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날마다 축제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주순애 옮김 / 이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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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들어있는 ‘파리’에 혹해서 집어들었다가 저자가 헤밍웨이라고 해서 목차도 보지 않고 들고 온 책입니다. 이 책은 헤밍웨이가 죽기 얼마 전인 1957년 가을부터 1960년 봄 사이에 젊은 시절 파리에서 살던 이야기를 적은 것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스물두살이 되던 1921년부터 1926년까지 첫 부인 헤들리와 파리에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내와 그리고 첫아들 존이 태어난 뒤에는 아들까지 함께 하는 일상에 대하여, 에즈라 파운드, 거투르드 스타인 여사, 스콧 피츠제럴드 등 문인들을 비롯한 예술가, 운동선수 등 다양한 인물들과의 인연 들을 회고합니다. 특히 1920년대 초반의 파리의 풍경을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오늘날 복잡하기만 한 파리의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헤밍웨이 부부는 토론토 데일리 스타의 해외통신원 자격으로 파리에 와서 송고한 기사에 대한 원고료나, 세터데이 이브닝포스트나 애틀랜틱 먼슬리와 같은 잡지에 실린 글의 원고료를 받아 어렵게 생활하면서 대중의 이목을 끌 단편과 장편 소설을 꾸준하게 써가고 있었습니다. 카페에 습작공책을 들고나가 글쓰기에 몰두하거나 소재를 찾아 여행을 하거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에 파리는 좋은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파리에서는 충분히 먹지 못하면 몹시 허기진다. 빵집 진열대에는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그득하고 거리에는 테라스에 차려진 식탁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늘 먹을 것이 눈에 보이고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하기 때문이다.(78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헤밍웨이에게 파리 생활이 무지개빛 나날은 분명 아니었던가봅니다.

하지만 “글 쓸 때는 눈먼 돼지가 된답니다.(100쪽)”리고ㅛ 말한 것을 보면, 적어도 글을 쓸 때만큼은 몰입하기 일쑤였던 모양입니다. 또한 한때 돈벼락의 환상에 젖어 쫓아다니던 경마장의 유혹을 뿌리치고 종일 글만 쓴 것을 보면 자기관리에도 능한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그는 나름대로 정한 글쓰기의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잡지사에 팔기 알맞은 단편 원고를 쓰는 방법을 일러주었을 때, 그것은 몸 파는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노력을 기울여 좋은 단편을 써놓은 다음, 잡지사가 원고를 청탁하면 그 잡지사가 원하는 대로 잡지의 판매부수를 올릴 만한 작품으로 다시 수정해서 원고를 넘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중의 입맛을 고려해서 작품을 쓴다는 것이지요. ‘(초고의) 글을 일일이 분석하여 기교를 부린 대목을 삭제하고, 대상을 묘사하기보다는 글에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애쓰기 시작한 이래 글쓰기는 내게 더 없이 경이로운 작업이 되었다(171쪽)’는 대목을 보면 글쓰기에 대한 헤밍웨이의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센 강변에 있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의 실비아 비치가 헤밍웨이에게 베푼 온정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잘 담은 글도 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다양한 책을 빌려 읽으면서 다른 작가들의 글쓰기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스타인 여사가 ‘자네는 왜 그런 쓰레기들만 읽는 거지? 그런 것들은 겉만 번드르르한 쓰레기야, 헤밍웨이, 송장이 쓴 글이라니까’라고 비판하는 말에 ‘전 그저 다른 작가들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그걸 읽고 있는 동안에는 제 글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거든요“라고 대답합니다. 다양한 작품들을 읽어보지 않으면 자신의 글에 대한 대책없는 자신감 같은 것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헤밍웨이의 파리생활에 대한 회고록은 그가 죽은 뒤 3년 되던 1964년에 <움직이는 축제일>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2010년에는 저자의 미완성 원고를 추가한 복원본이 같은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이 액에서는 1부 ‘움직이는 출제일’이 원래 출간된 분량이며, 2부 ‘파리스케치’가 미완성 원고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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