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돈키호테 - 박웅현과 TBWA 0팀이 찾은 창의력 열한 조각
박웅현 외 지음 / 민음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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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돈키호테에 관한 글을 써보려 하고 있던 참이라서 눈을 끈 책입니다. 대표작가로 나선 박웅현님도 웬지 익숙한 이름이다 싶었던 점도 더해졌을 것입니다. 찾아보니 <사람은 누구나 폭탄이다; http://blog.joins.com/yang412/13605807>로 만난 분입니다. 광고회사 TBWA KOREA가 광고인을 꿈꾸는 대학생들을 선발하여 광고제작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하고 창의력을 키워나도록 지원하는 사회공원 프로젝트의 하나로 대중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던 책입니다.


그 TBWA KOREA의 크리에이티브 대표(Chief Creative Officer, CCO)가 바로 박웅현님인데, 이 분이 기획한 책이 바로 <안녕 돈키호테>입니다. 책의 제목처럼 이 분 역시 돈키호테 띠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폭탄이다>이다 처럼, 박웅현님이 기획에 참여하고 집필진을 모아 책을 엮은 것으로 보이는데, 참여하신 분들을 보면 하나같이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는, 즉 돈키호테띠 같습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이 탄생한 비화를 소개합니다. 니커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을 읽던 중에 “스페인은 여러 국가들의 돈키호테다”, “콜럼버스, 그는 바다의 돈키호테였다”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인류사의 돈키호테를 모아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류사는 동서고금을 망라하는, 쉽게 말씀드리면 현재의 돈키호테들이 모여서 각자 관심을 두고 있든 동서고금의 돈키호테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는 방향으로 풀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에 돈키호테는 차고넘쳤기 때문입니다.


책의 구성도 일반적인 형식을 벗어나 돈키호테방식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에세이가 있는가 하면, 인터뷰도 있고, 이러저러한 돈키호테들을 모아놓은 갤러리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돈키호테 식의 카피 몇줄을 집어넣은 온통 까만 쪽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여기 등장하는 돈키호테들은 척보아도 그럴 듯 합니다만, 선정기준이 무엇이었는지는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기획하면서 모은 필진의 순간적인 번뜩임에서 나온 것 아닐까 싶습니다. <올랭피아>를 그린 마네는 전통과 형식을 무시하고 창녀를 모델로 한다는 발상을 했던 것이 후세 화가들의 패러디를 낳았다는 서술을 읽으면서 얼마전에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되었던 패러디작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작품은 이 책에 싣지는 않았지만, 화단의 숫한 돈키호테들 가운데 마네를 인용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 듯 모를 듯합니다.


고흐와 테오를 인용한 것은 고흐보다는 테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돈키호테의 또 하나의 주인공 산초판사를 재해석하기 위함으로 보여 반가웠습니다. 때로는 주연보다 감칠맛이 나는 조연에 더 눈이 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만, 고흐의 그늘에 가려진 테오야 말로 고흐가 있게 한 사람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을 단지 반대를 무릅쓰고 찬사를 이끌어낸 돈키호테로 묘사한 것은 당시 상황의 단면만을 읽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돈키호테가 달리 돈키호테이겠습니까? 세상사를 자기중심적으로 읽는, 쉽게 말하면 단순무식하기 때문에 하려는 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남의 시선 따위는 관심이 없는 것이지요. 세종께서 모화사상에 찌든 중신들의 반대를 염두에 두지 않으셨을 리가 없었을 것이고, 당연히 반대를 물리칠 방안까지도 마련하셨을 것이므로 세종대왕을 돈키호테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입니다.


프루스트도 단지 ‘마들렌에서 위대함을 찾아냈다’라는 식으로 해석한 것도 그가 작가라는 점을 간과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마들렌이 섞인 홍차는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장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세상을 제 잘난 맛으로 읽는 돈키호테들의 색다른 시각을 읽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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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멍키 - 혼돈의 시대, 어떻게 기회를 낚아챌 것인가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지음, 문수민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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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인터넷신문보다는 종이신문이 좋고,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당연히 IT와 관련된 일이라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 컴퓨터에 문제라도 생기면 아이들에게 사정을 해야 합니다. 정말 IT분야에서 활약하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에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선입견이 무너지는 계기를 만든 것이 바로 <카오스 멍키>입니다.


세상을 혼돈으로 몰아넣는 원숭이가 있는 줄 알았더니 그 또한 IT쪽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아직은 원숭이들을 먼발치에서만 구경을 했는데, 원숭이를 가까이하면 찟고 까불고 장난을 치는게 정말 장난이 아니라고 합니다. 즉, 전산센터에 침입한 원숭이가 케이블을 뽑고, 난장판을 만들다보면 서버가 망가지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전산엔지니어는 예상치 못한 시점에 프로그램이 엉기고 서버가 다운되게 만드는 소프트웨어를 심어 온라인 전산프로세스와 서버의 견고성을 검증한다고 합니다. 바로 그런 소프트웨어를 카오스 멍키라고 합니다.


<카오스 멍키>는 IT업계의 대표적 기업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근무한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가 IT업계의 충격적인 속살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고백서라고 하겠습니다. 그것도 2010년 3월부터 2014년 10월 사이에 IT의 본고장 샌프란시스코의 베이 에어리어에서 본인이 직접 겪을 일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사실 저도 젊었을 적에는 무려 6곳이나 되는 직장을 전전했습니다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무리 이직이 쉬운 편이라고 하는 미국이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받쳐줘야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버클리대학교에서 2001년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골드만삭스에서 출발해서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혼돈에 빠진 금융계를 떠나 실리콘밸리오 자리를 옮겼습니다. 광고 프로그램 개발사인 애드케미의 연구원으로 시작된 실리콘밸리에서의 생활도 밖에서 본 것처럼 보장된 생활이 아니었던 모양으로 뜻이 통하는 친구들과 함께 뛰쳐나가 스타트업을 시작합니다.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와이콤비네이터에 낸 기획안이 채택되면서 애드그로크를 창업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광고캠페인의 효과를 측정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에 성공하였는데, 결국은 이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회사를 트위터에 매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페이스북으로 전격 합류하는데, 페이스북에서 저자의 동료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에서의 생활도 별로 행복하지는 못해서 업무를 두고 상사와 갈들을 빚다가 결국은 밀려나게 됩니다.


저자는 짧은 기간 겪은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무려 656쪽이나 되는 두툼한 책으로 써냈습니다. 아마도 젊은 날 품었던 설익은 정열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입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펼쳐보지 못한 자신의 포부에 대한 안타까움을 적어보려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던 사람들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이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IT업계의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 우아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들 역시 음모와 편견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현업을 떠나게 되면 자신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도 있나 봅니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두 아이를 내팽개쳤고, 두 여성의 소중한 사랑을 걷어찼고, 두 척의 보트를 방치했고, 회사 일에 헌신하느라 취미나 여가생활도 전무했다.(602쪽)’라고 자아비판을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어쩌면 젊은 날의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빠져들 듯이 읽어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흔들리지 않고 좌우를 두루 살피면서 전진하는 편이지만 말입니다. 4년을 넘기지 못하던 옛날 직장과는 달리 지금은 10년차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세상을 온통 적으로 생각하고 몰입하는 젊은이라면 일독을 권합니다. 눈앞의 것이 모든 것처럼 보일지라도 한발 물러서서 보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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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기원 - 난쟁이 인류 호빗에서 네안데르탈인까지 22가지 재미있는 인류 이야기
이상희.윤신영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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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 갔을 때,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를 발견한 올두바이협곡을 방문하였습니다. 인류의 선조를 발견한 장소에 세운 초라한 박물관을 안타깝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올두바이협곡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찾아 공부를 하면서 인류의 기원을 가늠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선행학습이 있었던 인연으로 사이언스리더스리더에서 제공하는 책을 고를 때 <인류의 기원>을 고르게 된 것입니다.


<인류의 기원>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의 인류학과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인 이상희교수가 <과학동아>에 연재해온 인류의 진화에 관한 칼럼을 엮은 것입니다. 사실 전문가가 일반을 대상으로 자신이 연구한 분야에 대하여 설명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류의 기원>은 용어도 생소한 고인류학에 대한 내용을 아주 쉽게 정리하고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고인류학의 계보에 관한 내용 뿐 아니라 가끔은 고인류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화도 섞어서 긴장을 풀어주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고인류학에서는 인류의 기원과 관련하여 아프리카 기원설에 무게가 실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자신이 옹호하는 다지역 진화론 혹은 다지역 연계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학자로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습니다만, 주류의 이론에 대한 반론은 조금 더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하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서로 교류하며 유전자 이동을 통해 계속 하나의 종으로 진화해왔다는 다지역 진화론은 최근의 유전학적 연구 결과와도 부합’한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첫 번째 이야기에서 발견한 몇 가지 오류 때문입니다. 인류의 식인습관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화인류학 분야에서나 유전학적 연구결과 등을 보면 과거 어느 시점까지는 식인습속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 같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파푸아뉴기니의 고산지대에 사는 포레족 사이에서 번지던 쿠루라는 질병에 관한 이야기를 사실과 다르게 설명하는 부분이 꽤 있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가이듀섹박사가 쿠루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하여 침팬지실험을 한 것은 사실이나 쿠루의 원인체로 단백질의 일종인 프리온을 지목한 것은 가이듀섹이 아니라 푸르시너박사라는 점입니다. 가이듀섹박사는 슬로우바이러스가 쿠루병을 옮기는 병원체 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물론 가이듀섹박사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프루시너박사 역시 프리온가설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쿠루병이 죽은 사람을 맨손으로 다루었던 것이 전염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가설도 잘못된 것입니다. 가이듀섹박사는 쿠루병으로 죽은 환자의 뇌를 해부하여 꺼낼 때 맨손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쿠루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쿠루병은 환자의 뇌조직을 먹은 사람에서 오랜 잠복기를 거쳐서 발생한 것입니다.


이런 제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인류학 분야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깊이와 가독성 모두에서 만족할만하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그림이 고인류의 화석이나 고인류학적으로 중요한 장소에 대한 그림자료가 풍부했더라면 하는 점도 조금 더 아쉬운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머리말에서 인용한 존 스타인벡의 <찰리와 함께 한 여행>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인물처럼 썪어들어가던 미국의 문제점, 특히 인종 간의 문제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에 방점이 찍히는 것을 보고는 책을 어떻게 읽는가는 독자마다의 시각이 다르구나 하는 점을 새삼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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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펌 -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는 삶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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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자기계발을 할 이유는 없는 듯하여 자기계발과 관련된 책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보니 젊어서도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때문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는 삶’이라는 부제가 더 크게 다가온 듯합니다.


<스탠드펌>은 일종의 안티-자기계발서를 지향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핑핑 돌아가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계발을 강요받아온 사람들에게 오히려 자기 삶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를 담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안티-자기계발을 화두로 한 자기계발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근본적인 실존적 불확실성과 불안이 팽배해질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진단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온갖 상담과 치료법, 코칭, 마음챙김, 긍정의 심리학, 일반적인 자기계발의 쉬운 표적’이 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즉 끊임없이 빨라지는 문화를 ‘따라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적응할 마음, 자기계발과 전문성 개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장삼이사들을 유혹하는 자기계발서가 넘쳐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둥둥 떠다니기 마련인데,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뿌리내리고’ 사는 방법을 안내하는 또 다른 자기계발서의 역할을 배우는 기회를 만들어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 저자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스토아철학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가속화사회에서는 보수주의가 사실상 진보적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역설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자기계발서가 통상적으로 취하는 7단계의 접근 방식을 가져왔습니다. 1. 멈추다; 자기 중독 끊어내기, 2. 바라보다: 삶의 부정적인 면 인정하기, 3. 거절하다: “아니요”라고 말하기, 4. 참다: 감정 다스리기, 5. 홀로 서다: 코치와 헤어지기, 6. 읽다: 소설 읽기, 7. 돌아보다: 의미 있는 일을 반복하기 등입니다.


읽다보니 제가 평생 살아온 방법과 상당히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자기계발에 관심이 없었으니, 멈추고 홀로서고 돌아볼 일은 별로 없었던 것 습니다. 제가 자기계발서 아니냐고 생각했던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저자는 이 책이 ‘한편으로는 자기계발서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기계발서로 위장한 문화비평서처럼 보이기도 할 것(39쪽)’이라고 전제하였습니다. 아마 저자가 제 맘속에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최근에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투덜대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힘들지 않은 척해야 한다’라는 조언을 해준 분이 있었습니다. 다들 힘들지만 ‘잘 지내는 척’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고 어깨를 토닥이는 말을 해줍니다. 즉 “투덜댈 자유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능력에서 나온다(86쪽)”라는 것입니다.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도 저에게서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남들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저에게 질렸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예’가 유행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잡지 못할까봐, 놓칠까봐 두렵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아니오’라고 쉽게 말하는 것 같지만, 나름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기도 합니다.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에는 예와 아니오에 관한 클레온왕의 고뇌가 나옵니다. “‘예’라고 하기는 쉽다. 하지만 ‘아니오’라고 하려면 팔을 걷어 부치고 고민을 해야 한다”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아니오’라고 말하려면 많은 고민이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해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들에 휩쓸려 가다보면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가끔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아니요’라고 말하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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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기원 - 예일대 최고의 과학 강의
데이비드 버코비치 지음, 박병철 옮김 / 책세상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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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나는 누구인가?’하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궁금해집니다. 40년전 미국 작가 알렉스 헤일리가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뿌리>를 발표하여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뿌리찾기에 눈을 뜨게 해준 바 있습니다. 헤일리는 일곱 세대를 거슬러 올라갔을 뿐인데도 한 권의 책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렇다면 ‘나’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우주의 시원에 이르게 된다면 도대체 몇 권의 책을 써내야 할까하는 궁금증이 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도서관을 하나 차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두꺼운 책을 누가 읽을까요? 우수한 젊은이들이 모인다는 예일대학의 학생들 역시 자세하고 두꺼운 나의 역사를 읽을 생각은 없었던가 봅니다. 다만 검증가능한 ‘커다란’ 가설을 통하여 과학을 배운다는 핑계로 나의 뿌리를 우주의 탄생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예일대학교 학부생의 뿌리찾기를 도와준 사람은 지구물리학을 전공하는 데이비드 버코비치교수였습니다. 한 학기에 걸쳐 진행된 세미나를 통하여 학부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고, 그 세미나의 내용을 책으로 묶어낸 것이 <모든 것의 기원>입니다.


우주의 기원으로부터 나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하루에 해당하는 24시간으로 압축한 영화로 만든다면 엔딩크레딧이 지나고 4/100초 만에 최초의 인간이 등장하고 (나의 역사는 눈깜박할 사이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1시간을 더 기다리면 최초의 동물이 등장하며, 지구와 태양계의 탄생은 다시 7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16시간을 더 기다려야 우주가 탄생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장구한 역사를 저자는 100쪽 남짓한 분량으로 요약했으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말이 훨씬 서술적이었는지 우리말로 옮긴 이 책은 그 세배나 되는 296쪽이나 됩니다. 어쩌면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고 하면 될 구절을 “독자들은 치 책에 수록된 내용을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지 말로,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대충 훑어본 경치’쯤으로 생각해주기 바란다”라고 장황하게 옮겨야 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한글세대를 위한 옮긴이의 심모원려 (深謀遠慮)일 것으로 생각한다.


우주의 탄생부터 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면 천체물리학으로부터 지구물리학, 생명공학, 생물학, 의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문적 분야에 대한 심오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학문적 서술을 아주 쉽게 정말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저자의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읽다보니 의문이 생기는 부분도 있습니다. 빅뱅이론에 따라 계산된 우주의 나이가 약 140년이고 태양계의 나이는 50억년이라고 했습니다. 태양의 수명은 100억년 정도 된다고 합니다. 핵융합의 원료가 되는 수소가 소진되고 나면 대책 없이 부풀어가는 적색왜성이 되면서 수성, 금성, 지구까지 집어삼켰다가 다시 수축되어 원래 크기의 100분의 1로 줄어드는 백색왜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왜성으로 쪼그라들지 않는 거성의 경우에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초신성이 되는데 이때는 살아생전에 만들어낸 무거운 원소들을 은하 전체에 뿌림으로써 차세대 별과 행성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40년 밖에 되지 않는 우주의 역사 가운데 초신성의 폭발이 언제 일어났고 그 잔해들을 모아 지금의 태양과 지구와 같은 별과 행성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지구물리학을 전공한 저자이다 보니 이 분야에 대한 설명에 조금 더 신경을 쓴 티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습니다. 의학을 전공한 저의 눈에 띄는 대목은 인류의 오늘이 있게 된 결정적인 선택은 직립보행이었고, 인류로 진화한 다음에는 불을 사용한 것과 의학을 발전시킨 것이 결정적 선택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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