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가의 살인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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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가의 살인>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창기 작품입니다. 초기 작품들이 고교 혹은 대학을 중심으로 한 사건을 다루었던 것은 아무래도 작가가 이십대의 젊은 나이라서 들여다보는 세상이 넓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생가의 살인>졸업 후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허송세월을 하는 청년의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라고 평한 이도 있습니다만, 허송세월이라고 단칼에 정리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삶을 모색하는 시기라고 이야기해주는 편이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건이 끝난 뒤에 세상구경을 하러 여행을 떠나면서, 돌아오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추리소설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자아를 찾아가는 청년의 성장소설로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작가는 창작생활 초기에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구조를 따라갔던 것 같습니다. <학생가의 살인>에서도 연쇄살인이 일어난다거나, 밀실 살인, 이야기의 후반에 가서야 범인의 윤곽이나 동기가 선명해지는 것은 극적인 효과를 고려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방과후>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만, <학생가의 살인>에서도 별개의 사건을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사건에 연결시키면 별개의 사건이라는 사실이 묻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남녀관계입니다. 물론 문화적 배경이 우리나라와 다른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중절을 하고 온 애인에게 이유를 묻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담담하게 수술을 한 이유를 묻는 연하의 남자 애인에게 네 아이가 아니었다면?’하고 답합니다. 모르그(Morgue, 시체 안치소)라는 섬뜩한 이름의 카페를 친구와 함께 운영하는 마담이라서 일까요? 인공중절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끝에 가서 나오는데, 사건과 연관되어 있기도 합니다.


사건의 무대가 되는 장소는 한때 학생들이 주로 오가던 번화한 대학로였던 곳입니다. 지금은 다른 쪽에 지하철 역시 생기면서 학생들의 발길이 끊어져 한적하다 못해 괴괴한 동네이기도 합니다.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지만 찻집이나 카페는 동네 사람들이 사랑방처럼 모이는 곳이라서 폐업을 차일피일 미루는 형편으로 보입니다.


주인공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동네 주민들 아닌 등장인물들은 신상이 분명치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사건 배경이나 동기도 오리무중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르바이트 전임자인 친구가 자택에서 살해된 것을 남자주인공이 발견합니다. 최초의 사건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애인이자 모르그의 마담 가운데 한 사람이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서 살해됩니다. 남자 주인공은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한발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범인과 마주할 기회가 없어서 사건이 미궁에 빠지게 됩니다.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범인을 목격한 사람이 없으니 커다란 밀실이라고 보아도 되는 셈입니다.


살해된 모르그의 마담은 신비에 싸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열차 건널목에서 투신하려는 것을 남자주인공이 구한 것이 인연이 되어 연인관계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관한 것은 별로 이야기하지 않은 듯합니다.


사건의 수사는 당연히 형사들이 맡아서 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애인이 죽은 이유를 뒤쫓는 남자주인공과 죽은 여인의 여동생입니다. 사건을 추론하고 죽은 여인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 사건의 맥락을 연결하는 일입니다. 그러던 가운데 세 번째 살인이 벌어집니다. 세 건의 살인사건은 어떻게 연결된 것일까요? 이야기의 분량도 만만치 않고, 이야기의 전개나 마무리가 튀지 않게 연결되어 시작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읽어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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