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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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미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온 ‘세상의 모든 아침’의 진정한 의미가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Tous les matins du monde sont sans retour)(124쪽)”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17세기 비올라 다 감바의 거장 생트 콜롱브의 예술혼을 그려낸 <세상의 모든 아침>을 읽고서야 말입니다. 파스칼 키냐르는 이 작품을 통하여 ‘현재진행형’의 상실을 은유하고 환유했다고 옮긴이는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 의미가 참 난해한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유명한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였던 마랭 마레의 스승이었다는 생트 콜롱브가 비올라 다 감바에 현을 하나 덧붙여 더 깊은 저음을 연주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콜롱브씨는 아내가 죽은 다음에 비올라 다 감바에 빠져드는데,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자연 자체를 비올라 다 감바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죽은 아내를 불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는 기술을 배우고자 찾아온 마렝 마라의 연주가 끝나자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는 몸의 자세를 알고 있네. 연주에 감정도 부족하지 않고, 가볍게 활을 놀리고 잘도 퉁기지. 왼손은 다람쥐처럼 날쌔고, 생쥐처럼 잘도 내빼지. 꾸밈음은 기가 막히고 때론 매력적이지. 하지만 난 음악은 듣지 못했네(52쪽)” 즉 기교는 훌륭하지만 진정한 음을 연주해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로 받아주었지만, 그가 왕 앞에서 연주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내치고 말았습니다. 왕으로부터 궁정악장으로 초대받았던 생트 콜롱브씨가 거절했던 것은 진정한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스승으로부터 내쳐진 마랭 마라를 사랑한 큰 딸 마들렌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연주기술을 전수합니다. 결국 아버지에게 들켜서 사단이 나지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바람에 봉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왕의 궁정악단에 들어가게 된 마랭 마라는 마들렌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상심한 마들렌은 오래 앓게 되고, 그녀를 찾아온 마랭 마라가 연주하는 「꿈꾸는 여인」을 듣고는 목을 매 세상을 하직합니다.


작가는 생트 콜롱브씨를 통하여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는 자세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활을 켤 때 내가 찢는 것은 살아 있는 내 작은 심장조각이네. 내가 하는 건 어떤 공휴일도 없이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거네. 그렇게 내 운명을 완성하는 거지.(75쪽)” 어쩌면 아내의 죽음이 생크 콜롱브씨의 이런 삶을 결정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서 그녀를 다시 불러낼 수 있는 방편으로서 비올라 다 감바를 경지에 이르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든 아버지의 사랑은 지고지순한데 반하여 마들렌과 동생 투아네트의 사랑은 그저 경박해 보이기만 합니다.


배움의 과정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마랭 마라 역시 어느 날 자신이 쌓아온 음악적 성취가 덧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스승의 집을 엿보던 그는 누구냐고 묻는 스승에게 ‘궁을 도망쳐 음악을 찾는 이요’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음악에서 무엇을 찾으시오?’라는 질문에는 ‘회한과 눈물을 찾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제자는 마지막 수업을 청하고, 스승은 첫 수업을 베풀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음악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왕도, 신도, 귀도, 황금도, 영광도, 침묵도, 경쟁자도, 사랑도, 회한도, 단념도, 죽은자도 아닌 자신을 태우는 일이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눈물들」과 「카론의 배」, 를 비롯한 「회한의 무덤」, 전체를 연주합니다. 두 사람을 마주보고 눈물을 흘리다가 웃게 됩니다. 콜롱브씨는 자신의 연주를 이해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 작품을 통하여 작가는 언어가 아니라 언어의 근원에 닿아야 한다고 옮긴이는 해설을 마무리합니다. 그러면서 언어의 근원이 무엇이고,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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