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 4 로마제국 쇠망사 4
에드워드 기번 지음, 운수인.김혜진.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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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4>에서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이탈리아반도를 무대로 다양한 민족들의 각축전과 유스티니아누스황제의 동로마제국의 서방정복운동 등을 다루었습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이탈리아반도에 진입한 민족들로는 동고트, 프랑크, 롬바르드족, 반달족 등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테오도리크왕이 다스리던 시절 동고트족이 로마를 점령하는 등 빠르게 기세를 올리던 것처럼 그의 사후 빠르게 무너져 금세 흔적조차 없이 사윈 것을 보면 과거 한 나라의 운명은 지도자의 영명함에 달려있던 것 같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4>을 읽고 앎을 수정한 부분은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반도로 이동하게 된 전후사정입니다. 훈족이 도나우강 유역을 점령함에 따라 이동한 것이 아니라, 소멸한 훈족의 자리에 역시 동쪽으로부터 이동해온 아바르족이 도나우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벌어진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아바르족은 6세기 무렵 카프카스지역에 처음 등장하여 빠르게 서진하여 판노니아(지금의 헝가리)를 차지하고 프랑크왕국과 국경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바르족의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초기에 서진한 훈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초기 아리안계 스키타이민족으로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나뉜 지 얼마되지 않아 서로마제국이 멸망하였는데, 그 당시 동로마제국이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지 않은 이유를 풀지 못하였습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로마사람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고트족이 로마의 고대 유적을 파괴했다고 비난하지만 사실은 그들은 정복한 나라의 기념물을 보존하고, 주민들의 삶을 안정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감사할 줄 몰랐던 백성들은 이 고트족 정복자의 출신이나 종교, 그의 덕성까지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과거의 재난은 잊혀졌고, 로마인들은 평온한 현실 곳에서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피해의식만 더욱 예민하게 느꼈던 것(27쪽)”이라고 저자는 잘라 말합니다.


<로마제국 쇠망사4>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재위기간(527년부터 565년) 동안 아프리카의 카르타고를 차지하고 있던 반달족의 왕위계승전쟁에 개입하거나, 고트족이 차지하고 있던 로마를 정복하였으며, 사산조 페르시아와도 전쟁을 벌이는 등 제국의 영토를 확장했고, 법전을 편찬하고, 하기아 소피아성당을 재건하는 등 다양한 업적을 쌓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정복전쟁에 나서 혁혁한 전과를 세운 벨리사리우스장군을 끊임없이 견제하였다는 점입니다. 요즈음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도깨비>에서 전공을 세우고 돌아온 장군을 죽음으로 내모는 왕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서는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역사를 보면 군에서 인정받은 장수가 황제에 오른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공이 큰 장군에 대한 황제의 불안이 컸을 것 같습니다.


로마제국의 쇠망을 이야기하면서 멸망한 서로마제국을 차지한 동고트족의 치세와 롬바르드족의 치세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고 쳐도(서로마제국의 영토가 결국 동로마제국에 편입되기 때문에) 호스로우왕 재위시기의 페르시아의 국내정세를 한 장에 걸쳐 설명한 것은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4>에서 주목할 부분은 마지막 장입니다. 그리스도교 내부에서 예수의 성격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은 세력들끼리 끔찍할 정도로 갈등을 빚은 역사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네스토리우스파, 야고보파, 마론파, 아르메니아파, 콥트파 등으로 갈려진 정황을 설명합니다. 종교적 논리를 해석함에 있어 차이를 해소하려는 공식회의가 몇 차례 있었지만, 내막을 보면 논의를 통하여 의견을 조율하기 보다는 권력에 기대어 상대편 세력을 무너트리려는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세력을 잃은 파벌은 몰살당하거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달아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생각해보니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만난 동굴교회 등 숨어서 교의를 지킨 그리스도교 사람들이 이슬람교 등 이민족이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교의 탄압을 피해 숨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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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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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기욤 뮈소의 팬인 덕분에 <센트럴 파크>, <구해줘> 등 그의 작품을 읽을 기회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센트럴 파크>의 조발성 알츠하이머병, <구해줘>의 죽음 등 의학을 소재로 주요 등장인물이 의사인 점 등이 특징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큰 아이의 관심을 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요즘 본방사수하고 있는 드라마 <도깨비>처럼 시간여행이나 저승사자 등은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역시 시간여행을 주제로 하고, 의사가 주인공인 점에서 뮈소의 다른 작품들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여행을 하는 방법은 다양한 것 같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방식은 과학이 발전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나온 방식 같습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면 미래로의 여행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당연히 과거로의 여행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시간이 왜곡되는 웜홀을 통하여 미래로 혹은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할 것으로 점쳐지기도 합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는 신비주의를 선택하였습니다. 캄보디아의 산골에서 가졌던 적십자사 의료봉사에서 만난 기인이 건넨 알약을 먹고 잠들면 과거의 시간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것입니다. 다만 과거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20여분에 불과한 것은 약물의 효능이 지속되는 시간과 수면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꿈을 꾸는 동안 일어난 가상의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과거의 시점의 자신과 주고받은 이야기의 흔적들이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면 꿈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시간여행자가 지켜야 할 원칙은 과거 시점에 일어난 일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 있습니다. 과거의 일에 개입하려들면 엄청난 힘이 방해하며, 개입하더라도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일종의 나비효과라고 할까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어머니 살해의 역설’입니다. 즉 과거로 돌아가 어머니를 살해하면 시간여행자 자신이 태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시간여행의 법칙을 무시하고 과거로 돌아가 자신을 만나는 것은 물론 과거의 자신이 알면 안되는 비밀을 알려주기까지 합니다. 처음에는 자신 때문에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게 된 연인을 다시 한 번 만나볼 수만 있다면 하는 소박한 희망을 가졌지만, 과거의 자신을 이해시키려다 보니 그녀의 죽음과 관련된 사고를 알려줄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죽음을 막지 못하자, 다시 시간여행을 떠나 그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수술을 직접 집도하는 무리수를 두기까지 합니다.


이런 상황은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 이후에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얻은 딸에 대한 사랑 역시 첫사랑과 견줄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는 이율배반적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인데, 현재의 자신이나 과거의 자신 모두 두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기는 합니다. 문제는 그로 인하여 첫사랑과 오래된 친구를 잃는 아픔을 감수할 정도로 무리수를 두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배신을 이해하지 못하던 절친이 둔 신의 한 수로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이루게 됩니다. 시간여행자가 과거의 사건을 바꾸면 현재의 상황도 변한다는 것을 이야기의 막바지에 극적으로 설명합니다. “집이 요동을 치고, 벽이 진동을 하더니 전구가 터지고, 꽃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일리나는 화들짝 놀라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확 빨아 당기는 힘이 느껴지며 그녀가 보는 앞에서 노트가 사라졌다. 진동은 점차 잦아들었고, 고양이도 천천히 숨어있던 곳에서 나와 애달픈 울음소리를 냈다.(327쪽)”


저도 가보았던 어부의 부두, 꽃길, 소살리토 등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거리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서 도저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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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초보 2017-06-01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어도 앤디를 얻고서 모두에게 진실을 알렸으면 좋지않았을까요 ㅠ

처음처럼 2017-06-03 18:38   좋아요 0 | URL

사실 시간여행이라는 것이 아직은 가상의 것이기 때문에 말씀하신대로 하면 좋았겠지만, 그러면 소설이 밍밍해지지 않았을까요?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송순섭 옮김 / 버티고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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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의 체코하면 프라하의 봄이 우선 떠오를 정도로 저항정신이 투철한 민족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나치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체코의 작은 도시의 역에서 점령군과 체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렸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흐르마는 수습과정에 있는 역무원입니다. 여자 친구와의 첫 경험에 실패하고는 자괴감에 빠져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소심한 성격입니다. 다행히 목숨을 구한 그는 치료를 받고 직장에 복귀하게 되는데, 역무원도 네명이 불과한 작은 역이지만, 전선으로 가는 독일군이나 보급품을 실은 군용열차나 전선에서 돌아오는 부상병을 실은 열차가 자주 지나갑니다.


소심한 흐르마지만 그의 할아버지는 프라하로 쳐들어오는 독일군 탱크에 맨손으로 맞선 유일한 체코사람이었습니다. 최면술사였던 할아버지는 당신의 최면으로 독일군들을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반면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의병제대한 증조할아버지는 평생 연금을 받으며 동네사람들에게 뻐기다가 얻어터지기 일쑤였다고 하니 4차원을 사는 집안이었던 모양입니다.


전선으로 가는 열차는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라고 열차운행표에 표시가 되어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열차가 예정보다 늦거나 하면 역무원들을 닦달하곤 했던 모양입니다. 역무원 몇 명 정도는 그 자리에서 총살을 해도 아무 문제될 게 없다고 할 정도로 점령군의 위세가 등등했던 것입니다. 흐르마는 자신에게 권총을 들이대고 기관차로 끌고 올라 간 친위대원의 모습에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잘생긴 사람들은 시를 쓰거나, 아니면 테니스를 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43쪽)” 사실 나치의 광란에 휩쓸렸던 독일 국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부추겨 전쟁터로, 강제수용소로 이끌어낼 수 있었던 방법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흐르마와 같이 근무하는 후비치카씨도 별난 행동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최근에는 같이 근무하는 전신기사 아가씨의 엉덩이에 역의 직인을 마구 찍는 사건을 저질러 조사를 받기도 합니다. 후비치카씨는 조사관이 오던날 밤에 운행하는 독일군의 엄중하게 감시받는 열차를 폭파시키는 일을 제안하고 흐르마는 선뜻 일을 맡기로 합니다. 거사 전에 자신감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폭탄을 전하러 온 빅토리아에게 특별한 부탁을 합니다. 역장부인에게 부탁했다가 자신은 이미 갱년기에 접어들었다면서 거절을 당했던 참이었습니다.


“이윽고 기관차가 내 밑을 지나갔다. (…) 열하나, 열둘, 열셋, 그 다음번 차량에, 들고 있던 폭탄을 마치 개울에 꽃송이를 던지는 것처럼 슬며시 아래로 떨어뜨렸다. 나는 정확하게 숫자를 세고 있다가, 목표 차량이 내 밑을 지나갈 때 그것을 던졌다. 폭탄은 투하하기로 정해진 차량의 한가운데에 정확히 떨어졌다. 그 작은 물건은 그곳에 있는 물건들과 함께 잠시 놓여 있다가, 이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를 송두리째 날려 버릴 것이다.(127쪽)”


흐르마와 같은 평범해 보이는 체코사람들까지도 점령군에 저항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저자는 ‘일어나, 저항하라’라고 체코사람들을 일깨우는 주문을 걸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마치 흐르마의 조부가 떨치고 일어나 독일군의 탱크 앞을 맨몸으로 가로막고서 “독일군은 탱크를 돌려 왔던 것으로 다시 돌아가라”라는 최면을 걸었던 것처럼, 공산당에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말입니다. 프라하의 봄은 그렇게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혀 영웅적으로 보이지 않는 보통의 체코 사람들의 핏속에서 잠자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구속하기 위한 전쟁에 나서는 일은 자의건 타의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기에 흐라발은 눈앞에서 죽어가는 독일군 병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집구석에 궁둥이나 붙이고 얌전히 앉아들 있을 일이지!(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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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 - 문학.신화.역사를 관통하는 조너선 실버타운의 실버과학에세이
조너선 실버타운 지음, 노승영 옮김 / 서해문집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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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리]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고른 책은 제목도 거창한 조너선 실버타운의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입니다. 치매를 공부하다보니 ‘잘 늙어가는 일’과 ‘잘 죽는 일’에도 관심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북소리]에서 이 주제들과 관련된 책을 자주 소개해드렸던 것 같습니다. 주제의 편향성에 대한 비판은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각설하고, 과연 늙는다는 것이 과연 우주적인 사건인지 톱아보겠습니다. 조너선 실버타운은 영국 오픈유니버시티에서 생태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생물학자입니다. 이 책에서 다양한 식물과 동물을 넘나들며 노화와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앎의 힘은 바로 그의 전공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핵심주제는 노화와 죽음, 즉 인간의 수명입니다.


6만 년 전의 네안델타르인의 기대수명은 20세이고, 고대 로마인은 27세였으며, 20세기 초의 미국인은 48세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세계인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70세를 돌파했고, 2015년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기대수명이 82.1세인 것처럼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80세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인간 수명은 극적으로 늘었는데, 왜 노화와 죽음은 멈추지 않을까? 진화가 후세를 남기는 개체를 선호한다면 왜 우리는 늙지 않는, 더 나아가 죽지 않는 존재로 진화하지 않을까?”라는 두 가지 의문을 내놓은 저자는 죽음, 수명, 유전, 진화, 식물 등의 영역으로 나누어 그동안의 과학적 연구 성과를 인용하여 쉽게 설명합니다. 즉, 이 책은 현대과학이 내놓은 대답들을 짜 맞춘 저자 나름대로의 모자이크라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부터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웨스트민스터사원은 영국이 불멸의 인물을 매장하는 곳입니다. 저자는 “이곳에서는 죽음과 후세가 같은 땅에 거하며, 위대한 예술과 과학적 이해가 필멸을 초월함을 우리에게 일깨운다.”라고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제프리 초서, 윌리엄 셰익스피어, 윌리엄 워즈워스,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T.S. 엘리엇, 헨리 제임스 등 영국 문학을 빛낸 이들은 물론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등과 같은 불멸의 과학자, 그리고 영국의 왕들, 주교들의 무덤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불멸의 인사들 사이에 필멸인 존재들의 흔적들이 넘쳐나는 것은 물론 때로는 불멸을 희롱하는 이도 생겨났던 모양입니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전을 세계 사람들에게 다시 알린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은 이곳을 방문하고서 “나는 생각했다. 이 수많은 무덤들은 굴욕의 보관함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이름의 불멸이란 얼마나 헛된 자랑거리인지!(21쪽)”라는 소감을 적었습니다.


인간은 불멸을 꿈꾸지만, 불멸을 두려워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제가 본방사수하고 있는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의 주인공 도깨비는 936년을 살아온 불멸의 존재인데, 도깨비신부를 찾아내 불멸을 끝내는 것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죽지 않는 사람」에서도 불멸의 존재가 된 주인공이 17세기에 걸쳐 살아고는 다시 죽는 존재가 되는 선택을 합니다. 죽을 운명의 모든 존재들에게는 모든 것이 회복할 수 없고 불안한 가치를 지니는데 반하여, ‘죽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들은 무한히 반복되는 일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상이 지겹게 반복되는 것이라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수 있기를 희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삶을 같이 했던 필멸의 존재들을 먼저 보내야 하는 아픔까지 겪어야 한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저자가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찾아낸 불멸과 필멸의 비밀에는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며, 두 번째는 세균입니다. 특히 시인구역에 묻힌 존 키츠, 브론테 자매,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D.H. 로런스 등은 결핵으로 일찍 죽음을 맞았던 것입니다. 저자는 병원성 세균 덕분에 수명의 진화적 의미를 깨닫기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세균은 세대기간이 매우 짧아서 엄청난 속도로 번식하고 진화할 수 있습니다. 세대기간이 짧은 대신 빠르게 진화하는 능력을 가진 세균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세균을 ‘극한친화성세균(extremophiles)’이라고 부르는데, 공기압보다 17,000배나 높은 압력에서도 살아남는 대장균, 영하15도에서 살아남은 크립포텐돌리토트롭스

(Crypotendolithotrophs), 섭씨 113도에서 황을 먹고사는 파이로코크스 퓨리오수스(pyrococcus furiosus)라는 세균도 있습니다. 다이노코크스 라디오듀란스(deinococcus radiodurans)는 이름대로 5백만 라드(rad)의 감마선을 쪼여도 살아남습니다. pH값이 0인 최고 산도에서 살아남은 세균, 땅속 900m에서 사는 세균도 있습니다.


이들이 살아남는 비결은 바로 짧은 수명과 세대기간에 있습니다. 수명이란 탄생과 죽음 사이의 평균 시간을 말하고, 세대기간은 태어나서 자식을 낳기까지의 시간을 말합니다. 세균은 분열을 통하여 번식하기 때문에 수명과 세대기간이 똑같은데 짧게는 30분에 불과한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인간의 세대기간은 약 20-25년인 반면 수명은 70-80년입니다. 세대기간이 짧으면 개체증식이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장점에 진화의 수레바퀴를 빨리 돌릴 수 있는 장점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진화 경쟁에서는 후손을 많이 남기는 개체가 최종 승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체마다 세대기간과 수명이 다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름대로의 개성을 지키기 위해서일까요?


저자는 노화와 장수에 대한 비밀을 이렇게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2장에서는 인간이 왜 세균처럼 단명하지 않는지 여러 종의 생물체를 비교합니다. 종을 지키려는 일관된 목표를 가진 생물체들이 진화의 수레바퀴를 어떻게 돌린 결과인지를 해석한 것입니다. 3장에서는 노화의 비밀을 캐고 노화를 없앤다면 우리는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지를 알아봅니다. 4장에서는 유전이 장수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모든 동물이 공유하고 있는 특정 유전자를 조작하면 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설명합니다. 5장에서는 식물이 장수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늘 자신을 새롭게 함으로써 오랫동안 존속하기 때문”에 식물이 가장 오래 살고 있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인용한 저자는 동물에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식물이 가지고 있어 장수를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6장에서는 일부 식물이 사실상 불멸을 누리고 있고, 유전자를 변형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죽음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설명합니다. 7장에서는 자살하는 동물의 사례를 들어서 죽음이 적응적인가 하는 의문을 살펴봅니다. 8장과 9장에서는 분자수준에서의 노화가 일어나는 기전을 살펴봅니다.


첫 번째 주제는 수명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의 몸집이 수명과 연관이 있다고 보았으나, 일반화하기에는 제한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까지 장수마을로 알려진 곳 역시 과장과 맹신에 따른 허구로 드러나고 있다고 합니다. 장수마을이 다른 곳과 비교해서 기대수명이 나을 것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극단적인 장수는 허영심, 사기, 위조, 고의적 오류 등으로 얼룩졌다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52쪽)라는 기네스북 편집자의 말을 새길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장수기록은 프랑스의 할머니 장 칼망인데 1977년 사망당시 122세 5개월 2주였다고 합니다. 40년이 지나도록 이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이 150세까지 사는 것은 쉽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의 평균 기대수명은 괄목할 정도로 늘어나 있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텍사스의대의 스티븐 어스태드교수와 시카고 일리노이대학의 스튜어드 제이 올샨스키교수 사이에 걸려있는 5억 달러짜리 내기는 올샨스키교수 쪽으로 기우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34년 뒤에 끝나는 내기의 결말을 제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저 역시 100수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가능할까 모르겠습니다.


장수하는 집안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입니다만, 그런 집안을 골라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장수하는 부모를 마치 스스로 고른 것처럼 적고 있습니다. 일단은 유머로 생각했지만, 후세를 위하여 장수하는 집안과 사돈을 맺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식물의 경우 한해살이가 있는가 하면 만년이 넘도록 살아있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동물의 경우는 그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아서 장수기록을 보유중인 대양백합조개도 450년이 고작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동식물 종은 수명이 훨씬 짧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종 사이에도 기대수명이 천차만별인 것을 보면 수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진화에 있음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즉 돌연변이를 통하여 획득한 변이가 자연의 선택을 받게 되면 개선된 능력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살이라는 주제는 당연히 죽음과는 관련이 있겠지만, 노화와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결국 단순하게 생명을 끊는다는 의미보다는 자손을 퍼트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번식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나니 생명을 이어갈 여력이 없어져 죽음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단회번식-저자는 빅뱅번식이라고도 표현합니다만-의 사례는 식물계나 동물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대나무도 꽃을 피우면 대밭 전체가 말라죽는다고 합니다. 태평양연어 역시 부화 후에 강을 따라 먼 바다로 내려가 성장한 다음, 모천으로 돌아와 산란을 하고는 죽음을 맞는데, 그 과정에서 모천을 둘러싼 동물 및 식물생태계에 어마어마한 기여를 한다는 것입니다.


전기 기타의 전설 지미 핸드릭스, 로큰롤의 여왕 제니스 조플린, 그리고 롤링스톤스의 멤버 브라이언 존스, 도어스의 짐 모리슨, 영국의 R&B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은 모두 27살에 죽음을 맞아 ‘27 클럽’회원이 되었습니다. 록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삶의 속도와 길이 사이의 역상관관계가 성립되는지를 확인하는 연구를 해본 통계학자도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처럼 20세기 초반에는 ‘삶의 속도 가설’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빨리 살면 일찍 죽는다’라고 할 수 있는데 열정을 쏟아 부어 살면 일찍 기력이 다하여 죽음을 맞는다는 가설이고, 한때 활성산소로 인한 노화이론으로 발전하는 듯하였습니다. 하지만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대사속도는 수명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열악한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면 수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저자는 신기(神氣)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마지막 장을 금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의 노래 「영원한 젊음」에 나오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때 / 그대의 가슴이 늘 기쁘길 / 그대의 노래가 늘 불리길 / 그대가 영원히 젊길”이라는 대목을 인용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밥 딜런의 이 노래는 자녀를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늙은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자녀가 언제까지 젊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노화를 치료하는 방법을 찾아 영생을 얻거나 혹은 장수를 얻겠다는 착상은 훌륭하지만, 구체화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 이유는 노화는 단일한 현상이 아니라 신체의 여러 체계가 전반적으로 부실해지면서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수명연장의 비법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는 결론을 맺었지만 또 다른 신기한 역설을 감춰두고 있었습니다. 소득격차가 작은 인구집단일수록 집단 전체의 기대수명이 크다는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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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전쟁과 교류 지중해 국가정보 시리즈 8
윤용수.최재훈 지음 / 이담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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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는 세 개의 대륙이 둘러싸고 있는 만큼 다양한 민족과 문명이 어우러지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문명의 충돌은 전쟁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지중해, 전쟁과 교류>는 지중해를 둘러싸고 벌어진 대표적인 전쟁들 가운데 고대, 근대, 현대의 대표적인 전쟁을 각각 뽑아서 그 양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고대의 대표적인 전쟁으로는 기원전 264년부터 기원전 146년 간에 세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반도의 로마제국과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사이에 벌어진 포에니 전쟁이 있습니다. 근대의 대표적인 전쟁으로는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이 팔레스타인의 기독교 성지를 둘러싸고 11세기부터 13세기 후반까지 벌인 9차례의 십자군전쟁을 꼽았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전쟁으로는 이스라엘의 독립과 관련한 중동전쟁과 레바논 분쟁 그리고 아랍의 봄과 관련한 리비아내전을 다루었습니다.


포에니전쟁은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신흥 로마제국이 지중해의 패권국 카르타고와 자웅을 가름한 전쟁으로 로마제국이 세 번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하였고, 카르타고라는 도시 자체가 지상에서 사라지고 만 불행한 전쟁이었습니다. 혹자는 카르타고가 최종 승리를 하였다면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만큼 카르타고는 합리적이었다는 것입니다. 5세기 초 훈족에게 쫓긴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이 카르타고 지역까지 이주하여 427년 왕국을 세웠는데, 455년 로마를 침략하여 함락시킨 바 있습니다. 당시 반달족의 약탈과 신성모독을 두고 반달리즘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주객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제2차 포에니전쟁 때는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코끼리를 몰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본토로 쳐들어가 로마 함락을 목전에 두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주춤거린 것이 결정적 패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로마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한니발을 후방 지원하던 히스파니아를 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한니발이 먼저 로마를 함락시켰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십자군전쟁은 셀주크 투르크 제국이 아나톨리아반도를 점령하자 동로마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1세가 로마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게 구원을 요청한 것이 발단이 되었던 것입니다. 동로마제국의 속셈은 대규모 병력의 파병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용병을 지원해달라는 것이었는데, 교황은 차제에 성지회복을 핑계로 동방정교회를 로마 가톨릭으로 흡수하려는 속셈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당시 셀주크제국은 예루살렘에서의 기독교인들의 종교활동에 제약을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며, 유럽의 기독교도들도 순례를 다녀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십자군의 속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1202년부터 1204년간에 진행된 제4차 십자군 원정으로 교황 인노첸시오3세의 촉구로 시작된 십자군 원정은 예정된 규모에 미치지 못하게 되면서 원정군을 수송하기로 한 베네치아와의 계약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베네치아는 원정군에게 달마치아에 있는 헝가리 영향권의 자다르를 굴복시켜달라는 요청으로 계약을 퉁치기로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비잔틴제국의 황위계승에서 밀려나 망명 중이던 알렉시우스 알겔루스 황태자의 부탁으로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혹자는 베네치아가 주도하여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다고도 합니다만, 십자군원정군과 비잔틴제국의 황태자 사이의 밀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중동전쟁은 사정이 매우 복잡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지역은 오랫동안 이슬람 국가가 지배해왔지만, 이슬람교인과 유대교인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공존관계를 유지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제국이 패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영국 등 유럽국가의 영향력이 커지고, 특히 유럽에 불어닥친 시오니즘의 영향으로 유럽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오면서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 1948년 영국의 주도로 이스라엘이 건국하면서 이 지역을 둘러싼 아랍세력과 이스라엘의 유대인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미묘한 국제정세를 타고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고, 결국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전쟁을 끝났지만 아직도 긴장관계는 제대로 수습되지 않고 남아 있는 형국입니다.


<지중해, 전쟁과 교류>는 지중해를 둘러싸고 명멸했던 다양한 문명,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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