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탈리아 기행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평점 :
내년에는 이탈리아를 여행해볼까 해서인지 눈에 띄었나봅니다. 처음 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저 스치듯 지나쳤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이탈리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여행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점에서 괴테가 쓴 <이탈리아 기행>이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 책읽기였습니다. 물론 시대적으로는 한 세기 이상 차이가 있습니다만 저자가 그림을 그리듯 꼼꼼하게 살피고 글로 옮겨놓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탈리아 기행>은 저자가 37살이 되던 1786년 9월 머물고 있던 독일의 칼스바트를 떠나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까지 내려갔다가 되집어와서 17788년 4월에서야 독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니까 1년 8개월이나 이탈리아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가 거친 곳을 살펴보면, 칼스바트에서 뮌헨을 거쳐 트렌토에서 이탈리아로 입국하여, 베로나에 처음 머물다가 파도바, 베네치아, 볼로냐, 피렌체를 거쳐 로마에 이르렀습니다. 로마에서는 나폴리, 폼페이를 거쳐 페스톰까지 내려갔다 돌아와서 시칠리아 섬으로 건너가서 일주를 하고는 나폴리로 돌아와서 다시 로마로 돌아와 사육제 기간을 포함해서 머물렀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괴테가 칼스바트를 떠날 때 야반도주하다시피 했다는 것인데, 지인들이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하여 붙들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혼자서 독일을 떠났지만, 먼저 이탈리아에 와있던 지인들을 만나 같이 여행을 하기도 하고, 혼자서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풍광은 물론 날씨, 그 지방 사람들에 대한 인상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기록했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풍광을 그리기도 했던 것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여행의 인상을 가장 잘 남기는 방법이라고 했는데, 그림에 재주가 없는 저 같은 사람은 아예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일입니다.
“여전히 저에게 첫 번째로 중요한 일은 제 그림 솜씨가 확실한 수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손놀림이 쉽고, 다시 잊어버리지 않고, 또 유감스럽게도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시기에 그랬듯 오랫동안 정지상태에 머물지 않을 정도의 수준 말입니다.(2권 222쪽)”라고 고백한 것을 보면, 괴테 역시 그림그리기에 관심이 컸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작가답게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는 일도 역시 작가답다고 하겠습니다. 자연풍광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 특히 지질학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나폴리의 베수비오화산에서는 용암이 끓어오르는 화산의 정상에까지 올라가 화산재를 맞아가면서 구경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행동파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화산에서 뿜어내는 연기에는 유황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자칫 중독이 될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할 것인데도 당시에는 위험한 곳에 사람이 오르지 못하도록 금지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괴테는 주로 로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베네치아에서도 보름을 넘게 머물면서 도시 안팎의 풍경은 물론 미술품 감상은 물론 음악회와 연극 등 다양한 풍물을 즐겼습니다. 괴테가 베네치아에서 기대했던 것은 ‘고독’이었던 모양입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군중 사이를 홀로 헤치고 지나다닐 때처럼 절실히 고독을 느낄 때는 없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일 뿐일 것이고 그 사람도 나를 곧 만나게 되지는 못하리라(1권 117쪽)”이라고 적었습니다.
괴테는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을 일기형식으로도 적었고, 또 독일에 있는 누군가에서 보내는 편지형식으로도 적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여행 기간 중에도 꾸준하게 작품을 썼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쓴 글들을 여행중간에 묶어서 독일로 보냈다고 합니다. 로마에 입성하던 날 그는 ‘드디어 나는 세계의 수도에 도착하였다.(211쪽)’라고 적었습니다. 괴테가 로마를 바라보는 시각은 새로운 바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로마에서 고대 로마를 선별하는 것은 어렵고도 가슴 아픈 일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다. 이곳에서 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장관과 파괴라는 양쪽 흔적에 부딪힌다. 즉 미개인들이 그대로 남겨 둔 것을 새로운 로마의 건축가들이 파괴해 버린 것이다.(219쪽)”
또한 “사물을 그대로 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나의 수련, 눈빛을 흐리지 않게 하려는 나의 성실함, 모든 우쭐함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는 나의 기분. 이러한 모든 것들이 도움이 되어서 남이 모르는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226쪽)”라는 그의 고백에서 배움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