이 있는 여행의 기록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꿈을 찾아 떠나는 동유럽, 지중해 배낭여행>은 2011년에 아침편지 문화재단이 주도한 동유럽과 발칸을 연결하여, 인천-체코-오스트리아-헝가리-루마니아-그리스-독일-인천으로 돌아오는 여정입니다. 아침편지를 받아보는 분들이 지원하여 65명의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참가자를 6명의 스태프가 인솔하여 다녀왔다고 합니다.


여정에 흩어져 있는 유적에 관한 이야기는 지나칠 만큼 소략하다는 인상입니다. 그밖에도 명상, 마라톤, 길거리 특강 등 다양한 내용의 활동이 곁들여져있어서 단순한 여행기라고 보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렸던것입니다. 다르게 표현을 하자면 담은 내용이 다양하여 초점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진들은 사진작가 백운수님의 작품인 까닭에 좋은 질을 자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 가면 꼭 그런 위치에서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밖에는 내용이 특이하다고 할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자기성장노트는 아마도 여행에 참가한 분들을 위하여 제시되었던 것들을 정리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과정을 굳이 동유럽까지 가서 해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때로는 편향된 시각이 노정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루마니아를 여행하면서 국민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동방정교가 개신교를 핍박하고 있다고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구체적인 정황이 없어 이해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개신교가 다른 종교에 대하여 우호적인가하는 점도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발칸반도는 동방정교, 이슬람, 가톨릭 그리고 개신교 사이의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스만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종교 간의 갈등이 심하지 않았던 것인데, 근대로 넘어오면서 민족 사이의 갈등이 종교에 투사되어 심화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GMO 농산물에 대한 문제제기의 배경에는 미국과 유럽 사이의 곡물무역의 힘겨루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단은 안전하다는 것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잠정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유럽 쪽인 듯합니다. 때로는 확인되지 않은 사안도 섞여 있는 듯해서 가려 읽어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물 관리를 잘하는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왕이었다(218쪽)’라고 했지만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의 물사정은 그리 심각한 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을 다스리는 문제는 중국의 요순시대에 이은 하나라의 우왕이 치수에 성공함으로써 우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침편지에 관계하시는 분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인지 아침편지의 내용을 비롯하여 다양한 출처의 좋은 말을 인용하고 있는 것도 생활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70명이나 되는 큰 여행단에 끼어서 움직이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70명을 상대로 유적을 설명하면 다 알아들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구요. 무슨 일을 해도 일사분란하기가 쉽지 않을 터이니 말입니다. 여행사 상품을 주로 활용하는 제 생각으로는 대체적으로 20명이 안되는 규모가 딱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행과는 사이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에게 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 주최측이 있는 단체여행이면서 배낭여행이라는 제목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15박 16일의 긴 일정도 쉽지 않을 듯하구요.


다양한 크기의 사진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만, 지나치게 큰 사진들이 많은 편이고, 반면에 글씨의 크기는 작아서 읽어내기가 어려운 점은 편집상의 문제라고 보입니다. 책이 큰 것도 읽기에 불편한 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복되는 사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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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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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프리카에 대한 공부를 시작합니다. 책 제목 그래도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가 되는 셈입니다. 그야말로 아프리카를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처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개관하고 있습니다.


모두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먼저 제1장은 전 5억5천만년전부터 기원전 약5천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다루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졌던 대륙이며, 원시인류가 처음 등장했던 곳, 그리고 그 인류가 사용했던 언어들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제2장은 기원전 5천년부터 서기 약 1500년까지, 나일강을 둘러싸고 찬란하게 꽃피웠던 이집트와 누비아사람들의 문명을 다루었고, 그밖에도 대륙에 흩어져 있던 종족들 이야기, 신앙과 종교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제3장은 서기 약 1500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입니다. 유럽제국들이 아프리카를 제멋대로 농단을 하던 시기입니다. 아프리카로서는 가장 아프고 슬픈 역사부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제4장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프리카 제국들이 해방을 맞은 뒤 보낸 격랑의 시기입니다. 아프리카를 지배했던 유럽에 기대어 폭력과 독재를 펼치면서 사욕을 채우던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드물게는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헌신한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부족들 간의 치열한 전쟁이 있었고, 에이즈라는 끔찍한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그밖에도 가뭄이라는 재해까지, 온갖 나쁜 일은 모두 겪는 힘든 시기가 되었습니다.


방대한 대륙의 장대한 역사를 한권에 담으려다 보니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설명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어 지역별 역사의 상세한 부분까지는 정리할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메리카대륙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아프리카 역사도 유럽인들의 시각으로 설명되어 왔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무지하기 때문에 마구 다루어도 되고, 종교적으로도 문제가 많아서 개종시켜 구원받도록 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아프리카의 영성과 종교성의 전통이야말로 아주 다양하며 그들의 삶과 밀착되어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오만한 생각이라고 지적합니다.


아프리카의 비극은 인도로 향하는 동방항로를 개척하던 포르투갈이 아프리카의 서쪽 해안을 돌아내려가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겨루던 북아프리카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고, 신기한 모습의 이들을 유럽대륙으로 끌고가 구경거리를 삼았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다음에 원주민들이 격감하면서 노동력이 귀해지자 아프리카 사람들을 아메리카대륙으로 끌고가 노예로 부려먹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산업사회로 이전해가면서 아프리카대륙은 원료의 공급처이자 상품의 소비처로 인식하고, 그야말로 착취의 대상으로 간주하였던 것입니다. 유럽 각국들은 아프리카사람들과 그들의 땅을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싸우고, 그 싸움에 아프리카 사람들을 동원하여 서로 피해를 입히는 뻔뻔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이와 같은 유럽사람들의 인식에 대하여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아프리카의 성자로 알려진 슈바이처박사에 대하여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면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그에게 아프리카 사람들은 대등한 동반자가 아니었다. ‘나는 너의 형제다. 그러나 너의 형이다’라는 것이 그가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설명할 때 쓴 말이었다.(155쪽)”라는 정도로 완곡한 표현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저자가 에이즈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고 있는 까닭에 에이즈 예방과 피해자는 돌보는 일에 대한 설명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아프리카 어린이들에 대한 학대 문제도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상세함을 부족하나 아프리카의 문제를 전반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좋은 책읽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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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여행법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마스무라 에이조 사진,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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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도 노벨문학상 시즌이 다가오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만, 전혀 예상치 못한 밥 딜런이 수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들이 무수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표작이라는 <상실의 시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고, 오직 <1Q84>가 유일한 것 같습니다. <하루키의 여행법>은 2002년에 초판이 소개된 이후로 지난 해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는 새로운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변경(邊境. 近境)>이라는 이 책의 원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느낌입니다. 아마도 이 책의 첫머리에 붙인 작가의 말 제목이 ‘나의 여행법: 여행하면서 쓰고, 쓰면서 여행한다’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기획된 것이 아니라, 청탁을 받거나 혹은 투고했던 여행기를 묶어 역은 것입니다. 「이스트햄프턴」은 1991년에 신용카드회사의 사보편집자로부터 청탁을 받고 다녀온 여행이며, 「무인도, 까마귀 섬의 비밀」은 1990년 8월, 「멕시코 대여행」은 1992년 7월에 <마더 네이처스>에, 「우동 맛여행」은 1990년에 잡지 <하이패션>의 청탁으로, 「노몬한의 철의 묘지」는 1994년 <마르코폴로>라는 잡지의 청탁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질러」는 1995년 잡지 <신라>에, 그리고 「고베까지의 도보여행」는 1997년에 다녀온 여행기를 지면을 얻지 못해 여기에 묶었다고 적었습니다.


‘나의 여행법’에서 작가는 “여행기를 쓰는 것은 나에게 매우 귀중한 글쓰기 수업이 되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행기란 대개의 사람들이 연애를 하는 것과 같은 문맥으로 써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행이란 건 참으로 즐거운 것이구나.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라는 느낌이 들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 수록된 여행기들은 여행과정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주요 뼈대로 하고, 자신의 느낌을 조금 얹어 놓고 있습니다. 호기심이나 감동보다는 의문이 일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여행이란 위험하고 힘들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도 몇 개의 여행기를 적었습니다만, 여행의 목적에 따라서 다양한 문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정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노몬한의 철의 묘지」는 <태엽 감는 새>에서 다루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 다녀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노몬한은 1939년 만주에 주둔한 일본군과 소비에트 몽고 인민공화국 연합군 사이에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의 현장인데, 당시 일본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태평양전쟁에 앞서 있었던 국지전 성격의 이 전투에 대한 기록이 그리 많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런 역사의 현장에 다녀오면서 작가는 오가는 동안 고생했던 이야기, 현장을 지키는 몽고군의 흩어진 군기 등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간혹 섞어 넣은 노몬한 전투에 대한 작가의 판단은 모호하기가 그지없습니다. 타국을 점령하고 전쟁을 일으킨데 대한 ‘사죄의 염’ 같은 것은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노몬한 전투는 근대 일본이 외부세력에 의하여 완벽하게 격파당한 최초의 체험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군 지도부는 그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였다고 지적합니다. 이후 남방으로 진출한 일본군은 2만이 죽은 노몬한의 백배나 되는 200만이 넘는 전사자를 냈다는 것입니다. 그런 죽음은 운 나쁘게도 의미없는 소모품이었다는 것입니다. 전후 일본인들은 전쟁을 증오하고 평화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과연 자발적으로 그렇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몬한에서 작가가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은 일본이 본질적으로 변했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55년 전의 광기가 언제가 다시 분출되지나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평범한 일본인들이 다시 소모품이 되어 죽음을 맞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전후 일본은 철저한 자기반성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대미문의 원폭을 맞은 비운의 주인공으로 스스로를 치장하고 그 속에 숨어버림으로서 전쟁의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할 기회를 차버렸던 것입니다. 주변 국가들이 일본의 광기는 여전히 숨을 죽이고 잠복해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길을 버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그의 여행기는 신변잡기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책읽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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