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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평전
다니엘 살바토레 시페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올해 초 움베르토 에코의 부음이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들처럼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작품을 읽을 수 없다는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가운데 읽은 것보다 읽지 않는 것이 더 많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의 작품은 때로 인내심이나 집중력을 시험하는 듯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다니엘 살바토레 시페르의 <움베르토 에코 평전>을 읽게 된 것도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에 대한’ 부분이 빠져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흔히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작가, 그리고 기호학자, 역사학자’로 소개됩니다만, 이 책에서는 ‘미학사가, 기호학자, 문학 비평가, 매스 미디어 사회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설명합니다. 아마도 그의 글쓰기 여정에 따라 만들어진 호칭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에코가 쓴 글에 일관적으로 깃들여 있는 정신을 규명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미의 역사; http://blog.joins.com/yang41213508185>, <추의 역사; http://blog.joins.com/yang412/13595766>, <긍극의 리스트; http://blog.joins.com/yang412/13493806>등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 같습니다만, 에코의 저작은 우선 다양하고 방대한 지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움베르토 에코 평전>에서 에코의 글쓰기를 미학적 단계, 기호학적 단계, 문학적 단계로 구분하였습니다. 에코의 글쓰기는 중세미학의 연구로 시작했습니다. 1954년 통과한 박사학위 논문을 1956년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적 문제>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한 것이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관심이 미학에서 기호학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중세미학을 연구하면서 전위적 경향의 작가와 예술가를 접촉하면서 제임스 조이스를 재발견하게 되었고, ‘중세에 대한 애정과 현대성에 대한 열정이라는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양극 사이를 오가야 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기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작가로의 변신은 현실적인 이유로 이탈리아 텔레비전 방송의 교양프로그램제작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큰 미술관에 가보면 르네상스 시대와 중세시대의 미술작품들은 한눈으로 보아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선이 분명하고 채색도 단순하며, 원근감도 없으니 그림을 볼 줄 모르는 제가 보기에는 촌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저와 같은 사람을 향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에코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미학이 결여된 시대는 중세가 아니었다. 오히려 현대 세계가 너무 협소한 의미의 미학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43쪽)”라고 했답니다. 제가 생각해도 현대미술이 중세미술보다 나은 점이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종교중심의 중세시대 미학의 관점은 신이 현현하는 순간으로 간주했음에도 불구하고 토마스 아퀴나스로 대표되는 중세에 미적관조개념이 존재했다고 에코는 보았던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에 대한 분석은 1962년 출간된 <열린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데,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과 조이스의 <피니건의 경야>를 비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기호학에 관한 에코의 저작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읽어본 작품이 없는 까닭에 쉽게 와닿지 않더라는 말씀으로 건너 뛰겠습니다.
문학적 단계에서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그리고 <전날의 섬>을 다루었습니다. 모두에서 저자는 <장미의 이름>이 탄생과정을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한 이유를 분석합니다.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프라하의 봄을 녹여내려는 이유였을 것 같기도합니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에서 배경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당시 여건상 면책의 빌미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합니다만, 에코가 굳이 이런 방식을 인용한 까닭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중세판 탐정놀이를 다룬 <장미의 이름; http://blog.joins.com/yang412/12891200>에는 다양한 트릭이 숨겨 있습니다만, 그 안에는 보르헤스의 ‘도서관’과 ‘미로’의 개념이 숨겨져 있을 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까지 연계하는 놀라운 확장성을 보여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에코의 작품들, 작품관에 대한 비평서인만큼 읽어내는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만, 그의 작품들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