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 오늘이 행복해지는 여행 안내서 자기만의 방
최재원 지음, 드로잉메리 그림 / 휴머니스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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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여행을 떠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여행도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검토하여 예약을 한 끝이 출발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여행에서 어떤 것들을 경험하게 될지 많이 기대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내와 함께 가는 여행이 벌써 몇 년째 이어지면서 10회를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열흘에 가까운 여행이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들이 많은 편입니다. 반면에 국내여행은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연간 쓸 수 있는 연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가능할 동안에 해외여행에 집중하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여행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생각을 하면 떠날 수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만, 그렇지 못한 분들이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이라는데 생각이 미친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무거운 가방을 끌고 먼 곳으로 떠나는 그런 여행을 할 수 없는 처지를 한탄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발상을 바꾸어 일상처럼 떠날 수 있는 ‘작은 여행’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퇴근 후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는데서 시작하여 옆 동네로 범위를 넓혀가고, 이를 확장하여 배우는 여행, 나아가서는 사람들을 불러보아 그들의 생각을 듣는 여행, 그러니까 사람을 알아가는 여행으로 발전시킨 다음에, 그 범위를 또 넓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외국인들까지도 불러모으는 단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여행이라는 게 사실을 사람을 만나고 그들이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제 경우는 역사적으로나 자연적으로 특이한 점이 있는 장소를 방문하여 무언가를 배우기 위하여 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직은 저자가 제안하는 작은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잠시 미루어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사실을 퇴근 후에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는 작은 여행을 시작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양재천 산책에 나서는 것도 작은 여행일 수도 있고, 가끔은 동네에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도 이에 해당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여행을 소개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제가 좋아하는 책읽기와 관련하여 책읽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모임도 적지 않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금년 들어 제가 새롭게 시작한 블로그에서도 독서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는 했습니다만,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저항감(?) 같은 것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독립서점에서도 작가 강연, 취미클래스, 작은 음악회와 같은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금 마무리 단계에 있는 책이 나오면 서점에서 주관하는 독자와의 만남에도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책을 몇 권 내보았지만 처음 해보는 행사가 될 것 같아 은근 압박감을 느끼고 있기는 합니다.

저자는 모두 다섯 단계에 걸친 작은 여행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각각의 단계에서 필요한 사항들을 ‘투어가이드’라는 제목으로 각장의 끝 부분에 정리해두고 있는 것을 보면, 일종의 여행안내서가 맞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방안에서 하는 여행도 있다고 알고는 있습니다만, 여행에 대한 저의 편견이 무너지는 좋은 책읽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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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걸어, 희망으로 - 나를 치유한 3000킬로미터 기적의 유럽 걷기 여행
쿠르트 파이페 지음, 송소민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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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전 의과대학에 다닐 무렵만 해도 암으로 진단받으면 완치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배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제는 항암제를 비롯하여 방사선요법, 면역요법 등 다양한 치료방법들이 개발되어 완치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암질환도 난치성 만성질환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기에 이르도록 발견하지 못하면 치료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암으로 진단받은 환자들은 치료가 어렵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몇 달 정도 살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치의가 암의 진행 정도와 환자의 몸상태 등을 고려하여 예상되는 여명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살아온 날들을 정리해보라는 의미로 이해를 합니다.

<천천히 걸어, 희망으로>의 주인공인 쿠르트 파이페(Kurt Peipe)씨는 62세가 되던 3년 전 대장암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6개월 정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치료가 효과가 있었던지 3년을 버텼지만 재발하여 다시 수술을 받고나서 더 이상의 치료방법이 없으며, 이제는 한 달 정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주치의가 말한 한 달이 될 무렵 파이페씨는 독일의 해안 슐레스비히에서 출발하여 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의 로마에 이르는 3350km를 166일 동안 걸어서 주파하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것도 장루를 만드는 수술을 받아 인공항문을 단채로 말입니다.

파이페씨가 걷기 여행을 떠난 것은 젊었을 적부터 가지고 있는 꿈, ‘유럽 장거리 여행’이 버킷리스트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야콥스벡(Jakopsweg, 전 유럽을 통과하는 옛 순례자의 길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산티아가 가는 길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의 경우 널리 알려져 있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어서 고려대상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유럽 장거리 여행’은 1969년 시작된 것으로 국가 간의 이해를 돈독히 하자는 뜻에서 시작된 것으로 노르트카프(Nordkap)에서 출발하여 이탈리아의 시칠리아(Sicilia)까지 걷는 여행이라고 합니다.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행을 시작한 파이페씨는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아내와 자식, 동생들이 잠깐씩 동행하기도 했지만, 결코 혼자만은 아니었습니다. 여행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도움을 받았으며, 바라는 대로 자연으로부터 치유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여행을 통하여 저자가 기록한 메모와 구술을 바탕으로 쉬얼리 미햐엘라 세울(Shirley Michaela Seul)부인이 정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학교를 마치고 일찍 정원사로 일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여행에서 느낀 점을 제대로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정에 따라서 4부분으로 나뉜 내용을 보면, 첫 번째 여정을 ‘길 위에서 희망을 발견하다’라고 했는데, 이는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는 암에게 무기력하게 무너지기 보다는 오랜 꿈이었던 유럽 걷기여행을 시작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하여 스스로가 변해가는 모습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들에게 신세를 지려하지 않았던 파이페씨였지만, 결국은 그 분들의 순수한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의미가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두 번째 여정으로 ‘길 위에서 천국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여행을 이어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여정은 스위스를 지나는 여정으로 ‘걸을 수만 있다면 길을 잃어도 좋다’는 제목처럼 높은 산악지형이 힘들었고, 길을 찾는 것이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 로마까지 가야한다는 목표가 저자를 걷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여정은 ‘삶과 함께 여행도 계속된다’인데, 암으로 몸이 지쳐가도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강인함을 갖추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행길에 만난 우연으로 독일방송국에서 나와 파이페씨의 투혼을 대중에게 알린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암을 극복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된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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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 언제나 오늘이 처음인 우리에게 곰돌이 푸 시리즈
곰돌이 푸 원작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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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곰돌이 푸가 국제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답니다. 디즈니 신작 만화영화 『크리스토퍼 로빈』의 상영을 중국정부가 금했다는 것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곰돌이 푸가 시진핑 국가주석을 풍자하는 소재로 쓰이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는 추측입니다.

분단된 독일의 통일을 이룩하는 위업을 달성한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생전에 비대한 몸매로 인하여 ‘우둔한 바로 총리’라는 이미지로 코미디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만 콜 총리는, ‘독일 국민이 웃을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바보가 되겠다’라고 했답니다. 정말 위대한 바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콜총리를 흉내 낸 대통령이 있었습니다만, 요즈음에는 그런 흉내를 내보려는 정치인은 씨가 마른 모양입니다.

독서모임을 같이 만들어보자고 의논하고 있는 동료직원의 권유로 읽게 된 것은 어쩌면 시진핑 주석도 약간 기여를 한 셈입니다. 채널을 돌리다가 곰돌이 푸의 모습을 스치듯 본 기억은 있습니다만, 디즈니 만화영화를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읽어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1926년 AA 밀른의 소설 『위니 더 푸(Winnie-the-Pooh)』의 주인공으로 세상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1977년에는 이 소설을 바탕으로 디즈니영화사에서 만화영화를 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곰돌이 푸의 이미지는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야하겠습니다.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는 곰돌이 푸 원작이라고 하고 디즈니사가 판권을 가지고 있고 옮긴이도 있으니 원본이 있을 것 같은데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성격이 분명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프롤로그를 읽다보면 푸가『논어』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고, 타인에게 정직하며, 현상을 단순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지혜를 푸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이야기들 가운데 첫 번째 “곰돌이 푸처럼 산다는 것은 뭘까?”를 시작하는 이야기 ‘뭔가를 배우고 그것을 실천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은 매우 즐거운 과정입니다.’는 『논어』의 「학이(學而)」1장에 나오는 공자님의 말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設乎)”를 풀어쓴 것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면 정말 기쁘겠지요’ 역시 학이편의 이어지는 문장,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를 풀어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논어를 쉽게 풀어내고 있는 것인데, 글의 뿌리를 소개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전이 분명치 않은 글도 있는 듯합니다.

곰돌이 푸는 영리해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나쁜 일은 하지 않는, 즉 ‘지(無知)의 지(知)’의 철학이 배어 있는 삶을 보여준다는 설명입니다. 사실 곰은 아주 영리한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야생의 곰은 무서운 동물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여행할 때 곰을 만나면 무조건 피하라고 들었습니다. 사우스 다코타 주에 있는 베어스 가든은 자동차를 타고 지나면서 곰들을 구경하는 것이었는데, 바짝 긴장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는 곰돌이 푸를 비롯하여 크리스토퍼 로빈 그리고 6 동물친구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등장인물의 그림들이 글 내용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즉 글 내용이 등장인물들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분명치 않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저 좋은 말씀을 읽는데 배경음악처럼 책의 여백을 장식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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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끝, 마니 - 펠로폰네소스 남부 여행기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패트릭 리 퍼머 지음, 강경이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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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여행에 관한 책들도 적지 않게 소개되어 있습니다만, <그리스의 끝 마니>는 지금까지 읽었던 그리스 관련 책들과는 사뭇 차원이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학술적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인류학적 접근 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유럽대륙의 최남단인 그리스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남쪽 끝에 있는 마니반도의 깨알 찾듯 돌아보고 그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물론 그들의 선조의 발자취까지 챙겨 정리한 것을 보면 일종의 지리지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자의 서문을 보면 그리스는 모든 곳에 이야깃거리가 넘치기 때문에 여행기를 쓰는데 있어 논리적 순서가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여행일정에 따라 여행기를 쓰려다보면 ‘여행 도중에 수집한 이런저런 자료를 그리스의 울퉁불퉁한 표면에 얇게 펴 바르는 식의 여행기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한 곳을 정해 할 수 있는 한 깊숙이 침투해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샛길로 빠지듯 늘어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역사와 유적에 관한 이야기는 넘쳐나고 있지만, 외지고 황폐한 곳에 대한 이야기는 한 줄도 써진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산악지대와 섬의 그리스인들을 그들의 삶의 터전과 역사 속에서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통신이 조악하고 외진 곳에 사는 탓에 환경과 역사의 오랜 관계가 그다지 훼손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보려 했답니다. 소도시는 물론 접근이 쉬운 평원지방마저도 지난 수 세기에 걸쳐 고유의 삶의 방식들이 빠른 속도로 파괴되어가고 있는 것을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저자자 마니반도를 고른 이유는 반도의 중간을 달리는 타이게토스산맥의 험준함이 반도 위로부터의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을뿐더러 해안지방의 환경 역시 매우 척박하기 때문에 세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어 대부분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자연환경은 주변의 섬이라 번잡한 곳에서 변란이 생겼을 때 화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스며들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돌멩이만 있는 무지 더운 동네’라는 설명은 이곳의 환경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척박한 환경이다 보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은 필수적이었고, 그러다보니 피의 복수가 반복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세월 마니로 스며든 사람들의 혈통을 뒤쫓다보면 로마를 건설했다는 로물루스까지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설명은 지나친 호들갑일 것입니다. 로마제국도 그랬고, 비잔틴제국도 그랬던 것처럼 황제들이 한 핏줄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척박한 마니였지만, 저자의 눈과 손끝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듯합니다. “태양은 끝없는 그리스 하늘에 높이 떠 있었다. 그리스의 하늘은 세상 그 어느 하늘보다 더 높고 가벼우며 사람을 가까이 끌어안는 동시에 저 먼 곳을 향해 뻗어 간다. 사람을 위협하거나 주눅 들게 하지 않으며 대지처럼 사람을 반기고 포근하게 끌어안는다. 그리스의 하늘을 보고 있으면 사람은 단지 중력의 오류 때문에 땅이나 배의 갑판에 붙들린 탓에 저 먼 곳 무한의 공간으로 날아오르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223쪽)”

책의 목차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저자는 마니반도의 다양한 면들을 정리해냈습니다. 직접 만난 사람들의 구전을 통하여 혹은 저자가 이미 수집해둔 자료를 통하여, 마니의 환경은 물론 유적, 그곳 사람들의 삶, 종교, 그리고 그리스 신화 등을 두서없는 듯 기묘하게 연결하여 읽는 호흡이 이어지게 만듭니다.

마니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느린 삶이 몸에 배어 있는 듯합니다.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하는 저자에게 마을 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들 여기 머물지 그래? 여기서는 사람 만날 일이 자주 없어. 서두를 것 없잖소.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한 일주일쯤 있다가.....(334쪽)” 딱히 마음이 통하지 않아도 찾아온 사람들을 맞아 바깥세상의 소식도 듣고, 사는 이야기도 하고 싶은 심정을 ‘디아 나 페라소메 티노라(시간을 보내다)’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마니 사람들이 이방인을 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식을 갈망하기 때문이고, 삶의 촉매작용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촉매작용이라함은 낯선 것으로부터 받은 자극을 통하여 농담 한마디도 새롭게 구성하여 틀에 박힌 대화를 깨부술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옮긴이는 이 책의 작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대의 느낌은 ‘넘침’, 작가에 대한 첫 인상은 ‘못 말리게 집요함’이다. ‘가지를 치면서 어지러이 덩굴손을 뻗어가는’ 담쟁이처럼 문장이 뻗어간다.(5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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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도 우리처럼 -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존재가 있을까
아베 유타카 지음, 정세영 옮김, 아베 아야코 / 한빛비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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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구와 닮은 행성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런 소식을 듣게 되면 그런 별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나아가서 인간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우주에도 우리처럼>이라는 쌩뚱 맞아 보이는 제목에 이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존재가 있을까’라는 놀랍게도 비유적이면서도 시적인 의문을 가진 분이 계셨더랍니다. 제목에서 부제까지 단숨에 읽으면서, 이 책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책장을 열기 전부터 가슴이 뛰는 듯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우주 안에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고 있는 별이 존재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 책은 도쿄대학에서 지구물리학을 전공한 아베 유타카교수가 기후학을 전공한 아내 아베 아야코박사와 함께 연구한 거주 가능한 행성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를 정리해냈습니다. 이 책의 성격에 대하여 저자는 “이 책은 지구의 전모를 밝히는 물리학 책도, 생명의 신비를 설명하는 생물학 책도 아닙니다. ‘생명이 탄생하는 별의 조건’이라는 관점에서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지구가 성립한 과정을 새로이 검토하려는 시도입니다.(19쪽)”라고 집필의도를 밝혔습니다.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1~4장까지는 물, 움직이는 지면, 대륙, 산소 등, 지구에 생명이 생기기 위한 조건들 가운데 저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5장부터는 우주로 날아올라, 지구에 생명이 생겨나는 조건을 염두에 두고 우주 어딘가에 있을 ‘생명의 별’이 어떤 별일지를 모색해보고 있습니다.

지구에 생명체가 등장하고 인간과 같은 지적생명체가 나타나게 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보아 사람들은 흔히 지구를 ‘기적의 별’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저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 이유는 지구가 속한 태양계에서는 지금까지 조사된 바로는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지구처럼 다양한 생명체를 가진 행성은 아직 없지만, 태양계를 넘어 은하계 그리고 전체 우주까지 시야를 넓혀보면 지구와 흡사한 행성이 어딘가에 분명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만이 유일하게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이라는 생각은 인간 중심의 인식체계에서 굳어진 것이며, 과학의 발전은 인간중심의 인식체계가 조금씩 무너져오는 과정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지구가 탄생하여 소멸되어 가는 과정에 등장한 한 부분일 따름이라는 소박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가 몸담았던 도쿄대학 대학원의 지구행성과학 전공은 2000년 4월, 지구행성물리학, 지질학, 광물학, 지리학을 통합하여 발족하였다고 합니다. 지구를 포함한 우주의 행성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조건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학문의 세분화가 대세인 현대과학에서 드디어 통섭이 구체화되는 과정을 우리는 보게 된 셈입니다.

제가 ‘몸담았던’이라고 적은 것은 저자가 3년 이라는 긴 세월을 바쳐 이 책을 완성한 다음에 지구행성시스템과학 교과서를 쓰고 싶다는 유지를 남긴 채 금년 1월 5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2003년 발병한 루게릭병과 싸워가면서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는데, 이 책을 완성한 것 자체가 집념의 승리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은 일본 사람들 특유의 아주 쉽게 쓰였으므로 역시 쉽게 읽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주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저자처럼 지구행성시스템과학 분야에 뛰어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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