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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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서 신경을 쓰던 맞춤법 문제는 한글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잘 읽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잘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좋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고른 책이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였습니다. 일단 제목부터 묘한 느낌을 주는데다가 글쓴이가 오랫동안 교정일을 해오신 분이라고 해서 믿음이 갔던 것입니다.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이라는 부제도 책을 고르는데 한몫을 했습니다.


‘문장을 다듬는 시간’이라는 제목의 머리말을 읽고, 일단 ‘좋은 읽기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이 쓴 문장이든 내가 쓴 문장이든 문장을 다듬는 일에는 정답이 없다”라는 서두가 느낌이 좋습니다. 교정일을 하다보면 ‘문장 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문장을 어색하게 만드는 표현’들을 만나게 된다고 합니다. 바로 그런 표현들을 공유하겠다는 생각에서 책을 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글쓰는 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인 셈입니다.


그런데 차례가 아주 복잡하게 되어있습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제목의 첫 번째 메일이 어떻다는 것인지,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라는 제목도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종잡을 수 없는 차례를 몇 줄 읽다가 일단 본문으로 넘어갔습니다. 몇 장을 넘기다보니, 저자가 교정작업을 하면서 겪은 특별한 사례에 관련된 사연을 문제가 있는 표현들을 설명하는 사이에 넣은 것입니다. 아마도 손볼 표현에 대한 설명만으로 이어갔더라면 마치 교과서처럼 무미건조한 책읽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어지는 글이 마지막에 가서는 커다란 반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글쓰는 일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 역시 몇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기는 했습니다만, 교정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편집자의 요청으로 삼교까지 제가 직접 보았던 것인데, 재미있는 것은 매번 원고의 앞부분은 붉은 색으로 뒤덮다시피 원고내용을 바꾸곤 하지만, 뒷부분은 그냥 넘어가곤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원고의 첫머리에서는 뒤얽힌 많은 생각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저자로부터 배운 교정의 비법을 적용하려다보니 써놓은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쓰는 짓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적․의를 보이는 것․들’, ‘굳이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 ‘내 문장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등 알듯 모를듯한 제목이 무려 열두 개나 됩니다. 그러니까 교정의 비법을 열두 개나 소개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가운데 무려 다섯 꼭지나 되는 ‘적․의를 보이는 것․들’편이 가장 충격이었습니다. 제 글에도 넘쳐나는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영어표현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하다가 든 습관인가 봅니다. 정말 ‘적․의’에 적의(敵意)를 품어야 하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드는 비법을 전수해주신 것은 물론 교정일에 관한 특별한 경험을 소개한 것도 좋았습니다. 다만 책을 마무리하는 저자의 생각을 담은 글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마지막 글이 ‘문장 다듬기②’라서, 남은 원고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별도로 뒷이야기를 적지 않으려면 바로 앞에 있는 ‘가을의 끝’이라는 제목의 글을 마지막으로 돌려서 이 책의 사례의 마무리는 물론 교정일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정리했더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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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 / 길(도서출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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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이제야 읽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사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근대 이전까지 서양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이 니코마코스인 점이나 책의 내용을 고려한다면 모두 10권으로 된 이 책의 제목을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고 붙인 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삶의 지혜를 담았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읽다보면 요즈음의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즉, 당대의 혹은 이전에 석학이 한 말을 인용하고 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개진한다거나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당대의 속담과 격언 등을 적절하게 인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좋음과 목적을 화두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모든 기예와 탐구, 또 마찬가지로 모든 행위와 선택은 어떤 좋음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좋음, 즉 선(善)이 인간의 삶에서 추구해야 할 최종 목표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선을 추구하는 으뜸가는 학문으로 정치학을 꼽은 것은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당시 그리스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자는 선을 중심으로 인간의 행복, 운명, 죽음 등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만나는 주제를 설명합니다. 그래서 더 쉽게 빠져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2권에서는 ‘탁월성’에 대하여 설명합니다만, 궁극적으로는 중용의 입장을 취하는 듯합니다. 그가 선택한 주제는 용기, 책임, 절제, 자발성 등 개인의 특성 가운데 권장할만한 덕목을 권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읽다보니 시쳇말로 ‘뒷 끝’이라는 말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만, “‘꽁한 사람들(pikros)’는 여간해서 화를 잘 풀지 않는 사람으로 오랜 시간 동안 화를 낸다. 분노를 억누르기 때문이다. 그는 되갚아 주어야만 화를 멈춘다. 복수가 고통 대신에 즐거움을 만들어 내면서 화를 그치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지 않을 경우에 그들의 마음속에 무엇인가 맫히게 된다.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그것을 극복하라고] 설득하지 못하고, 그들도 자신 안에서 화를 삭이는 데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나 가장 친한 사람들에 대해서나 가장 골치 아픈 사람들이다.(147쪽)”라고 적은 대목은 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몇 차례를 반복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짐승 같은 품성을 설명하는 대목을 보면 흑해 연안의 미개인들이라고 차별하기는 했습니다만, 당시 유럽대륙에서 인육을 먹는 풍습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봉사에 대한 대목에도 눈길을 두었습니다. “유익을 근거로 성립하는 친애에서는 불평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익을 목표로 서로를 이용하면서 언제나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며, 마땅한 몫보다 더 적은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이 의당 가져야 할 만큼을 갖지 못했다고 비난하니 말이다. 또 베푸는 사람은 받는 사람이 가지려는 만큼 만족시킬 수가 없다.(308쪽)”라고 했습니다만, “봉사에 관해 정제된 합의는 없지만 한편이 상대방 자체를 이유로 먼저 주는 경우라면 불평이 없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317쪽)”라고 한 것을 보면, 베품의 즐거움이 받는 쪽의 갈급한 마음보다는 낫다는 의미를 담은 것 같습니다. 또한 ‘고유한 즐거움이 활동을 더 정확하고 더 지속적이며 더 낫게 만드는 반면, 이질적인 즐거움은 그 활동을 망가뜨리기 때문에, 이 즐거움들은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364쪽)“라고 적은 것을 보더라도 베품의 즐거움은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의술에 관하여 곳곳에서 적고는 있습니다만, 의학의 깊숙한 부분까지는 접근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의학에 대한 이해가 깊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의학 책은 치료법만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여러 상태들을 구분함으로써, 어떻게 치료가 되며 각각의 환자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경험 있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해보이지만, 전문적 앎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어 보인다.(384-385쪽)” 그리고 보니 그의 아버지가 마케도니아왕실의 시의였다고 하는데, 아버지를 일찍 여읜 탓인지 영향을 별로 받지는 못했던 듯합니다.


한 가지 묘한 점은 마지막 10권을 마무리하면서 ‘자, 이제 논의를 시작해보자.’라고 적은 것을 보면 끝이 아니라 뭔가 이어지는 논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미완성이거나 아니면 엮은이가 뒷장을 빠트린 것 같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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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 라만차 돈 키호테의 길
서영은 지음 / 비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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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전에 스페인을 여행할 때, 톨레도에서 마드리드에 이르면서 곳곳에서 돈키호테의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큼 세르반테스의 작품 <돈키호테>가 스페인 사람들의 삶에 녹아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마드리드 스페인광장에 서 있는 세르반테스 기념비를 비롯하여 콘수에그라 언덕에 서 있는 풍차, 톨레도 금세공방에서 만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모습 등등.... 스페인 여행기를 쓰면서 콘수에그라와 관련된 자료를 찾다보니 작품 속의 주인공 돈키호테가 주유한 길을 따라가는 ‘돈키호테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돈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는 소설가 서영은님이 돈키호테의 길을 따라가면서 세르반테스의 삶과 <돈키호테>에서 얻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여행에세이라기 보다는 ‘소설적 기행에세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참 적절하다는 느낌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돈키호테의 길을 따라가면서 만난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흔적을 담은 무수한 사진들이 우선 눈에 띕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돈키호테> 원전에서 따온 인용문이 꽤(?) 되고, 그에 대한 작가 자신 혹은 동행하신 분들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인용되고 있습니다. 짧지 않은 여행기간 동안에 주고받은 대화를 녹음이라도 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같은 맥락으로 저자가 적은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분명 소설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돈키호테 1부>를 읽고 적은 리뷰에서 돈키호테를 ‘정신 나간 괴짜’라고 적었다가 오히려 제가 정신나간 사람 같다는 댓글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하여 서영은님은 “작가가 그의 내적 동기를 ‘미침’ ‘광기’와 연결짓고 있어, 그 때문에 이 작품이 희화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미침은 정신병리학적 광기가 아니라 ‘의지적 열정’이었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괴짜는 괴짜이나 정신 나간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즈음에 복면가왕을 즐겨봅니다만, 편견을 버리고 음악에만 집중하여 듣다보면 좋은 노래를 부른 가수를 족집게처럼 골라내는 것을 보면서 다수의 힘(?) 같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나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재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돈키호테를 정신 나간 괴짜로 보는 시각도 틀린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저자를 따라 돈키호테의 길을 여행하다보면 돈키호테에 대한 스페인사람들의 애정(혹은 집착이라고 해야 하나)을 엿볼 수 있습니다. 허구의 인물이 지나갔다는 장소에 그의 기념물을 세워 기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품은 작품일 뿐인데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세르반테스가 결혼 후 3년 동안 거처했다는 아내의 외삼촌집 역시 세르반테스와 관련된 것들을 자랑스럽게(?) 보존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 3년 만에 이혼해서(이혼의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만) 남이 된 남자를 새삼스럽게 기리는 것이 왠지 쑥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가 편력에 나선 길은 모두 3개의 코스입니다. 의 길은 이 책에 등장하는 라만차의 콘수에그라, 캄포데 크립타나, 엘 토소보 등은 물론 <돈키호테 2부>에 등장하는 바르셀로나에 이르게 됩니다. 저자가 돌아본 돈키호테의 길은 1부에 등장하는 장소를 중심으로 하고, 세르반테스의 족적과 관련이 있는 장소를 더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자료들이 주로 스페인어로 되어 있어서 사실확인이 쉽지 않은 점이 있기는 합니다. 저자 역시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족적을 따라가기 위하여 많은 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면 저자가 참고한 책들도 읽어볼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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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탐정들 - 세계 50대 유적의 비밀
폴 반 엮음, 김우영 옮김 / 효형출판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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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문자시대에는 기록으로 문자이전의 시대의 것은 구전으로 전해지던 것을 기록으로 옮겨진 것도 있습니다. 옛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찾아내는 작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학문이 고고학입니다. 고고학 역시 다양한 분야의 학문의 발전에 힘입어 보다 정교해지고 정확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고고학의 탐정들>은 6대주의 흩어져 있는 50개의 고고학 유적지의 발굴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유적들은 트로이유적, 주구점, 알타미라동굴처럼 잘 알려진 곳들도 있지만, 생소한 곳들도 많아서 흥미를 더하는 것 같습니다. 제목에 적은 것처럼 고고학자들은 탐정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탐사를 통하여 발견된 유물을 토대로 옛사람들의 삶을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이 책은 모두 열세명의 고고학 탐정들이 나누어 정리하였다고 합니다. 대학에서 고고학, 인류학을 연구하는 분들입니다.


프롤로그에는 ‘고고학은 왜 그토록 매력적인가?’하는 물음에 대하여 고고학자와 일반의 입장에서 답을 적고 있습니다. 고고학자의 입장에서는 ‘수백, 수천년간 햇빛을 보지 못했던 그 무엇을 발굴한다는 것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감흥을 불러일으킨다’라고 했고, 일반의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계 조상이나 인류 전체의 과거에 흥미를 느끼는데, 고고학은 그 광대한 과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고고학 탐사를 통하여 과거의 비밀을 밝혀가는 과정도 설명합니다. 우연이나 영감이 발견을 이끈다고 합니다. 물론 발견을 하는 것으로 비밀이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고고학자들도 탐정처럼 추리를 통하여 비밀에 접근해가는데, 그 추리라는 것이 발견된 증거를 바탕으로 논리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고고학이 학문으로 성립된 것은 150여년이라고 합니다. 고고학 이외의 분야의 발전에 힘입어 연구방법 역시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연대측정이 보다 정교해졌다거나, 인체관련 자료를 내시경, 컴퓨터단층촬영, 분자생물학적 검사법 등을 통하여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무령왕릉을 발굴했던 분이 너무 급하게 발굴작업이 진행되는 바람에 아쉬움이 많았다고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만, 고고학적 발굴작업이 오히려 과거의 단서를 파괴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보다 정교하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발굴을 할 것인가 유적을 보호할 것인가 사이에서 갈등을 빚게 되는 것 같습니다.


50곳의 고고학유적지 하나하나가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특히 발굴을 통하여 나온 유물은 물론 발굴과정의 모습을 담은 사진 등 풍부한 사진자료가 곁들여져 있기 때문에 흥미를 배가되는 듯합니다. 사진설명이 비교적 자세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해가 쉬운데, 본문에 대한 보충설명이 적지 않은데, 본문과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아서 읽는 흐름이 깨지는 것 같습니다. 본문 중에 녹여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사실 이러한 유물의 현장은 직접 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더욱 관심이 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추픽추처럼 이미 가본 곳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생생한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마추픽추가 파차쿠티 잉카 유판키 왕의 별장이며 천체관측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해 다녀온 오스트리아 할슈타드의 소금광산에 관한 이야기도 조만간 쓰게 될 여행기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금년에 다녀올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현생인류의 흔적을 담고 있는 장소들이라서 더 관심을 두어 읽었습니다. 그 밖의 유적지 역시 볼 기회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고 흥미로운 책읽기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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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삶을 배우다 - 김종회 문화공감
김종회 지음 / 비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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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산문에 대하여 관심이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멀었습니다만, 산문을 읽다보니 글에 담긴 작가의 진솔한 생각을 조금씩 느끼게 되어서입니다. <글에서 삶을 배우다>는 문인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통찰하는 평론을 비롯하여 아동문학 연구, 사회비평, 북한문학과 해외동포문학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한 글을 써온 경희대학교 국문과 김종희교수의 산문입니다. ‘문화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라는 제목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문화적 시각으로 세상사의 여러 절목을 검토하는 글쓰기는, 세월이 지나고 보니 궁극적으로 나 스스로의 정진을 추동하는 과정으로 작용했다. 나는 글에서 삶을 배웠다.(5-6쪽)”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두 60편의 산문을 6개의 주제에 따라 고루 나누어 엮었는데, 여기 실린 글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이미 공개된 것들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여섯 개의 주제의 성격을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첫 단락 ‘꽃보다 밝은 문필’은 이순의 연륜에 이르도록 문학과 더불어 살아오는 동안 그 문학의 길에서 만난 문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두 번째 단락 ‘문화와 인문학의 뜰’은 우리 시대 문화 및 문학의 현실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思惟)의 기록이다. 세 번째 단락 ‘우리 안의 깊은 지혜’는 직접 또는 간접 체험으로 겪고 느끼며 살아가는 여러 유형의 삶 속에서 새롭게, 또 감동적으로 발견하는 지혜로움에 관한 글이다. 네 번째 단락 ‘함께 나누는 손길로’는 동시대를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 무엇을 아끼고 무엇을 누나누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요 다짐이다. 이어서 다섯 번째 단락 ‘그대 나라 사랑함’의 경우는 우리 사회의 일원이자 이 나라 국민으로서 국적 있는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발양해나갈 것인가를 궁구(窮究)한 결과다. 글쓰기가 한 개인의 중심 사상을 피력하는 것이라면, 이와 같은 실천적 고백은 문필가 누구에게나 공여되는 책임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여섯 번째 단락 ‘인식의 경계를 넘어’는 그야말로 오늘과 같은 국제화 시대, 또 디아스포라 활성의 시대에 말과 글 그리고 그것의 주체인 사람이 어떻게 확장된 의식의 안마당을 활보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논거했다.(6-7쪽)” 글쓴이의 설명이니 내용이 적확하게 정리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글을 읽다보면 산문쓰기의 여러 가지의 전형을 발견하게 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주제에 접근하는 돌직구 화법이 있는가 하면, 주제에 적당한 이야기를 고사나, 문학작품 등에서 끌어와 앞세운 다음에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슬며시 대비시켜 효과를 극대화하는 등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주 인용하는 고사나 사자성어도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타산지석과 반면교사의 의미를 분명하게 정리할 기회가 되었으니, 역시 읽기는 무언가를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타산지석(他山之石)은 다른 사람의 사례를 따라 배우는 것이지만, 반면교사(反面敎師)는 저래서는 안되겠다는 교훈을 거꾸로 얻는 것이다(76쪽)”라고 설명하고 있더 언뜻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타인 혹은 사물의 부정적인 면에서 가르침이나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의 반면교사는 1960년대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이 처음 사용했다고 합니다. 비슷한 의미의 타산지석은 ‘다른 사람의 결점이라도 내 자신을 수양하는데 도움이 된다’라는 의미로, 시경(詩經)의 소아편(小雅篇)에 나오는 학명(鶴鳴)의 타산지석 가이공옥(他山之石 可以攻玉), 즉 ‘다른 산에 있는 하찮은 돌이라도 내 옥돌을 가는데 쓸 수 있다’라는 의미로 두 사자성어는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의미라고 할 것 같습니다.


이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저자의 글은 다소 현학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나 고답적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쓴 글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요즘 대세라 할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점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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