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 영혼 없는 전문가에 맞서는 사람들
앤디 메리필드 지음, 박준형 옮김 / 한빛비즈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아마추어란 프로페셔널의 반대 개념으로, 본디 예술, 스포츠 등을 본업으로 삼지 않고 취미로 즐기는 사람을 일렀습니다. 과거 신분사회에서는 굳이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상류층에는 프로페셔널을 뺨치는 실력을 가진 아마추어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반면 프로페셔널은 상류층의 눈치를 보며 돈벌이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줄리어스 어빙은 아마추어를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라도 딱히 하기 싫을 때는 그냥 안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운동 분야에서 시작된 아마추어리즘에 대응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은 현대사회에 들어오면서 전문가집단이라는 개념으로 바뀌면서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네 방송가에서 유행하고 있는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존경을 받게 된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겠습니다. 전문가집단이 가진 특성이 인정받다보니 정책개발 등 국가주도의 사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자문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믿어지게 되었고, 심지어 이들이 방송 등 언론을 통하여 여론을 주도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마추어: 영혼 없는 전문가에 맞서는 사람들>은 전문가 집단의 폐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용감한(?) 책입니다. 도시이론가로서 도시계획과 사회이론에 관한 글을 쓰는 저자, 앤리 메리필드는 특히 도시계획에 관하여 전문가집단에 가진 생각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전문가라고 모두 틀린 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대중은 그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럴수록 전문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전문가들은 비이성적인 조직 논리로 무장한 채 대중을 유혹하는 동시에 착취하는 새로운 종교이자 범죄조직이다.(10-11쪽)” 요즈음에는 이런 주장을 사이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만, 신랄하다 못해 소름이 돋을 지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가 도시계획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가정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1960년대 영국에서 ‘도시 빈민가 철거 프로젝트’가 도시마다 확산되어갈 때 리버풀 도심에 있는 톡스테스 지역의 홀든 스트리트에 살던 저자의 할머니는 도시 경계 너머에 있는 노슬리로 쫓겨났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살던 동네는 작지만 깔끔하고 이웃과 어울려 사는 행복한 동네였지만, 도시계획 전문가에게는 불결한 동네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새로 이주한 동네는 불량주택의 대표 격으로 완성되기 전부터 벽이 갈라지고 습기가 찼고, 층간 방음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중교통수단은 물론 병원, 가게와 같은 사회 지원시설도 없어 그야말로 황무지에 다를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강제로 이주된 주민 2만 명은 공동체가 망가진 새도시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스러져갔다고 합니다. 이러한 죽음에 대하여 또 다른 전문가들은 ‘소외감’ 혹은 ‘소외된 삶’으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는데, 전문가들의 치밀하지 않는 정책판단으로 인하여 생긴 일이라는 것을 놓치고 있는 셈입니다.

저자는 아마추어리즘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있는지 설명합니다. “그들은 규정과 지시대로만 움직이고 모든 문제를 데어터와 숫자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에 맞서, 남과 다른 사고방식으로 대담하고 용감히 나아갔다. 목소리를 높여 비판하는 동시에 삶에 대한 열정과 미덕을 잃지 않았다.14-15쪽)” 그러니까 저자가 말하는 아마추어리즘이란 개념이 처음 등장할 때처럼 프로페셔널을 뛰어넘을 정도의 실력을 가졌으나,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 다양한 방면에 대하여 넘칠 정도로 고려하는 순수함을 유지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전문가라는 위장막에 몸을 숨기고 자신의 이념을 지키기 위하여 전문적인 앎을 이용하던 전문가집단과 일합을 겨루던 기억이 있어, 마음에 와닿는 점이 많은 책읽기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아마추어는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하여 학습하는 단계의 사람이 아니라 이미 프로페셔널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 앎을 본업으로 삼지 않는다는 아마추어리즘의 본질을 말하고 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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