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라파엘 앙토방 지음, 발레리 해밀 그림, 권명희 옮김 / 열림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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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혹시 오후 3시에는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오후 세 시는 “무언가를 하기에는 언제나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시간이다”라고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그렇다는 것이고, 하던 일이나 잘 마무리하라는 충고가 되나요?

<오후 3시>는 파리 정치학 연구소(에콜 폴리테크니크)와 시앙스 포에서 강의하고 있는 철학교수 라파엘 앙토방의 철학적 에세이입니다. ‘지금은 아직 동도 트지 않는 새벽이다’라는 시점을 적은 글 ‘정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하루의 시간에 대한 사유를 적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제는 아주 다양한데,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인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에 대한 단상, 몇 차례 등장하는 아들과의 대화 등을 보면 철학이야말로 일상에서 사유의 단초를 얻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게 있어 들뢰즈란 공포이고, 좌파 중의 좌파이며, 보라색 스웨터이고, 누런 치아이다. 내게 드뢰즈란 바로 이슬람인 것이다. 들뢰즈. 이는 곧 구시대의 악몽이다.(70쪽)’라고 적을 정도로 거칠 것 없는 필체에서 저자의 직설적인 면모를 읽을 수 있습니다.

10시에는 산책을 하면서 아들 오렐리앙과 함께 갔던 바닷가를 떠올립니다. 부자간의 대화 역시 직설적입니다. 시간을 건너뛰어 3시입니다. 표제가 되기도 한 ‘오후 3시’라는 제목의 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후 세 시. 태양이 죽음처럼 뜨겁게 타오른다. 섬들은 안개 속에서 떠다니는 것만 같고, 어디선가 매미 냄새와 풀 냄새가 난다. 달콤한 낮잠을 잘 시간이고, 부른 배가 꺼지도록 연거푸 담배를 피울 때이다. 오후 세 시란 한여름처럼 지치고 나른하게 만드는 시간이다.(75쪽)” 오후 3시에 무언가를 하지 않고 사유에 매달리다보면 이렇게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그 나른한 시간에 저자는 에콜 노르말(고등사범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 답안작성을 마감하는 순간을 두고 감독자의 눈치를 보던 이야기에 이어, 교수자격 시험의 제목으로 나왔던 ‘단일자의 인식’으로 화두가 옮겨갑니다. 결국 오후3시의 화두는 ‘단일자’로 고정되어갑니다.

오후3시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 ‘영원한 장켈레비치’에서 저자는 오후3시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그리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오후 세시. 나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포만감을 느끼며 폐 속 가득 시커먼 연기를 채워넣었다. 그러고는 하늘이 낮게 가라앉은 밖으로 나와 국립시청각연구소의 작은 골방을 찾았다(95쪽)’ 장켈레비치교수를 만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널리즘을 택할 것익가, 아니면 철학을 택할 것인가로 고민하던 시기에 도움을 얻었던 순간이었나 봅니다.

그의 선택은 저널리스트인 아버지와는 달리 철학이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었을까요? ‘철학은 이성적으로 따지고 생각하기 전에 울림을 알려준다. 다시 말해 철학은 관념들을 유연하게 하고, 개념들을 구체화시키며, 순간의 지혜를 메아리로 퍼뜨린다.(104쪽)’

저녁 7시에는 무슨 일을 하나요? ‘세이렌의 유혹’이라는 제목의 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저녁 일곱시다. 태양이 길게 누운 대지에 바람이 분다. 파도는 치맛자락처럼 둥글게 말려 휩쓸려가고, 바다는 살랑살랑 애무하듯 부딪는 요트에서 천천히 멀어져가고 있다.(131쪽)’ 그렇습니다. 일곱시는 사랑을 하기에 좋은 시간인가 봅니다. 이어지는 7시에 관한 글 ‘세상의 침묵’에서는 화자의 시점이 5월임을 알려줍니다. 역시 아들 오렐리앙이 등장합니다. 정체성에 관한 열띤(?) 논쟁이 이어지고 사유는 신을 거쳐 철학으로 이어집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그의 답은 철학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분은 침묵하고 있다. 맹목적인 직관만이 우연의 일치들에 놀라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세상의 침묵이 그 우연에 대한 증거이다.(141쪽)’

아버지는 ‘네가 문학이 아닌 철학을 선택했던 날, 넌 바보가 된 거란다’라고 놀렸다고 하지만, 저자는 열세 살부터 의사놀이하듯 철학놀이를 하면서 개념을 주물렀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개념을 어떻게 주무를 수가 있죠? 그런데도 저자는 ‘철학은 아이의 장난’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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