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여행법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마스무라 에이조 사진,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금년에도 노벨문학상 시즌이 다가오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만, 전혀 예상치 못한 밥 딜런이 수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들이 무수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표작이라는 <상실의 시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고, 오직 <1Q84>가 유일한 것 같습니다. <하루키의 여행법>은 2002년에 초판이 소개된 이후로 지난 해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는 새로운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변경(邊境. 近境)>이라는 이 책의 원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느낌입니다. 아마도 이 책의 첫머리에 붙인 작가의 말 제목이 ‘나의 여행법: 여행하면서 쓰고, 쓰면서 여행한다’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기획된 것이 아니라, 청탁을 받거나 혹은 투고했던 여행기를 묶어 역은 것입니다. 「이스트햄프턴」은 1991년에 신용카드회사의 사보편집자로부터 청탁을 받고 다녀온 여행이며, 「무인도, 까마귀 섬의 비밀」은 1990년 8월, 「멕시코 대여행」은 1992년 7월에 <마더 네이처스>에, 「우동 맛여행」은 1990년에 잡지 <하이패션>의 청탁으로, 「노몬한의 철의 묘지」는 1994년 <마르코폴로>라는 잡지의 청탁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질러」는 1995년 잡지 <신라>에, 그리고 「고베까지의 도보여행」는 1997년에 다녀온 여행기를 지면을 얻지 못해 여기에 묶었다고 적었습니다.


‘나의 여행법’에서 작가는 “여행기를 쓰는 것은 나에게 매우 귀중한 글쓰기 수업이 되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행기란 대개의 사람들이 연애를 하는 것과 같은 문맥으로 써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행이란 건 참으로 즐거운 것이구나.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라는 느낌이 들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 수록된 여행기들은 여행과정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주요 뼈대로 하고, 자신의 느낌을 조금 얹어 놓고 있습니다. 호기심이나 감동보다는 의문이 일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여행이란 위험하고 힘들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도 몇 개의 여행기를 적었습니다만, 여행의 목적에 따라서 다양한 문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정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노몬한의 철의 묘지」는 <태엽 감는 새>에서 다루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 다녀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노몬한은 1939년 만주에 주둔한 일본군과 소비에트 몽고 인민공화국 연합군 사이에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의 현장인데, 당시 일본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태평양전쟁에 앞서 있었던 국지전 성격의 이 전투에 대한 기록이 그리 많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런 역사의 현장에 다녀오면서 작가는 오가는 동안 고생했던 이야기, 현장을 지키는 몽고군의 흩어진 군기 등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간혹 섞어 넣은 노몬한 전투에 대한 작가의 판단은 모호하기가 그지없습니다. 타국을 점령하고 전쟁을 일으킨데 대한 ‘사죄의 염’ 같은 것은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노몬한 전투는 근대 일본이 외부세력에 의하여 완벽하게 격파당한 최초의 체험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군 지도부는 그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였다고 지적합니다. 이후 남방으로 진출한 일본군은 2만이 죽은 노몬한의 백배나 되는 200만이 넘는 전사자를 냈다는 것입니다. 그런 죽음은 운 나쁘게도 의미없는 소모품이었다는 것입니다. 전후 일본인들은 전쟁을 증오하고 평화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과연 자발적으로 그렇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몬한에서 작가가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은 일본이 본질적으로 변했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55년 전의 광기가 언제가 다시 분출되지나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평범한 일본인들이 다시 소모품이 되어 죽음을 맞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전후 일본은 철저한 자기반성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대미문의 원폭을 맞은 비운의 주인공으로 스스로를 치장하고 그 속에 숨어버림으로서 전쟁의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할 기회를 차버렸던 것입니다. 주변 국가들이 일본의 광기는 여전히 숨을 죽이고 잠복해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길을 버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그의 여행기는 신변잡기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책읽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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