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굴레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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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는 아내가 읽고 싶어 한 희망도서였습니다. 예과 때 들었던 영어 시간에 <달과 6펜스>를 원어로 읽었던 것 같은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장이 참 좋다는 서머싯 몸이었지만, <인간의 굴레에서>는 요즘 드라마로 만든다면 막장드라마에 가까울 것 같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시골 작은 마을의 교구 사제를 하는 백부집에 의탁한 어린 소년이 성장해서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일종의 성장소설입니다. 아버지가 잘 나가는 의사였지만, 어머니의 사치 때문에 그리 큰 유산을 남기지는 못했기 때문에 제 몫을 할 때까지 허투루 살 여유가 없었던 주인공입니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총기는 있었지만, 발에 장애가 있었다고 합니다. 증상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았지만, 커서 수술을 받아 어느 정도 교정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선천성 내반족 같은 장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주인공에게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장애가 첫 번째 굴레였다면, 평탄한 삶을 걷어차고 밖으로 나도는 역마살이 두 번째 굴레였습니다. 자신이 잘하는 공부로 앞날을 설계하는 것보다 도전을 꿈꾸었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한 우물을 파지 못하였다는데 있습니다. 한 우물을 파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세 번째 굴레는 여자 문제였습니다. 그와 연을 맺은 여성은 다양한데, 연상의 여인과의 잠깐 사랑에서부터,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다가 삶을 끝낸 불행한 여성을 거쳐 이번에는 운명처럼 엮여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몰아넣고만 악연의 여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여인을 만나 평탄한 삶의 길로 복귀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을 보면 작가 역시 주인공을 파멸로 내몰고 싶지만은 않았던 모양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작가의 삶을 바탕으로 하여 허구적 요소를 섞어 넣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합니다.

경제적 궁핍이라는 굴레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경제적 궁핍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남긴 유산이 많지는 않지만 알뜰하게 쓰면 자립하는데 필요한 공부를 마치는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미술공부를 한다고 파리로 간데다가, 런던에서 의과대학에 다닐 때도 여자에 빠져 유산의 원금을 까먹기 시작하고, 종국에는 주식에 투자했다가 날리는 바람에 거리의 부랑자로 전락하는 뼈아픈 경험도 합니다. 어쩌면 1900년을 전후한 영국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삶을 조명해보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굴레에서>를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화두는 ‘인생이란 무엇인가’입니다. 파리에서의 생활은 ‘인생이란 그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살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그마저도 정답이 아닙니다. 결국은 삶의 과정이란 ‘태어나, 고생하다, 죽는다’라는 것으로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정말 한 인간의 삶이 의미가 없을까요? 주인공 역시 자신을 좋아하는 어린 여성과의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 역시 삶이란 의미를 부여라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사랑을 위해서는 오랜 세월 품어왔던 세상구경도 접는 중대한 결심까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삶에 여유가 생기면 스페인에서 살아보고, 배를 타고 동양으로 가서 낮선 삶을 살아보려는 꿈을 가졌었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라면 바닷가 마을에 작은 병원을 열어 소박한 삶을 살아가기로 했으니 말입니다.

책에서 발견한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새겨둘만합니다. “여행을 통하여 무엇을 얻을 수 있을는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삶에 대해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는 느낌, 풀면 풀수록 더욱 불가해해지는 삶의 신비를 깨우치는 무슨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있었다.그리고 설사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가슴을 갉아대는 불안만큼은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2권, 4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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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기행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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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는 이탈리아를 여행해볼까 해서인지 눈에 띄었나봅니다. 처음 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저 스치듯 지나쳤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이탈리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여행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점에서 괴테가 쓴 <이탈리아 기행>이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 책읽기였습니다. 물론 시대적으로는 한 세기 이상 차이가 있습니다만 저자가 그림을 그리듯 꼼꼼하게 살피고 글로 옮겨놓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탈리아 기행>은 저자가 37살이 되던 1786년 9월 머물고 있던 독일의 칼스바트를 떠나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까지 내려갔다가 되집어와서 17788년 4월에서야 독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니까 1년 8개월이나 이탈리아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가 거친 곳을 살펴보면, 칼스바트에서 뮌헨을 거쳐 트렌토에서 이탈리아로 입국하여, 베로나에 처음 머물다가 파도바, 베네치아, 볼로냐, 피렌체를 거쳐 로마에 이르렀습니다. 로마에서는 나폴리, 폼페이를 거쳐 페스톰까지 내려갔다 돌아와서 시칠리아 섬으로 건너가서 일주를 하고는 나폴리로 돌아와서 다시 로마로 돌아와 사육제 기간을 포함해서 머물렀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괴테가 칼스바트를 떠날 때 야반도주하다시피 했다는 것인데, 지인들이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하여 붙들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혼자서 독일을 떠났지만, 먼저 이탈리아에 와있던 지인들을 만나 같이 여행을 하기도 하고, 혼자서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풍광은 물론 날씨, 그 지방 사람들에 대한 인상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기록했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풍광을 그리기도 했던 것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여행의 인상을 가장 잘 남기는 방법이라고 했는데, 그림에 재주가 없는 저 같은 사람은 아예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일입니다.

“여전히 저에게 첫 번째로 중요한 일은 제 그림 솜씨가 확실한 수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손놀림이 쉽고, 다시 잊어버리지 않고, 또 유감스럽게도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시기에 그랬듯 오랫동안 정지상태에 머물지 않을 정도의 수준 말입니다.(2권 222쪽)”라고 고백한 것을 보면, 괴테 역시 그림그리기에 관심이 컸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작가답게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는 일도 역시 작가답다고 하겠습니다. 자연풍광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 특히 지질학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나폴리의 베수비오화산에서는 용암이 끓어오르는 화산의 정상에까지 올라가 화산재를 맞아가면서 구경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행동파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화산에서 뿜어내는 연기에는 유황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자칫 중독이 될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할 것인데도 당시에는 위험한 곳에 사람이 오르지 못하도록 금지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괴테는 주로 로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베네치아에서도 보름을 넘게 머물면서 도시 안팎의 풍경은 물론 미술품 감상은 물론 음악회와 연극 등 다양한 풍물을 즐겼습니다. 괴테가 베네치아에서 기대했던 것은 ‘고독’이었던 모양입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군중 사이를 홀로 헤치고 지나다닐 때처럼 절실히 고독을 느낄 때는 없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일 뿐일 것이고 그 사람도 나를 곧 만나게 되지는 못하리라(1권 117쪽)”이라고 적었습니다.

괴테는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을 일기형식으로도 적었고, 또 독일에 있는 누군가에서 보내는 편지형식으로도 적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여행 기간 중에도 꾸준하게 작품을 썼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쓴 글들을 여행중간에 묶어서 독일로 보냈다고 합니다. 로마에 입성하던 날 그는 ‘드디어 나는 세계의 수도에 도착하였다.(211쪽)’라고 적었습니다. 괴테가 로마를 바라보는 시각은 새로운 바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로마에서 고대 로마를 선별하는 것은 어렵고도 가슴 아픈 일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다. 이곳에서 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장관과 파괴라는 양쪽 흔적에 부딪힌다. 즉 미개인들이 그대로 남겨 둔 것을 새로운 로마의 건축가들이 파괴해 버린 것이다.(219쪽)”

또한 “사물을 그대로 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나의 수련, 눈빛을 흐리지 않게 하려는 나의 성실함, 모든 우쭐함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는 나의 기분. 이러한 모든 것들이 도움이 되어서 남이 모르는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226쪽)”라는 그의 고백에서 배움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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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를 알면 비즈니스가 보인다 - ‘트렌드 혁신’으로 고객의 기대를 넘어서라 Psi컨설팅 좋은책 13
헨리 메이슨 외 지음, 신일호 외 옮김 / 이담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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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트렌드를 ‘사상이나 행동 또는 어떤 현상에서 나타나는 일정한 방향’이라고 설명합니다. 경향(傾向)이라는 우리말로 충분히 그 의미를 담아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트렌드’라고 말하는 것은 있어 보이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쉽게 말하면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이것을 잘 알아야 하는 일이 수월해진다고들 합니다. 특히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파악하는 일이 사업 성공의 지름길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문제는 분위기 파악을 어떻게 하는 가입니다.

<트렌드를 알면 비즈니스가 보인다>는 사업 면에서 경향을 어떻게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할 것인가의 핵심을 요약한 책입니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추천사를 보면, ‘트렌드를 활용하여 다른 경쟁자들과의 차별화를 모색하고, 고객을 모을 수 있는 가치를 제안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트렌드를 통한 혁신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전제하고, 이 책을 통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미래의 비즈니스 성공을 만드는 데 필요한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종합적인 출발점을 제공한다’라고 합니다. 저자들 역시 ‘트렌드 방법론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고자 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저자들은 ‘왜 지금 트렌드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혁신을 문화로 만들어라’에 이르기까지 6개의 장을 통하여 트렌드 파악이 필요한 이유에서, 트렌드를 파악하는 방법, 트렌드 파악을 통하여 핵심경향을 집어내는 방법, 핵심경향으로부터 대응방안을 추출하는 방법, 그 대응방안을 실행에 옮기는 방법, 궁극적으로는 조직문화를 바꾸는 것에 이르기까지, 원리를 설명하고 사례를 통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합니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사업영역이 트렌드에 민감해지는 이유는 ‘고객의 기대 수준은 예전보다 더 빠르게 높아지고 있으며, 모든 구매결정, 소비경험, 소비 관심에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어, 기대경제‘라고 불러야 한다고 합니다. 그 기대경제는 고객이 기대하는 높은 품질, 긍정적인 영향, 자기표현 등 3가지 요소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기대경제를 이끌어가는 소비자의 트렌드는 ’사람들의 행동, 태도, 기대에 관한 것으로,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고, 원하고, 욕망하는 것‘입니다. 모든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3 가지 기본 요소는 기본적인 욕구, 변화 요인, 혁신 등 3가지인데, 이 3 가지가 상호 작용하여 만들어지는 긴장이 핵심요소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흔히 소비자중심으로 생각하라고들 합니다만, 저자등른 비즈니스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고객을 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하여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집중할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하여 저자들은 기회에 집중하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인구통계학 모델을 버리고, 복잡하기는 하나 새로운 인구통계학 모델을 사용할 것을 권합니다. 새로운 인구통계학 모델은 ‘접근성, 허용, 능력, 욕망’ 등 네 가지 힘을 기반으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당연히 집중해야 할 초점이 변하기 마련인데, 종래와는 달라진 생활방식인 뉴 노멀을 이해하고, 그러기 위하여 관습을 타파하며, 인구통계를 초월하는 목표를 생각해야 한다고 합니다.

기회에 집중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트렌드 레이더 기법도 신선하며, 혁신을 지향하는 아이디어를 이끌어내기 위한 트렌드 캔버스 기법은 창의적이기까지 합니다. 사진은 윤리적 소비를 주제로 하여 적용한 트렌드 캔버스의 사례입니다. 저자들이 트렌드 파악에서 혁신적 변화를 모색하고 이를 조직문화로까지 연결해가는 과정을 읽어가다 보면 분명 손에 잡히는 무엇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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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라파엘 앙토방 지음, 발레리 해밀 그림, 권명희 옮김 / 열림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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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오후 3시에는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오후 세 시는 “무언가를 하기에는 언제나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시간이다”라고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그렇다는 것이고, 하던 일이나 잘 마무리하라는 충고가 되나요?

<오후 3시>는 파리 정치학 연구소(에콜 폴리테크니크)와 시앙스 포에서 강의하고 있는 철학교수 라파엘 앙토방의 철학적 에세이입니다. ‘지금은 아직 동도 트지 않는 새벽이다’라는 시점을 적은 글 ‘정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하루의 시간에 대한 사유를 적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제는 아주 다양한데,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인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에 대한 단상, 몇 차례 등장하는 아들과의 대화 등을 보면 철학이야말로 일상에서 사유의 단초를 얻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게 있어 들뢰즈란 공포이고, 좌파 중의 좌파이며, 보라색 스웨터이고, 누런 치아이다. 내게 드뢰즈란 바로 이슬람인 것이다. 들뢰즈. 이는 곧 구시대의 악몽이다.(70쪽)’라고 적을 정도로 거칠 것 없는 필체에서 저자의 직설적인 면모를 읽을 수 있습니다.

10시에는 산책을 하면서 아들 오렐리앙과 함께 갔던 바닷가를 떠올립니다. 부자간의 대화 역시 직설적입니다. 시간을 건너뛰어 3시입니다. 표제가 되기도 한 ‘오후 3시’라는 제목의 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후 세 시. 태양이 죽음처럼 뜨겁게 타오른다. 섬들은 안개 속에서 떠다니는 것만 같고, 어디선가 매미 냄새와 풀 냄새가 난다. 달콤한 낮잠을 잘 시간이고, 부른 배가 꺼지도록 연거푸 담배를 피울 때이다. 오후 세 시란 한여름처럼 지치고 나른하게 만드는 시간이다.(75쪽)” 오후 3시에 무언가를 하지 않고 사유에 매달리다보면 이렇게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그 나른한 시간에 저자는 에콜 노르말(고등사범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 답안작성을 마감하는 순간을 두고 감독자의 눈치를 보던 이야기에 이어, 교수자격 시험의 제목으로 나왔던 ‘단일자의 인식’으로 화두가 옮겨갑니다. 결국 오후3시의 화두는 ‘단일자’로 고정되어갑니다.

오후3시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 ‘영원한 장켈레비치’에서 저자는 오후3시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그리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오후 세시. 나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포만감을 느끼며 폐 속 가득 시커먼 연기를 채워넣었다. 그러고는 하늘이 낮게 가라앉은 밖으로 나와 국립시청각연구소의 작은 골방을 찾았다(95쪽)’ 장켈레비치교수를 만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널리즘을 택할 것익가, 아니면 철학을 택할 것인가로 고민하던 시기에 도움을 얻었던 순간이었나 봅니다.

그의 선택은 저널리스트인 아버지와는 달리 철학이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었을까요? ‘철학은 이성적으로 따지고 생각하기 전에 울림을 알려준다. 다시 말해 철학은 관념들을 유연하게 하고, 개념들을 구체화시키며, 순간의 지혜를 메아리로 퍼뜨린다.(104쪽)’

저녁 7시에는 무슨 일을 하나요? ‘세이렌의 유혹’이라는 제목의 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저녁 일곱시다. 태양이 길게 누운 대지에 바람이 분다. 파도는 치맛자락처럼 둥글게 말려 휩쓸려가고, 바다는 살랑살랑 애무하듯 부딪는 요트에서 천천히 멀어져가고 있다.(131쪽)’ 그렇습니다. 일곱시는 사랑을 하기에 좋은 시간인가 봅니다. 이어지는 7시에 관한 글 ‘세상의 침묵’에서는 화자의 시점이 5월임을 알려줍니다. 역시 아들 오렐리앙이 등장합니다. 정체성에 관한 열띤(?) 논쟁이 이어지고 사유는 신을 거쳐 철학으로 이어집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그의 답은 철학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분은 침묵하고 있다. 맹목적인 직관만이 우연의 일치들에 놀라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세상의 침묵이 그 우연에 대한 증거이다.(141쪽)’

아버지는 ‘네가 문학이 아닌 철학을 선택했던 날, 넌 바보가 된 거란다’라고 놀렸다고 하지만, 저자는 열세 살부터 의사놀이하듯 철학놀이를 하면서 개념을 주물렀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개념을 어떻게 주무를 수가 있죠? 그런데도 저자는 ‘철학은 아이의 장난’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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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그리다 - 세계 지성들의 빛나는 삶과 죽음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주영 옮김 / 아고라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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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누구나 피하고자하나 피할 수 없는 유일한 사건입니다. 다만 죽음을 어떻게 맞는가는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을 그리다>는 그런 선택에 도움을 줄만한 책읽기였습니다. ‘세계 지성들의 빛나는 삶과 죽음’이라는 부제처럼, 16세기말에 죽은 몽테뉴로부터 20세기 말에 죽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에 이르기까지 사상가와 문호 23명이 죽음을 맞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프랑스에서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평소 ‘작가들의 마지막 말과 글을 모은 책’을 쓰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자료에서 발췌한 인용문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읽는 흐름이 끊어질 수는 있습니다. 그리도 그러한 인용문들이 전하는 작가들의 최후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사실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저 작가들이 남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과 글 중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살펴보고,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던 작가들의 모습을 좀더 가까이 들여다보려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몽테뉴는 ‘죽음은 우주 질서의 일부이자 삶을 이루는 한부분이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바라지도 말라(29쪽)’는 말을 남겼습니다. 몽테뉴는 평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했을 뿐 아니라 그의 수상록에서도 죽음에 관한 내용을 쉽게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읽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마무리하지 못한 그의 수상록을 조만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스칼 역시 죽음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의 <팡세> 역시 죽음에 대한 글로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죽는 것이야말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파스칼은 얼떨결에 당하는 죽음보다는 당당하게 죽음을 맞고 싶었나 봅니다. 생트 뵈브는 그의 죽음을 이렇게 전합니다. ‘파스칼은 아주 슬퍼 보였지만, 그래도 충만한 기쁨을 느끼며 죽어갔다. 죽음을 맞는 순간, 그는 갑작스럽게 힘이 빠지는 듯 보였지만 고통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의 <팡세>의 마지막 몇 장과 비슷한 구성이 있다(58쪽)’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주관적인 묘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얼마 후에 내가 죽을 거라는 사실뿐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알 수 없는 건 피할 수없는 죽음의 정체다(65쪽)’라고 한 것을 보면 담담하게 죽음을 맞았다는 그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자주 만났던 세비네부인의 경우 ‘난 죽는 게 너무 두려워, 그래서 삶을 더 증오하지. 살면서 고통을 겪다가 결국 죽음을 맞게 되니까(77쪽)’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발자크의 죽음을 전하는 세 가지 이야기에서, 대문호들의 죽음에 대한 기록들을 저자가 어떤 시각에서 다루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기작가들은 유명인들을 단정하고 겸손한 성격으로 미화해서 후대에 선보인다. 하지만 나는 유명인들의 결점, 실패, 비밀, 분노, 범죄, 악행, 우스운 짓, 수치스런 행동에 더 관심이 있다. 그게 더 글 쓰는데 도움이 되니까 말이다.(138쪽)’ 사실 선정적인 내용에 독자들이 더 관심을 가진다는 속설에서 저자 역시 자유로울 수가 없었나 봅니다. 이런 이유때문인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23명의 대문호들에 대하여 흔히 알고 있던 모습과는 다른, 때로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한 저자 덕분이겠지요.

대부분의 인사들이 자연사를 맞았습니다만, 부인과 함께 죽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경우 자살한 경우입니다. ‘표절된 죽음’이라는 표제를 붙인 것처럼 그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와 헨리에트 포겔의 죽음을 따라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죽음을 그리다>를 쓴 작가 스스로 고백한 짓궂은 면모의 일부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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