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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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을 읽을 기회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닙니다. 윤성희 작가님의 <벼개를 베다>는 서울 사무실을 같이 쓰는 어느 위원님이 남겨놓은 것 같습니다. 일을 하다가 지쳤을 때 하나씩 읽기가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윤성희 작가님은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고 합니다. <벼개를 베다>가 여섯 번째 작품집으로 표제작 벼개를 베다를 비롯하여 10편의 단편을 담았습니다.


처음 두어 작품을 읽는 동안은 화자가 여성이었는지라 단편이라는 느낌보다는 장편에서 장면이 전환된 혹은 새로운 주제를 변주하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짼가의 이야기의 화자의 대화에서 누나라는 새로운 가족관계가 등장하면서 새삼 지나간 이야기들을 되돌려봐야 했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읽는 맛이 달라졌습니다. 장편소설의 형식에서 볼 수 있는 장단고저가 느껴지지 않고, 밋밋하게 이어지다가 시나브로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문학평론가 백지은님이 단편집의 말미에 붙인 해설 최대 소설의 기도에도 적었습니다만,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상처와 회복, 관조와 공감이 발견되는 세간의 일상을 다채롭게 구성한 이야기들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평범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는 개성이 강하고 독특한 점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주위와 충돌하지 않고도 잘 어울려 지내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모든 이야기가 를 중심으로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삼촌, 외삼촌, 고모, 이모, 형제자매, 사촌, 종조카를 너무 친구에 친지까지, 요즘 보기 드문 가족과 친지들 사이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작가님께서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인가 보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들이 너무 다양해서 그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어디서 모아들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이러한 인간관계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챙겨주는 관계이지, 서로 속이고 갈등을 빚는 이야기는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혼한 부인이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전남편에게 집을 지켜달라고 부탁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정말 이런 삶도 가능하다 싶은 그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제가 관계를 맺고 있는 분들을 돌아보았습니다. 멀지 않은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소식을 주고받은 것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다음에는 더 멀어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척이나 친지들과의 연결망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요즘 정리하고 있는 치매 예방법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사회적 연결망을 강화하라는 주문을 하면서도 저는 그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직도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까닭에 당면한 일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관계의 부하를 감당하는 것이 부담스러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었을 때는 내가 세상에 떨어진 이유가 분명 있을 터이니 세상이 뭔가 기억할만한 일을 해보겠다는 의욕이 불사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갑자의 세월을 살아온 요즈음에는 나름 평범하게 살아낸 것만도 대견하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주었을 터이나 큰 틀에서 본다면 세상에 해악을 끼친 일은 하지 않았던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 아니었을까 하면서 자신을 위로하곤 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삶이 의욕만으로는 안되더라는 한계를 절감한 탓인가 봅니다.


기억할 수 있는 한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아니 부모님을 비롯한 누군가에게 들었을 법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제가 살아온 날들을 정리해보겠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당장 하고 있는 글쓰기가 끝나는 대로라는 변명을 깔고 있습니다만, 언젠가는 해내야겠다는 결기를 다져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정리한 것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어딘가에 꽁꽁 감추어 둘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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