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서 삶을 배우다 - 김종회 문화공감
김종회 지음 / 비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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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산문에 대하여 관심이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멀었습니다만, 산문을 읽다보니 글에 담긴 작가의 진솔한 생각을 조금씩 느끼게 되어서입니다. <글에서 삶을 배우다>는 문인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통찰하는 평론을 비롯하여 아동문학 연구, 사회비평, 북한문학과 해외동포문학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한 글을 써온 경희대학교 국문과 김종희교수의 산문입니다. ‘문화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라는 제목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문화적 시각으로 세상사의 여러 절목을 검토하는 글쓰기는, 세월이 지나고 보니 궁극적으로 나 스스로의 정진을 추동하는 과정으로 작용했다. 나는 글에서 삶을 배웠다.(5-6쪽)”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두 60편의 산문을 6개의 주제에 따라 고루 나누어 엮었는데, 여기 실린 글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이미 공개된 것들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여섯 개의 주제의 성격을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첫 단락 ‘꽃보다 밝은 문필’은 이순의 연륜에 이르도록 문학과 더불어 살아오는 동안 그 문학의 길에서 만난 문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두 번째 단락 ‘문화와 인문학의 뜰’은 우리 시대 문화 및 문학의 현실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思惟)의 기록이다. 세 번째 단락 ‘우리 안의 깊은 지혜’는 직접 또는 간접 체험으로 겪고 느끼며 살아가는 여러 유형의 삶 속에서 새롭게, 또 감동적으로 발견하는 지혜로움에 관한 글이다. 네 번째 단락 ‘함께 나누는 손길로’는 동시대를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 무엇을 아끼고 무엇을 누나누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요 다짐이다. 이어서 다섯 번째 단락 ‘그대 나라 사랑함’의 경우는 우리 사회의 일원이자 이 나라 국민으로서 국적 있는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발양해나갈 것인가를 궁구(窮究)한 결과다. 글쓰기가 한 개인의 중심 사상을 피력하는 것이라면, 이와 같은 실천적 고백은 문필가 누구에게나 공여되는 책임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여섯 번째 단락 ‘인식의 경계를 넘어’는 그야말로 오늘과 같은 국제화 시대, 또 디아스포라 활성의 시대에 말과 글 그리고 그것의 주체인 사람이 어떻게 확장된 의식의 안마당을 활보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논거했다.(6-7쪽)” 글쓴이의 설명이니 내용이 적확하게 정리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글을 읽다보면 산문쓰기의 여러 가지의 전형을 발견하게 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주제에 접근하는 돌직구 화법이 있는가 하면, 주제에 적당한 이야기를 고사나, 문학작품 등에서 끌어와 앞세운 다음에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슬며시 대비시켜 효과를 극대화하는 등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주 인용하는 고사나 사자성어도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타산지석과 반면교사의 의미를 분명하게 정리할 기회가 되었으니, 역시 읽기는 무언가를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타산지석(他山之石)은 다른 사람의 사례를 따라 배우는 것이지만, 반면교사(反面敎師)는 저래서는 안되겠다는 교훈을 거꾸로 얻는 것이다(76쪽)”라고 설명하고 있더 언뜻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타인 혹은 사물의 부정적인 면에서 가르침이나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의 반면교사는 1960년대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이 처음 사용했다고 합니다. 비슷한 의미의 타산지석은 ‘다른 사람의 결점이라도 내 자신을 수양하는데 도움이 된다’라는 의미로, 시경(詩經)의 소아편(小雅篇)에 나오는 학명(鶴鳴)의 타산지석 가이공옥(他山之石 可以攻玉), 즉 ‘다른 산에 있는 하찮은 돌이라도 내 옥돌을 가는데 쓸 수 있다’라는 의미로 두 사자성어는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의미라고 할 것 같습니다.


이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저자의 글은 다소 현학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나 고답적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쓴 글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요즘 대세라 할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점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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