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굴레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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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는 아내가 읽고 싶어 한 희망도서였습니다. 예과 때 들었던 영어 시간에 <달과 6펜스>를 원어로 읽었던 것 같은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장이 참 좋다는 서머싯 몸이었지만, <인간의 굴레에서>는 요즘 드라마로 만든다면 막장드라마에 가까울 것 같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시골 작은 마을의 교구 사제를 하는 백부집에 의탁한 어린 소년이 성장해서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일종의 성장소설입니다. 아버지가 잘 나가는 의사였지만, 어머니의 사치 때문에 그리 큰 유산을 남기지는 못했기 때문에 제 몫을 할 때까지 허투루 살 여유가 없었던 주인공입니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총기는 있었지만, 발에 장애가 있었다고 합니다. 증상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았지만, 커서 수술을 받아 어느 정도 교정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선천성 내반족 같은 장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주인공에게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장애가 첫 번째 굴레였다면, 평탄한 삶을 걷어차고 밖으로 나도는 역마살이 두 번째 굴레였습니다. 자신이 잘하는 공부로 앞날을 설계하는 것보다 도전을 꿈꾸었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한 우물을 파지 못하였다는데 있습니다. 한 우물을 파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세 번째 굴레는 여자 문제였습니다. 그와 연을 맺은 여성은 다양한데, 연상의 여인과의 잠깐 사랑에서부터,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다가 삶을 끝낸 불행한 여성을 거쳐 이번에는 운명처럼 엮여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몰아넣고만 악연의 여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여인을 만나 평탄한 삶의 길로 복귀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을 보면 작가 역시 주인공을 파멸로 내몰고 싶지만은 않았던 모양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작가의 삶을 바탕으로 하여 허구적 요소를 섞어 넣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합니다.

경제적 궁핍이라는 굴레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경제적 궁핍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남긴 유산이 많지는 않지만 알뜰하게 쓰면 자립하는데 필요한 공부를 마치는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미술공부를 한다고 파리로 간데다가, 런던에서 의과대학에 다닐 때도 여자에 빠져 유산의 원금을 까먹기 시작하고, 종국에는 주식에 투자했다가 날리는 바람에 거리의 부랑자로 전락하는 뼈아픈 경험도 합니다. 어쩌면 1900년을 전후한 영국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삶을 조명해보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굴레에서>를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화두는 ‘인생이란 무엇인가’입니다. 파리에서의 생활은 ‘인생이란 그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살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그마저도 정답이 아닙니다. 결국은 삶의 과정이란 ‘태어나, 고생하다, 죽는다’라는 것으로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정말 한 인간의 삶이 의미가 없을까요? 주인공 역시 자신을 좋아하는 어린 여성과의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 역시 삶이란 의미를 부여라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사랑을 위해서는 오랜 세월 품어왔던 세상구경도 접는 중대한 결심까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삶에 여유가 생기면 스페인에서 살아보고, 배를 타고 동양으로 가서 낮선 삶을 살아보려는 꿈을 가졌었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라면 바닷가 마을에 작은 병원을 열어 소박한 삶을 살아가기로 했으니 말입니다.

책에서 발견한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새겨둘만합니다. “여행을 통하여 무엇을 얻을 수 있을는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삶에 대해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는 느낌, 풀면 풀수록 더욱 불가해해지는 삶의 신비를 깨우치는 무슨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있었다.그리고 설사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가슴을 갉아대는 불안만큼은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2권, 4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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