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갈릴레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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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X의 헌신>으로 절정에 이른 ‘갈릴레오 연작’을 시작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탐정 갈릴레오>에는 다섯 건의 살인사건이 담겨있습니다. 그것도 연작 형식을 취하여, 1장 타오르다, 2장 옮겨 붙다, 3장 썩다, 4장 폭발하다, 5장 이탈하다 등의 제목이 달려있습니다. 제목만 보아도 뭔가 물리력이 작용한 사건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갈릴레오 연작에서는 도쿄 경시청의 구사나기 슌페이 형사와 데이도 대학 공학부 물리학과의 유가와 마나부 교수가 사건 해결의 중심에 있습니다. 사회학부 출신의 구사나기 형사와 공학부 출신의 유가와 교수의 관계는 대학의 배드민턴 동아리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역시 전공분야의 넘어서 관계를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구사나기가 명민한 수사관이라는 점은 사건 현장에서 흘려보낼 수도 있는 사소한 일까지도 놓치지 않는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유가와교수는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당양한 증거들을 엮어서 문제해결을 위한 이론을 세우고, 실험을 통하여 그 이론을 확인하는 작업을 해내는 것이니 과학수사의 전형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휘발유통이 저절로 불타오르도록 한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사건 동기나 범인도 어느 정도는 추론이 가능하지만, 살해방법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어려웠던 사건입니다. 두 번째 사건은 작은 연못에 떠오른 죽은 자의 안면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첫 번째 사건에 비하면 현상을 이해하는데 쉽지 않았던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나중에 밝혀진 범인이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던 사건입니다. 생각해보면 용의선상에 먼저 올려놓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세 번째 사건은 가슴의 피부에 생긴 검은 반점이 무언가의 외적 요인에 의하여 괴사에 빠진 것이니 썪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했는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하지만 구체적 방법은 복잡하지만 사인을 추정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던 사건입니다. 문제는 살인의 동기라고 할 수 있는데, 허영심을 채우기 위하여 과소비를 일삼던 여성이 빚에 몰려 살인을 저지르고, 맹목적인 사랑으로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남성도 문제라고 보겠습니다.

네 번째 사건은 해변에 떠있는 비치매트에 올라탄 젊은 여성이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산화하는 사건입니다. 중인환시 리에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해결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만,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저지른 사건이기 때문에 모방범죄가 우려될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사건의 동기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벌어진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 같은 것이 치밀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사건은 죽음은 있었지만, 그 죽음과 관련된 용의자의 알리바이가 정당한 것인지를 과학을 동원하여 증명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을 둘러싸고 일었던 유체이탈이라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설명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었는데, 상황에는 상황을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왜곡한 개인의 욕심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나중에 드러난 진범의 존재를 추정할 증거물이 초반에 제시되지 않은 점도 다소 아쉬웠던 점입니다. 두 번째 사건이나 다섯 번째 사건을 보면, 남녀 관계는 참 오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떻든 <탐정 갈릴레오>는 물리학이라는 과학 분야가 강력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 중요하다는, 즉 과학수사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점에 착안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만 사건을 과학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작용했던지 중편으로 사건을 처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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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의 즐거움
구리타 마사히로 지음, 김하경 옮김 / 해바라기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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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은 물론 공휴일에도 집에서 가까운 양재천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거의 10km에 가까운 거리인데 비교적 빨리 걷기 때문에 한참 몸이 가벼울 때는 1시간 반 정도 걸렸습니다. 요즘에는 체력이 많이 떨어진 탓에 2시간 가까이 걸리곤 합니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 시작한 것인데, 처음에는 5km 정도를 걷다가 점차 늘렸고, 체중 줄이기에 몰입하고 있을 때는 주중에도 서너 차례는 더 나가곤 했습니다. 체중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걷기였기 때문에 오로지 빨리 걷기에 매몰되었던 것 같습니다.

체중이 줄어서 유지단계에서는 걷기 이외에도 산책길에서 보거나 들을 수 있는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쏟게 되었습니다. 철 따라 피어나는 꽃을 비롯하여 양재천에 모여드는 새들은 어떤지, 개울에 모여드는 물고기는 어떤 것들인지도 모두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했던 산책을 서울 시내와 근교의 좋은 산책길 섭렵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산책의 즐거움>은 산책에 관한 저의 다양한 관심사와도 맞물려있습니다. 이 책은 일본 동경대학 부속병원 내과에서 근무하는 구리타 마사히로 선생이 쓴 책인데, 읽어가다 보니 자기계발의 방법으로 산책을 활용해보라는 제안입니다. 저 역시 산책을 나가는 이유에 따라서 걷는 방식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체중을 줄이려는 산책의 경우는 빠르게 걸어내는데 몰입을 합니다. 청탁받은 원고가 있을 때는 천천히 걸으면서 머릿속으로 글쓰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고 산책길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려할 때는 역시 천천히 걸으면서 경관을 둘러보는데 집중을 합니다. 그럴 때는 산책길 곳곳에 생긴 조그만 변화까지도 챙겨보려 노력을 합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산책의 목적은 체력과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있다.’라고 정리합니다. 특히 필자의 경우처럼 예비 고혈압 단계에 있는 경우에는 산책을 통하여 체중을 줄이면서 체력을 늘리게 되면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생활습관병을 예방하고 최상의 컨디션과 지성을 위해 ‘15분 산책’을 제안한다”라고 했습니다.

책의 내용을 보면, 주제가 있는 산책, 감각이 있는 산책, 두뇌가 좋아지는 산책, 건강해지는 산책, 지성이 눈뜨는 산책, 삶이 충실해지는 산책 등 여섯 가지의 산책의 목표를 제시하였는데, 제가 보기에는 근거가 분명하게 있어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하는 것보다는 나을 듯합니다. 즉, ‘테마가 있으면 더 새롭다’는 저자의 언급이 와 닿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혼자 여행할 때만큼 깊이 생각에 잠기고 내 자신이 온전하게 여겨졌던 적은 없었다. 걷기는 나의 사상에 활기를 불어넣는 어떤 힘이 있다.(41쪽)”라는 루소의 ‘여행의 즐거움’을 ‘산책의 즐거움’으로 재해석하는 부분은 견강부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견강부회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입니다만, ‘기억을 활용해서 걸어라’는 이야기에서는 저자가 창안한 ‘십이지’ 기억술을 소개합니다. 산책을 하면서 만난 것들을 그냥 스치듯 지나지 말고 기억하는 것인데 일종의 기억의 궁전을 짓는 기술을 띠를 나타내는 열두 종류의 동물과 연관을 지어 기억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걷기가 치매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대목도 추가로 확인해볼 점이 있어 보입니다. 최근에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런 방법들이 과연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것인지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독서 후의 산책’ 역시 책을 읽고 산책을 하면서 읽은 내용을 되새기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해볼 생각입니다. 산책도 자기계발의 일부라고 잘라 말하는 저자의 주장이 틀렸다고까지 할 수 없지만, 너무 나간다 싶은 대목도 없지 않은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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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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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은 독특한 구조입니다. 명탐정 덴카이치 다이고로가 등장하여 살인사건의 범인을 유추해가는 12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사실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대표적인 추리소설의 형식을 설명하는 구조입니다. 트릭의 제왕이라고 하는 밀실 살인, 의외의 범인, 폐쇄된 무대, 다잉 메시지, 시간표의 트릭, 제한시간의 법칙, 토막살인, 트릭의 정체, 동요 살인, 불공정의 비밀, 해서는 안될 말, 살인의 도구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12개의 단편으로 구성하였습니다.

특히 일본 추리소설 독자들의 성향을 분석하여 이에 부응하기 위하여 작가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이야기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단편집에 주연으로 등장하는 명탐정은 덴카이치 다이고로이고, 형사반장능 오가와라 반조 경감입니다. 강력사건을 다루는 추리소설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명탐정 덴카이치 다아고로가 범인으로 의심받는 등장인물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자, 여러분!’라고 이야기를 시작하여 ‘범인은 바로 당신!’이라고 지팡이로 가르킨다는 것입니다. 낡아 빠진 양복에 더부룩한 머리를 하고 있는 대표적 상징이라는 지팡이를 빼고는 누군가를 닮은 느낌을 줍니다. 그렇죠! 미국 드라마 <형사 콜롬보>의 주인공, 콜롬보형사를 닮았습니다.

이야기의 조연인 오가와라 빈조경감과 덴카이치 다이고로 탐정은 사건의 흐름 속에서 주연과 조연의 역할을 일정한 틀에 따라 연기하면서도, 갑자기 이야기의 흐름에서 튀어나와 탐정소설의 기법을 두고, 혹은 작가의 역량에 대하여 비판을 하거나, 사건의 형식이 무엇인지를 논하기도 합니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하여 독자에게 전하려는 독특한 서사구조이기도 합니다. 빈조경감은 ‘이건 정말이지 내 능력을 벗어난 사건이야’를 남발하고, 덴카이치 탐정은 이야기의 말미에 ‘수수께끼의 해답을 발표하는’ 똑 같은 형식이 반복되는 셈입니다. 두 사람의 말대로 작가의 역량이 한계에 도달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옮긴이는 굳이 작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싸구려 추리소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말입니다.

독자들은 이 단편집에서는 굳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머리를 쓸 일은 없습니다. 그저 ‘이 이야기는 어느 형식의 탐정소설이구나’라는 점을 유추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생각에 따르면 지금까지 발표된 탐정소설들의 대표적 서사구조를 12가지로 분류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탐정소설의 대표적 서사구조인 밀실살인을 제일 먼저 다루는데, 탐정의 입장에서는 밀실살인의 기전을 설명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오가와라 빈조경감이나, 주연인 덴카이치 탐정이 살인의 범인인 사건은 그런 유형의 사건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겠습니다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충격인 대반전이 아닐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이 사건의 서사구조를 완성하기 위하여 머리에 총구를 대는 장면으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주인공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인지는 결정하지 않고 남겨두는 미련(?)을 남겼습니다. 주인공이 죽으면 되살리면 될텐데 말입니다.

탐정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취향이 변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머리로만 추리하는 탐정의 시대는 끝나고 발품이 따르지 않으면 통용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추리소설의 핵심은 ‘지혜’에 있다고 합니다. 즉, ‘살인사건의 수수께끼를 푼다는 건 바로 인간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랜 세월의 인생 경험에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터득한 사람이야말로 탐정에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동원되는 다양한 과학적 수사기법을 생각해보면 탐정이 등장해서 머리로 유추하던 시절은 끝났다고 보아도 될 것 같기는 합니다. 사건과 관련된 엄청난 정보를 가진 경찰이 사건해결에 한발 더 가까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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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의 신
아가와 다이주 지음, 이영미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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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나 전철을 타고 가다가 갑자기 멈춰서면 우선은 놀라고, 무슨 일일까 궁금해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막차인 경우에는 집에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아가와 다이주의 소설 <막차의 신>은 마지막 전철이 갑자기 벌어진 인사사고로 인하여 정차하면서 벌어진 상황을 소재로 한 중편소설 7편을 모았습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의 지하철이나 전철역 대부분이 여닫히는 문으로 선로와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닫이문이 없을 때는 승강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에 밀려 선로로 떨어졌다가 불행을 당한 사람도 있고, 삶을 비관하여 열차가 들어오는 순간 선로에 몸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도 그런 일이 적지 않았던가 봅니다. 아주 오래된 일입니다만, 동경 출장길에 전철역에서 인사사고가 난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기 위하여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어 취객을 구했지만, 자신은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던 한국인 청년 이수현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막차의 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양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는 어쩌면 막차를 타고 다니면서 만났던 사람들을 소재로 하여 이야기를 구성한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인사사고로 정차된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성추행사건을 둘러싸고 반전에 반전이 거듭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납기를 맞추기 위하여 야근이 이어지면서 지쳐가는 팀원들을 쥐어짜기 위하여 24시간 휴가명령이 떨어지는데, 막차를 타고 퇴근하던 주인공이 우연히 들어간 권투 체육관에서 만난 관장의 권유로 시범경기를 하게 됩니다. 상대선수로부터 아무리 맞아도 3분만 버티면 공이 울리고 쉴 수 있다는 권투 경기의 규칙을 관장으로부터 듣게 되면서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경륜선수를 애인으로 둔 여성이 경기에 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애인과의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헤어지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별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고 마지막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애인의 집 근처에 있는 우체국에 불이 나는 바람에 편지가 전해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녀는 이별을 없었던 일로 할지 궁금합니다. 네 번째 이야기는 이발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었다는 전갈에 병원으로 달려가던 주인공이 전철이 멈추면서 조바심을 내게 되는데, 다행히 아버지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발소를 지키겠다는 말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는 가업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전철의 인사사고의 현장은 아니지만 부모의 불화와 어머니의 가출로 불안한 소년시절을 보낸 남자가 자신의 겪은 불행한 일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여장을 하고 단막희극작가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중심 줄거리입니다.

여섯 번째 이야기는 학교 폭력의 희생양이 된 여학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동급생들이나 선생님은 그녀가 왕따를 당해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녀는 별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사실 왕따 문제도 본인의 반응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든 이 여학생은 그림그리기에 빠져 왕따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데, 하루는 공원에서 수채화를 그리다가 필요한 빨간색이 없음을 알고 손목을 그었던 것인데, 출혈이 심해져 병원으로 이송되는 상황이 됩니다. 주위에서는 왕따로 받은 정신적 충격 때문에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가해자 남학생이 오히려 충격을 받아 학교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 이르는 것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인파에 밀려 선로에 떨어진 여성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뒤에 그 사람을 찾기 위하여 사고현장에 있는 매점에서 일을 시작한지 무려 25년 만에 생명의 은인을 찾을 수 있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은 한번쯤은 겪었거나 들어보았음 직합니다. 읽어가다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이 적지 않았던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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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을 폐쇄한 사람 - 프랑코 바잘리아와 정신보건 혁명
존 풋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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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정유정작가님의 <내 심장을 쏴라; https://blog.naver.com/neuro412/221980392195>를 읽으면서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인간적인 상황에 몸서리를 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요양기관에서 행해지고 있는 진료의 질수준을 평가하는 업무 가운데는 정신요양기관에서 하는 내용이 4항목이나 됩니다. 따라서 정신요양기관에 입원가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다양한 문제에 관심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업무를 하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을 읽고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을 요양기관에 수용한 것은 그들로 인해 정상인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격리하려는 목적이 컸다고 합니다. 정신병에 대한 이해가 많지 않을 때는 환자들을 폭력으로 진정시키려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18세기에 이르러 정신의학이 발전하면서 이들을 수용시설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병원을 폐쇄한 사람>이라는 제목에 눈길이 끌렸는지도 모릅니다. 책을 읽다보니 더 황당해지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18세기에 이미 수용시설에 가둔 정신병 환자를 해방시켰다고 하는데, 이탈리아에서는 20세기, 그것도 후반에 들어서야 폐쇄병동을 개방하는 조치를 마련하는데 적지 않게 힘이 들었다니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정신질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정상인 사람들의 삶을 보호하려다보니 민간 부문이 아닌 공공의료가 정신요양기관을 설립 운영하는 경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공공기관의 경우 아무래도 획일적이고 변화에 무딘 경향이 있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구타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신요양기관에서 구금과 압박 등 비인간적인 대우가 만연했던가 봅니다. 그런데 증상이 심한 정신병환자들을 폐쇄병동에 가두어두는 것이 치료효과가 별로 나을 것이 없다는 문제제기가 되면서 폐쇄병동을 개방하는 정책이 수행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폐쇄병동을 개방하는 정책을 실현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은 프랑코 바잘리아라고 하는 정신의학과 의사로,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의 국경 마을인 고리치아에 있는 정신질환자 보호소에 책임자로 부임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처음 고리치아의 보호소를 방문했을 때, “죽음의 냄새, 똥 냄새”를 맡았다고 합니다. 정말일까 싶겠습니다만, 제가 정신요양기관의 질평가를 수행하면서 방문했던 국내의 정신병원 한곳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의과대학에 다닐 때 주말마다 나가던 시설에서 그런 냄새에 익숙해있지 않았더라면 병실에서 튀어나갔을 것입니다.

정유정작가님의 <내 심장을 쏴라>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에 이런 정신요양기관이 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만, 얼마 전에 정신요양기관에서 환자가 죽음을 맞는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을 보면 환자의 인권이 침해를 받는 그런 상황이 근절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정신과 폐쇄병동을 개방하는 조치는 정치적 상황과 많이 맞물려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도한 집단 내에서도 불협화음이 나오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환자를 사회로 복귀시키는데 관심을 쏟다보니 환자가 퇴원해서 중대한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상황이 생기는 바람에 사회적 호응을 얻어내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불특정한 사람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런 사건이 생기면 꼭 정신과 병력을 언급하곤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정신과 병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는 심각한 수준의 개인정보로 간주하여 공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정신요양기관을 방문하는 것 자체를 기피하거나 숨기려하기 때문에 정신질환을 일찍 발견하고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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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7-17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아직도 중세나 근대에 사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처음처럼 2020-07-28 20: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래도 많은 진보가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