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
크리스틴 브라이든 지음, 김동선 옮김 / 인터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치매의 예방, 조기 진단 그리고 초기 치매환자의 생활방식 등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오래 전체 출간 소식은 들었지만 챙기는 것을 깜박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는 2005년에 소개되었지만, 원저는 1998년에 출간되었으니, 저자의 말대로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가 쓴 책으로는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뒤로는 웬디 미첼이 쓴 <내가 알던 그 사람>을 읽었고, 신경과 의사가 환자의 관점에서 쓴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등이 치매를 앓는 환자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웬디 미첼의 <내가 알던 그 사람>을 읽으면서 치매환자에 대한 저의 인식을 새롭게 한 바가 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치매에 관한 책에서 다룰 예정인 이야기의 핵심을 얻은 책읽기였습니다.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 역시 특히 치매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진단하는 과정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다만 진단 초기에 하던 일을 접고 퇴직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초기 치매환자의 삶을 설정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치매를 진단한 전문의가 퇴직을 권고한 것이 적절했나 싶습니다. 환자의 증상에 따라 적절할 때 퇴직을 고려해보라 권고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전문의의 권고에 따라 저자는 병이 더 심해지기 전에 퇴직하기로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정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을 자문하는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행여 실수라도 할까 걱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의 퇴직 결정에 대하여 노령퇴직연금회사에서는 직장에 복귀해 재활훈련을 받으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연금회사의 이런 결정은 역시 관련분야의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타당한 결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자는 꾀병을 핑계로 연금을 타내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했던 모양입니다. 연금회사 입장에서는 연금수급을 늦출수록 유리하다는 판단이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부서에서 일을 하게 되면 새로운 업무에 익숙해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것을 스트레스로 볼 것인가 아니면 지적활동을 강화함으로서 질병의 진행을 더디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열심히 일하시던 분들도 은퇴를 하고 나면 자극이 줄어들고 생활이 느슨해지기 마련입니다. 결국은 치매의 진행을 저지할 동력이 없어지는 셈입니다. 따라서 하던 일, 혹은 새로운 일을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지속하는 것이 치매증상의 악화를 막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치매진단을 받고도 상당기간 운전을 계속한 것으로 보입니다. 방향감각이 사라져 어디로 운전 중에 어느 쪽으로 가야되는지를 헷갈리는 상황이 반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운전 중에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해 우물쭈물하다보면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이 분 같은 경우는 일찍 운전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물론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는 대중교통이 얼마나 활성화되어 자가용 없이도 이동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대중교통의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없다면 누군가로부터 이동에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저자는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은 뒤에 바로 타크린이라고 하는 약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약제는 신경세포들이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분비하는 아세틸콜린이라고 하는 신경전달물질을 제거하는 아세틸콜린 에스테라제라고 하는 효소를 억제하는 물질입니다. 즉 아세틸콜린이 일찍 사라지지 않도록 해서 작동시간을 길게 해주는 약제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 약제가 알츠하이머 병의 치료제가 아니라 증상의 악화를 저지하는 역할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물론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3분의 1에서는 치매증상의 개선효과를 볼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3분의 1의 환자에서는 증상이 유지되고, 나머지 3분의 1에서는 증상의 악화가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다행이 저자의 경우는 치매증상이 개선되는 효과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긍정적 효과가 하느님의 기적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치매의 예방 혹은 치료에 종교의 역할을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교회를 통하여 정신적인 지지를 받아 긍정적인 심리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전적으로 신의 힘이라고 믿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녀의 구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의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연작’에 속하는 추리소설입니다. 경시청의 구사나기 형사가 사건 수사를 맡고, 데이도 대학 물리학부의 유가와 마나부 교수가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성녀의 구제>에서는 경시청의 수사관으로 우쓰미 가오루라는 신참 여형사가 등장합니다. 여성 특유의 감을 내세워 색다른 관점에서 사건을 들여다보는 역할을 맡았는데, 특히 <성녀의 구제>에서는 뭔가의 이유로 구사나기 형사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유가와 교수를 사건으로 끌어들이는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성녀의 구제>에서 보이는 색다른 면은 일종의 예고살인과 수사관이 용의자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진다는 상황을 엮었습니다. 퀼트 공예가 아야네와 IT회사의 사장인 요시다카는 결혼 1주년이 가까워오는 신혼부부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 간에는 1년 안에 임신을 해야 결혼을 유지한다는 요시다카가 제시한 결혼조건이 있었던가 봅니다. 그런데 결혼 1년이 다가오는데도 임신을 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요시다카는 아내에게 무언가를 통보한 다음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야기 가운데는 요시다카를 살해할 방법을 암시하고, ‘난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그런데 지금 당신이 한 말은 내 마음을 죽였어. 그러니까 당신도 죽어 줘야겠어(12쪽)’라고 살인을 예고합니다. 그리고는 장면이 바뀌어 회사 동료부부와의 작은 파티가 열리고, 다음날 아야네는 혹카이도에 있는 친정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아야네의 제자 와카야마 히로시를 불러들여 밀회를 즐긴 요시다카는 다음날 저녁 죽어있는 상태로 발견됩니다. 일단 밀실살인의 전형으로 범행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추리하는 것이 <성녀의 구제>를 읽는 독자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입니다. 일단 용의자는 아야네가 되겠지요.

아야네를 처음 본 순간 구사나기가 마음이 기운다는 설정은 쫌 그렇습니다. 수사관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해야 사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인데, 구사나기형사가 과연 사건을 제대로 풀어갈 수 있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우쓰미 가오루라는 신참 여형사를 등장시킨 것인지도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내놓은 주제, 허수해(虛數解)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쏭달쏭했습니다.  혼잣말인 듯 적어놓은 “구제와 단죄, 그 사이에 놓인 허수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설명이 더 헷갈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허수(虛數)란 곱해서 0보다 작은 숫자를 말합니다. 알콰리즈미에 의하면 모든 2차방정식에는 정답이 없을 수도, 하나일 수도, 2개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허수를 감안한다면 모든 2차방정식에는 두 개의 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자는 ‘구제와 단죄’라는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가를 찾아보라는 주문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살인을 저지른 범인을 구제해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현대의 법인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법의 테두리에서 죄과를 판단하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가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지요.

아야네가 예고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추론은 유가와 교수가 세우고,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 수사는 구사나기형사와 가오루 형사가 제 몫을 다해서 범행 방법을 구체화시키고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건수사가 진행되면서 이 사건을 둘러싼 인과관계가 드러나게 됩니다. 사실은 사건해결에 결정적인 동기가 되는 사실들은 사건 초반에 암시라도 해주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막히면 장면을 전환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상황을 던져놓으면 사건을 추리하면서 읽어가는 독자 입장에서는 뒷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남겨진 숙제 가운데는 자신이 살해한 남편의 아이를 가진 제자 히로시에 대한 아야네의 배려도 있습니다. 과거에 남편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임으로 해서 누군가 상처를 입었던 것을 고려한 것일까요? 시앗을 본 여자의 심리가 그렇게 대범할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답은 없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 - 호흡기 내과의가 만난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숨소리
이낙원 지음 / 들녘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진료의 현장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습니다. 때로는 감동이 때로는 쓸쓸함이, 그런가 하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중요한 가르침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대체적으로 묻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잘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과대학 교육에 인문학교육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는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호흡기내과를 전공하고 수도권의 종합병원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서민적인 의료현장의 분위기를 전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25꼭지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진료현장에서 흔히 만나면서도 피하고 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림이 큰 죽음과 관련된 7개의 이야기를 ‘죽음을 다시 생각하다’라는 제목으로 먼저 다루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소생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던 환자들이 극적으로 회생했던 9개의 이야기를 ‘우리 사이에 피어나는 생’이라는 제목으로 정리했고, 마지막으로 진료현장에서 아주 인상적이었던 환자들과의 이야기 8꼭지를 ‘환자와 나’라는 제목으로 정리해놓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치매가 중증의 단계에 접어든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 연명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연명치료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물론 뇌졸중으로 쓰러져 대화도 되지 않는 남편을 15년째 간병하는 아주머니의 이야기처럼 족들의 요청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저렇게 누워만 있어도 신랑이잖아요 죽으면 안돼요’라는 아주머니의 간절한 바람을 들으면 꼭 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회생한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의료진들은 식물인간 상태로 판단하고 여러 차례 마음을 정리하라는 권고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되시는 분이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고 하는데, 의식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환자분은 모든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의식이 돌아왔을 때, 아내 덕분에 살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였는데, 사람의 목숨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그런가하면 저자의 인간적인 면모가 읽히는 대목도 있습니다. 다양한 환자들과 씨름을 하다보면 갈등을 빚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짜증 바이러스’라는 제목의 글에 등장하는 78세 된 이 할아버지와의 짜증대결의 경우입니다. 지금은 사연을 잊었지만, 지방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막 시작했던 무렵에 만난 환자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누구가의 부탁이 있었던 환자였는데, 치료에 필요해 부탁한 것을 지키지 않아서 입씨름을 벌이곤 했던 것 같습니다. 입씨름이 때로는 고성이 오가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다음 회진에 가서는 화를 내어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를 몇 번이나 했던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결국은 중환자실로 옮겨갔던 것인데, 다행히 일반병실로 옮겨 퇴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바로 저자의 글쓰기 내공이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소연 작가의 『마음 사전』에 나오는 ‘고민스럽고 복잡한 국면에서, 유쾌한 사람은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할 줄 알며, 상쾌한 사람은 고민의 핵심을 알며, (중략) 통쾌한 사람은 고민을 역전시킬 줄 안다.(22쪽)’라는 대목을 끌어다가 상황에 아주 걸맞게 녹여냈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남의 글을 끌어다가 인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인용문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잘 펼쳐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간혹은 조금 현학적인 대목도 없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저자의 이런 글쓰기 내공은 분명 엄청난 책읽기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가 인용하는 책들의 대부은 제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것들이어서 더욱 그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틸유아마인 언틸유아마인 시리즈
사만다 헤이즈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두 개의 이야기 흐름을 가지고 있는 수사소설입니다. ‘나는 늘 아기를 가지고 싶었다.’라고 시작하는 프롤로그처럼 아기를 낳겠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여성-물론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인지는 안개 속에 싸여있지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아이를 꺼내는 사건을 뒤쫓는 형사들의 이야기입니다. 앞의 이야기는 학대받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클라우디아는 상처한 잠수함 승조원 제임스중령과 재혼하여 임신한 상태이며 전처소생의 쌍둥이를 돌봐줄 유모로 조 하퍼를 고용합니다. 클라우디아가 보기에는 조 하퍼는 수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 임산부의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내려다 사망하거나,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로레인 피셔 경위와 아담 피셔 경위가 이 사건들의 범인을 추적합니다. 직장 동료이자 부부인 두 사람 사이에는 개인사와 가족 사이의 갈등까지 겹치면서 이야기를 어지럽게 끌어갑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유모 조 하퍼가 간절하게 아기를 원하는 여자인 것처럼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임신진단 키트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간절하게 아기를 원하는 여동생을 만나는 정황으로 보아 조 하퍼를 범인으로 의심되는 이야기 전개를 보입니다. 다만 제임스 중령이 잠근 서재에 들어가 알 수 없는 서류를 복사하는 행동을 보여 미심쩍은 부분이 남습니다.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접근해갑니다. 클라우디아와 조 하퍼는 결국 로레인과 아담 피셔 경위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클라우디아의 친구이자 임신 말기에 들어섰던 핍에게 분만의 순간이 오면서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접근해가고, 범인의 모습이 드러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대반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대반전이라는 상황은 사실 작가가 풀어가는 이야기와는 너무 다른 상황을 연출하면서 뒤집는 것이라서 혼란스러운 바가 없지 않습니다. 즉 깔아놓은 밑밥과 반전의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느낌, 즉 어거지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밑밥을 더 정교하게 깔아야 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와는 별개로 이런 이야기가 가능한 영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사실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의 무분별한 듯한 약물남용과 임신, 혼탁한 남녀관계가 임신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을 부모가 기를 수 있는가를 판단하여 위탁가정에 보내는 업무를 하는 사회복지체계가 과연 적절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부모들에게 학대받는 아이들에 관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엄한 훈육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던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훈육과 학대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기를 가지겠다는 집착이 강한 사람이 어린아이 혹은 신생아를 납치하는 사건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임신 말기의 임산부의 배를 갈라 아기를 꺼내가는 사건이 과연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일종의 제왕절개술인데, 산모를 마취시키는 일도 어려울 뿐 아니라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꺼낸 아이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 하는 문제도 남아있어서 혼자서 범행을 저지른다는 착안이 놀랍기만 합니다. 첫 번째 사건에서 임산부와 아이가 모두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도, 처음 저지른 사건이라서 제왕절개의 절차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일종의 연습인 것처럼 했지만, 과연 산모와 신생아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간데 대한 죄의식을 덮을 정도로 아기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입양 절차가 복잡하고, 아이를 직접 낳은 것처럼 보여야 하는 무리한 설정으로 인한 사건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전개가 무리하다는 느낌이 큰 이야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형예술의 역사적 문법 카이로스총서 63
알로이스 리글 지음, 정유경 옮김 / 갈무리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형예술의 역사적 문법>이라는 제목이 주는 상당한 위압감에도 불구하고 책을 골라든 것은 일종의 도전이었습니다. (물론 도전의 성과는 미미한 것이었습니다만...) 제목을 보면서 건축예술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대한 비평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쓴 알로이스 리글(1858-1905)교수는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미술사를 강의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미술사는 미학의 세부분야로 독립했다고 합니다. 저자가 활동하던 19세기 말로부터 150년전에 출발점인데, 미학자들이 학문적 토대를 놓았다는 것입니다. 미술사학이 다룬 분야는 최초에는 건축을 중심으로 하여 조각과 회화를 양 날개로 삼았던 것을 중앙의 뒤편으로 공예라는 분야가 더해져 모두 4개의 영역을 다루게 되었다고 합니다.(288쪽) 미술사학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미학적 시각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었고, 미술사 전공자가 담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자가 활동하던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중요한 점은미술사 나름의 독자적인 연구 영역과 방법론의 구축이 요구되었습니다.

양식론을 내세운 뵐플린과 달리 알로이스 리글은 예술의지 개념을 제안하였으나 주류에서 논의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실증주의를 지향했음에도 사변적 특징을 보이고, 전체주의적 색채를 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는 것입니다. 리글은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서양미술사의 방법론적 체계를 구성하려는 목적으로 저술과 강의를 병행했습니다. <조형예술의 역사적 문법>은 그가 생전에 써나가던 초고와 강의록을 바탕으로 편집된 것입니다. 수고는 1897-1898년 사이에 써나가던 <조형예술의 역사적 문법>이라는 제목의 미완성 원고이며, 강의록은 1899년 여름학기에 강의한 내용입니다.

아마도 써나가던 원고를 토대로 강의를 준비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비슷한 체계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1부에서는 세계관을, 2부에서는 미술 작품의 기본요소를 다루었습니다. 수고편의 세계관은 3개의 시기로 구분하였는데, 제1기는 ‘신체의 아름다움을 통한 자연의 개선으로서의 미술’의 시기로 고대 이집트로부터 알렉산드로스 이전 시기의 그리스, 헬레니즘 미술과 콘스탄티누스 대제까지의 로마 미술이 여기 속한다고 했습니다. 제2기는 ‘정신의 아름다움을 통한 자연의 개선으로서의 미술’의 시기로, A. 신체적으로 자연을 개선하는 미술의 계속한 비잔틴 미술과 러시아, 이슬람 미술이 여기 속하며, B. 정신적 아름다움의 그릇으로서의 추한 자연이라는 서론으로 시작하는 르네상스 시기까지의 이탈리아 미술과 동 시대의 게르만 미술을 다루었습니다. 제3기는 ‘무상한 자연의 재창조로서의 미술’의 시기로, 미켈란젤로에서 시작하는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과 동 시대의 알프스 이북의 바로크 미술을 다루었습니다.

2부의 미술 작품의 기본요소를 다루면서 먼저 미술작품의 목적을 설명하과, 이어서 모티프에 따른 미술작품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그리고 입체와 평면이라는 관점에서 미술작품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다루었습니다. 3부에서는 누락된 결론부를 위한 구상을 추가하였습니다.

이 책의 두 번째 내용에 해당하는 1899년의 강의록은 역시 세계관과 기본요소로 나누었는데, 세계관은 제1기에서는 서기 3세기까지 고대의 의인관적 다신론을, 제2기에서는 그리스도교 일신론이 유럽을 주도하던 시기로 313-1520년까지의 시기입니다. 아마도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은 때부터 종교개혁이 일어나던 시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제3기는 자연과학적 세계관으로 전환되었다고 보았습니다. 2부 기본요소에서는 모티프와 목적, 그리고 입체와 평면 등이 미술작품의 기본요소가 된다고 보고, 시기에 따라서 이런 요소들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다루었습니다.

저자가 강의록에서 ‘이 강의는 미술사에 대한 입문용으로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든 예술 시기에 대한 일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상급자들에게만 유용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처럼 저 같은 초심자에게는 너무 어려운 책읽기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본다면 저자가 너무 주관에 의지하여 논의를 펼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2차원과 3차원을 인지함에 있어 시각은 2차원에 머물 수밖에 없고, 3차원으로 확대하려면 촉각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