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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끝, 마니 - 펠로폰네소스 남부 여행기 ㅣ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패트릭 리 퍼머 지음, 강경이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그리스여행에 관한 책들도 적지 않게 소개되어 있습니다만, <그리스의 끝 마니>는 지금까지 읽었던 그리스 관련 책들과는 사뭇 차원이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학술적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인류학적 접근 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유럽대륙의 최남단인 그리스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남쪽 끝에 있는 마니반도의 깨알 찾듯 돌아보고 그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물론 그들의 선조의 발자취까지 챙겨 정리한 것을 보면 일종의 지리지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자의 서문을 보면 그리스는 모든 곳에 이야깃거리가 넘치기 때문에 여행기를 쓰는데 있어 논리적 순서가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여행일정에 따라 여행기를 쓰려다보면 ‘여행 도중에 수집한 이런저런 자료를 그리스의 울퉁불퉁한 표면에 얇게 펴 바르는 식의 여행기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한 곳을 정해 할 수 있는 한 깊숙이 침투해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샛길로 빠지듯 늘어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역사와 유적에 관한 이야기는 넘쳐나고 있지만, 외지고 황폐한 곳에 대한 이야기는 한 줄도 써진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산악지대와 섬의 그리스인들을 그들의 삶의 터전과 역사 속에서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통신이 조악하고 외진 곳에 사는 탓에 환경과 역사의 오랜 관계가 그다지 훼손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보려 했답니다. 소도시는 물론 접근이 쉬운 평원지방마저도 지난 수 세기에 걸쳐 고유의 삶의 방식들이 빠른 속도로 파괴되어가고 있는 것을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저자자 마니반도를 고른 이유는 반도의 중간을 달리는 타이게토스산맥의 험준함이 반도 위로부터의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을뿐더러 해안지방의 환경 역시 매우 척박하기 때문에 세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어 대부분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자연환경은 주변의 섬이라 번잡한 곳에서 변란이 생겼을 때 화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스며들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돌멩이만 있는 무지 더운 동네’라는 설명은 이곳의 환경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척박한 환경이다 보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은 필수적이었고, 그러다보니 피의 복수가 반복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세월 마니로 스며든 사람들의 혈통을 뒤쫓다보면 로마를 건설했다는 로물루스까지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설명은 지나친 호들갑일 것입니다. 로마제국도 그랬고, 비잔틴제국도 그랬던 것처럼 황제들이 한 핏줄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척박한 마니였지만, 저자의 눈과 손끝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듯합니다. “태양은 끝없는 그리스 하늘에 높이 떠 있었다. 그리스의 하늘은 세상 그 어느 하늘보다 더 높고 가벼우며 사람을 가까이 끌어안는 동시에 저 먼 곳을 향해 뻗어 간다. 사람을 위협하거나 주눅 들게 하지 않으며 대지처럼 사람을 반기고 포근하게 끌어안는다. 그리스의 하늘을 보고 있으면 사람은 단지 중력의 오류 때문에 땅이나 배의 갑판에 붙들린 탓에 저 먼 곳 무한의 공간으로 날아오르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223쪽)”
책의 목차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저자는 마니반도의 다양한 면들을 정리해냈습니다. 직접 만난 사람들의 구전을 통하여 혹은 저자가 이미 수집해둔 자료를 통하여, 마니의 환경은 물론 유적, 그곳 사람들의 삶, 종교, 그리고 그리스 신화 등을 두서없는 듯 기묘하게 연결하여 읽는 호흡이 이어지게 만듭니다.
마니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느린 삶이 몸에 배어 있는 듯합니다.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하는 저자에게 마을 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들 여기 머물지 그래? 여기서는 사람 만날 일이 자주 없어. 서두를 것 없잖소.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한 일주일쯤 있다가.....(334쪽)” 딱히 마음이 통하지 않아도 찾아온 사람들을 맞아 바깥세상의 소식도 듣고, 사는 이야기도 하고 싶은 심정을 ‘디아 나 페라소메 티노라(시간을 보내다)’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마니 사람들이 이방인을 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식을 갈망하기 때문이고, 삶의 촉매작용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촉매작용이라함은 낯선 것으로부터 받은 자극을 통하여 농담 한마디도 새롭게 구성하여 틀에 박힌 대화를 깨부술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옮긴이는 이 책의 작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대의 느낌은 ‘넘침’, 작가에 대한 첫 인상은 ‘못 말리게 집요함’이다. ‘가지를 치면서 어지러이 덩굴손을 뻗어가는’ 담쟁이처럼 문장이 뻗어간다.(5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