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불안증후군, 그 원인과 증상에서 진단 및 치료까지 - 숙면과 일상을 방해하는 수면질환
신홍범 지음 / 이담북스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의학이 발전하면서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질환이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증상이 비슷한 질환으로 간주되던 질환이 새로운 이름을 얻어 독립하는 경우도 있고, 원인이 밝혀짐에 따라서 새로운 질환으로 자리매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제가 의학을 공부할 때는 물론이고 비교적 최근까지도 익숙하지 않은 질환입니다. 특히 최근에 아내가 호소하는 불편함이 이 질환 때문이 아닌가 싶어서 꼼꼼하게 읽게 된 책이기도 합니다. 수면의학을 전공하신 신홍범 원장님은 <하지불안증후군>에서 ‘하지불안증후군’이란 질환이 주목받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원인, 증상과 진단, 그리고 이 질환으로 인하여 생길 수 있는 부작용, 치료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흔히 의학과 같은 전문분야의 글을 쓰다보면 의학에 조예가 깊지 않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전문용어나 개념을 전문가적 시각으로 정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신원장님은 하지불안증후군이라는 다소 생소한 질환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다리 혹은 팔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편감을 특징으로 하는 감각운동계통의 질환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다리나 팔 깊은 곳에서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고, 안절부절못하다, 불편하다, 저린다, 당긴다, 쩌릿쩌릿하다. 주무르고 싶다. 움직이고 싶다, 시리다, 화끈거린다, 등 다양한 표현으로 증상을 호소한다고 설명합니다.


움직일 때 증상이 더 심해지는 일반 통증과는 달리 하지불안증후군에서 보이는 증상들은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등 활동을 하지 않을 때 더 심해지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깨어있을 때는 증상이 나타나면 몸을 움직여 증상을 줄이는 노력을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잠을 잘 때라고 합니다. 자는 동안 불편함을 느끼게 되면 불편한 부위를 움직이게 되면서 잠이 깊어지지 못하고 수면장애가 동반된다고 합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불편함을 느끼는 부위에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중추신경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 해부학적 이상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 이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신경세포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을 때 간여하는 도파민이 분포에 변화가 생기면서 증상이 나타나거나 혹은 도파민 수용체의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도파민가설로 설명하거나, 철분 부족, 전신적 염증, 신경계의 저산소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항우울증약이나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는 경우에도 하지불안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고, 임신을 하면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증상에 더하여 당름의 다섯 가지 특징이 있으면 하지불안증후군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1. 다리를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 있다, 2. 가만히 있을 때 불편감이 심해진다, 3. 움직이면 증상이 줄어든다, 4. 저녁이나 밤에 증상이 더 악화된다, 5. 다른 질환에 의해서 생기는 증상이 아니다, 등입니다.


이 질환을 진단하는 데는 환자의 주관적인 불편함의 호소에 더하여 객관적인 검사소견이 필요한데, 운동억제검사, 수면다원검사, 활동기록기검사 등을 통하여 진단을 확정하게 됩니다. 증상이 경미한 경우에는 약을 먹지 않는 비약물적 노력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약물요법으로 효과가 없을 때는 파킨슨병 치료제인 도파민제제나 수면을 유도하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 아편계 약물, 항경련제, 아드레날린성 약물, 철분제제 등을 사용하게 됩니다. 약물치료 이외에도 증상에 따른 비약물요법도 다양하게 곁들이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불안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수면주기를 일정하게 하며, 걷기와 스트레칭과 같은 운동요법도 사용합니다. 물론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 알코올, 카페인, 흡연을 피하고, 음식을 가려먹어야 하기도 합니다.


물론 하지불안증후군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일단 문제를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 구두를 신다 - 365일 아라비안 데이즈 Arabian Days
한가옥 지음, 한연주 그림 / 이른아침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행에 관한 책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여행지에 관한 정보를 담은 책과, 여행에서 얻은 느낌을 적은 책입니다. 최근에는 여행지에 관한 정보를 담은 책보다는 여행에서 얻은 느낌을 적은 책이 대세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자유여행의 형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행에서 얻는 느낌도 다양합니다. 신변잡기 같은 책이 있는가 하면 사유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책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작가의 책들을 보면 전자가 훨씬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만 우리나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다는 것 같습니다.


‘365 아라비안데이즈’라는 부제를 단 <바람 구두를 신다>는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그리스, 터키 등 5개국을 여행한, 아니 그곳에 머물면서 그 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적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행기라기 보다는 ‘체험 삶의 현장’인 셈입니다. 그것도 무려 1년에 걸친 여행입니다. 인터넷신문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여행에 빠졌다는 작가는 현재 컬럼비아의 투어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다행인 셈입니다.


이 책에 담은 365일 여행의 마지막 그리스와 터키에서 작가는 ‘긴 여행이 지겨워지고 있다’라고 적었는데, 그런 여행을 왜 기획했는지가 분명치 않습니다. ‘여행이 생활이 되고, 오랜 기간 자극에 익숙해지니 그 무엇을 봐도 큰 감흥이 없어진다.(251쪽)’라고 했으니 이 책을 읽는 독자로서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혼자의 생각을 정리한 것,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일기장인데, 굳이 남이 읽도록 책으로 만들 이유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의 입장은 별로 고려한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모종의 의무감으로 하는 여행이라는데, 그 의무가 무엇인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유적에 큰 관심이 없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볼거리가 많은 도시 이스탄불에서 블루 모스크, 톱카프 궁전, 아야 소피아 성당, 고고학 박물관 그리고 그랜드 바자르에 관한 이야기를 그저 ‘있다’라고 두 줄로 소개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해당 국가의 이야기가 끝이 나면 그 나라에 관한 여행정보를 몇 쪽으로 압축하여 정리해놓기는 했습니다. 가는 법, 시차, 그 나라에서 보아야 할 것들, 여행 시기, 물가 및 경비, 안전수칙과 주의사항 등입니다. 그러니까 여행정보를 담고 있는 것은 맞는데, 본문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특히 이런 사람이면 OK, 이런 사람이면 NO라는 항목이 있는데, 해당 국가를 여행하는데 갖추어야 할 여행자의 성품 같은 것을 논하고 있어서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어가는 말에서는 여행에 대한, 여행을 하는 이유 등을 적고 있습니다. 무슬림의 의무에 포함되는 여행은 성지 메카를 향한 순례의 길을 의미하는데, 그런 의미의 여행이 ‘길은 평등을 가르치고 겸손을 가르친다. 생에 대하여 겸손하라고, 세상은 그래도 아름다운 곳이라고 소리 높여 외친다’라고 적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글을 보면 사유의 깊이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 가운데 무언가 있어 보이려는 욕심이 드러나는 듯합니다. 그런가 하면, ‘부디 이 책을 읽는 여행자들은 모두 어디론가 떠나기 전, 가볍게 달뜬 환상보다 길과 사람에 대한 뜨끈한 애정, 묵직한 믿음 하나를 마음에 채우고 떠나길 바란다. 어떤 질문을 가지고 떠났든 길이 알려주고 바람이 대답해줄 것이다’라는 당부 역시 무슨 소리인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조만간 가보려 하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대한 여행정보로 얻을 것이 별로 없는 책읽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똑똑하고 기발하고 예술적인
노아 스트리커 지음, 박미경 옮김, 윤무부 감수 / 니케북스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새>는 새를 연구하는 미국의 젊은 과학자 노아 스트리커의 에세이입니다. ‘똑똑하고 기발하고 예술적인’이라는 부제가 안성맞춤할 정도로 새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이 책에 담았습니다. 이 책을 감수한 윤무부교수는 추천사에서 ‘많은 논문과 저술을 샅샅이 뒤지고 현장 경험을 통해 얻어낸 정보들을 알차게 담고 있다. 게다가 뇌과학부터 물리학, 심리학, 통계학, 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친 지적 주제를 정교하게 엮어애는 솜씨라니!’라며 감탄하기도 합니다. 결정적인 한 줄은 ‘새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인간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통찰 또한 뛰어났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추천사를 적는 경우에는 대체로 실제보다 부풀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독자의 눈으로 보기에도 윤교수님의 추천사는 느낌 그대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 역시 ‘이 책은 새들의 세상에 관한 것이지만, 동시에 인간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라고 하면서 ‘새 관찰을 통하여 우리는 결국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새들이 신기하고 현란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행동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역시 생존이라는 면에서 인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저자는 비둘기 등 13종의 새를 중심으로 귀소본능과 같이 새들이 가진 놀라운 능력을 주제로 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이야기들 가운데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있지만, 미처 모르던 놀라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비둘기의 귀소본능은 잘 알고 있는 주제이기는 합니다만, 비둘기거 어떻게 둥지로 돌아오는지는 잘 모르는 부분입니다. 조류학자들은 새들 역시 인간처럼 지형지물이나, 해, 별, 심지어는 냄새에 근거해 방향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으며, 최근에는 자기장, 편광, 방향정위나 초저주파 음처럼,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방법을 써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비둘기들이 눈을 가리고 코와 귀를 막고 자기화된 새장에 넣어 멀리 이동시켜도 집을 찾아올 수 있다고 합니다.


아즈텍의 전쟁의 신 위칠로포츠틀리(Huitzilopochtili)는 ‘왼편의 벌새’로 번역된다는데, 아즈텍인 들이 벌새의 폭력성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위칠로포츠틀리는 세상의 파국을 막기 위해 때로 인간의 희생을 요구햐T다는 것인데, 보통은 깃털 머리를 한 것으로 묘사되고 너무 눈이 부셔 병사들이 방패에 난 화살구멍을 통해서만 봐야 하는 존재였다고 합니다. 아즈텍 전사들은 전쟁에서 죽으면 벌새로 환생한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조금 모호한 표현이 없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뇌는 약 1,000억개의 뉴런(신경세포)를 가지고 있고, 그 각각이 하나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어 뇌 하나가 2테라바이트의 메모리를 보유할 수 있다는 주장을 인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이 신경세포 하나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적고 있는 신경세포들이 신경섬유와 수상돌기에 의하여 서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저는 기억은 전기자극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단백질의 코드가 저장되고 재생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얼마나 다양한 정보를 꿰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중국과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까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기술하고(혹시 옮긴이의 오지랖은 아니겠지요?), 서울대학교의 이원영교수님의 까치의 습성에 관한 연구를 인용하고 있는 점입니다.

이 책에서 읽은 펭귄의 습성에 관한 내용은 요즈음 연재하고 있는 아프리카여행에서 만난 아프리카펭귄에 관한 글에서도 인용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읽기도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인연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대리의 아일랜드 여행
이한설 지음 / 마음세상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아일랜드에 가면 무슨 일이 있을까 궁금해서 읽은 책입니다. 그런데 “사방으로 언덕이 낮게 깔려 있었다. 맑은 하늘이 언덕과 맞닿아 있었다. 언덕은 초원으로 이루어졌고, 초원은 다양한 색깔로 이루어졌다.(30쪽)”라는 대목 정도만 와 닿았을 뿐입니다. 물론 여행에 관하여 몇 가지 도움이 되는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만들어가는 일상도 여행이 될 수 있으며, 모터홈 여행을 통하여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인데, 혼자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면 어떤 형태로든 얻을 수 있는 점입니다. 그리고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속하면서도 별도의 화폐를 사용한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얻었던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입니다.


돌아다닐 때만 진정 행복을 느낀다는 저자는 돌아다닌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것도 정말 좋아한다고 고백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남긴 글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초등학생의 일기를 읽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집을 나서서 왼쪽으로 돌아서 쭉 가다가 네거리에서 빨간 신호등을 만났습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풍경의 묘사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얻을 수 있는 점은 여행은 절대로 무리하게 일정을 짜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33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이끌고 2주간에 걸친 호주여행을 다녀온 다음날 아일랜드행 비행기를 타는 강행군을 하다가 비행기에서 링거를 맞고 응급실로 실려가야 할 위급한 상황을 맞았다는 것은 쉬러가는 여행을 목숨걸 듯 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이번에는 아내가 먼저 귀국하고 영국에서 온 부부가 다음에 떠나고 그리고 저자도 떠나고 호주에서 온 부부만 남아 여행하는, 물론 그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습니다만, 조각난 이불보와 같은 여행이야기는 처음 읽어보는 것 같습니다.


물론 더블린 같은 아일랜드의 대표적 도시도 포함되었지만, 비교적 생소한 장소를 방문하면서 가는 길을 시시콜콜 적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를 곁들이는 조그만 성의를 빠트리는 바람에 그 시시콜콜함이 왜 필요했는지 알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스키를 주제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다녀온 이야기를 적으면서 지도를 빠트리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와 함께 여행한 분들은 독특한 점이 있는 듯합니다. 방문지에 있는 유적도 사람이 늘어서 있다던가 하면 그냥 지나친다는 것인데, 모터홈을 끌고 다니는 여행인데 왜 그런지 모를 일입니다. 그저 먹고 자고 운전하는 것이 전부인 여행, 즉 그저 가보았다는 식의 여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저자도 만만치가 않아 보입니다. 귀국 전날 혼자서 더블린 구경에 나서서 한 일이라곤 더블린 외곽에 있는 캐러반파크에서 더블린까지 가는 일반버스를 타는 과정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정작 더블린에 도착해서는 유서가 깊다는 시청건물이나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도 언제 세워졌다는 이야기만 적고는 통과합니다.


그의 목표는 오직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였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일랜드에 도착한 뒤에서야 알게 된 기네스에 빠졌기 때문이랍니다. 기네스맥주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실 수는 있습니다만, 대중적이지는 않아서 좋아하는 분들만을 위한 특별한 장소에 가야 가능한 듯합니다. 더 스파이어도 스미스필드도 기네스스토어하우스를 본 다음 이야기인데, 그마저도 ‘가까이서 보니 정말 대단했다’로 시작해서 ‘속된말로 하늘 똥구멍을 찌르고 있었다’로 끝입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이 반가웠지만, 조이스가 그린 더블린 이야기는 한 줄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함께 한 일행들이 많아서인지 대화체가 섞인 독특한 여행기인데 작가의 말대로 여행의 일상을 일기체로 적은, 많이 생략되거나 원초적인 느낌을 곁들인 여행기라는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3시간 형사 베니 시리즈 2
디온 메이어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을 무대로 한 소설이라고 해서 아프리카 여행 중에 들고 간 소설입니다. 웨스턴 케이프주에서 태어난 작가 디온 메이어는 <13시간>을 비롯하여, <악마의 산>, <세븐 데이즈> 등 형사 베니 시리즈 4권으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합니다. 형사 베니 시리즈는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사회에 스며든 묘한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케이프타운서의 강력계 형사 베니는 백인이라는 이유로 아파르트헤이트 청산 후 불어 닥친 역차별에 걸려 마흔이 넘도록 경위 신세입니다. 잽싼 선배들은 벌써 옷을 벗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 경찰을 떠나고 있는데 베니는 그저 어정쩡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 결단력을 필요로하는 강력계라는 특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구제불능의 술주정뱅이로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는 바람에 쫓겨나 6개월 안에 술을 끊지 못하면 이혼이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라는 점을 보면 경찰 업무 이외의 상황에서는 우유부단한지도 모르겠습니다.


<13시간>은 아침 5시 36분 라이언스헤드의 가파른 언덕의 등산로에 등장한 백인 소녀가 누군가에게 쫓기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장면은 금세 바뀌어 베니형사가 당직으로부터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전화연락을 받으면서 사건 속으로 본격 진입하게 됩니다. 교회 앞마당에서 시체로 발견된 소녀와 누군가에게 쫓기는 소녀 레이철은 미국에서 여행 온 친구 사이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또 다른 시체가 발견됩니다. 손만 대면 대박을 터뜨리는 음반계의 스타 프로듀서 애덤이 자택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입니다. 전혀 연결이 될 것 같지 않은 두 사건이 결국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되면서 거대한 범죄조직의 실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먹고 살길을 찾아 국경을 넘는 난민들을 상대로 피 묻은 돈을 갈취하는 범죄조직 A.O.A가 배후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범죄조직이 경찰 내부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어 사건을 은폐하는 일을 밥 먹듯 한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밝혀집니다.


달아나는 레이철과 그녀를 뒤쫓는 추격자들의 숨가뿐 레이스를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하여 케이프타운의 지형은 참 절묘하기까지 합니다. 처음 읽을 때는 이 장면에 등장하는 케이프타운의 실제 지명과 분위기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수박 겉핥듯 케이프타운의 도심을 지나보니 어느 정도는 알듯해집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여행이 얼마든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13시간>은 두 건의 살인사건과 추격자에게 쫓기는 레이철을 구하기 위한 13시간에 걸친 긴박한 과정이 잘 짜인 구조로 진행되기 때문에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좋은 읽을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파르트헤이트 청산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불어 닥친 다양한 사회적 변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상전벽해와 같은 백인들의 역차별이라거나, 영어로 된 팝송 보다는 모국어인 아프리칸스어 노래가 대중의 인기를 모으는 등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전한 인종 간 빈부격차, 치안공백을 틈타 들끓는 범죄로 얼룩진 사회 분위기를 곳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갑자기 변한 신분에 철학이 곁들여지지 못한 풋내기 경찰들이 푼돈에 정보를 팔고, 비리조차 마다하지 않는 것은 힘은 쥐었지만, 여전히 가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작가는 <13시간>에 결혼에 대한 통찰을 담아냈다는 평가입니다. 주정뱅이 베니형사의 결혼생활과 함께, 아내의, 남편의 외도로 상처를 입는 배우자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인간의 뻔뻔함과 나약함을 같이 그려냈습니다. 그리고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이가 불나방처럼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고민하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