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여행자 몽도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진형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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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유행으로 인하여 해외는 물론 국내여행도 조심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해외여행에 관한 책은 점차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대신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관심이 남아있는 듯합니다. <어린 여행자 몽도> 역시 그런 이유로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의 소설집입니다. 표제작이기도 한 어린 여행자 몽도를 비롯하여, ‘륄라비’, ‘신이 사는 산’, ‘물레’, ‘바다를 본 적이 없는 소년’, ‘아자랑’, ‘하늘을 만나는 소녀’, ‘목동들까지 7편의 소설을 담았습니다.


작품들을 읽어가면서 조금씩 당황스러워졌습니다.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인지 상상을 넘어 환상의 세계를 그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신 진형준교수님께서 한국상상학회 회장을 역임하셨다는 소개글을 읽고서야 이 책이 우리말로 옮겨진 이유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표제작 어린 여행자 몽도를 읽어가면서 기시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10살 남짓하다는 주인공 몽도는 언데 이 도시에 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고 했고, 사람들과 금세 친해졌다는 것, 그를 뒤쫓는 회색인간 들이 있다는 것 등은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의 주인공 모모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야기의 줄거리는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바닷가에 있는 듯한 이 도시가 어디인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에리트레아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아프리카 홍해에 있다는 도시 이름아로 설명하지만 에리트레아는 도시 이름이 아니라, 이집트로부터 분리독립한 나라 이름입니다.


그런가 하면 시아파캉이라고 하는 회색옷을 입고다니는 신사는 <모모>에 등장하는 회색신사와는 하는 일이 다른 것 같습니다. 하릴없이 도시를 떠도는 사람이나 동물을 잡아가는 모양입니다. 그 회색신사가 결국은 몽도를 데려가고 말았습니다. 몽도의 친구이기도 한 베트남여인 티친이 찾아나섰지만, 몽도를 되돌려 받지는 못했습니다. 우리의 모모가 사람들로부터 시간을 빼앗아가는 회색인간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어 사람들을 지켜주는 행복할 결말과는 거리가 먼 결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결말을 보면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기분은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점점 증폭되어 가더니, 마지막 작품을 읽고서는 어리둥절해지고 말았습니다. 책 말미에 옮긴이가 정리해놓은 인류하는 이름으로 꿈꾸어 온 원시성과 신화이 세계라는 제목의 작품해설을 읽어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작가인 르 클레망은 20세기 중반 프랑스 문학계를 휩쓸었다는 누보로망(신소설)의 흐름에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누보로망운동은 거대한 인식론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문학의 새로운 개념이라고 했는데, 이러한 설명 또한 쉽게 이해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가는 누보로망이 흐름과도 다소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물의 평온해 보이는 외관을 파고들어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아니 이 세상 자체를 형성하고 있는 물질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주인공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어린이들이 아니라 다소 몽상적인 기질이 있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서구 사람들이 환상을 가졌던 동양적 분위기와도 차이가 있는 동양적 원시성을 그렸다고 합니다만, 동양적 원시성의 정체가 무엇인지 쉽게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옮긴이의 설명에 따르면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둘러싼 세계는 자연친화적인 세계라는 것인데, 다시 설명하면 인간이 자연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존재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들의 결말을 보면 주인공들을 둘러싼 사람들 가운데 주인공을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분명치 않아 보입니다. 참 어려운 이야기를 읽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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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배신 - 좌파 기득권 수호에 매몰된 대한민국 경제 사회 정책의 비밀
윤희숙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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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집권 3년도 중반을 훌쩍 넘겼으니 새 정부라고 할 수도 없는 정권입니다. 지금까지 살아보지 못한 세상을 만들겠다던 출범 당시 약속은 기대와는 달리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세상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택분야가 대표적인데요. 집값, 전세, 월세 문제는 무려 24개의 정책을 쏟아내고도 총체적 난국상황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책 실패가 아니라 시장 실패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왜 생겼고, 왜 해결되지 않는 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을 만났습니다.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국회 연설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국회의원 윤희숙님이 쓴 책입니다. 저자는 정부가 내놓은 최근의 정책들을 보면 청년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청년들이 느끼는 좌절과 분노를 유도해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 아닌가 의심합니다. 그래서 정보와 지식의 접근성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청년세대가 이런 구조의 본질을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이 책의 목표(7)”라고 했습니다.


윤희숙 의원님은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이 얼마나 기득권 수호에 매몰되어있는가를 설명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득권은 보수주의자들의 기득권이 아니라 새로 권력을 쥔 진보주의자들의 기득권을 말합니다. 이 책은 1부에서 최저임금, 52시간 근로, 비정규직, 국민연금, 정년연장, 신산업 등, 대한민국을 병들게 만들고 있는 6가지 정책의 내막을 분명하고도 쉽게 설명합니다. 이어서 2부에서는 재정, 복지, 소득분배에 관한 정책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짚었습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기득권이란 정확하게 말하면 86세대입니다. 80번대 학번에 60년대에 출생한 세대로 90년대 무렵에는 386세대라고 하던 것을 세월이 흐르면서 486, 586이 되다보니 그냥 86세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군사정권에 저항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75세대의 뒤를 이어 보수 기득권의 타도를 내세웠었는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주류가 되어 기득권 지키기에만 몰입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들의 기득권 지키기는 이전 세대의 기득권 지키기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는 것 같습니다. 이전 세대는 6.25동란으로 초토화된 이 나라를 먹고 살만한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허리띠를 졸라매고 땀 흘린 세대입니다. 그렇게 일구어낸 과실을 제대로 향유하는 세대가 바로 86세대인 것입니다. 새로운 기득권 세력으로 등장한 86세대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미래의 세대에게 넘겨주어야 할 몫까지 당겨 써버리고 있습니다.


결국 미래 세대, 그러니까 지금의 2030세대는 86세대가 남긴 빚을 떠안아야 할 운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미래 세대는 자신들에게 닥쳐올 운명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알맹이는 새로운 기득권 세력이 챙기고 미래 세대는 떨구어주는 콩고물에 감지덕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기득권을 쥔 세력들은 무늬만 진보임이 드러났습니다. 진보의 순수한 가치를 지켜온 분들마저도 그들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 상황입니다. 그들에게 휘둘려온 청년들이 사태를 직시하고 자신들의 몫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답이 <정책의 배신>에 담겨있습니다.


한국산업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하시던 만큼 경제 사회분야의 전문가이시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아주 쉽게 풀어냈습니다. 전문적인 시각에서 글을 써야 있어 보인다는 전문가적 착각을 범하는 오류를 잘도 내던지신 것으로 보입니다. 듣기와 느끼기에 더 민감한 젊은 세대들을 위하여 이 책에 담으신 생각들을 책 이외의 방식을 통하여 우리들의 미래 세대에게 전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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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의사 삭스
마르탱 뱅클레르 지음,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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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 때문인 듯,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 무려 638쪽이나 되는 분량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걱정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소설이면서도 내가 너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는데다가, 나와 너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책읽기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줄 간격도 좁고, 가끔 활자체도 바뀌어서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 것도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참 어울리는 이야기입니다. 플레이라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개업한 젊은 의사 브뤼노 삭스가 마을 사람들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아니 의사 삭스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의 건강보험체계는 우리나라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진료를 받은 환자는 의사에게 진료비를 내고, 건강보험에 진료비를 신청해서 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골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왕진이 일상화되어있고, 응급환자가 왕진을 청하면 진료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왕진을 가는 식이 우리나라에서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전화 등으로 예약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냥 찾아오는 환자도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예약을 받고 진료실 살림을 맡는 비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삭스선생님의 비서 르블랑 부인이 진료실의 일상적인 분위기를 전하는 것으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112개의 삽화와 6개의 독백을 읽다보면 삭스 선생님이 환자를 대하는 철학이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진료실은 물론 생활공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비디오가게에서 눈에 띈 X등급의 비디오 클립이 아이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치워달라고 부탁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또한 환자의 개인사의 비밀을 철저하게 지켜주는 의사이기도 합니다. 그는 진정한 의사에게 비밀이란 절대적인 거야(498)”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승에게 야단을 맞아가면서도 말입니다. 이런 진료방식은 환자들이 소소한 비밀까지도 털어놓게 만들고, 가까워질 수 있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의사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거 원, 웬 멍청한 직업인지 몰라. 사람들은 우리를 무슨 식당 종업원처럼 여기지. 어느 날은 울면서 전화해서는 자기를 구해 줄 유일한 사람으로 여기다가도 다음 날 빵집에서 나오다 마주치면 오던 길을 돌아가잖아.(118)”


의사인 저자가 글을 쓰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삭스선생을 빌어서 말입니다. “난 글을 쓴다는 게, 여느 사람에게나 마찬가지로 의사에게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 잡아 둘 수 없는 것들을 헤아려 보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빠져 달아나는 현실의 구멍들을 가느다란 끈으로 막아 보려는 시도이며, 다른 곳에서 찢어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투명한 베일 속에 매듭을 지어 놓으려는 시도입니다. 글을 쓰는 일은 기억에 대항하여 이루어지는 일이지 결코 기억과 함께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글을 쓴다는 건 상실을 조절하는 일입니다.(620)” 글을 쓴다는 것은 시원치 않은 기억을 보완하는 일이라는 것이겠지요.


옮긴이의 말 끝에 작가가 글을 쓰는 일이 가지고 있는 치유작용에 관한 답이 있습니다. “나는 글쓰는 일을 진통제에 비유합니다. 진통제를 주는 일은 보살핌은 되지만 치유는 아니지요. 글을 쓸 때는 좀 덜 아파요.이 소설을 쓰면서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 웃음이 나더군요. 글로 써내면서 약간의 치료가 된 거겠지요. 글을 쓴다고 해서 삶의 고통이 절감되지는 않아요.(638)”


출판사에서 예스24의 책소개 글에 정리한 1. 현대 의료 체계의 비인간성, 2.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3. 따듯한 비관주의와 소설 집필 의도, 3 가지 요약은 이 책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라면 지나친 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걸어온 의업의 길을 그저 담담하게 적고 있을 뿐, 다른 의사를 혹은 의료체계를 비판하거나 비관적으로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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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의 말 - 수다쟁이 고독자의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파스칼 키냐르.샹탈 라페르데메종 지음, 류재화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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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수다쟁이 고독자의 인터뷰라는 부제에 끌렸나 봅니다. <파스칼 키냐르의 말>은 마음산책이 내놓은 말에 지성이 실린 책기획의 아홉 번째 책입니다. 20154월에 <수전 손택의 말>을 내놓은 뒤, 보르헤스, 한나 아렌트, 레비스트로스, 코넌 도일, 칼 세이건, 헤밍웨이, 시모어 번스타인에 이은 것입니다. 이후로 박완서, 오에 겐자부로, 프리모 레비, 긴즈버그, 아녜스 바르다로 이어져 모두 14종이 출간되었습니다.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세상의 모든 아침>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세상의 모든 아침>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참에 읽어보려 합니다. 어려서 자폐증을 심하게 앓았으면서 고독한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독자라는 칭호를 달게 되었는가 봅니다 낭테르 대학에서 에마뉘엘 레비나로부터 철학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68혁명을 거치면서 문학으로 진로변경을 했던 것입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 또한 커서 오케스트라 콩세르 데 나시옹을 이끌었다고 합니다.


<파스칼 키냐르의 말>에서는 프랑스 아르투아 대학의 불문학교수인 샹탈 라페르데메종의 대담자로 나섰습니다. 그는 파스칼 키냐르의 작품은 고독의 도취와 그 순간에 대한 음미로 가득하다.(8)”라고 서문에 적었습니다. 대담은 2000년 겨울에 샹탈이 질문하고 키냐르가 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서문 곳곳에서 고독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것은 키냐르가 어린 시절 겪었던 정신적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한 인간이 고독하다고 해서 침묵만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특히 키냐르의 경우는 독백을 쏟아냈던가 봅니다. 작품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샹탈은 독백, 그러니까 독백은 고독자의 장소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장소가 곧 작품, 독백의 예술이 펼쳐지는 곳이다.(20)’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이 책의 부제에 나온 수다쟁이라는 역설이 나오게 된 듯합니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한 권의 책을 이룰 정도였다면 대담에 소요된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가늠조자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책의 내용을 보면 키냐르가 쓴 작품은 물론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글이나 말에 담긴 키냐르의 생각들을 확인하는 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답변을 하는 키냐르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키냐르보다 대담자로 나선 샹탈의 경우 질문 목록을 만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어느 해 여름을 보낸 일에 대하여 키냐르는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여름이 정말 시작되었다.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싶었다. () 모든 일을 중단하니 거의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만큼 행복하였다. 행복이 올라왔다. 나는 책을 읽었다. 행복이 나를 집어삼켰다. 여름 내내 나는 읽었다. 행복이 여름 내내 나를 집어삼켰다.(8)” 한 여름을 내내 책만 읽을 수 있다는 그 또한 행복할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 일에 관한 샹탈의 멋진 표현이 나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계로부터 떨어지는 건가요? 아니면 세계를 떨어뜨려놓는 건가요?(72)” ‘멋진 표현이라는 평가도 사실을 키냐르가 한 말입니다. 키냐르의 말을 마음에 두고 샹탈의 질문을 다시 읽어보면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키냐르는 집단에서 날 떨어뜨려놓기, 나 자신을 찾아오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기등 책읽기의 세 가지 목표를 말합니다. 책읽기에서 출발한 대담은 자연스럽게 글쓰기로 이어집니다. 글쓰기와 관련하여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사실, 작품은 기억이 가지고 있는 왜곡성에 대해 속일 수 없는 일종이 지수적 요소들로 답하는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요소들은 실질적인 감각의 영역이기도 하니까요.(152)”


샹탈과 키냐르가 주고받은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역시 철학을 공부한 까닭인지 사유의 깊이도 남다르고 표현도 난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단 키냐르의 작품을 골라 읽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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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동네서점
배지영 지음 / 새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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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근무할 때는 저녁을 먹고 시내구경을 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혼자 나서는 길이지만, 영화도 보고, 카페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저녁 산책길에서 빠지지 않은 일은 동네서점 들리기였습니다. 물론 신문을 통해서 신간 소식을 접할 수도 있지만, 서점에는 새로 나온 책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요즈음에는 누리망 서점 등을 통해서 신간 소식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기도 합니다. 누리망 서점이 몸집을 불려나가면서 동네 서점들이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저 역시 언젠가부터는 동네서점에서 책을 사기보다는 누리망 서점에서 책을 사게 된 것 같습니다.


<환상의 동네서점>을 골라든 것도 어쩌면 동네서점에 대한 미안한 생각이 조금 있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더해서 이 동네서점은 저의 고향동네에 있는 서점이기도 하답니다. 제 고향은 항구도시 군산입니다. 군산에서는 비가오더라도 물에 잠긴 대사건이 발생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그런데 책에서는 2012년에 자동차가 둥둥 떠다닐 만큼 폭우가 쏟아진 적이 있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고, 군산의 지역 특성상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살펴보니 2012년에는 하루 432mm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난리가 난 지역은 아마도 난개발 탓으로 배수에 문제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옛날이야기는 접어두겠습니다. <환상의 동네서점>은 그런 물난리 속에서 피해를 입은 한길서점 이야기입니다. 물난리가 났을 때 마을사람들이 나서서 수습에 도움을 주었다는 서점입니다. 요즘 세상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서점과 마을사람들 사이의 평소 관계를 알려주는 이야기 같습니다. 시위에 나선 대학생들이 모이던 장소라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습니다. 군산에서 시위가 있었구나 싶어서입니다.


<환상의 동네서점>은 한길서점에 상주한다는 작가 배지영님의 수필집입니다. 동네서점에 상주하는 작가가 있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습니다. 문화체육부와 한국작가회의가 함께 시작한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사업의 일환이라고 합니다. 배지영님이 한길서점의 상주작가로 활동하시면서 하신 일,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환상의 동네서점>에 담았습니다. 동네서점이지만 작가 강연회, 독서회, 독서대회, 글쓰기 수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면서 직장은 강원도 원주로 다니고 있어서, 한길서점의 글쓰기 수업에 참가할 수 없는 게 아쉽습니다. (써놓고 보니 배지영님의 첨삭지도가 필요한 구절이군요) 글쓰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책도 여러 권 내보았고, 신문이나 블로그에도 다양한 글을 쓰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수필이라고 할 정도의 글은 아직 써보지 못해서 지도를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도 회사에서 책읽는 모임을 만들어보았습니다만, 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참입니다. 책 읽는 모임에 대한 조언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머님까지 돌아가시고는 부모님 기일과 양 명절이나 군산에 가보게 됩니다. 그것도 오가는 시간만 많이 들지 머무는 시간은 많지 않은 형편입니다. 한길서점에서 주관한 작가 강연회는 주로 소설이나 수필집을 내신 작가 중심으로 진행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저도 한번 강사로 나서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주로 건강에 관한 책과 독후감으로 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하는 일을 중심으로 책을 만드는 작업을 소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향 동네에 대한 작은 보답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년에 옮길 예정인 직장 근처에는 동네서점이 두어 곳 있습니다. 저녁 산책길에 동네서점 탐방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에는 동네서점과 연계해서 독립출판이나, 독서치료 등 좋은 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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