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나라 - 성폭력 생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기적의 대화
토르디스 엘바.톰 스트레인저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성폭력의 생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기적의 대화’라는 부제는 <용서의 나라>라는 제목과 함께 호기심과 많은 의문이 들게 만듭니다. 아이슬란드의 인기작가 토르디스 엘바와 호주에서 청소년지도사로 일하는 톰 스트레인저가 어떻게 만나 성폭력이라는 악연을 쌓았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16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뒤에 굳이 다시 만나 아픈 기억을 복기해야만 했던 이유도 궁금합니다. 이야기를 모두 읽어야 16년에 걸쳐 이어진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사건과 그 뒷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10대에 만난 두 사람은 연인이었는데,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의 피해자를 의사에게 데려가는 대신 두 시간에 걸쳐 강간함으로써 젊은 시절 피해자의 삶을 갈가리 찢어놓았던 그 남자는 피해자의 첫사랑이었다고 했습니다. 데이트폭력의 전형인 셈입니다.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상대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는 강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추세인 듯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인데 왜 문제가 되느냐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선은 성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만나 용서라는 절차를 굳이 가지려는 이유가 일종의 스톡홀름증후군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은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을 말하는데, 일부 매맞는 아내 혹은 학대받는 아이들도 이와 비슷한 심리 상태에 빠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 결혼을 앞둔 피해자가 강간사건 이후에 무너진 삶을 추슬러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아이슬란드와 호주에 사는 두 사람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만나기로 한 이유는 아파르트헤이트가 종결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성폭력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장소라는 것도 한 몫을 한 것 같습니다.

10대 연인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몰아간 사건은 1996년이었는데, 2000년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가 헤어졌고, 2005년부터는 두 사람이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두 사람 사이에서 벌여졌던 이야기들을 복기하기 시작한 것을 2013년에는 드디어 케이프타운에서 직접 만나 아흐레를 같이 보내면서 마지막 감정을 정리하기까지의 오랜 과정을 담담하게 적어가고 있습니다. 두 사람에게 이런 과정이 필요했던 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건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었던 것도 큰 몫을 한 것 같습니다. 특히 피해자의 경우 사건 이후 삶의 자존감을 되찾기 위한 행동이 오히려 자괴감을 불러오게 되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은 결자해지라는 문제해결방안을 생각해낸 것으로 보입니다.

참 어려운 만남이었을 것 같습니다만,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에도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어느 정도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 탓인지, 아니면 자존심 때문인지 두 사람은 담담하게 서로를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케이프타운에서 일주일에 걸쳐 만나는 과정을 보면 두 사람이 기억하는 사건의 내용과 그때의 심리상태에 대하여 분명치 않았던 부분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고, 그 결과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경지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성폭력은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몇몇 사건을 제외하고는 묻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용서의 나라>는 사랑 혹은 연인관계라는 가면 아래 벌어지고 있는 성폭력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로잡는 책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용서의 핵심은 짐을 덜되 그 짐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는 거야. 그 짐이 그 사람의 몫이라 하더라도 말이야’라는 피해자의 생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용서하는 과정을 통하여 힘든 삶을 살아온 두 사람 모두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주목할만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런던, 영화처럼 여행하라 - 영화의 감동을 따라 걷는 감성 여행기
김인 지음 / 이담북스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까운 곳도 아닌 런던을 두 번 갔습니다. 한번은 일로, 한번은 단체여행으로. 하지만 머문 시간이 2-3일에 불과했기 때문에 런던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그려볼 수도 없습니다. 그저 비스킷의 한 귀퉁이를 조금 씹어본 느낌? 일단 맛을 보았으니 언젠가는 제대로 느껴볼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그날을 위하여 런던에 대한 공부를 더해가려고 합니다. <런던, 영화처럼 여행하라>도 그 하나입니다.

이 책을 쓴 김인님은 영국에서 투어가이드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분인데, 벌써 런던을 상당히 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런던을 배경으로 한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런던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의 촬영지를 영화음악을 들으면서 여행하고 느낀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화는 물론 영화음악까지 잘 이해하는 작가의 특장을 잘 살린 기획이라는 생각입니다. 영화촬영장소를 찾아간다는 기획이고 보면, ‘영화의 감동을 따라 걷는 감성 여행기’라는 부제가 이 책의 성격에 딱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런던을 무대로 한 영화는 참 많다고 합니다. 저자가 어떤 기준으로 고른 영화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패딩턴>, <나우 이즈 굿>, <킹스맨>, <러브 액추얼리>, <어바웃 타임>, 그리고 <노팅 힐> 등 6개의 영화를 담았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노팅 힐> 한 편만 본 기억이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런던에서 촬영된 영화는 의외로 많고, 그 영화를 보고 런던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그곳의 역사 혹은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역사보다는 사진이 잘 나오는 장소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역사는 기본적인 내용만 이야기하고, 영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반응이 좋더라는 것입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자유여행으로 런던을 찾는 분이라면 <런던, 영화처럼 여행하라>를 들고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을 현장에서 확인하는 인증사진을 곁들이는 것도 그렇고, 줄거리는 물론 감독의 의중, 영화음악에 얽힌 이야기 등 영화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풀어놓았습니다. 저자가 영화 <패딩턴>을 첫머리 영화로 소개한 것은 런던과 런던 사람들의 특징을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페루에 살던 작은 곰 패딩턴이 런던에 와서 살아내는 과정을 담은 영화라고 합니다. 그런 패딩턴에게 비친 런던 사람의 첫인상은 “친절하고 매너 있는 사람들이 가득할 것만 같던 런던의 모습은 기대와는 다르게 지독하게 차갑다.(13쪽)” 어쩌면 이 책의 작가가 런던에서 받은 첫인상이 이랬다는 것 아닐까요?

영화를 찍은 장소에 대한 설명도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잘 짚었습니다. 예를 들면, 영화 <패딩턴>에 나오는 탐험가협회 건물은 런던의 클럽가 폴 몰 104번지에 있는 리폼클럽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Simple is best'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영국다운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30쪽)”라고 적었습니다. 영화음악에 대한 설명도 충분히 자세합니다. 두 번째 영화 <나우 이즈 굿>에서 주인공 테사가 실내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장면에서 <Wings>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답니다.(제가 안본 영화라서...) 이 음악을 작곡한 더스틴 오 할로란은 ’미국 출신의 모던 클래식 아티스트로 (…) 피아노연주만으로 슬픔과 환희, 우울, 사랑 등 여러 가지 감정을 꾸미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한다(122쪽)‘라고 설명합니다.

음악을 했던 저자가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자의 말대로 좋아하는 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확인하기 위하여 촬영현장을 찾아보고 싶어하는 분에게는 완벽한 안내서가 될 것 같다는 책읽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해의 마지막 날 쓸 독후감으로 <설국>을 정한 것은 지난밤 눈이 예고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하얀 풍경은 소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로 시작되는 <설국>의 첫머리와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소설 <설국>의 무대는 니가타(新潟)현의 에치고(越後) 유자와(湯澤) 온천이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눈이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겨울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책읽기였습니다. 너무 잘 알려진 소설이라서 오래 전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막상 줄거리는 전혀 떠오르지 않아 새로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시작은 깔끔했지만, 읽어가는 내내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도쿄에 사는 백수 남자주인공 시마무라, 그리고 시마무라가 손가락으로 기억하는 여자 고마코와 눈에 등불이 켜진 여자 요코, 등 세 명의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가 모호했기 때문일까요? 결국 해답은 작품해설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설국>은 처음부터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구상된 것이 아니라 작가가 36살 때 쓴 단편 「저녁 풍경의 겨울」이후 단속적으로 발표한 단편들을 묶어 연작형태의 중편 소설 <설국>이 탄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야기는 눈이 쏟아지면 기차도 다닐 수 없는 절해고도가 되고 마는 산촌마을에 있는 여관에 머물게 된 시마무라가 고마코를 만나게 된 인연에서 출발합니다. 고마코는 약혼자의 병구완을 위하여 기생이 된 것인데, 그 약혼자에게는 요코라는 새애인이 생긴 것입니다. 시마무라는 고마코가 약혼자를 위하여 기생이 된 것도 이해가 되지 않고 요코라는 새 애인과 같은 집에 사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시마무라가 이곳에 와있는 동안 고마코를 부르기도 하고, 또 고마코가 시마무라를 찾아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혹은 술에 취해 스며들 듯 찾아와 밤을 같이 보내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시마무라의 시각에서 보면 고마코와 요코가 하는 일이 ‘헛수고’로 보이는 것입니다. 특히 고마코가 읽은 책의 제목과 지은이, 그리고 등장인물 이름과 그들의 관계 정도를 적어놓은 잡기장이 열권이나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헛수고’라고 잘라 말합니다. 그리고 고마코의 약혼자이자 요코의 애인이 죽어버린다면 모든 일이 헛수고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일에는 의미 없는 일이 없을 터, 그렇기 때문에 헛수고는 절대로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삼자가 보기에는 헛수고로 보이는 것도 정작 당사자들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겠습니다.

도쿄에 사는 시마무라는 서양무용에 대한 글쓰는 일이 전부인 한가한 여행자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무위도식하는 그는 자연과의 보호색을 추구하는 심리가 있어서인지 여행지의 인심에 본능적으로 민감했다. 이야기의 첫머리에서도 느낀 점입니다만, 작가는 주변 풍광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유자와 온천에 머물게 된 것은 자연 풍경 묘사에 대한 작가로서의 관심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한 달 정도 머물면서 계절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여 기록하는 일에 정성을 쏟았던 것은 당시의 소설문학이 천편일률적인 묘사에 그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성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소설의 첫머리가 설국에 들어가는 장면이었다면, 설국에서 떠나는 장면은 이렇습니다. “국경의 산을 북쪽으로 올라 긴 터널을 통과하자, 겨울 오후의 엷은 빛은 땅밑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낡은 기차는 환한 껍질을 터널에 벗어던지고 나온 양, 중첩된 봉우리들 사이로 이미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산골짜기를 내려가고 있었다. 이쪽에는 아직 눈이 없었다.(75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임메카 2018-06-29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

˝설국”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일본인 작가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게 해준 작품이라는 것에서 의의가 큰 작품이죠.
소설의 배경이 니가타 현이라는데, 그 곳의 유자와 온천에 머물면서 쓴 소설이라 겨울에 여행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 카페에 ˝설국˝을 소재로 한 모임도 있고 그 외에도 영화나 독서모임에 대한 여러 정보가 있어요. 관심있으시면 한 번 들려보세요.

˝설국˝ 선정모임
https://cafe.naver.com/moimmecca/3327

모임메카 카페
http://cafe.naver.com/moimmecca

처음처럼 2018-07-01 20:4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시간을 만들어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사육사 - 사육사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스토리 가이드북 직업공감 시리즈 4
김호진 지음 / 이담북스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소년기는 여백이 많아서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영향으로 일찍 미래를 결정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초등학교 무렵부터 선친께서 교편을 잡고 계셨기 때문인지 교단에 서는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것이 고3이 될 무렵 선친께서 갑자기 의사가 되면 어떻겠느냐고 하시면서 의과대학으로 진학하기로 방향을 정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지 않으니 의사가 되기는 했지만, 처음 뜻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청소년기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 많은 정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담북스가 기획한 ‘직업 공감 시리즈’는 청소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비행기 승무원, 기자, 광고인이라는 직업에 관한 안내서가 나와있습니다. 해당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 분 보다는 신참을 갓 지난 분들이 저자로 나서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전문가적인 내용에 자부심을 담아 정리를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편집방향을 그렇게 잡고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만, 책의 구조는 물론 서술까지도 완전히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육사>는 동물사육을 맡고 있는 사육사라는 직업을 소개합니다. 동물원 말고도 동물 사육과 관련된 곳이 없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사육사하면 동물원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취업할 수 있는 기회, 즉 확률에도 민감하다는 것을 잘 파악하였는지, 전국에 있는 동물원 등 사육사로 일할 수 있는 곳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까지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물 사육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교육체계는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동물자원과(예전의 축산과를 이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처럼 동물과 관련된 과를 졸업하고 동물원과 같은 곳에서 실무를 경험하면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흔히 자신의 직업을 말할 때 자존심 때문인지 남들이 보기에 거시기한 부분은 생략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사육사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퇴근길에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을 타면 사람들이 눈치를 보면서 피한다는 것입니다. 종일 동물들과 생활하다보면 동물은 물론 동물의 배설물 냄새가 몸에 배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화까지도 솔직하게 소개하면서 사육사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냄새’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씀을 드리면 제가 병원에서 일할 때는 병원 특유의 소독약냄새에다가 제가 하는 일이 포르말린을 쏟아가면서 해야 하기 때문에 포르말린 냄새까지 몸에 배어 있던 모양입니다. 일과 후에 택시를 타고 어디를 나가게 되면 ‘병원에서 일하세요?’라고 묻는 기사님을 흔히 만나곤 했습니다.

사육사라는 직업에 대하여 청소년들이 가질만한 수많은 질문을 만들어내고 이에 대하여 솔직하게 답을 하는 식으로 책을 써냈습니다. 앞서 동물의 배설물 이야기도 했습니다만, 사육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최대의 장점은 책상머리에 앉아 컴퓨터와 씨름을 하는 경우가 많은 사무원과는 달리 자연 속에서 활동하는 직업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압박을 받는 사무직과는 달리 동물들과 교감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안정된 직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육사라는 직업에 대한 저자의 자긍심은 다음 대목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나 사육사가 될 수 없다. 또 아무나 사육사로 평생 남을 수도 없다. 사육사는 특별한 사람이다. 혼자 있을 때는 빛이 나지 않지만 동물들과 함께 있을 때 빛이 나는 사람들이다.” 동물을 좋아하고 다양한 동물의 세계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이라면 사육사를 꿈꾸어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 - 떠남과 휴休, 그리고 나의 시간
장 루이 시아니 지음, 양영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전통적으로 철학이란 ‘세계와 인간과 사물과 현상의 가치와 궁극적인 뜻을 본질적이고 총체적으로 천착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합니다. 대상에 따라서 그 깊이가 다양할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휴가지에서 철학적 사유를 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여행을 떠나면서 그리 무겁지 않은 철학적 주제를 다룬 책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은 ’떠남과 휴(休), 그리고 나의 시간‘이라는 부제가 달린 것처럼 휴가지에서 건진 철학적 사유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서문에서 저자는 특정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오랫동안 꿈꾸고 그리던 바닷가로 떠나서 ‘잉ㄴ간을 궁극적으로 좀 더 명철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존재로 만들겠다는 목적을 지난 삶의 기술을 펼쳐’보는 기회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로, ‘철학은 경이로움을 품을 줄 알고, 사랑하고 읽고 쓰고 대화하고 걷는 일 따위에 몰두했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이론적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불행의 가능성을 예견하며, 거리감을 유지하고 친구를 위로하는 등의 개별적 사유활동’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름철을 위한 이 작은 철학책은 ‘휴가를 사유 안’에, 또는 ‘사유를 휴가 안’에 슬쩍 밀어넣을 것이다. 벼르고 별러서 마침내 찾아온 이 해변에서 사색뿐 아니라 실천의 장이 열리게 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급진적인 독창성을 가진 철학이 펼쳐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휴가를 거처하는 장소에서 보낼 수도 있습니다만, 저자는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어느 바닷가로 향합니다. 즉 여행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여행은 떠남과 돌아옴을 수반합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는 바로 우리의 삶과 욕망, 사유의 움직임 그 자체라고 정의합니다. 즉 미지의 장소로 들어간다는 것은 사유를 수반하는 것이므로 철학하는 일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철학을 위한 여행지가 바닷가 인만큼, 여행지에 도착하여 그곳의 풍광으로부터 무언가를 느끼고, 머물 자리를 찾아 정리를 하고 걷고, 놀고, 모래 위에 몸을 눕히는 등의 행위 등은 물론 명상과 관조를 통하여 느끼는 바를 정리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과 소통하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웃는 등 다양한 감정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이런 것들 또한 사유거리가 되는 셈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 일상에서 벗어나면 어디로 향하든지 우리를 옥죄던 시간의 속박이 느슨해집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현재의 시간에 닻을 내리는’ 셈입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일상에 점철되어 있던 수많은 걱정거리들이 팽팽하던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듯 하나씩 시나브로 사라져갑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철학은 우리가 자신의 약점과 무력감에 대처하는 경험을 통해서 태어났다’라는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화두를 인용하여 휴가를 철학에 연결합니다. 저자는 휴가지로 향한 출발에서 돌아오기까지의 전 과정에 수많은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들을 인용하여 휴가를 철학적으로 즐기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특히 휴가지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휴가에서 얻은 철학적 결과물을 되새김하기까지 합니다. 그 과정을 꽤나 현학적으로 표현합니다. ‘우리의 기억은 숭숭 뚫린 공간 사이에서의 체류를 재구성한다. 여름 한철의 휴식 총결산’ 저자가 여름의 바닷가를 철학적 사유의 화두로 삼은 이유는 ‘겨울의 한가운데서, 나는 마침내 내 안에 꺽이지 않는 여름이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98쪽)’라고 한 알베르 카뮈의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름 바닷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놓는 마력을 품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떠나왔다. 한가로움을 얻어낸 이 해변에서 무엇을 할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놓고 보면, ‘딱히 할 일이 없다. (아니)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