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8
제인 오스틴 지음, 전승희 옮김 / 민음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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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으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접의 최근 판으로 나왔길레 읽게 되었습니다. 설득의 대상과 내용이 궁금했다고 할까요?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814년으로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치열한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하고서 사회적으로 상당한 변화가 있던 시기라고 합니다. 서머싯셔의 켈린치 홀에 사는 준남자 월터 엘리엇경의 세 딸이 장성하여 결혼하는 과정을 뒤쫓고 있습니다.

세 딸 가운데 막내딸이 가장 먼저 결혼하고, 둘째도 이야기 끝에 짝을 만나게 되지만, 첫째 딸의 결혼은 이야기되지 않은 가운데 소설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보면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귀족가문에서는 아들이 없는 경우 친척 중 남자에게 유산이 넘어갈지언정, 딸에게는 유산이 상속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여자의 경우 결혼을 통하여 부를 얻을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전통 역시 나폴레옹 전쟁 이후 부상하는 신흥부자계급이 귀족과 결혼함으로서 신분상승을 꾀하는 윈-윈 전략 같은 것이 생겨났던 듯합니다. 특히 해군의 경우에는 적국의 배를 나포했을 때, 그에 대한 처분권을 승무원들이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해군의 제독들은 부를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설득>의 주인공은 엘리엇경의 둘째 딸 앤입니다. 그녀의 결혼상대가 되는 앤트워프 대령은 초급장교시절 앤과 약혼을 했지만, 가진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파혼을 당하게 되었는데, 이후 해군 복무를 통하여 한 몫을 챙긴 다음에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파혼 이후로 앤 역시 다른 혼처가 나타나지 않아 노처녀(?)로 지내던 것인데, 다시 나타난 앤트워프대령이 동생 메리의 시누이들에게 호감을 가지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데, 정작 시누이는 앤트워프대령의 친구와 결혼을 하는 황당사건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앤 역시 새로운 남자가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언니 엘리자베스의 상대로 지목되었지만, 청혼을 거부한 엘리엇 준남작의 상속자 엘리엇이 앤에게 호감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야기의 전개상 필요한 복선이었던 셈입니다. 엘리엇씨는 엘리자베스가 아닌 부잣집 처녀와 결혼을 하였지만, 아내가 죽은 다음에 재혼 상대로 앤을 점찍은 것입니다. 자매 사이에 곤란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지만, 찬한 앤을 둘러싼 사람들의 도움으로 앤트워프 대령의 진심을 확인하고 사랑이 완성되는 결말에 이릅니다.

영국에서는 장남에게 모든 재산을 몰아주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목사나 군인이 되면 넉넉하지는 않지만, 귀족의 지위와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미 유산을 가진 여자와 결혼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여자의 경우는 상속받을 재산이 없는 경우에는 친척에 얹혀살거나 하녀나 다름없는 가정교사를 하면서 자립할 수는 있었습니다. 결국 결혼은 재산과 지위를 중심으로 한 정략결혼이었던 것입니다. <설득>에서의 설득 대상은 우선 파혼한 뒤에 다시 등장한 앤트워프 대령의 마음을 다시 붙들기 위한 노력을 의미하거나, 약혼을 깨는 과정에 개입했던 아버지 월터 엘리엇 준남작이나, 엘리엇가문에 조언을 주는 작고한 어머니의 친구 레이디 러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노력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먼저 설득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성격이나, 생각, 처한 환경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여야 하고, 설득에 들어가면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설득해야 하는 상황을 이치에 맞게 잘 설명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설득>을 읽어가면서 영국의 귀족가문의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 특히 로마의 목욕탕 유적이 있는 휴양도시 바스가 무대라는 점에 관심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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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미래를 향한다 - 뇌과학과 철학으로 보는 기억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
한나 모니어.마르틴 게스만 지음, 전대호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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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정보와 생각들을 저장했다가 되살리는 기전을 기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기억이 만들어지고 이용하는 절차는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이 여전히 신비 속에 싸여 있는 형편입니다. 그래서인지 문학,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억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억은 저 개인으로서도 중요한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뇌과학자 한나 모이어와 철학자 마르틴 게스만이 같이 쓴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는 뇌과학과 철학이 손을 잡고 기억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계획을 듣고 ‘물고기와 새가 서로 좋아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같이 살 보금자리를 어디에 마련하지?’라고 이야기한 동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질적으로 보인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뇌과학은 인간의 정신활동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며, 철학은 인간의 정신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고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이 두 학문은 어디에서든지 다시 만나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두 저자의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 ‘어디’는 미래가 되어야 했던가 봅니다. 그 미래에서 만나기 위하여 두 저자는 기억에 관한 여덟 가지 주제를 정하였습니다. 기억이 만들어지는 기전을 1장 기억 혁명에 담았습니다. 기억이란 외부로부터의 받은 정보를 머릿속 어디엔가 있는 방에서 집어넣었다가 필요할 때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경생물학적 기전으로 만들어지고 되살려내는가를 설명합니다.

2장 꿈과 수면중의 학습에서는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정보, 즉 일과성 기억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영구적인 기억으로 자리잡게 되는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수면이라는 요소가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수면 중에 꾸는 꿈을 통하여 기억이 강화된다는 내용을 3장 꿈을 통한 능력 향상에서 다루었습니다. 4장에서는 기억이 오작동되는 경우 즉 상상과 거짓 기억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5장에서는 우리가 얻은 정보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도 기억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6장에서는 기억도 시간이 흘러갈수록 퇴화되는데, 특히 치매와 같은 퇴행성질환에서는 그 정도가 심각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7장에서는 기억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로 집단기억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9장은 그리 머지 않은 미래가 될 것입니다만, 기억을 내려받거나 올려받는 세상이 과연 올 것인가를 논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억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끄집어내는 과정에 대한 신경생물학적 설명은 비교적 쉽게 이해가 되는 반면 기억에 대한 지금까지의 철학적 논의나 기억의 미래에 관한 철학적 해석은 금세 손에 잡히지 않는 점이 있었습니다.

특히 집단기억이라는 주제는 사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야기한 문화유전자(ala) 만큼이나 생경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정집단에 공유하는 기억은 구성원들이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더라도 집단 안에서 구전이나 다양한 방식을 통하여 전파되어 알고 있는 기억이라 할 것입니다. 기억의 저장이라는 것이 개인의 경우 뇌 안에 저장하는 무형의 것도 있지만, 글이나 동영상과 같은 다양한 보조매체를 활용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기억의 경계가 확장되고 있으며, 그것을 집단으로까지 넓혀본다면 기억의 한계는 거의 무한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기억을 누군가에게 직접 전이시킬 수 있는 기술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는 여전히 불확실한 영역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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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의 기술 - 과학이 알려주는 나이 드는 것의 비밀
마크 E. 윌리엄스 지음, 김성훈 옮김 / 현암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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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정말 졸업하고 처음 만나는 친구가 많이 늙어서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운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친구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모두 똑 같이 늙어가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의술의 힘을 빌지 않고도 우아하게 늙어가는 비법이라고 있는지 궁금해지게 됩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의과대학에서 노인의학을 전공하는 마크 윌리엄스의 <늙어감의 기술>은 바로 우아하게 늙을 수 있는 기술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마땅히 누려야 할 노년의 즐거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노화를 멈추게 하거나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정신, 육체, 감정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소개하고,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각자가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부는 ‘현실을 인정하자’라는 제목처럼 자신이 늙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줍니다. 습관이 주는 편안함의 유혹을 뿌리치려면 현실을 직시해야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2부 몸에 자극을 주자, 3부 머리에 자극을 주자, 4부 감정을 다스리자는 제목처럼 자신을 검토하고,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건강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5부 영혼에 자양분을 공급하자에서는 우아하게 늙어가는 기술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먼저 노화에 관한 8 가지의 편견을 소개합니다. 1. 노인들은 기본적으로 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야. 하루하루 망가져가는 사람들이지, 2. 살을 빼면 수명이 길어질거야, 3. 나이 들면 원래 깜박깜박하고 노망도 드는 거지, 4. 나이가 들면 당연히 학습 능력이나 창의성이 떨어지지, 5. 노화는 불가항력이니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6. 나이든 사람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담스러운 존재다, 7. 노인들은 섹스에 관심이 없어, 8. 나이 든다는 것은 요양시설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야 등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편견이라고 전제한 것처럼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늙어가는 기술에 관하여 관심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저자는 노화에 대한 인식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를 요약하였고, 현대의학이 밝혀낸 노화의 기전을 설명합니다.

2부에서는 질병을 앓지 않는 사람의 신체에 나타나는 다양한 노화과정을 설명합니다. 제가 최근 5~6년 동안 여기저기가 아팠습니다. 처음에는 왼쪽 무릎이 걷기가 힘들 정도로 아프고 부었는데, 물리치료를 꾸준하게 받았더니 10개월 만에 증상이 좋아졌습니다. 2년 뒤에 다시 오른편 무릎이 아파왔고, 이번에는 조금 일찍 증상이 좋아졌습니다. 또 1년 뒤에는 오른쪽 검지가 아팠는데, 이번에는 한 달 정도 만에 증상이 없어졌고, 몇 달 뒤에는 좌측 옆구리의 골반뼈에 통증이 생기더니 시나브로 좋아졌습니다. 생각해보니 이런 과정이 근육과 인대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자리를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연히 잘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 잘 늙어가는 첫 번째 걸음이라고 합니다.

3부는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이 살다보면 기억력도 떨어지고 그러다보면 만사가 귀찮아지면서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일에 관싱을 두고 공부를 계속하는 일이 중요하겠습니다. 나이가 들면 성격이 고약해진다고들 이야기합니다. 물론 변하는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새롭게 나오는 것들에 대한 앎이 부족하다보면 옛날식으로 생각하고 대처하다보면 고리타분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변화에 관심을 두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분명하게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죽음은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죽음을 피하려고 아등바등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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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라는 나라 - 고정애의 영국 편력기
고정애 지음 / 페이퍼로드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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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영국과 관련된 것, 예를 들면, 역사, 문학, 영화, 문화, 의학 등을 꽤나 많이 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짧은 여행이지만 두 차례나 방문할 기회도 있었구요. 하지만 <영국이라는__나라>를 읽고 보니 사실은 지극히 표면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이 책은 중앙일보 고정애기자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영국에서 보낸 3년의 체제를 통하여 얻은 다양한 지식을 정리한 것입니다. JTBC 손석희 사장은 추천사를 통하여 “영국사회와 그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셜록의 머리, 왓슨의 가슴’ 두 가지가 다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참 잘 보낸 특파원이었습니다. 브렉시트와 난민사태 등에 대한 취재는 그녀 안에 있던 셜록과 왓슨이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답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이, 1부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 2부는 영국 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코뮤니티, 축구, 계급, 3부는 바꾸지 않아도 좋을 영국의 역사와 전통, 4부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불렸던 영국의 제국 Empire 경험이 만든 사회상, 5부는 웨스트민스트로 대표되는 영국의 정치현장, 6부는 영국 역사와 현재를 대표하는 영국인, 등을 다루고 있다고 요약하였습니다.

미리 말씀을 드립니다만, 이 책을 읽는데 꽤나 공을 들여야 했습니다. 흔히 만나는 영국여행기들이 신변잡기 혹은 자신만의 흥미를 전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는 달리, 진중한 글맛도 그렇고, 건성 읽어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일 듯합니다. 아니 런던을 비롯하여 영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흔히 가는 곳, 관심을 두는 곳보다는 영국적인 장소나 사건을 화두로 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북웨일스에 있는 영국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가진 마을 이야기는 한줄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다녀온 곳이라서 금세 알아챌 수 있었고, 아서왕이 실존했던 영국의 왕이 아니라 웨일즈로 쫓겨 간 켈트족 전설의 영웅이라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가늠하게 됩니다. “흔히들 런던의 화려함에 끌려 영국도 그럴 거라고 여깁니다. 영국 전체를 놓고 보면, 런던이 오히려 이질적인 곳이란 걸, 런던 밖을 돌아다니면서 절감합니다. ‘선진국(先進國)이란, 우리보다 앞서 나아간다는 의미일 뿐, 나아가는 과정이 덜 고통스러웠다거나 덜 힘들었다는 걸 뜻하는 게 아니란 것도 말입니다. 앞서 살아간 이들의 분투-이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합니다-의 집적물이 오늘 보는 영국이란 걸 말입니다.” 그래서 이네들의 삶을, 역사를, 그리고 그 안 사이의 맥락을 알고 싶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간의 호기심과 배움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통념의 영국이 아닌 다면적인 영국을 전하고 싶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언젠가 다시 영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찾아가보려 합니다만, 소설 <폭풍의 언덕>의 무대가 된 요크셔의 하워스의 언덕을 찍은 사진은 붉은 히스꽃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 장소를 소설로 이끌어가는 설명이 참 좋습니다. “흐린 날이었다. 대기에도 우울함이란 게 녹아 있다면 바로 그런 날이었을 게다. 잿빛의 규질암 석재로 지은 건물과 잿빛 하늘 사이 경계는 흐릿했다. 주변의 습기는 곧 빗방울로 변할 기세였다. 비탈진 골목길을 올라가며 이런 날씨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을씨년스러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상상 속으로의 도피뿐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의 묘사가 간결한 맛이 기사를 읽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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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삶의 철학
엠리스 웨스타콧 지음, 노윤기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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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메워지고 말았지만, 종갓집 토방에 서면 울타리 밖으로 커다란 방죽이 보였습니다. 그 시절부터 마음 한 구석에 작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집에 사는 꿈을 담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도시에서의 삶이 바쁘게 돌아가면서 그 꿈은 조금씩 바래가고는 있지만, 꿈을 아주 버린 것은 아닙니다. 소로우의 <월든>을 읽고 나서 꿈이 조금 더 진해지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그 꿈은 아마도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의미합니다. 소박한 삶이 선(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 선(善)이라는 생각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 뉴욕의 알프레드대학교 철학과의 엠리스 웨스타콧교수의 <단순한 삶의 철학>을 읽으면서 가진 생각입니다. 위에 예를 든 <월든>의 소로우를 비롯한 대부분의 현인들이 소박함과 단순함을 칭송하고, 사치와 낭비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던 것입니다. 현대에 들어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느리게 살기’로 되돌아가자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소박함보다는 편리함과 사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자는 ‘소박함은 도덕적 가치가 내포된 개념인가?’라는 의문을 바탕으로 소박함을 규명하려는 생각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가 요약한 이 책의 얼개는 이렇습니다. 1장은 ‘소박함(frugality)’과 ‘단순함(simplicity)’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2장에서는 단순한 삶이 인간의 도덕적 성향을 강화하는가에 대한 주요 논쟁을 검토하였습니다. 3장에서는 단순한 삶과 행복의 관계를 생각해봅니다. 4장과 5장에서는 앞서 제시한 논점에 대한 다양한 주장에  담긴 편향된 관점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즉, 4장에서는 소박한 삶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과 함께 부와 욕망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측면을 짚었습니다. 5장에서는 사치스러운 삶이 가져오는 순기능을 탐구하였습니다. 6장에서는 소박함을 멀리해야만 행복할 수 있게 된 오늘날의 소비사회에서 소박함의 철학이 시대착오적인 개념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는 점을 검토합니다. 7장에서는 소박하고 단순한 삶이 미래의 환경적인 재앙을 막아줄 수 있다는 일반적인 주장과 그에 대한 반론을 검토합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이 단순한 삶을 칭송하는 이유가 4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1. 도덕적 입장에서 단순한 삶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일 뿐 아니라 덕을 배양해주고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도록 한다, 2. 실용적인 입장에서 단순한 삶은 행복에 이르도록 한다, 3. 미학적인 입장에서 단순한 삶은 인간이 추구하는 좋은 삶 가운데 한 가지 미적인 모법을 보여준다, 4. 종교적인 입장에서 단순한 삶은 신의 뜻에 가장 부합하는 삶의 형태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현대에 들어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인간의 탐욕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과거라면 개인의 악덕으로 규정되던 가치가 공공의 이익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한 사람의 사치는 다른 사람의 소득으로 이어지므로 사치는 경제적으로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전하는 문화유적도 옛 사람들의 사치가 만들어낸 유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경제체계는 소비수요에 의하여 움직이므로 소비가 위축되면 그 파장이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소득수준에 걸맞지 않는 사치는 개인의 몰락은 물론 사회의 안정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각자의 소득수준에 맞는 소비를 한다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소박하고 단순한 삶의 근본정신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할 것이나, 지나친 빈곤을 야기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사치는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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