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 - 호흡기 내과의가 만난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숨소리
이낙원 지음 / 들녘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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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진료의 현장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습니다. 때로는 감동이 때로는 쓸쓸함이, 그런가 하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중요한 가르침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대체적으로 묻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잘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과대학 교육에 인문학교육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는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호흡기내과를 전공하고 수도권의 종합병원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서민적인 의료현장의 분위기를 전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25꼭지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진료현장에서 흔히 만나면서도 피하고 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림이 큰 죽음과 관련된 7개의 이야기를 ‘죽음을 다시 생각하다’라는 제목으로 먼저 다루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소생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던 환자들이 극적으로 회생했던 9개의 이야기를 ‘우리 사이에 피어나는 생’이라는 제목으로 정리했고, 마지막으로 진료현장에서 아주 인상적이었던 환자들과의 이야기 8꼭지를 ‘환자와 나’라는 제목으로 정리해놓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치매가 중증의 단계에 접어든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 연명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연명치료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물론 뇌졸중으로 쓰러져 대화도 되지 않는 남편을 15년째 간병하는 아주머니의 이야기처럼 족들의 요청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저렇게 누워만 있어도 신랑이잖아요 죽으면 안돼요’라는 아주머니의 간절한 바람을 들으면 꼭 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회생한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의료진들은 식물인간 상태로 판단하고 여러 차례 마음을 정리하라는 권고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되시는 분이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고 하는데, 의식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환자분은 모든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의식이 돌아왔을 때, 아내 덕분에 살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였는데, 사람의 목숨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그런가하면 저자의 인간적인 면모가 읽히는 대목도 있습니다. 다양한 환자들과 씨름을 하다보면 갈등을 빚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짜증 바이러스’라는 제목의 글에 등장하는 78세 된 이 할아버지와의 짜증대결의 경우입니다. 지금은 사연을 잊었지만, 지방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막 시작했던 무렵에 만난 환자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누구가의 부탁이 있었던 환자였는데, 치료에 필요해 부탁한 것을 지키지 않아서 입씨름을 벌이곤 했던 것 같습니다. 입씨름이 때로는 고성이 오가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다음 회진에 가서는 화를 내어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를 몇 번이나 했던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결국은 중환자실로 옮겨갔던 것인데, 다행히 일반병실로 옮겨 퇴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바로 저자의 글쓰기 내공이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소연 작가의 『마음 사전』에 나오는 ‘고민스럽고 복잡한 국면에서, 유쾌한 사람은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할 줄 알며, 상쾌한 사람은 고민의 핵심을 알며, (중략) 통쾌한 사람은 고민을 역전시킬 줄 안다.(22쪽)’라는 대목을 끌어다가 상황에 아주 걸맞게 녹여냈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남의 글을 끌어다가 인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인용문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잘 펼쳐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간혹은 조금 현학적인 대목도 없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저자의 이런 글쓰기 내공은 분명 엄청난 책읽기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가 인용하는 책들의 대부은 제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것들이어서 더욱 그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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