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의 발견 - 하늘길을 찾는 파일럿의 여정
마크 밴호네커 지음, 나시윤 옮김, 최정규 감수 / 북플래닛(BookPlanet)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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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넘어서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오면서 비행기를 처음 타본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학회다, 출장이다 해서 외국으로 나가는 비행기도 꽤 타본 셈입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구경다니느라 비행기를 자주 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비행기도 처음 탈 때는 긴장도 되고 신기하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목적지까지 별 탈 없이 오가는 것이 유일한 관심사입니다. 처음에는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승무원이 안내하는 비상상황에 대처하는 요령도 주의 깊게 듣곤 했습니다만, 요즈음은 영상으로 하는 것이라서인지 대충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크 벤호네커가 쓴 <비행의 발견>을 읽고 나서는 비행를 타는 일에 다시 관심을 가져볼 이유가 생겼습니다. 저자는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한 뒤에, 컨설팅 회사에서 경영컨설턴트로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어렸을 적 꿈이 비행사가 되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회사일로 비행기를 탈 일이 많았던 모양인데, 그렇게 비행기를 타다가 비행기를 몰아보아야겠다는 충동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2001년에 비행교육과정을 시작해서 지금은 영국항공에서 선임부기장으로 일하면서 보잉747기를 조종하고 있습니다.

목차에 있는 이륙, 장소, 길 찾기, 기계, 공기, 물, 만남, 밤, 귀환 등의 제목만 가지고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하여 전혀 윤곽을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열고 작자가 늘어놓는 사설을 대충 읽어가다 이사크 디네센(우리에게는 카린 블릭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 >에서 인용한 글을 만나면서 전기가 오는 느낌이었습니다. “공중에서 당신은 3차원적인 완전한 자유 속으로 들어간다. 기나긴 유배와 몽상의 시대를 보낸 후 향수에 젖은 마음은 허공 속으로 냉큼 들어간다.(13쪽)” 생각해보니 제가 조종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비행기를 타고 창문으로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가 비행에 끌리는 이유는 비행의 자유가 먼저고, 다음에는 높이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비행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먼 외국에 가게 되면 대부분의 승객들이 시차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물론 남북으로 이동하는 경우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고, 서쪽으로 가는 경우에는 조금 덜한 편이지만 동쪽으로 가는 경우에는 틀림없이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자는 시차에 더하여 ‘공간차’에도 적응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공간차란 우리를 둘러싼 주위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게 되면 그 변화에 적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비행기는 어떻게 항로를 찾아가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나오는 비행경로 표지판을 보면 우리가 아는 지명이 아닌 생소한 지명이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생소한 지명이 왜 튀어나오는지 이 책에서 답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나오는 생소한 지명을 비컨이라고 한답니다. 옛날에는 불빛으로, 요즈음은 무선신호로 위치를 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행기로 여행하면서 두 도시를 직선으로 잇는 항로가 아니라 빙 돌아가는 항로를 비행하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영공을 개방하지 않는 경우도 있겠고, 영공의 통행료도 항로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는데, 기상 상태도 중요한 요소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제트기류가 가로막는 경우 피해가기도 하는데, 비행기가 출발했을 당시 결정된 항로더라도 비행중에 날씨의 변화에 따라서 폭풍우가 나타나는 경우에는 돌아서 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비행기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다시 읽어 참고하면 좋을 그런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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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물질의 습격, 위험한 시대를 사는 법 - 일상의 편리함 속에 숨은 화학 물질 중독, 피할 수 없는가?
계명찬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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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리 일상의 대부분에 간여하고 있는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인식이 더 나빠지면서 케미포비아(Chemiphobia), 즉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가 극심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엄청난 규모의 화학물질이 개발되면서 우리의 일상이 윤택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개발된 화학물질이 동전의 양면처럼 유익한 면이 있는 반면, 해가 되는 면이 있기도 한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처음 개발 당시에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문제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습니다.

레이첼 카슨의 유명한 <침묵의 봄>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 우리 주변에 쌓여간 화학물질이 우리를 포함한 생명체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일상에 사용할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해 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는 사건과 같은 경우도 여전히 생기기도 합니다.

‘일상의 편리함 속에 숨은 화학물질 중독, 피할 수는 없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화학물질의 습격: 위험한 시대를 사는 법>은 우리 일상에 편리함을 주는 화학물질의 무서움을 일깨우고 현명하게 사용하는 법을 안내한다는 취지로 기획된 것 같습니다. 책을 쓴 계명찬교수는 한양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로 환경호르몬, 즉 내분비계 장애물질로 인한 생식독성 연구를 비롯하여 남성 불임 및 보조생식술 등을 연구하는 분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내분비계 장애물질이 가지고 있는 독성과 이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점을 비롯하여 이룰 저감시킬 수 있는 방법 등을 소개합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얼마나 쌓으셨나요?’라는 제목의 1부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새 어떤 경로로 환경호르몬에 노출되는지,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 독성은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캔, 통조림, 물통, 페트병과 플라스틱 용기, 가소제와 불소수지, 립스틱, 향수, 샴푸, 세제, 휘발성 유기화합물, 식품첨가물, 심지어는 다양한 장소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받는 영수증에서도 환경호르몬이 오염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환경호르몬이 문제라고 두루뭉술하게 소개하면서 사용이 금지된 물질은 물론 대체물질 등이 얼마나 유해한지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어서 모든 화학물질이 환경호르몬인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이에게 대물림되는 환경독성물질의 고통’이라는 제목의 2장에서는 내분비계 장애물질이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생식능력에 피해를 입히고, 다음 세대에까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유산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DES(diethylstylbesterol)와 같은 물질은 여성호르몬과 유사한 효과를 나타내면서도 임신 중에 사용하는 경우 자녀 가운데 딸이 성장한 다음에 질에 투명세포암이 발생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가하면 지금은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입덧 개선제 탈리도마이드를 임신초기에 사용하는 경우 자녀가 팔다리에 뼈가 없이 태어나는 해표지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런 물질을 개발하는 단계에서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같은 경우는 해당물질을 관리하는 주체가 분명치 않아서 관리기준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 것도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나쁜 결과를 가져왔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아이를 키울 때 폐렴 증세가 있는 경우 집에서 가습기를 계속 틀어놓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수돗물로 깨끗하게 씻고 수돗물을 채우는 정도였던 것인데, 살균제가 있었다면 저 역시 사용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3장은 ‘피할 수 없다면 최선은? 일상의 화학물질 관리’라는 제목으로 몇 가지 도움이 될 사항들을 소개합니다만, 결국 유해물질의 사용을 최대한 줄이거나 피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것 같습니다. 유해화학물질의 독성으로 인한 심각한 상황에 대하여 구체적인 수치나 사용해도 되는 수준에 관한 설명이 없어서 무작정 피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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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여행과 고양이 - 최병준의 여행공감
최병준 지음 / 컬처그라퍼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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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행을 다니다보면 여행지마다의 이야기 말고도 그냥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큰 줄기는 잡아놓았는데 글로 풀어낼 시간 여유가 없는 것이 아쉬운 참이었는데, 딱 그런 느낌의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책과 여행과 고양이>는 경향신문에서 여행전문기자로 15년을 일하면서 여행을 즐겨온(?) 최병준 기자님이 여행경험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물론 일로 여행을 가는 것과 그저 쉬러 가는 것과는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일단은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과 여행과 고양이>에는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을 시작(공항, 호텔, 관찰), 풍경(개, 고양이), 체험(미술관, 건축, 사진), 친구(커피, 맥주, 담배), 여정(걷기, 열차, 택시와 버스), 아름다움(밤, 백야, 로맨스), 즐거움(에티켓, 패스트푸드, 슬로푸드), 가르침(종교, 탐험가, 우주여행) 등의 주제마다 세 꼭지씩의 관찰대상을 나누어 담았습니다. 그 가운데는 저도 생각했던 관찰대상과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다녀본 곳이 저보다 훨씬 많고 여행경험 역시 저보다 많은 까닭에 다양한 관점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개인의 취향도 무시할 수 없는 점이겠구요.

문장은 한 마디로 끝내줍니다. 여행경험만 많은 것이 아니라 영화면 영화, 책이면 책, 다양한 영역에서의 앎의 내공이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책 읽는 흐름도 참 좋습니다. 여행지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글만으로서 풀어내다보면 많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 마렵입니다. 그래서 사진이 곁들여지면 뭔가 있어 보이고 글 읽는 재미에 작가와 함께 여행지에 동행하는 듯한 느낌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특정한 여행지가 아니기 때문인지 이 책에는 사진이 그리 많이 곁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진은 주제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설명이 붙어있거나 아니면 설명이 없습니다. 어쩌면 독자가 상상의 날개를 펼쳐내도록 여유를 던지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 역시 다양한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일과 관련된 사진의 경우는 찍는 사람이 아니면 사진에 담겨진 내용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자의 경우 ‘순간을 포착한 사진은 정지된 장면 하나만 보여주지 않는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뇌세포들은 앞뒤 기억을 모두 꺼내 기억메모리를 가동시킨다.(…) 사진 한 장이 뇌의 회로 속에서 시작도 끝도 애매모호한, 추억의 영화 한편을 돌려준다(116쪽)’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은 찍는 사람의 기억을 도와주는 외장하드가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자신이 찍은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왜 찍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제 경우는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들은 것 혹은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대목도 스마트폰의 쓰기 앱을 이용하여 메모를 합니다. 단순한 메모 수준을 넘어서 문장이 연결되도록 느낌까지 담아서 적는 편입니다. 이렇게 적은 기록은 사진보다 훨씬 기억을 되돌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여행기로 정리하는 작업은 여행을 다녀온 뒤로 1년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진과 메모가 여행기를 정리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는 것입니다.

영화 <터미널>의 주인공이 톰 행크스가 아니라 로빈 윌리엄스라고 적은 것이라거나, 크로아티아라는 나라가 나무젓가락처럼 길쭉하게 생겼다거나 하는 대목은 잠시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인상이 낡고 허름한 느낌을 받았다는 대목도 저와는 다른 인상을 받으셨던 모양입니다. 제가 샅샅이 구경해보지 못한 대목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잘 정리되어 깔끔한 인상이었습니다. 대리석으로 된 스트라둔이 오랜 세월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 반질반질하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트라둔와 성벽 사이에 숨어있는 집으로 연결되는 좁은 골목까지도 깔끔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유고내전 당시 세르비아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곳들이 여전히 복원되지 않고 방치된 모습이 안타깝기는 했습니다.

어떻든 다양한 관점에서 여행을 돌아보고 다양한 지역에서의 느낌을 비교해 설명하는 방식의 여행기도 충분히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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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슬픔 -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기
문성원 지음 / 그린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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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그려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눈길을 끌어 읽게 된 책입니다. 그림의 제목은 <철학으로의 외도>입니다. 하반신을 드러낸 여인이 등을 돌리고 침대에 누워있고, 옷을 입은 사내가 그녀의 등 옆에 앉아 있는 정경입니다. 호퍼의 부인의 기록에 의하면 남자의 옆에 놓인 책은 플라톤의 <국가>라고 합니다.

정의와 국가의 정체에 대하여 논한 철학책이 놓인 상황이 참 묘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철학의 슬픔>을 쓴 문성원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호퍼의 그림들을 영상으로 옮긴 <셜리에 관한 모든 것>에서는 이 상황이 다음처럼 묘사되었다고 합니다.(제가 이 영화를 보지 못해서) 영화에서 셜리는 <국가론>의 ‘동굴의 비유’ 부분을 읽다가 스티브의 인기척을 듣고는 책을 놓고 돌아누워 자는 척하고, 스티브는 셜리의 모습을 잠시 보다가 책을 들고 있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동굴의 비유는 태어나면서 동굴에 갇힌 죄수는 횃불에 드리운 그림자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슬이 풀려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대낮의 태양과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볼 수 있게 된다. 동굴 속의 세계는 현실의 세계이고 동굴 밖의 세계는 이데아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읽던 스티브가 책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긴다고 했습니다. 과연 이 상황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창밖에서 들어온 햇빛이 방바닥에 그리고 남자의 얼굴에 비치는 것은 풀라톤의 <국가론>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이데아의 세계에 다가갈 수 없음에 좌절하는 모습일까요?

<철학의 슬픔>에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기’라는 부제가 달려있습니다. 문성원교수는 타자와 바깥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 나는 물론, 나의 가족, 나의 이웃, 나아가 우리나라기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타자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철학자 레비나스를 통하여, 철학과 닿아있는 바깥 영역과의 관계를 통하여 철학의 위치와 역할을 가늠하고 사유해보려 했다고 합니다.

레비나스와 철학과 이에 대한 데리다의 해석을 검토함으로서 정치와 윤리의 관계 문제에 대하여 작은 통찰의 실마리를 구해보려는 생각도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표제를 <철학의 슬픔>이라 한 것은 위축과 상실에 대처하는 자세인 슬픔이 우리의 삶에서 뿐 아니라 철학의 처지에서도 때로 적절하고 긍정적인 방안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주제의 다양성을 본다면 슬픔이 딱히 긍정적인 방안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철학의 슬픔에 이어 행복에 대하여, 인공 지능 무한 그리고 얼굴, 사랑과 용서, 환대하는 삶, 정치와 윤리, 약함을 향한 윤리, 끝나지 않는 변증법의 모헙, 그리고 민주주의를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데, 제목들 사이에 연관성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 듯했습니다.

다만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룬 마지막 주제가 ‘민주주의를 넘어서’이고 보면 나와 너의 관계를 잘 정립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완성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즉 민중의 견해와 의지를 직접적으로 모으고 반영해내는 민주주의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견해를 내놓습니다. 다만 그것을 모으는 방안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는 더 지켜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철학의 슬픔이라는 있을 수 없는 감정은 철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철학을 폄훼하는데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요? 예를 들면, 세계적인 유전학자 스트비 존스가 남긴 “과학에 있어서의 철학은 섹스에 있어서의 포르노그래피와 같습니다. 더 싸고, 더 쉽고, 어떤 사람들은 더 좋아하기도 하죠(20쪽)”라는 말 같은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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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날마다 축제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주순애 옮김 / 이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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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들어있는 ‘파리’에 혹해서 집어들었다가 저자가 헤밍웨이라고 해서 목차도 보지 않고 들고 온 책입니다. 이 책은 헤밍웨이가 죽기 얼마 전인 1957년 가을부터 1960년 봄 사이에 젊은 시절 파리에서 살던 이야기를 적은 것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스물두살이 되던 1921년부터 1926년까지 첫 부인 헤들리와 파리에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내와 그리고 첫아들 존이 태어난 뒤에는 아들까지 함께 하는 일상에 대하여, 에즈라 파운드, 거투르드 스타인 여사, 스콧 피츠제럴드 등 문인들을 비롯한 예술가, 운동선수 등 다양한 인물들과의 인연 들을 회고합니다. 특히 1920년대 초반의 파리의 풍경을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오늘날 복잡하기만 한 파리의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헤밍웨이 부부는 토론토 데일리 스타의 해외통신원 자격으로 파리에 와서 송고한 기사에 대한 원고료나, 세터데이 이브닝포스트나 애틀랜틱 먼슬리와 같은 잡지에 실린 글의 원고료를 받아 어렵게 생활하면서 대중의 이목을 끌 단편과 장편 소설을 꾸준하게 써가고 있었습니다. 카페에 습작공책을 들고나가 글쓰기에 몰두하거나 소재를 찾아 여행을 하거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에 파리는 좋은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파리에서는 충분히 먹지 못하면 몹시 허기진다. 빵집 진열대에는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그득하고 거리에는 테라스에 차려진 식탁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늘 먹을 것이 눈에 보이고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하기 때문이다.(78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헤밍웨이에게 파리 생활이 무지개빛 나날은 분명 아니었던가봅니다.

하지만 “글 쓸 때는 눈먼 돼지가 된답니다.(100쪽)”리고ㅛ 말한 것을 보면, 적어도 글을 쓸 때만큼은 몰입하기 일쑤였던 모양입니다. 또한 한때 돈벼락의 환상에 젖어 쫓아다니던 경마장의 유혹을 뿌리치고 종일 글만 쓴 것을 보면 자기관리에도 능한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그는 나름대로 정한 글쓰기의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잡지사에 팔기 알맞은 단편 원고를 쓰는 방법을 일러주었을 때, 그것은 몸 파는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노력을 기울여 좋은 단편을 써놓은 다음, 잡지사가 원고를 청탁하면 그 잡지사가 원하는 대로 잡지의 판매부수를 올릴 만한 작품으로 다시 수정해서 원고를 넘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중의 입맛을 고려해서 작품을 쓴다는 것이지요. ‘(초고의) 글을 일일이 분석하여 기교를 부린 대목을 삭제하고, 대상을 묘사하기보다는 글에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애쓰기 시작한 이래 글쓰기는 내게 더 없이 경이로운 작업이 되었다(171쪽)’는 대목을 보면 글쓰기에 대한 헤밍웨이의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센 강변에 있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의 실비아 비치가 헤밍웨이에게 베푼 온정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잘 담은 글도 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다양한 책을 빌려 읽으면서 다른 작가들의 글쓰기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스타인 여사가 ‘자네는 왜 그런 쓰레기들만 읽는 거지? 그런 것들은 겉만 번드르르한 쓰레기야, 헤밍웨이, 송장이 쓴 글이라니까’라고 비판하는 말에 ‘전 그저 다른 작가들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그걸 읽고 있는 동안에는 제 글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거든요“라고 대답합니다. 다양한 작품들을 읽어보지 않으면 자신의 글에 대한 대책없는 자신감 같은 것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헤밍웨이의 파리생활에 대한 회고록은 그가 죽은 뒤 3년 되던 1964년에 <움직이는 축제일>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2010년에는 저자의 미완성 원고를 추가한 복원본이 같은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이 액에서는 1부 ‘움직이는 출제일’이 원래 출간된 분량이며, 2부 ‘파리스케치’가 미완성 원고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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