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의 덫
후나세 슌스케 지음, 김경원 옮김 / 북뱅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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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시작된 우한폐렴이 여름 들어 방역체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다시 확산될 위기가 있었고, 가을 들어서 확진자의 증가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해마다 겨울철이면 유행하는 독감과 우한폐렴이 같이 유행하게 되면 방역이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이런 점을 우려하여 금년에는 독감예방접종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범위를 확대하였습니다.


문제는 예방접종을 시작하자마자 유통에 문제가 있었고, 흰색침전물이 생기는 등 백신의 안전성에 의구심이 일고 있는 상황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방접종을 받은 뒤에 사망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제까지 모두 83건의 사망이 신고되었습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1년 동안 독감예방주사를 맞고서 사망한 사례가 불과 25건에 불과한 것과 비교해보면 국민들의 불안감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에서는 2019/2020년에 독감예방주사를 맞고 1주일 이내에 사망한 65세 이상인 사람은 1,531명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금년의 상황이 예년과 비교해서 특별히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싱가폴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접종한 뒤에 사망사례가 발생한 예방주사의 접종을 중단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금년 초 독감환자의 발생이 예년에 비하여 6%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인데, 아마도 우한폐렴의 유행으로 인하여 개인위생을 강화한 효과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방주사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6년 전에 나온 <백신의 덫>이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자는 일본에서 소비자문제 및 환경문제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후나세 슌스케씨입니다. 이 분은 예방주사 자체를 생물학무기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급증하고 있는 세계인구를 지금의 6분의 1 수준인 10억 명으로 줄이기 위한 음모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주로 자궁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 바이러스의 감염을 차단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이 후유증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암예방효과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독감, 소아마비, 일본뇌염, 풍진 디프테리아, 설사를 일으키는 로타바이러스, 이하선염, 홍역 등 예방주사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 피해가 심각하므로 예방주사를 맞으면 안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자료들은 주로 예방주사의 폐해를 짚는 것들입니다. 그런 주장에 대한 반론을 같이 비교해보아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주장만을 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만 2장에서 다루고 있는 인플루엔자 백신에 관한 이야기는 참고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WHO를 비롯하여 보건의료선진국들은 1918년 유행한 스페인독감의 공포를 절대로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감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해야 할 지경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유행했고, 최저 2천만명 최대 1억명의 희생자를 냈던 스페인독감이었습니다. 코로나와는 달리 청소년들이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스페인 독감 이후에 예방주사를 만들어 독감을 예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는데, 서두르다보니 예방접종을 받고서 피해를 많이 보았습니다. 당시에 확인된 부작용이 요즈음 이야기되고 있는 길랭바레 증후군과 과민성 알러지 반응 등입니다. 그 이후로는 부작용의 발생하는 사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독감의 광범위하게 유행하여 피해를 보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질병을 예방하려는 목적으로 맞는 예방주사가 오히려 피해를 입힌다면 당사자로서는 아주 억울한 노릇입니다. 따라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금년에는 독감예방주사의 유통에서 문제가 있었으며, 예년에 비하여 부작용 신고 건이 많은 점을 고려하여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부작용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열어놓고 조사를 할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금년에는 우한폐렴의 유행으로 국민들께서 마스크의 사용이 일상화되었고, 개인위생도 강화하고 있는 만큼 독감의 유행이 크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봅니다.


일본에서 나오는 책들 가운데는 이미 검증된 사실에 대하여도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이 책 역시 비판적 시각으로 읽되 참고할 점은 새겨 읽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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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킷리스트 - 21세기 지식인들이 선택한 인생 책 12
홍지해 외 지음 / 한빛비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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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를 장려하는 방송이 많으면 좋겠지만, 명맥이라도 이어가고 있는 것이라도 다행인 것 같습니다. 종편방송 TvN에서도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라는 책을 소개하는 방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2019년 9월 24일부터 2020년 4월 27일까지 방영되었습니다. 이 방송은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관심을 끌고 있는 책들을 알기 쉽게 풀어주는 독서 예능 방송을 추구하였습니다.

특히 엄두도 못 낼 만큼 두꺼운 책들(이런 책들을 ‘벽돌 책’이라고 한답니다)을 쉽게 소개하여, 방송만 봐도 책을 읽은 느낌이 들거나, 그 책을 읽어보도록 권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로 시작한 방송목록을 보니 과연 ‘벽돌 책’이라 할 만한 책들입니다.

요즘에는 방송을 한 것으로 끝내지 않고 방송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책으로 묶어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의 종영이 아쉬웠던지 제작에 참여하시는 네 분의 작가님들이 방송의 결을 이어가보자고 의기투합하신 결과가 바로 <북킷리스트>인 듯합니다.

방송에서는 꾸준하게 읽히는 책을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저도 읽어본 책들이 적지 않았습니다만, <북킷리스트>에서 소개하는 12권의 책들 가운데 읽은 책은 4권에 불과하였습니다. 저도 누리집 신문에 독후감을 겸한 책 소개글을 꽤 오래 썼고, 그렇게 쓴 글을 묶어 <양기화의 BOOK소리>라는 책을 낸 적도 있습니다만, 책을 읽은 느낌을 적는 독후감과 책을 소개하는 글은 형식이 다를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책 소개글에서는 ‘책을 쓴 저자들의 생각이 이렇더라’는 투로 글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북킷리스트>는 그런 글과는 사뭇 다른 느낌, 즉 저자들의 생각이 담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저에 담긴 내용도 저자들의 생각을 거쳐서 정리된 느낌입니다. 중간에 삽입된 내부적 관점(Insight Point)은 원저에 담긴 내용을 요약해 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하여 삽입한 그림들은 원저에서 보지 못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북킷리스트>는 12권의 원저를 바탕으로 <북킷리스트> 저자들의 생각을 담아낸 것 같기도 합니다.

네 분의 작가들께서 각자 맡은 책들을 읽고 정리한 것으로 보이는데 각각의 책을 어느 분이 정리했는지는 명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형식이 통일되어 있는 것을 보면, 각자 맡은 책들을 정리한 원고를 네 분이 다시 읽으면서 의견을 모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북킷리스트>는 다중지성의 표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책을 읽은 느낌을 서로 나누는 모임을 하다보면, 미술과 조각 같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책 역시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모임을 통하여 미처 깨닫지 못했던 관점을 일깨울 수도 있습니다. <북킷리스트>에 담긴 12종류의 책들 가운데 이미 읽은 책들의 경우 제가 놓쳤던 부분을 챙겨보는 기회가 되었고, 미처 읽어보지 못한 책들 가운데는 꼭 읽어보고 싶은 책도 생겼습니다.

저도 오래 전에 KBS1TV에서 방영한 <TV, 책을 보다>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방송은 사회자가 던지는 질문에 출연자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출연자가 자유롭게 생각을 주고받기보다는 사전에 짜놓은 대본의 범위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방송을 통하여 알려지게 될 내용을 미리 점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그 방송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조조 모예스가 쓴 <미 비포 유>를 읽고 쓴 독후감이 작가의 눈에 띈 덕분이었습니다.

방송과 책은 형식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북킷리스트>는 모체가 된 TvN방송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와는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방송과 책에서 다룬 책들을 누가 추천했다는 내용이 있었더라면 좋았겠습니다. ‘21세기 지식인들이 선택한 인생 책’이라는 부제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입니다. 제목 <북킷리스트>가 ‘북’과 ‘버킷리스트’를 합성한 것처럼 평생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만들어가면서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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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이기주의자
율리엔 바크하우스 지음, 박은결 옮김 / 다산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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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자가 자유롭다고 하니 이기주의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나 싶었습니다. 위키백과를 보면, 이기주의자는 ‘자신의 이익만을 차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설명입니다. 이기주의(利己主義)는 ‘어떤 대상의 이익이 최대화되는 행동을 올바름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사상’이라고 정의됩니다. 그리고는 ‘사회적으로는 개인 또는 집단이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위해 공공선에 피해를 주는 행동을 이기주의적 행동이라 말하기도 한다.’고 부연하여 설명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정의(定意)와 부연설명 사이에 괴리가 있어 보입니다. 부연 설명에 붙인 공공선에 피해를 주는 행동은 이기주의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익이 최대화되는 행동’의 범주에는 그와 같은 행동으로 인하여 공공선에 피해를 주었을 때 되돌아오는 손해도 계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기주의란 개인 혹은 집단의 최대 이익에서 최대 피해를 제외한 순 이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해야 옳을 것입니다.

독일에서 가장 젊은 출판사 대표로, 젊은 부자로 알려진 율리엔 바크하우스가 <자유로운 이기주의자>에서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기주의, 이기주의자를 말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저자는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세상을 바꾼 사람들과 만나면서 ‘이기주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저자의 서문 다음의 여백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고, 내 문제를 해결한 자만이 타인과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라는 구절을 적었습니다. 읽으면서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바로, 修身齊家 治國平天下(수신제가 치국평천하)였습니다. ‘스스로를 갈고 닦은 다음에 나라를 다스리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만, 성공하기 위하여 먼저 스스로를 아껴야 한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책은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먼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이기주의의 정체를 파악하는데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한, 즉 삶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16가지 원칙을 제안합니다.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지켜야 할 원칙인데, ‘남들이 정해놓은 규칙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하라!’라는 광고 문안은 이를 확대 해석한 것 같습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규칙에 휘둘리지 말라’ 정도가 딱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가지의 원칙은 충분히 타당한 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성공을 이끄는 이기적 습관들을 소개합니다. 최근에 읽은 <공병호 습관은 배신하지 않는다>에서도 같은 내용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습관이 중요한 것은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상황들을 일정한 틀을 적용하여야 틀림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이렇게 혹은 저렇게 대처를 하다보면 중심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3개의 장은 이기적 삶을 영위하면 얻게 될 즐거움이라거나, 이기주의자로 살면서 희망하는 바를 이루는 막바지 순간에 특히 조심해야 할 것, 그리고 진정한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하여 버려야 할 것들을 정리해두었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보면, 저자는 이기적이려면, 첫째는 자신을 중심에 세우라고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항상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중심에 세우라는 것은 자기애(自己愛)에 빠지라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부족한 점을 파악하여 채워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중심에 서야 스스로를 살펴보고 두루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애에 빠져버리는 시선을 밖으로 향할 수 없습니다. 그저 안으로 파고들면서 스스로 안에 자아를 가두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기주의의 묘를 깨쳐야 나의 울타리를 넘어서 자유로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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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집
니콜 크라우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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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구성된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책 뒷장에 적힌 우리는 그저 기억의 조각을 지키기 위해 사는거야. 영원한 후회와 갈망에 빠진 채 그 기억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구절과 그 아래 적힌 하나의 책상에 얽혀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상실의 빈자리를 메우는 사람들, 그들의 외롭고, 고요하고, 비틀거리는 삶이라는 부가설명에 끌려 읽게 된 책입니다. 처음에는 8편의 중편 소설을 묶은 줄 알았습니다. 사실은 네 명의 화자가 각각 2번씩 술회하는 이야기를 두 개의 묶음으로 나누어놓았습니다. 네 명의 화자는 서로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따로 읽어도 무방할 듯한데, 문제는 책상을 고리로 하여 서로 연결되는 구조인 셈이라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편 이들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열심히 생각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사물이 고리가 되는 이야기라고 해서 최철수교수님의 <침대>를 떠올렸는데, <침대>의 경우는 시베리아 동토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자작나무를 베어 만든 침대가 우리나라까지 흘러들어와 온갖 풍상을 겪어내는 이야기를 침대의 입장에서 적은 소설이라고 하면, <위대한 집>은 서랍이 열여덟개 달린 책상을 쓰던 사람들이 책상을 매개로 하여 엮인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점이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책상은 스페인의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사용했던 것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책상을 매개로 연결되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입니다. 헝가리, 영국, 미국, 이스라엘로 흘러다닌 책상은 결국 어디로 사라졌는지 행방이 묘연해지고 말았습니다. 유대인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신산한 삶이 인생의 여정에 미치는 영향이 기록되고 있는데, 조금 더 집중해서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강제수용소에서 죽지 않고 탈출한 유대인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등이 읽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기억을 조각내 흩어버렸다는 것일까요?


남녀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도 충동적일 때도 있고, 이성적일 때도 있는데, 과연 그들이 사랑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 가는 대목도 있습니다특히 진정한 친절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화자는 특별한 아이를 둔 아버지입니다. 아마도 장성해서 판사가 된 아들과의 불편한 관계를 만든 아버지의 회한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생각과 말이 따로 노는 상황에 답답해하면서도 아들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던 것인데, 공감이 가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듯한, 그러니까 저와 닮은 점이 있는 아버지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 화자가 책상을 처음 만나던 순간에 대한 술회가 인상적입니다. “그가 제게 주는 게 그저 나무 덩어리와 덮개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 기회라도 되는 것 같았어요. 그럼 제가 처한 상황에 맞서는 건 저의 몫이 되겠죠. 말하기 부끄럽지만, 정말로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어요, 판사님. 주자 있는 일이긴 했지만, 그 눈물은 그동안 생각하지 않고 지내려 했던 더 오래된, 이젠 흐릿해져버린 후회들에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그 선물이, 낯선 이가 빌려준 가구가 그런 오래된 후회들을 흔들어놓은 거죠.(19)”


앞서 말씀드린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결국은 찾아냈습니다. 세 번째 화자의 두 번째 술회를 읽다보면 바빌로니아왕국의 느브갓네살의 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유다왕국을 점령했을 때, 유다왕국의 궁전과 성전을 불사르고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끌어가는 바빌론의 유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위대한 집까지 불살랐다.(396)’라고 적었습니다.

모든 유대인의 영혼은 그 집 위에 서 있는 것인데, 그 집이 너무 크기 때문에 유대인들 각각은 아주 작은 부분밖에 떠올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유대인의 기억이 하나로 모이면, 성스러운 파편들이 마지막 한 조각까지 모두 모여 다시 하나가 되면 그 집은 다시 세워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메시아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는 유대인의 무한한 기억을 완벽하게 하나로 모은 그런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기억에 대한 기억 속에서 우리 모두 함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 준비된 세상은 아니라고도 합니다. ‘우리 각자는, 그저 기억의 조각을 지키기 위해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너무 철학적이라서 이해가 쉽지 않은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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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 : 해외편 - 삶의 푯대를 찾아 나선 묘지 기행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
이희인 지음 / 바다출판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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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보면 유명한 분들의 묘를 볼 기회가 많습니다. 유럽의 경우는 교회에 유체를 모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프랑스 여행에서는, 툴루즈의 자코방 수도원에서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묘를, 지베르니에서는 클로드 모네의 묘를, 생폴드방스에서는 폴 세잔의 묘를 보았습니다. 오래전에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는 성모성당에 안치된 바스쿠 다 가마와 시인 루이스 카몽이스의 관을 보았습니다. 그 다음해에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리콜레타 묘지에 안장된 에바 페론의 묘를 보았습니다. 더블린의 성 패트릭교회에서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묘를 참배했다. 칼리닌그라드에서는 철학자 칸트의 묘를 참배했고, 베를린에 출장을 갔을 때는 병리학의 효시 루돌프 비르효의 묘를 참배했습니다. 그리고 보니 저도 위인의 묘를 찾아 참배한 적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는 여행 작가 이희인님이 젊은 날 많은 영감과 가르침을 준 사람들의 묘를 찾아 참배하고 그들의 업적을 되새겨보는 일종의 묘지인문학여행을 정리한 책입니다. 작가님이 묘지을 찾는다는 착안을 한 것은 책이 묘지이듯, 묘지는 책이다라는 명제를 세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망자들이 세상에 남긴 생각들의 결정체라고 할 책은 사실 그가 평생을 써내려간 일종의 유언장이자 한기의 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묘지를 방문하게 되면 망자가 세상에 남긴 바를 되새기게 되므로 묘지는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셈입니다.


묘지를 찾아가는 작가님의 여행은 그 범위가 생각보다 넓은 느낌입니다. 1부에는 영국/스위스/러시아 등지에 있는 셰익스피어, 카를 마르크스, 헤르만 헤세, 표도르 도스토엡스키, 니콜라이 고골/안톤 체홉/미하일 볼가코프, 레프 톨스토이의 무덤을 찾은 소감을 정리했습니다. 2부에서는 독일/오스트리아/체코 등지에 있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게오르크 헤겔/베르톨트 브레히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프리드리히 니체, 루트비히 판 베토벤/프란츠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요하네스 바람스, 프란츠 카프카, 안토닌 드보르자크/베드르지흐 스메타나 등의 무덤을, 3부에서는 프랑스에 흩어져 있는 짐 모리슨/에디트 피아프/마리아 칼라스, 자크 루이 다비드/오노레 드 발자크/마르셀 프루스트/오스카 와일드/기욤 아폴리네르/프레데리크 쇼팽/조르주 비제, 사데크 헤다야트/이을마즈 귀네이, 스탕달/프랑수와 트뤼포, 수전 손택/시몬 드 보부아르/마르그리트 뒤라스, 샤를 보들레르/사무엘 베케트/외젠 이오네스코/만 레이, 볼테르/장 자크 루소/빅토르 위고/알렉상드르 뒤마/에밀 졸라, 빈센트 반 고흐 등입니다.


무려 49명이나 되는 유명인사의 묘역을 찾아다닌 셈입니다. 파리처럼 대규모 묘원의 경우 여러 분을 만날 수 있었지만, 독특한 이력을 가진 분들은 아주 시골이나 심지어는 산골 구석에 묘를 쓴 경우도 많습니다. 사진까지 넉넉하게 챙기다보니 무려 448쪽에 이르는 두툼한 결과물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어갈수록 작가님의 독서범위가 돌아가신 분이 남긴 대표작은 물론 평전, 심지어는 죽음이나 묘지와 관련된 총설 등도 두로 섭렵하여 이 책에 담아낸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묘역에 이르는 여로는 물론 묘역 주변 풍경까지 세심하게 그려낸 점도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 49명이나 되는 분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희곡작가, 철학자, 소설가, 음악가, 평론가, 시인, 화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입니다. 물론 소설과 시 등 문학 분야의 유명인사가 많기는 합니다. 작가님의 말씀대로 젊은 날 영감을 받은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아무래도 대상이 산만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습니다. 차라리 분야별로 나누어 연작으로 처리했더라도 좋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방문한 묘지에 안장된 알로이스 알츠하이머박사의 묘는 언젠가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아쉬운 점은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문장이 눈에 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꼼꼼하게 목록을 일별하니 까맣게 잊었거나 그새 묘지에 묻힌 인물들, 책이나 영상 등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유명인들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258)”는 부분입니다. ‘일별하다1. 한 번 헤어지다, 2. 한 번 흘낏보다, 등의 의미입니다. 꼼꼼하게 목록을 일별하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읽다보면 이런 문장이 더러 눈에 띄어 읽는 흐름을 흐트러놓는 것 같습니다. ‘망자가 묘역에서 고단한 몸을 눕히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문장을 윤색하려는 의도가 지나쳤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

 

이희인 지음

448

20191111

바다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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