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를 사랑한다면, 한번쯤은 체스키크룸로프
김해선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즈음 출판사를 무대로 한 드라마 <사랑은 별책부록>을 즐겨보고 있습니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책을 벌써 6권이나 세상에 내보냈기 때문에 출판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시인과 시집출판에 관한 내용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시집을 내기도 어렵고, 그렇게 낸 시집이 팔리지 않아 생계에 어려움을 겪다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은 어떤 시인의 이야기였습니다.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은 특정 분야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합니다. 치매에 관하여 20년 전에 냈던 책이 두 번이나 개정판을 내놓을 수 있었던 저는 특별하게 운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책은 시인으로 갓 등단한 시인이 에곤 실레를 주제로 하여 쓴 일종의 산문입니다. 1890년 오스트리아의 동북부 툴른(Tulln)에서 태어난 실레는 1918년 28살을 일기로 죽었습니다. 당시 유럽을 강타한 스페인독감에 희생된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중에 시부문의 신인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산티아고를 걷고 나서 마드리드에 있는 어느 미술관에서 에곤 실레의 그림을 만나게 된 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인연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드리드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끝에 있는 것은 아니지 싶기도 합니다. 결국 다른 나라에서 한 달 이상 살아보기와 같은 막연한 희망이 에곤 실레와의 만남으로 현실이 되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에곤 실레가 죽기 전에 잠시 머물렀다는 체코의 시골 마을 체스키크룸로프에서 말입니다.

저도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가보았습니다만 체스키크룸로프는 인구 1만3천 명 정도가 사는 서울시 용산구 규모의 작은 마을로 체코슬로바키아의 서남쪽 오스트리아의 국경 가까이에 있습니다. 마을을 감돌아 흐르는 블타바 강은 상류라서인지 폭이 불과 몇m에 불과하며 지형자체가 평탄한 탓에 완만한 흐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체스키 크롬루프 성에서 굽어보는 마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는 느낌은 여전히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마을의 작은 광장에서 자유시간을 가졌을 때 에곤 실레 미술관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은 찾지 못하고 포기했던 것이 안타깝기도 합니다(동유럽 인문학 기행-21, 체코의 하회마을 체스키크룸로프; https://blog.naver.com/neuro412/2213971446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말대로 40일까지 머물면서 이 마을을 그리고 에곤 실레를 느껴봐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작가는 에곤 실레를 처음 만나게 된 사연에서부터 에곤 실레의 족적을 뒤쫓아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등을 주유하면서 그의 출생과 예술,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 그를 도와준 클림트 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풀어냅니다. 물론 적절한 지점에서 에곤 실레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지 못하는 것은 정형화된 서술도 한 몫을 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면 에곤 실레의 작품에서 느끼는 바에 대한 것입니다. “에곤 실레가 자신의 몸이나 사람들의 인체 작품을 볼 때는 몸을 구성해가는 뼈와 세포, 표정까지 세부적으로 그려가는 에곤의 손길이 느껴지기도 했다.(58쪽)”는 대목에서는 표정처럼 인체의 외적 요소를 뼈라고 하는 내적 요소, 심지어는 세포와 같은 미세한 요소까지 한 통에 버무려 낸 탓에 왠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시체의 냄새를 맡으며 몸 구석구석까지 만지고 조사하는 어느 형사나 탐정가의 손길처럼, 민첩하게 움직이는 손가락들이 잠시 멈췄다 빠르게 움직이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는 대목에서도 자연사가 아닌 경우 사체를 다루는 것은 형사가 아니라 부검의사라는 것입니다. 부검 장면을 직접 보면 이런 느낌이 들까 싶기도 합니다.

에곤의 연인이었던 노이즐은 한 때 클림트의 연인이었던 관계를 안다면 세 사람 사이의 관계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보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남습니다. 책에서 적지 않게 인용하고 있는 에곤 실레의 작품에 대해서는 조금 깊이 살펴보았더라면 하는 것도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