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 언제나 오늘이 처음인 우리에게 곰돌이 푸 시리즈
곰돌이 푸 원작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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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곰돌이 푸가 국제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답니다. 디즈니 신작 만화영화 『크리스토퍼 로빈』의 상영을 중국정부가 금했다는 것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곰돌이 푸가 시진핑 국가주석을 풍자하는 소재로 쓰이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는 추측입니다.

분단된 독일의 통일을 이룩하는 위업을 달성한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생전에 비대한 몸매로 인하여 ‘우둔한 바로 총리’라는 이미지로 코미디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만 콜 총리는, ‘독일 국민이 웃을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바보가 되겠다’라고 했답니다. 정말 위대한 바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콜총리를 흉내 낸 대통령이 있었습니다만, 요즈음에는 그런 흉내를 내보려는 정치인은 씨가 마른 모양입니다.

독서모임을 같이 만들어보자고 의논하고 있는 동료직원의 권유로 읽게 된 것은 어쩌면 시진핑 주석도 약간 기여를 한 셈입니다. 채널을 돌리다가 곰돌이 푸의 모습을 스치듯 본 기억은 있습니다만, 디즈니 만화영화를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읽어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1926년 AA 밀른의 소설 『위니 더 푸(Winnie-the-Pooh)』의 주인공으로 세상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1977년에는 이 소설을 바탕으로 디즈니영화사에서 만화영화를 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곰돌이 푸의 이미지는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야하겠습니다.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는 곰돌이 푸 원작이라고 하고 디즈니사가 판권을 가지고 있고 옮긴이도 있으니 원본이 있을 것 같은데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성격이 분명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프롤로그를 읽다보면 푸가『논어』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고, 타인에게 정직하며, 현상을 단순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지혜를 푸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이야기들 가운데 첫 번째 “곰돌이 푸처럼 산다는 것은 뭘까?”를 시작하는 이야기 ‘뭔가를 배우고 그것을 실천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은 매우 즐거운 과정입니다.’는 『논어』의 「학이(學而)」1장에 나오는 공자님의 말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設乎)”를 풀어쓴 것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면 정말 기쁘겠지요’ 역시 학이편의 이어지는 문장,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를 풀어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논어를 쉽게 풀어내고 있는 것인데, 글의 뿌리를 소개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전이 분명치 않은 글도 있는 듯합니다.

곰돌이 푸는 영리해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나쁜 일은 하지 않는, 즉 ‘지(無知)의 지(知)’의 철학이 배어 있는 삶을 보여준다는 설명입니다. 사실 곰은 아주 영리한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야생의 곰은 무서운 동물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여행할 때 곰을 만나면 무조건 피하라고 들었습니다. 사우스 다코타 주에 있는 베어스 가든은 자동차를 타고 지나면서 곰들을 구경하는 것이었는데, 바짝 긴장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는 곰돌이 푸를 비롯하여 크리스토퍼 로빈 그리고 6 동물친구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등장인물의 그림들이 글 내용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즉 글 내용이 등장인물들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분명치 않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저 좋은 말씀을 읽는데 배경음악처럼 책의 여백을 장식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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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끝, 마니 - 펠로폰네소스 남부 여행기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패트릭 리 퍼머 지음, 강경이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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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여행에 관한 책들도 적지 않게 소개되어 있습니다만, <그리스의 끝 마니>는 지금까지 읽었던 그리스 관련 책들과는 사뭇 차원이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학술적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인류학적 접근 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유럽대륙의 최남단인 그리스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남쪽 끝에 있는 마니반도의 깨알 찾듯 돌아보고 그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물론 그들의 선조의 발자취까지 챙겨 정리한 것을 보면 일종의 지리지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자의 서문을 보면 그리스는 모든 곳에 이야깃거리가 넘치기 때문에 여행기를 쓰는데 있어 논리적 순서가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여행일정에 따라 여행기를 쓰려다보면 ‘여행 도중에 수집한 이런저런 자료를 그리스의 울퉁불퉁한 표면에 얇게 펴 바르는 식의 여행기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한 곳을 정해 할 수 있는 한 깊숙이 침투해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샛길로 빠지듯 늘어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역사와 유적에 관한 이야기는 넘쳐나고 있지만, 외지고 황폐한 곳에 대한 이야기는 한 줄도 써진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산악지대와 섬의 그리스인들을 그들의 삶의 터전과 역사 속에서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통신이 조악하고 외진 곳에 사는 탓에 환경과 역사의 오랜 관계가 그다지 훼손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보려 했답니다. 소도시는 물론 접근이 쉬운 평원지방마저도 지난 수 세기에 걸쳐 고유의 삶의 방식들이 빠른 속도로 파괴되어가고 있는 것을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저자자 마니반도를 고른 이유는 반도의 중간을 달리는 타이게토스산맥의 험준함이 반도 위로부터의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을뿐더러 해안지방의 환경 역시 매우 척박하기 때문에 세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어 대부분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자연환경은 주변의 섬이라 번잡한 곳에서 변란이 생겼을 때 화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스며들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돌멩이만 있는 무지 더운 동네’라는 설명은 이곳의 환경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척박한 환경이다 보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은 필수적이었고, 그러다보니 피의 복수가 반복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세월 마니로 스며든 사람들의 혈통을 뒤쫓다보면 로마를 건설했다는 로물루스까지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설명은 지나친 호들갑일 것입니다. 로마제국도 그랬고, 비잔틴제국도 그랬던 것처럼 황제들이 한 핏줄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척박한 마니였지만, 저자의 눈과 손끝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듯합니다. “태양은 끝없는 그리스 하늘에 높이 떠 있었다. 그리스의 하늘은 세상 그 어느 하늘보다 더 높고 가벼우며 사람을 가까이 끌어안는 동시에 저 먼 곳을 향해 뻗어 간다. 사람을 위협하거나 주눅 들게 하지 않으며 대지처럼 사람을 반기고 포근하게 끌어안는다. 그리스의 하늘을 보고 있으면 사람은 단지 중력의 오류 때문에 땅이나 배의 갑판에 붙들린 탓에 저 먼 곳 무한의 공간으로 날아오르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223쪽)”

책의 목차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저자는 마니반도의 다양한 면들을 정리해냈습니다. 직접 만난 사람들의 구전을 통하여 혹은 저자가 이미 수집해둔 자료를 통하여, 마니의 환경은 물론 유적, 그곳 사람들의 삶, 종교, 그리고 그리스 신화 등을 두서없는 듯 기묘하게 연결하여 읽는 호흡이 이어지게 만듭니다.

마니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느린 삶이 몸에 배어 있는 듯합니다.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하는 저자에게 마을 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들 여기 머물지 그래? 여기서는 사람 만날 일이 자주 없어. 서두를 것 없잖소.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한 일주일쯤 있다가.....(334쪽)” 딱히 마음이 통하지 않아도 찾아온 사람들을 맞아 바깥세상의 소식도 듣고, 사는 이야기도 하고 싶은 심정을 ‘디아 나 페라소메 티노라(시간을 보내다)’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마니 사람들이 이방인을 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식을 갈망하기 때문이고, 삶의 촉매작용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촉매작용이라함은 낯선 것으로부터 받은 자극을 통하여 농담 한마디도 새롭게 구성하여 틀에 박힌 대화를 깨부술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옮긴이는 이 책의 작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대의 느낌은 ‘넘침’, 작가에 대한 첫 인상은 ‘못 말리게 집요함’이다. ‘가지를 치면서 어지러이 덩굴손을 뻗어가는’ 담쟁이처럼 문장이 뻗어간다.(5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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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도 우리처럼 -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존재가 있을까
아베 유타카 지음, 정세영 옮김, 아베 아야코 / 한빛비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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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구와 닮은 행성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런 소식을 듣게 되면 그런 별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나아가서 인간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우주에도 우리처럼>이라는 쌩뚱 맞아 보이는 제목에 이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존재가 있을까’라는 놀랍게도 비유적이면서도 시적인 의문을 가진 분이 계셨더랍니다. 제목에서 부제까지 단숨에 읽으면서, 이 책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책장을 열기 전부터 가슴이 뛰는 듯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우주 안에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고 있는 별이 존재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 책은 도쿄대학에서 지구물리학을 전공한 아베 유타카교수가 기후학을 전공한 아내 아베 아야코박사와 함께 연구한 거주 가능한 행성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를 정리해냈습니다. 이 책의 성격에 대하여 저자는 “이 책은 지구의 전모를 밝히는 물리학 책도, 생명의 신비를 설명하는 생물학 책도 아닙니다. ‘생명이 탄생하는 별의 조건’이라는 관점에서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지구가 성립한 과정을 새로이 검토하려는 시도입니다.(19쪽)”라고 집필의도를 밝혔습니다.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1~4장까지는 물, 움직이는 지면, 대륙, 산소 등, 지구에 생명이 생기기 위한 조건들 가운데 저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5장부터는 우주로 날아올라, 지구에 생명이 생겨나는 조건을 염두에 두고 우주 어딘가에 있을 ‘생명의 별’이 어떤 별일지를 모색해보고 있습니다.

지구에 생명체가 등장하고 인간과 같은 지적생명체가 나타나게 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보아 사람들은 흔히 지구를 ‘기적의 별’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저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 이유는 지구가 속한 태양계에서는 지금까지 조사된 바로는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지구처럼 다양한 생명체를 가진 행성은 아직 없지만, 태양계를 넘어 은하계 그리고 전체 우주까지 시야를 넓혀보면 지구와 흡사한 행성이 어딘가에 분명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만이 유일하게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이라는 생각은 인간 중심의 인식체계에서 굳어진 것이며, 과학의 발전은 인간중심의 인식체계가 조금씩 무너져오는 과정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지구가 탄생하여 소멸되어 가는 과정에 등장한 한 부분일 따름이라는 소박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가 몸담았던 도쿄대학 대학원의 지구행성과학 전공은 2000년 4월, 지구행성물리학, 지질학, 광물학, 지리학을 통합하여 발족하였다고 합니다. 지구를 포함한 우주의 행성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조건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학문의 세분화가 대세인 현대과학에서 드디어 통섭이 구체화되는 과정을 우리는 보게 된 셈입니다.

제가 ‘몸담았던’이라고 적은 것은 저자가 3년 이라는 긴 세월을 바쳐 이 책을 완성한 다음에 지구행성시스템과학 교과서를 쓰고 싶다는 유지를 남긴 채 금년 1월 5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2003년 발병한 루게릭병과 싸워가면서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는데, 이 책을 완성한 것 자체가 집념의 승리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은 일본 사람들 특유의 아주 쉽게 쓰였으므로 역시 쉽게 읽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주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저자처럼 지구행성시스템과학 분야에 뛰어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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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네간의 경야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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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의 작품 가운데 가장 난해하다는 <피네간의 경야>에 도전장을 냈습니다. 옮긴이는 서문에서 “이른 바 ‘공동의 독자(일반독자)’는 말할 것도 없고 ‘지식인 독자’에게도 모호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 많았다.(6쪽)”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해설에 적은 “<경야>의 텍스트를 펼칠 때, 제일 먼저 봉착하는 놀라움은 그 자체가 일견하여 거의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602쪽)”이라는 말이 더 실감났습니다. 어휘가 무려 6만 4천여 자에 해설을 포함하여 629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셰이머스 딘은 이 작품이 수용한 65국어의 혼용을 가리켜, 성서의 바벨탑으로 비유한다.(603쪽)’라는 말을 포함하여 신조어는 물론 양의 동서양을 넘나드는 방대한 인용은 내용을 모르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피네간의 경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하려고 책읽기에 몰두하였지만, 해설을 읽기까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였습니다. <피네간의 경야>는 <톰 피네간>이라는 아일랜드 민요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벽돌 운반공인 민요의 주인공이 어느날 취해서 사다리에서 떨어져 죽게 되는데, 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한 경야(초상집의 밤샘) 동안 문상객 사이에 벌어진 소란 끝에 위스키가 그의 시체에 쏟아지면서 되살아났다는 내용입니다.

<율리시스>가 1904년 6월 16일의 낮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 분명한 반면, <경야>는 의견이 분분한데 일단 1938년 3월 21일 월요일과 22일 화요일의 이른 아침에 이르는 사이에 벌어진 정황을 그리고 있다고 추정합니다. 또한 ‘조이스는 모든 시간과 공간을 에워싸는 간격 사이에 한 잠자는 인간(HCE 이어워커)의 마음속의 수많은 악몽의 환상들과 잠재 또는 무의식적 꿈의 감정을 총괄하는 밤의 세계를 창조하려 노력한다(567쪽)’라고 합니다.

옮긴이는 <경야>가 “구구절절 넘치는, 서정시오, 유창한 가락들을 찰나의 순간 속에 응축하는 감미로운 음악이니, 가무만사성이라(8쪽)”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우리말로 옮긴 본문을 읽다보면 우리네 전통의 판소리 대본을 읽는 느낌도 있습니다. 한 대목을 인용하면, “하지만 우리는 심지어 우리들 자신의 야시夜時에, 저 숭어 충만한 유천변流川邊에 잠든, 놈 뇌어雷魚가 사랑했고 암놈 뇌어가 의지依支하는, 윤곽의 뇌룡어형雷龍漁型(피네간-HCE)을 여전히 불 수 있지 않을 것이고, 여기 지사志士나리, 귀여운 자유녀와 잠자도다. 만일 그녀가 깃발 걸친 여인 혹은 비늘 여인, 냄새 누더기 여인 또는 일요녀日曜女라면, 부원富源의 금광 또는 푼돈 중重의  거지라면. 아하, 확실히, 우리 모두 꼬마 애니(ALP)를 사랑하나니, 아니면, 우리는 글쎄다, 사랑 꼬마 아나 애니를, 그녀의 파산波傘 아래, 찰랑찰랑 웅덩이 물소리 사이, 그녀가 매에매에 산양처럼 아장아장 걸어갈 때, 여어! 두덜대는 아기(HCE) 잠자며, 코 골도다.(34쪽)”

역시 판소리처럼 가사의 내용도 육덕지고 걸지게 느껴집니다.

그런가 하면 작가가 만들어낸 신조어의 의미는 옮긴이가 차용한 우리말의 고어투는 물론 한자어의 도움으로 그나마 조금 이해할 수 있을 듯한데, 여기에서는 이상의 그림자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비롯하여 윌리엄 셰익스피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등 유명한 사람의 이름도 얼마든지 다양하게 변형하고 있기 때문에 운을 보아 대충 이해하게 되는데, 옮긴이의 노고가 선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율리시스>도 아일랜드의 문화적 배경이나 서구문학에 대한 이해가 얇아서 이해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경야>의 경우는 아예 읽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가운데 읽기에 도전한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옮긴이의 말씀대로 ‘그것을 읽는 척하는 사람과 척하려고 그것을 읽는 사람’의 어느 쪽에 해당한다고 이야기하는 자체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려는 분들에게 먼저 책 앞에 둔 서문에 요약된 각장은 물론 책말미에 붙여둔 해설을 꼼꼼히 읽고 본문읽기에 도전하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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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 영혼 없는 전문가에 맞서는 사람들
앤디 메리필드 지음, 박준형 옮김 / 한빛비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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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란 프로페셔널의 반대 개념으로, 본디 예술, 스포츠 등을 본업으로 삼지 않고 취미로 즐기는 사람을 일렀습니다. 과거 신분사회에서는 굳이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상류층에는 프로페셔널을 뺨치는 실력을 가진 아마추어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반면 프로페셔널은 상류층의 눈치를 보며 돈벌이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줄리어스 어빙은 아마추어를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라도 딱히 하기 싫을 때는 그냥 안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운동 분야에서 시작된 아마추어리즘에 대응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은 현대사회에 들어오면서 전문가집단이라는 개념으로 바뀌면서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네 방송가에서 유행하고 있는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존경을 받게 된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겠습니다. 전문가집단이 가진 특성이 인정받다보니 정책개발 등 국가주도의 사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자문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믿어지게 되었고, 심지어 이들이 방송 등 언론을 통하여 여론을 주도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마추어: 영혼 없는 전문가에 맞서는 사람들>은 전문가 집단의 폐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용감한(?) 책입니다. 도시이론가로서 도시계획과 사회이론에 관한 글을 쓰는 저자, 앤리 메리필드는 특히 도시계획에 관하여 전문가집단에 가진 생각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전문가라고 모두 틀린 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대중은 그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럴수록 전문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전문가들은 비이성적인 조직 논리로 무장한 채 대중을 유혹하는 동시에 착취하는 새로운 종교이자 범죄조직이다.(10-11쪽)” 요즈음에는 이런 주장을 사이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만, 신랄하다 못해 소름이 돋을 지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가 도시계획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가정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1960년대 영국에서 ‘도시 빈민가 철거 프로젝트’가 도시마다 확산되어갈 때 리버풀 도심에 있는 톡스테스 지역의 홀든 스트리트에 살던 저자의 할머니는 도시 경계 너머에 있는 노슬리로 쫓겨났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살던 동네는 작지만 깔끔하고 이웃과 어울려 사는 행복한 동네였지만, 도시계획 전문가에게는 불결한 동네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새로 이주한 동네는 불량주택의 대표 격으로 완성되기 전부터 벽이 갈라지고 습기가 찼고, 층간 방음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중교통수단은 물론 병원, 가게와 같은 사회 지원시설도 없어 그야말로 황무지에 다를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강제로 이주된 주민 2만 명은 공동체가 망가진 새도시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스러져갔다고 합니다. 이러한 죽음에 대하여 또 다른 전문가들은 ‘소외감’ 혹은 ‘소외된 삶’으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는데, 전문가들의 치밀하지 않는 정책판단으로 인하여 생긴 일이라는 것을 놓치고 있는 셈입니다.

저자는 아마추어리즘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있는지 설명합니다. “그들은 규정과 지시대로만 움직이고 모든 문제를 데어터와 숫자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에 맞서, 남과 다른 사고방식으로 대담하고 용감히 나아갔다. 목소리를 높여 비판하는 동시에 삶에 대한 열정과 미덕을 잃지 않았다.14-15쪽)” 그러니까 저자가 말하는 아마추어리즘이란 개념이 처음 등장할 때처럼 프로페셔널을 뛰어넘을 정도의 실력을 가졌으나,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 다양한 방면에 대하여 넘칠 정도로 고려하는 순수함을 유지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전문가라는 위장막에 몸을 숨기고 자신의 이념을 지키기 위하여 전문적인 앎을 이용하던 전문가집단과 일합을 겨루던 기억이 있어, 마음에 와닿는 점이 많은 책읽기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아마추어는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하여 학습하는 단계의 사람이 아니라 이미 프로페셔널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 앎을 본업으로 삼지 않는다는 아마추어리즘의 본질을 말하고 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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