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어, 희망으로 - 나를 치유한 3000킬로미터 기적의 유럽 걷기 여행
쿠르트 파이페 지음, 송소민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40년전 의과대학에 다닐 무렵만 해도 암으로 진단받으면 완치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배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제는 항암제를 비롯하여 방사선요법, 면역요법 등 다양한 치료방법들이 개발되어 완치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암질환도 난치성 만성질환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기에 이르도록 발견하지 못하면 치료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암으로 진단받은 환자들은 치료가 어렵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몇 달 정도 살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치의가 암의 진행 정도와 환자의 몸상태 등을 고려하여 예상되는 여명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살아온 날들을 정리해보라는 의미로 이해를 합니다.

<천천히 걸어, 희망으로>의 주인공인 쿠르트 파이페(Kurt Peipe)씨는 62세가 되던 3년 전 대장암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6개월 정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치료가 효과가 있었던지 3년을 버텼지만 재발하여 다시 수술을 받고나서 더 이상의 치료방법이 없으며, 이제는 한 달 정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주치의가 말한 한 달이 될 무렵 파이페씨는 독일의 해안 슐레스비히에서 출발하여 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의 로마에 이르는 3350km를 166일 동안 걸어서 주파하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것도 장루를 만드는 수술을 받아 인공항문을 단채로 말입니다.

파이페씨가 걷기 여행을 떠난 것은 젊었을 적부터 가지고 있는 꿈, ‘유럽 장거리 여행’이 버킷리스트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야콥스벡(Jakopsweg, 전 유럽을 통과하는 옛 순례자의 길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산티아가 가는 길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의 경우 널리 알려져 있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어서 고려대상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유럽 장거리 여행’은 1969년 시작된 것으로 국가 간의 이해를 돈독히 하자는 뜻에서 시작된 것으로 노르트카프(Nordkap)에서 출발하여 이탈리아의 시칠리아(Sicilia)까지 걷는 여행이라고 합니다.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행을 시작한 파이페씨는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아내와 자식, 동생들이 잠깐씩 동행하기도 했지만, 결코 혼자만은 아니었습니다. 여행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도움을 받았으며, 바라는 대로 자연으로부터 치유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여행을 통하여 저자가 기록한 메모와 구술을 바탕으로 쉬얼리 미햐엘라 세울(Shirley Michaela Seul)부인이 정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학교를 마치고 일찍 정원사로 일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여행에서 느낀 점을 제대로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정에 따라서 4부분으로 나뉜 내용을 보면, 첫 번째 여정을 ‘길 위에서 희망을 발견하다’라고 했는데, 이는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는 암에게 무기력하게 무너지기 보다는 오랜 꿈이었던 유럽 걷기여행을 시작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하여 스스로가 변해가는 모습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들에게 신세를 지려하지 않았던 파이페씨였지만, 결국은 그 분들의 순수한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의미가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두 번째 여정으로 ‘길 위에서 천국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여행을 이어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여정은 스위스를 지나는 여정으로 ‘걸을 수만 있다면 길을 잃어도 좋다’는 제목처럼 높은 산악지형이 힘들었고, 길을 찾는 것이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 로마까지 가야한다는 목표가 저자를 걷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여정은 ‘삶과 함께 여행도 계속된다’인데, 암으로 몸이 지쳐가도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강인함을 갖추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행길에 만난 우연으로 독일방송국에서 나와 파이페씨의 투혼을 대중에게 알린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암을 극복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된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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