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1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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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몰아서 읽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백야행>1999년에 일본에서 발표되었고, 비밀(1999)에 이어 2000년에 우리나라에 두 번째로 번역소개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입니다. 등단 후 15년째 발표된 작품이니 만큼 다양한 분야에 대한 사회경험이 작품에 녹아들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73년 오오사카에서 일어난 전당포 주인 살해사건에서 이야기가 출발합니다. 범인이 오리무중인 가운데 범행과 연관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사고로 죽으면서 수사는 탄력을 잃고 미제로 남고 말았습니다. 강력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들은 미결사건을 평생의 화두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만, 이 사건을 담당했던 사사가키형사는 집요하게 사건을 뒤쫓습니다, 무려 19년간이나 말입니다. 초반에는 전당포 주인 키리하라 요스케의 주변인물, 아내와 종업원 그리고 아들 료지, 전당포에 드나들던 니시모토 후미요와 딸 니시모토 유키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유키호와 료지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그런데 등장인물 중심으로 이야기가 서술되다보니 경찰이 등장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고, 시덥지 않게 사건이 마무리되곤 합니다. 두 사람이 성장해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게 되는 19년 동안 두 사람이 개입한 것으로 생각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작가는 이들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에 이들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분명히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막연하게 두 사람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건은 유키호가 주도하고 료지가 행동대원으로 움직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당포주인, 니시모토 후미요의 애인으로 추정되는 남자, 전당포 종업원, 유키호의 양어머니, 2부에서 사건을 조사하던 탐정, 료지와 동업관계에 있던 여성 등, 무려 7명에 더하여 료지가 벌였던 사업과 관련하여 복상사를 한 중년여성이 더해집니다. 그리고 어린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행 혹은 성추행 사건이 3건이나 발생하는데, 성폭행사건은 모두 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년 여성들이 남자고등학생들과 성매매가 이루어진다거나 하는 뒤틀린 성풍속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중심에는 어렸을 적에 어머니에 의하여 조장되었을지도 모르는 성폭행의 피해자인 유키호의 비정상적인 성장과정이 끔찍한 사건들이 이어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마지막 장면세서 료지가 자살하고, 유키호는 유유히 사라진다는 설정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여러 건의 강력사건들이 모두 묻히고 마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어 깔끔하지 못한 느낌이 남았습니다.


<백야행>이라는 소설 제목의 의미도 분명치 않습니다. 1부의 끝 장면에서 기리하라 료지는 고등학교 동창인 도모히코와 그의 여자친구 히로에 등과 함께 컴퓨터 관련 가게를 운영하는데, 불법거래에 개입했다가 들통이 나서 숨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그 무렵 낮에 바깥을 걸어 다니고 싶다라는 료지에게 히로에씨는 그 정도로 불규칙한 생활을 하는거야?’라고 묻게 되고, 료지가 내 인생이 백야를 걷는거나 다름없으니까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백야는 사실 시간상으로는 밤이지만 해가 떠있거나 지평선 아래 있어서 마치 낮처럼 밝은 상황인 것입니다. 따라서 낮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데, 굳이 백야를 걷는 것 같다는 표현의 의미가 분명히 와닿지 않습니다. 이 점에 관하여 작가가 별도로 설명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개되는 이야기를 보면 유키호가 망둥이라면 료지는 유키호의 그늘에 숨어사는 딱총새우처럼 공생관계였다는 것입니다. 음지를 지향한다면 백야행을 할 상황이 아니라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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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
제임스 볼 지음, 김선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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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읽으면서 기사가 아닌 행간을 읽어야 한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기억에서도 가물거리는 옛날 일입니다. 그때 기자들은 전해야 하는 사실을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뜻이 전해지도록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적어도 언론에서 확인한 사실을 근거로 하여 기사를 작성하던 시절입니다.


그러던 시절이 있는가 하면 요즈음에는 전해지는 소식이 진짜인지부터 의심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댓글나눔터와 같은 사회관계망에 올라오는 글은 물론 심지어는 기성 언론 매체에서 전하는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저처럼 일단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세상이 온통 우리 편 아니면 적 편으로 나뉘고 있다고 합니다. 옛날 같으면 후진국에서나 벌어졌던 일이 이제는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그러니 우리 편 말은 모두 옳고, 적 편의 말은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적이 이야기하는 사실도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이는 뻔뻔함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상한 세상입니다. 가짜 뉴스라고 하는 편은 그나마 나은 모양입니다. 이제는 개소리라고 합니다. 그런 개소리가 세상을 뒤덮고, 더 센 개소리를 하는 쪽이 이기는 그런 세상이 되었습니다.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는 바로 누가 봐도 틀린, 개소리를 뻔뻔하게 하는 편이 권력을 쥐는 그런 세상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영국의 언론인 제임스 볼입니다. 저자가 개소리라고 정의한 의도적인 가짜뉴스를 누가 생산하고, 개소리가 부상하고 있는 미국의 정치판, 그리고 유럽연합의 탈퇴와 관련한 영국내의 상황을 예로 들어 진실은 묻히고 개소리가 세를 얻어가는 사연을 파헤칩니다. 그리고 정작 우매한 민초들이 개소리에 넘어가는 이유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소리를 가려내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사실 개소리가 힘을 얻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누리망 들머리에서 다양한 매체의 기사를 모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부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던 것이 댓글나눔터(twitter), 얼굴사진첩(facebook), 동영상 공유처(you tube)와 같은 사회관계망을 통하여 나누고 싶은 사실을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사태가 악화된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기성 언론까지도 사실 여부를 깊이 파보지 않고 사회관계망에 올라온 이야기를 확산시키기까지 하는 것은 황색언론에 물들어가는 현상으로 보여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도록 누구 하나 책임지는 데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개소리로 인하여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각자 개소리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는 버릇을 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개소리를 퍼트리는 쪽에 분명하게 불이익을 주어야 하겠습니다. 세력을 모아서 개소리를 확산시키는 세력을 무너뜨려야 하겠습니다.


저자는 개소리를 묻어버리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정치인, 언론, 독자와 유권자 등 세 종류의 집단으로 나누어 방법을 제시합니다만, 일단 독자와 유권자가 할 일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1. 나의 필터버블을 터트리자, 2. 시스템2를 가동시키자, 3. 통계를 어느 정도 알아두자, 내가 믿는 담론을 밎지 않는 담론만큼 의심해보자, 4. 음모론에 굴복하지 말자 등입니다. 쉽게 말하면 진영논리에 휩쓸리지 말자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 편인 줄 알았더니 우리를 속이려는 자들의 조종에 놀아나다가 큰 변을 당하는 결과를 낳은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편에 불리한 주장도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나름대로 통계해석에 대한 기본지식이 있어야 하겠고, 부화뇌동하지 않고 신중하게 검토하여 판단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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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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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독서회에서 읽기로 한 책입니다. 우한폐렴 상황이 악화되면서 대면회의를 자제하라는 지침 때문에 모임이 취소되었습니다. 다음 달에 읽기로 했는데, 한번 모임에서 2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것 같기는 합니다. 이 책을 읽어보기로 제안하신 분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아쉽습니다만, 저의 느낌을 적어보기로 합니다.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제목을 받고는 돌아가신 분들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에 관한 글로 생각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별한 분들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이 남은 사람들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을 대행하는 분도 계시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품정리하는 일도 특수청소업체와 정리업체로 나뉜다고 합니다. 정리업체에서 하는 일은 앞서 말씀드린 돌아가신 분이 남긴 물건을 살펴서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을 골라서 유가족의 뜻에 따라 나누는 작업을 대행해준다고 합니다.


오래 전에 공부하러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집 근처에 굿 윌이라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주로 돌아가신 분들이 남긴 유품을 모아 파는 가게였습니다. 값이 아주 저렴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생각지 못한 명품을 만날 수도 있다고 해서 자주 찾는 분도 계셨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유품이라는 이유로 께름칙하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물건을 팔아서 생긴 이윤은 불우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된다고 했습니다.


<죽은 자의 집 청소>는 정리업체가 아니라 특수 업체에서 하는 일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특수 업체란 고독사, 사건현장의 악취, 흔적제거를 주 업무로 하는 업체를 말합니다. 생각해보니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유품정리와는 또 다른 맥락에서 유족들이 하기에는 힘든 일일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는 대개 경찰이 현장조사를 하고 돌아가신 분을 일단 장례식장으로 옮겨 부검을 하거나 검안을 하여 장례를 치르게 됩니다. 돌아가신 분의 사인을 밝히는 법의관 일을 4년 정도 한 적이 있습니다. 자연사가 아니면 부검을 하여 사건의 순간을 구성해서 범인을 찾는데 필요한 사항을 챙기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정상적인 죽음의 상황에서 법의관과 특수 업체가 일을 나누는 셈입니다.


법의관으로서 만나는 주검은 다양합니다.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주검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일단 집도가 시작되면 사인을 밝히는 일에 집중을 하게 되므로 견디기 어려운 요소들은 금세 잊게 됩니다. 이 책을 통하여 특수 업체에서 하는 일과 그 일을 하시는 분들 역시 같은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수 업체에서는 사건의 현장 뿐 아니라 동물의 주검을 치우는 일도 하신다고 합니다. 죽음의 시점에서 시간이 많이 경과한 주검이나 사건의 현장은 생각보다 정리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 현장을 정리해서 누군가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정말 필요하고도 소중한 일입니다.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는 분들은 나름의 사명감이나 철학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쓰신 분이 서문에 요약해 놓은 과정에서 그런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특수 업체의 일을 해오시면서 만난 현장의 모습 혹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겪은 특별한 사연을 정리해놓았습니다. 그 가운데는 자살을 예고하는 사람과의 사연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런 분의 생명을 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흔히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생활하다가 맞는 죽음을 고독사라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최근에는 고립사라는 용어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개인에서 개인을 둘러싼 사회로 확대되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죽은 이가 고독하게 생활하다 죽음을 맞았다고 보는 고독사라는 용어는 죽은 이의 삶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고립사는 사회로부터 격리된 사람의 죽음이라는 의미에 무게를 둔 용어라고 합니다.


죽음이라는 특별한 상황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앞서 말씀드린 법의관 일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서는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죽음은 피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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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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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을 읽을 기회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닙니다. 윤성희 작가님의 <벼개를 베다>는 서울 사무실을 같이 쓰는 어느 위원님이 남겨놓은 것 같습니다. 일을 하다가 지쳤을 때 하나씩 읽기가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윤성희 작가님은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고 합니다. <벼개를 베다>가 여섯 번째 작품집으로 표제작 벼개를 베다를 비롯하여 10편의 단편을 담았습니다.


처음 두어 작품을 읽는 동안은 화자가 여성이었는지라 단편이라는 느낌보다는 장편에서 장면이 전환된 혹은 새로운 주제를 변주하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짼가의 이야기의 화자의 대화에서 누나라는 새로운 가족관계가 등장하면서 새삼 지나간 이야기들을 되돌려봐야 했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읽는 맛이 달라졌습니다. 장편소설의 형식에서 볼 수 있는 장단고저가 느껴지지 않고, 밋밋하게 이어지다가 시나브로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문학평론가 백지은님이 단편집의 말미에 붙인 해설 최대 소설의 기도에도 적었습니다만,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상처와 회복, 관조와 공감이 발견되는 세간의 일상을 다채롭게 구성한 이야기들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평범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는 개성이 강하고 독특한 점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주위와 충돌하지 않고도 잘 어울려 지내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모든 이야기가 를 중심으로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삼촌, 외삼촌, 고모, 이모, 형제자매, 사촌, 종조카를 너무 친구에 친지까지, 요즘 보기 드문 가족과 친지들 사이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작가님께서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인가 보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들이 너무 다양해서 그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어디서 모아들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이러한 인간관계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챙겨주는 관계이지, 서로 속이고 갈등을 빚는 이야기는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혼한 부인이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전남편에게 집을 지켜달라고 부탁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정말 이런 삶도 가능하다 싶은 그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제가 관계를 맺고 있는 분들을 돌아보았습니다. 멀지 않은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소식을 주고받은 것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다음에는 더 멀어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척이나 친지들과의 연결망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요즘 정리하고 있는 치매 예방법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사회적 연결망을 강화하라는 주문을 하면서도 저는 그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직도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까닭에 당면한 일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관계의 부하를 감당하는 것이 부담스러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었을 때는 내가 세상에 떨어진 이유가 분명 있을 터이니 세상이 뭔가 기억할만한 일을 해보겠다는 의욕이 불사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갑자의 세월을 살아온 요즈음에는 나름 평범하게 살아낸 것만도 대견하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주었을 터이나 큰 틀에서 본다면 세상에 해악을 끼친 일은 하지 않았던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 아니었을까 하면서 자신을 위로하곤 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삶이 의욕만으로는 안되더라는 한계를 절감한 탓인가 봅니다.


기억할 수 있는 한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아니 부모님을 비롯한 누군가에게 들었을 법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제가 살아온 날들을 정리해보겠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당장 하고 있는 글쓰기가 끝나는 대로라는 변명을 깔고 있습니다만, 언젠가는 해내야겠다는 결기를 다져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정리한 것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어딘가에 꽁꽁 감추어 둘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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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가의 살인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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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가의 살인>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창기 작품입니다. 초기 작품들이 고교 혹은 대학을 중심으로 한 사건을 다루었던 것은 아무래도 작가가 이십대의 젊은 나이라서 들여다보는 세상이 넓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생가의 살인>졸업 후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허송세월을 하는 청년의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라고 평한 이도 있습니다만, 허송세월이라고 단칼에 정리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삶을 모색하는 시기라고 이야기해주는 편이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건이 끝난 뒤에 세상구경을 하러 여행을 떠나면서, 돌아오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추리소설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자아를 찾아가는 청년의 성장소설로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작가는 창작생활 초기에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구조를 따라갔던 것 같습니다. <학생가의 살인>에서도 연쇄살인이 일어난다거나, 밀실 살인, 이야기의 후반에 가서야 범인의 윤곽이나 동기가 선명해지는 것은 극적인 효과를 고려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방과후>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만, <학생가의 살인>에서도 별개의 사건을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사건에 연결시키면 별개의 사건이라는 사실이 묻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남녀관계입니다. 물론 문화적 배경이 우리나라와 다른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중절을 하고 온 애인에게 이유를 묻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담담하게 수술을 한 이유를 묻는 연하의 남자 애인에게 네 아이가 아니었다면?’하고 답합니다. 모르그(Morgue, 시체 안치소)라는 섬뜩한 이름의 카페를 친구와 함께 운영하는 마담이라서 일까요? 인공중절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끝에 가서 나오는데, 사건과 연관되어 있기도 합니다.


사건의 무대가 되는 장소는 한때 학생들이 주로 오가던 번화한 대학로였던 곳입니다. 지금은 다른 쪽에 지하철 역시 생기면서 학생들의 발길이 끊어져 한적하다 못해 괴괴한 동네이기도 합니다.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지만 찻집이나 카페는 동네 사람들이 사랑방처럼 모이는 곳이라서 폐업을 차일피일 미루는 형편으로 보입니다.


주인공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동네 주민들 아닌 등장인물들은 신상이 분명치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사건 배경이나 동기도 오리무중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르바이트 전임자인 친구가 자택에서 살해된 것을 남자주인공이 발견합니다. 최초의 사건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애인이자 모르그의 마담 가운데 한 사람이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서 살해됩니다. 남자 주인공은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한발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범인과 마주할 기회가 없어서 사건이 미궁에 빠지게 됩니다.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범인을 목격한 사람이 없으니 커다란 밀실이라고 보아도 되는 셈입니다.


살해된 모르그의 마담은 신비에 싸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열차 건널목에서 투신하려는 것을 남자주인공이 구한 것이 인연이 되어 연인관계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관한 것은 별로 이야기하지 않은 듯합니다.


사건의 수사는 당연히 형사들이 맡아서 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애인이 죽은 이유를 뒤쫓는 남자주인공과 죽은 여인의 여동생입니다. 사건을 추론하고 죽은 여인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 사건의 맥락을 연결하는 일입니다. 그러던 가운데 세 번째 살인이 벌어집니다. 세 건의 살인사건은 어떻게 연결된 것일까요? 이야기의 분량도 만만치 않고, 이야기의 전개나 마무리가 튀지 않게 연결되어 시작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읽어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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