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 재미있고 감각적이고 잘 팔리는
김은경 지음 / 호우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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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욕심이 한이 없다는 것을 빗대는 속담입니다. 책을 내고, 하고 있는 일과 관련하여 칼럼도 쓰다 보니, 어쩌다 에세이를 청탁받기도 합니다. 주제를 어떻게 정했던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꽤 여러 날을 두고 고민을 하다가 마감일에 맞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아마도 칼럼과 차이가 무언지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만, 청탁받은 바에 어느 정도는 부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차제에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위키백과에서는 칼럼이란 ‘신문, 잡지 등에서 시사, 사회, 풍속 등을 촌평하는 기사 또는 난을 가리키는 말이다.’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수필(隨筆) 또는 에세이(essay)는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한 산문 문학이다. 주제에 따라 일상생활처럼 가벼운 주제를 다루는 경수필과 사회적 문제 등의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중수필로 나뉜다. 특히 중수필에서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쓴 것을 칼럼이라 한다.’라고 설명합니다.

기왕에 글을 쓰고 있으니 본격적으로 에세이를 써보려 합니다. 하지만 섣부른 글로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역시 준비가 필요하겠지요. 준비란?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참에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라는 맞춤한 책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요즈음 주말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를 보고 있습니다. 출판사를 무대로 한 낭만희극인데 책을 출판하는 과정의 뒷이야기를 덤으로 알게 됩니다. 새 책의 광고 문안이 주제가 된 적도 있습니다. 팔리지도 않는 책을 만들어낼 출판사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책의 내용이 잘 정리된 광고 문안을 만들어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의 광고 문안은 ‘재미있고 감각적이고 잘 팔리는’입니다. 사실 책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잘 팔리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집니다. 잘 팔리면 가계에도 도움이 될 터이니 일석이조가 되겠지요. ‘잘 팔리는 책’ 다음에는 ‘꾸준히 팔리는 책’이 되면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제 경우도 ‘잘 팔리는 책’은 아니지만 ‘꾸준히 팔리는 책’은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꾸준히 팔리려면 적당한 간격으로 개정판을 내야 할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에세이를 쓰겠다는 것도 결국은 책으로 엮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만들었을 때 잘 팔려야 할 것이므로 당연히 재미있게 읽힐 수 있는 글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글을 쓰는 요령을 알려주겠다고 하니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를 안 읽을 재간이 없겠습니다. 이 책을 쓴 김은경 작가님은 출판사에서 에세이 전문 편집자로 9년여를 일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쌓은 내공을 이 책에 담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책을 내시기 전에 책방에서 에세이 쓰기와 교정․교열 강습회를 시작한 것이 이 책의 집필에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 워크숍은 ‘에세이를 써주셨으면 하는데요’라는 제목으로 일종의 원고를 청탁하는 개념으로 강습회 참가자들이 에세이를 써오면 이를 손보아주는 방식으로 4주간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사는 곳과 가깝고 이런 강습회가 있었더라면 저도 참석했을 것 같습니다. 결국은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 글쓰는 요령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출판사의 눈에 띄어 책을 내기까지 이러렀다고 합니다.

저자는 겸손하게도 (글쓰기를) 가르쳐준다기보다는 글을 쓰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드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합니다. 책의 내용을 읽어가면서 느끼는 점은 제 경우는 어느 정도 기본은 갖추고 있는 셈이구나 싶었습니다. 다만 저자가 짚어주는 핵심사항 몇 가지를 글에 비벼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에세이란 ‘사적 스토리가 있으면서 그 안에 크든 작든 깨달음이나 주장이 들어있는 글’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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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를 사랑한다면, 한번쯤은 체스키크룸로프
김해선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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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출판사를 무대로 한 드라마 <사랑은 별책부록>을 즐겨보고 있습니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책을 벌써 6권이나 세상에 내보냈기 때문에 출판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시인과 시집출판에 관한 내용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시집을 내기도 어렵고, 그렇게 낸 시집이 팔리지 않아 생계에 어려움을 겪다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은 어떤 시인의 이야기였습니다.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은 특정 분야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합니다. 치매에 관하여 20년 전에 냈던 책이 두 번이나 개정판을 내놓을 수 있었던 저는 특별하게 운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책은 시인으로 갓 등단한 시인이 에곤 실레를 주제로 하여 쓴 일종의 산문입니다. 1890년 오스트리아의 동북부 툴른(Tulln)에서 태어난 실레는 1918년 28살을 일기로 죽었습니다. 당시 유럽을 강타한 스페인독감에 희생된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중에 시부문의 신인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산티아고를 걷고 나서 마드리드에 있는 어느 미술관에서 에곤 실레의 그림을 만나게 된 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인연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드리드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끝에 있는 것은 아니지 싶기도 합니다. 결국 다른 나라에서 한 달 이상 살아보기와 같은 막연한 희망이 에곤 실레와의 만남으로 현실이 되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에곤 실레가 죽기 전에 잠시 머물렀다는 체코의 시골 마을 체스키크룸로프에서 말입니다.

저도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가보았습니다만 체스키크룸로프는 인구 1만3천 명 정도가 사는 서울시 용산구 규모의 작은 마을로 체코슬로바키아의 서남쪽 오스트리아의 국경 가까이에 있습니다. 마을을 감돌아 흐르는 블타바 강은 상류라서인지 폭이 불과 몇m에 불과하며 지형자체가 평탄한 탓에 완만한 흐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체스키 크롬루프 성에서 굽어보는 마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는 느낌은 여전히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마을의 작은 광장에서 자유시간을 가졌을 때 에곤 실레 미술관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은 찾지 못하고 포기했던 것이 안타깝기도 합니다(동유럽 인문학 기행-21, 체코의 하회마을 체스키크룸로프; https://blog.naver.com/neuro412/2213971446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말대로 40일까지 머물면서 이 마을을 그리고 에곤 실레를 느껴봐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작가는 에곤 실레를 처음 만나게 된 사연에서부터 에곤 실레의 족적을 뒤쫓아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등을 주유하면서 그의 출생과 예술,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 그를 도와준 클림트 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풀어냅니다. 물론 적절한 지점에서 에곤 실레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지 못하는 것은 정형화된 서술도 한 몫을 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면 에곤 실레의 작품에서 느끼는 바에 대한 것입니다. “에곤 실레가 자신의 몸이나 사람들의 인체 작품을 볼 때는 몸을 구성해가는 뼈와 세포, 표정까지 세부적으로 그려가는 에곤의 손길이 느껴지기도 했다.(58쪽)”는 대목에서는 표정처럼 인체의 외적 요소를 뼈라고 하는 내적 요소, 심지어는 세포와 같은 미세한 요소까지 한 통에 버무려 낸 탓에 왠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시체의 냄새를 맡으며 몸 구석구석까지 만지고 조사하는 어느 형사나 탐정가의 손길처럼, 민첩하게 움직이는 손가락들이 잠시 멈췄다 빠르게 움직이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는 대목에서도 자연사가 아닌 경우 사체를 다루는 것은 형사가 아니라 부검의사라는 것입니다. 부검 장면을 직접 보면 이런 느낌이 들까 싶기도 합니다.

에곤의 연인이었던 노이즐은 한 때 클림트의 연인이었던 관계를 안다면 세 사람 사이의 관계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보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남습니다. 책에서 적지 않게 인용하고 있는 에곤 실레의 작품에 대해서는 조금 깊이 살펴보았더라면 하는 것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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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병원의 미래
이종철 엮음 / 청년의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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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에 관한 이야기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습니다. 세계경제포럼의 클라우스 슈바브의장이 2016년 포럼에서 제창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직은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나 새로운 사조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관심을 두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 동력은 ‘물리적, 생물학적, 디지털적 세계를 빅 데이터에 입각해서 통합시키고 경제 및 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신기술’로 설명될 수 있다고 위키백과는 정의합니다.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1760년부터 1820년 사이에 시작된 기술혁신과 제조공정의 개선으로 사회와 경제 등의 영역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것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1844년에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산업혁명은 몇 차례의 중요한 전기를 맞게 되는데,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1870년부터 1914년 사이에는 동력원이 석탄에서 전기로 전환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전기를 이용하게 된 기존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철강, 석유, 전기 등의 새로운 산업분야가 등장하여 산업의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에 제2차 산업혁명이라고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제3차 산업혁명은 1970년대 시작된 것으로 보는데, 디지털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기존의 아날로그 및 기계 장치들이 디지털기술을 적용하게 되고,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및 정보통신기술이 등장하여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제레미 리프킨 같은 이는 아직도 제3차 산업혁명이 진행중이라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습니다만, 제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측에서는 빅데이터와 정보통신기술에 기반하여 로봇 공학, 인공 지능, 나노 기술, 양자 컴퓨팅, 생명공학, 사물인터넷, 3D 인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기술 혁신이 일어나고 있으니, 제4차 산업혁명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4차 산업혁명과 병원의 미래>는 이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의료계의 초기 수용자(darly adoptor)들의 혜안을 담고 있습니다. 삼성서울병원의 병원장을 지내셨고, 제가 근무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심사평가위원장을 지내신 이종철교수님께서 편집책임을 맡아 모두 76명의 필자들이 각자의 의료영역에서 예상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전망을 담았습니다. 어찌 보면 의료계는 가장 보수적인 집단으로 변화에 둔감한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지금까지의 것과는 차원이 달라서 변화에 늦었다가는 도태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책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고,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지만, 손놓고 있다가는 뒤처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니 무언가라도 해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무려 63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의견들을 모았습니다. 서문에 요약된 내용을 인용해보면, 5부로 구성된 책의 1부에는 4차 산업혁명이 병원에 미칠 영향과 디지털 헬스의 핵심내용을 개괄하며, 제2부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동력이 되는 주요 기술들을 의료에 미칠 영향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3부에서는 세분화되어 있는 의료분야에서 전망되는 제4차 산업의 미래를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이 정리하였습니다. 4부와 5부에서는 연구, 교육, 간호, 경영, 건축, 제도 등 병원 및 의료체계를 뒷받침하는 영역에 미칠 제4차 산업의 영향까지도 고려하였습니다.

앞으로의 의료는 사람이 중심이 되고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여 실시간으로 확인되는 건강의 변화가 컴퓨터에 자동으로 전송되며 치료에 관한 정보까지도 개인에게 제공될 수 있어서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야 하는 현재와는 사뭇 다른 의료환경이 조성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의료계에서는 원격진료체계의 도입을 반대하고는 있습니다만, 과연 도도한 변화의 물결을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당랑거철의 무모함 보다는 변화를 선도하는 위치를 선점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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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말리노브스키 - 인류학에서 미래를 위한 공생주의의 길을 모색하다
전경수 지음 / 눌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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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인류학을 넘어서; https://blog.naver.com/neuro412/221461194415>를 읽은 여운이 남았기 때문인지 쉽게 손이 갔던 것 같습니다. 20세기 초 들어서야 학문으로서 자리잡게 된 인류학은 새로운 학문영역이기도 하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막상 인류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철학이 인간의 지혜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인류학은 인간의 생물학적 속성과 함께 문화적 특성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말리노브스키는 1884년 지금의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태어나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태동하던 20세기 초 인류학 고유의 방법론을 확립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합니다. <인류학자 말리노브스키>는 서울대학교에서 문화이론과 생태인류학을 전공한 전경수교수가 인류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말리노브스키의 연구성과를 종합하여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 학문에 입문해서 종사하고, 그것을 직업으로 하기 위해서는 그 학문을 일구어온 선조들의 족적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시작하는 그의 서언은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전경수교수는 말리노브스키가 인류학에 기여한 바를 20여년에 걸쳐 뒤쫓으면서 세 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했고, 그 내용을 이 책에 쉽게 풀어 담아냈습니다. 1994년에 발표한 “말리노브스키의 섹스론”, 2001년에 발표한 “말리노브스키의 문화이론: 맥락론에서 기능론으로”, 그리고 2013년에 발표한 “방법론적 혁명으로서의 토속지와 유배지의 천우신조” 등입니다.

<인류학을 넘어서>에서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태동하여 발전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유럽 사람들이 비유럽사람들을 어떻게 인식하였는지에 관한 인식의 변천과정을 다루었습니다. 비유럽사람들의 사회가 유럽사회로 발전하는 중간과정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컸다고 하겠습니다. 덜 발전된 사회, 즉 야만인이라는 우월적 사고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발전해온 인류학이라는 학문의 기저에 깔려있는 여러 가지 오해와 왜곡된 시각들에 대하여 전교수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이를테면, 일러두기에 밝힌 번역용어의 재정립에 관한 것입니다. 현지조사 혹은 현지작업으로 번역해온 Field Research를 야연(野硏)으로 현지조사로 번영해온 Fieldwork는 야로(野勞)로, 참여관찰으로 번역해온 Participant Observation은 관문참여(觀問參與)로, 조사지 혹은 조사노트로 번역해온 Fieldnote는 야장(野章)이라는 용어를 제시합니다. 영어로 된 인류학 분야의 단어가 나름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데 반하여 이들 단어가 한자어로 표기되는 과정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사’라는 단어에는 일정한 인식의 기울기가 내재되어 있다고 보아 이를 바로잡기 위한 시도라는 생각입니다. 또한 인류학적 연구결과를 담는 Ethnography를 관에 대응하는 개념의 민속지로 번역해오던 것을 토속지라는 용어를 제시합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말리노브스키가 뉴기니 동쪽에 있는 작은 섬 트로브리안드에서 생활하면서 그들의 삶을 관찰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한 크라쿠프에서 태어난 그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호주에서 전쟁포로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트로브리안드섬에 유치되어 유배생활을 하게 된 것이 오히려 학문적 발전을 가져오는 기회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다만 섬주민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그의 학문적 방법론이 인류학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트로브리안드섬의 토속사회는 개명한 현대사회에서도 주목할 점이 분명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인류학 분야의 책을 읽어온 소감은 학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관과는 달리 쉽게 읽히고 이해가 되는 편이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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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호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2
외젠 다비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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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몇 차례나 집었다 놓기를 반복했던 책이었습니다. 제목을 보면 꼭 책과 연관이 있어 보이는데, 내용을 요약한 글을 보면 책과 무관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최근에 읽은 김연수작가의 여행칼럼 <언젠가, 아마도; https://blog.naver.com/neuro412/221429983488>에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읽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읽다보니 책과 연관이 있는 호텔이 아니라, 호텔이 파리 북쪽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거나 북쪽을 이르는 것이 맞았습니다. 수준으로 보아 호텔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해서, ‘북쪽 여관’ 혹은 ‘북쪽 여인숙’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로비나 복도에 책을 모아놓은 호텔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투숙객들 가운데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배려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북호텔(L‘Hôtel du Nord>은 작가의 부모가 사들여 경영했던 파리의 제마프 강변의 값싼 호텔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부모의 호텔에 머무는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꾸밈없이 그려낸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등장인물들은 대장장이, 인쇄공, 마차꾼, 공장 여직공들, 폐병환자, 수문지기, 오입쟁이 등등입니다. 아마도 집을 살 수 없을 형편인 사람들이 집대신 살림을 하는 장소로 활용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관방을 빌려서 장기간 머무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사는 것은 어디나 비슷한 모양입니다만, 20세기 초반의 파리의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챙겨주면서 정을 나누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사랑을 빌미로 같이 살다가 막상 여성이 임신을 하자 떠나는 무책임한 남자가 등장하기도 하고, 그런 아픔을 겪고도 같은 꼴로 사는 대책 없는 여성도 있습니다. 그래도 북호텔의 여주인은 정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방을 빌어 사는 사람들의 아픔을 감싸고 챙겨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북호텔에 살다가 양노원으로 옮긴 노인이 찾아오자, 그가 쓰던 방을 보여주고 또 차비도 챙겨주는 따듯함을 보여줍니다. 작가의 어머니 역할이라서 애틋함을 나타내고 싶었을까요?

그 무렵의 파리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공산당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5월1일 메이데이의 시위를 주동하기 위하여 투숙한 베니토의 정체를 알아챈 여주인은 ‘선동주의자’라고 잘라 말하는 것을 보면, 프랑스 공산당의 시작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인식 정도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당시 결핵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속수무책으로 앓다가 죽어가는 모습을 그려낸 것을 보면, 결핵에 대한 국가적인 대책은 뚜렷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쉽지 않은 결정일 수도 있습니다만, 르쿠브뢰르씨가 북호텔을 인수하는 과정입니다. 자기 자본 없이 처남의 돈을 빌어 호텔을 인수하여 운영을 시작하는 것인데, 호텔을 경영해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호텔을 인수하고 아무런 문제없이 운영하는 일이 정말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그것도 중개업자의 안내를 받아 한 차례 둘러보는 것만으로 인수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투숙객의 현황 등 관련 자료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주먹구구식으로 호텔을 인수하여 망해먹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고, 호텔을 건네준 전 주인도 마음이 엄청 착한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르쿠브뢰르씨 부부가 인수 전에 둘러본 호텔의 분위기로 보면 청소상태를 비롯하여 여러면에서 호텔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런 요소들이 인수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기승전결이나 반전 같은 것이 없어, 이야기가 너무 평이하게 전개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 다소 모호하다는 느낌이 남는 책읽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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